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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워지기를 기다리는 달집(대전 무수동).
태워지기를 기다리는 달집(대전 무수동). ⓒ 안병기

아직도 생생하게 살아있는 대보름날의 추억

오늘은 대보름날이다. 한 해가 새로 시작 돠고나서 맨 처음 맞는 보름이라서 대보름이다. 그래서 한자로는 보름날 중에 으뜸이라는 뜻이 있는 상원(上元)이라고 쓴다. 엊그제가 설날이었는데 설을 쇤 지 벌써 보름이 지난 것이다.

아마 매스컴이 앞장서 떠들지 않았다면 오늘이 보름날인지도 몰랐을 것이다. 이렇게 시큰둥하게 말하지만, 나이 들어 점점 흐려져 가는 기억 속에서 어린 날에 지냈던 대보름 명절은 여전히 즐거운 추억으로 남아 있다.

어린 내가 정월 대보름날을 기다렸던 것은 시루에 쪄낸 찰밥을 실컷 먹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설 명절이 '꼬까옷'을 얻어 입을 수 있어 좋았다면, 정월 대보름날은 밥을 배불리 먹을 수 있어서 좋았던 것이다. 일 년 내내, 삼시 세 때 줄창 꽁보리밥만 먹다가 쌀밥을, 그것도 그냥 쌀밥이 아닌 찰밥을 마음껏 먹을 수 있었으니 얼마나 좋았겠는가.

대보름날 전날엔 밤엔 쉬 잠을 이루지 못했다. 할아버지께서 "보름날 밤에 잠을 자면 눈썹이 하얘진다"라고 잔뜩 겁을 줬기 때문이다. 밤이 깊어지면 잠이 쏟아져 저절로 눈이 감겼다. 잠들지 않으려고 눈꺼풀에 찬물을 적시기도 하고 처마 끝에 달린 고드름을 대기도 하는 등 무진장 애를 썼지만 헛일이었다. 세상에 잠 이기는 장사가 어디 있는가. 나도 모르게 스르르 잠이 들면 고모들은 눈썹에다 쌀가루나 밀가루를 발라 놓았다. 그러고 나선 " 거울 봐라, 네 눈썹이 하얘졌다"고 놀리곤 했다.

대보름날 아침에는 눈을 뜨자마자 땅콩이나 호두 따위를 깨물었다. 이른바 '부럼'을 까는 것이다. 부럼이란 '부스럼'의 준말이다. 부럼을 까는 이유는 피부에 종기나 부스럼이 나지 말라는 뜻이다. 우리 어려서만 해도 목욕을 잘 안 해서 그런지 피부병이 아주 많았다. 어른들은 데우지 않은 술을 마셨다. 귀가 밝아진다는 '귀밝이' 술이었다.

더위를 팔려고 동네 고샅을 돌아다니기도 했다. 아침 해가 뜨기 전에 동무를 만나서 이름을 불러 "응"하고 대답하면 '내더위'라고 소리친다. 이렇게 여름을 팔아 버리면 여름에 더위를 타지 않는다는 것이다. 더위를 팔려다가 되레 동무에게 선수를 빼앗겼을 땐 얼마나 분했던가. 낮에는 뒷동산으로 올라가 '액연(厄鳶)' 을 띄웠다. 얼레에 감긴 연실을 모두 풀거나 끊어서 멀리 날려 보내면 액땜이 된다고 했다.

밤엔 동네 아이들이 다 모여서 쥐불놀이를 했다. 깡통 속에 솔방울이나 관솔을 넣어 불을 지피고 나서 빙빙 돌리면 불꽃이 원을 그리며 밤하늘을 아름답게 수놓았다. 그러다가 깡통에서 불똥이 쏟아지기라도 하면 머리카락과 옷을 태우기도 했다. 어떤 때는 불똥이 산자락에 옮아붙어 산불로 번지기도 했다, 그럴 땐 온 동네 사람들이 달려들어 소나무 가지를 꺾어서 휘둘러서 불을 껐다.

특별히 정월 첫 쥐날(上子日)에 쥐를 쫓는다는 의미로 논밭 둑에다 놓는 불을 가리켜 쥐불놀이 또는 쥐불놓이라 불렀다.

어린 시절의 기초환경으로부터 나아간다

고은 시인의 시 '대보름날'은 그런 대보름 풍속을 사실적으로 그려낸 시다. 이 시는 1986년에 첫걸음을 시작한 <만인보> 시리즈 1권에 들어 있다. 시인이 <만인보>라는 시의 대장정을 시작하면서 "우선 내 어린시절의 기초환경으로부터 나아간다"라고 천명한 대로 시 '대보름날'은 고은 시인의 '기초환경', 즉 유년시절의 추억을 쓴 것이다.

 시집 표지.
시집 표지. ⓒ 창작과비평사
정월 대보름날 단단히 추운 날
식전부터 바쁜 아낙네
밥손님 올 줄 알고
미리 오곡밥
질경이나물 한 가지
사립짝 언저리 확 위에 내다 놓는다
이윽고 환갑 거지 회오리처럼 나타나
한바탕 타령 늘어놓으려 하다가
오곡밥 넣어가지고 그냥 간다
삼백예순 날 오늘만 하여라 동냥자루 불룩하구나
한바퀴 썩 돌고 동구 밖 나가는 판에
다른 거지 만나니
그네들끼리 무던히도 반갑구나
이 동네 갈 것 없네 다 돌았네
자 우리도 개보름 쇠세 하더니
마른 삭정이 꺾어다 불 놓고
그 불에 몸 녹이며
이 집 저 집 밥덩어리 꺼내 먹으며
두 거지 밥 한 입 가득히 웃다가 목메인다
어느새 까치 동무들 알고 와서 그 부근 얼쩡댄다  - 고은 시 '대보름날' 전문

대보름 전날 밤에 내가 쉽게 잠을 이룰 수 없었던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새벽어둠을 타고 장독이나 감나무 가지에 얹어 놓은 묵은 나물과 찰밥을 걷어가는 사람들 때문이었다. 그 사람들은 대개 고개 너머 금달리 사람들이었다. 아예 자루를 메고 다니면서 온 동네의 찰밥을 다 걷어가 버렸다. 그래서 그 사람들이 오나 안 오나 살피기 위해서라도 잠을 덜 자야 했던 것이다.

약자에 대한 배려 만큼은 오늘에 되살려냈으면

시의 내용과는 달리 신새벽 우리 집에 몰래 찾아왔던 '밥손님'은 거지가 아니었다. 딱히 배가 고파서 밥을 걷어가는 사람도 아니었다. 그것은 심심파적을 위한 장난이나 놀이임이 분명하다. 거지가 아니라도 밥을 가져가는 것이 암묵적으로 허용됐던 것이니 거지가 밥을 가져가는 건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한바퀴 썩 돌고 동구 밖 나가는 판에 / 다른 거지 만나니 /그네들끼리 무던히도 반갑구나 / 이 동네 갈 것 없네 다 돌았네"라는 대목에 이르면 슬그머니 웃음이 난다. 미리 정보를 알려주고 나눠주는 배려와 센스가 놀랍지 않은가. 내 어린 시절의 정월 대보름은 그렇게 궁핍한 속에서도 날짐승인 까치와 '밥도둑'까지 배려할 줄 알았던 너그러움이 남아있던 시대였다.

지금 생각하면 나의 어린 시절은 농경사회와 전통의 황혼이 막 시작되려는 찰나였다. 내 고향 전라도는 특히 그랬다. 논을 팔고 도회지로 나가려는사람들이 점차 늘어났던 것이다. 도회에서 날품팔이를할망정 시골에서 농사짓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는 생각이 떠나는 사람들의 발길을 재촉했다. 결국 시골엔 농사짓는 재주 말고는 아무 재주도 없는 '무녀리'들만 남게 되었다.

대보름날 아침, 찰밥을 먹으면서 생각에 잠긴다. 전통은 아직도 유효한가. 아직도 살아 있는가. '오곡밥'이라는 한 가지에만 한정시켜 놓고 본다면 전통은 아직 완전히 사라지진 않은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활기를 잃고 점점 피폐해져 가는 농경사회에서 안락사를 기다리는 전통이란 얼마나 안쓰러운 것인가. 전통은 사라지더라도 그 전통 속에 깃든 정신 만큼은 사라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밥손님'을 용인했던 사회적 약속, 약자에 대한 배려만큼은 그대로 이어갔으면 싶다.


#고은 #대보름날 #만인보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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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곳을 지향하는 눈(眼)과 한사코 사물을 분석하려는 머리, 나는 이 2개의 바퀴를 타고 60년 넘게 세상을 여행하고 있다. 나는 실용주의자들을 미워하지만 그렇게 되고 싶은 게 내 미래의 꿈이기도 하다. 부패 직전의 모순덩어리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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