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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4시다. 여느 물때 같으면 벌써 귀가를 서둘렀을 것이다. 하늬바람이 옷깃을 잡아당긴다. 바닷물도 뭍으로 나오기 아쉬워 쉬이 들지 못한다. 작업시간이 평소보다 두어 시간 길어졌다. 찰랑찰랑 바닷물이 작업선 배전을 두드리자 꼬막작업이 마무리 되었다.

검은여 근처에서 꼬막을 캐던 열댓 명 아낙들이 채비를 하고 줄을 섰다. 맨 앞에 마을에서 가장 젊은 아낙이 앞장섰다. 그래봤자 60줄이다. 아침에 타고 간 널배 자국이 저녁노을에 반짝인다. 넓은 갯벌을 가로지른 자국은 장도에 닿을 듯하다. 너른 꼬막 밭에 남긴 널배 길은 이른 새벽 시골운동장에 남긴 첫 발자국처럼 수줍다.

사실 아낙들보다 먼저 꼬막 밭을 다녀간 놈들이 있었다. 도요새와 갈매기들이었다. 군데군데 새 발자국이 남겨져 있다. 널배를 타고 꼬막밭으로 들어오는 아낙들을 보고 이들은 검은여와 장도를 돌아 순천만으로 날아갔다.

오전 11시 벌교 장암리 갯벌에 꼬막을 캐는 아낙들이 널을 타고 들어갔다.
 오전 11시 벌교 장암리 갯벌에 꼬막을 캐는 아낙들이 널을 타고 들어갔다.
ⓒ 김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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갯벌이 마르면 꼬막 캐는 작업을 마치고 나오는 아낙들이 힘들다.
 갯벌이 마르면 꼬막 캐는 작업을 마치고 나오는 아낙들이 힘들다.
ⓒ 김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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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만 박어, 물도 없는디

조금이 막 지난 너물, 경운기를 선창에 세워둔 남자들이 걱정스레 갯바닥을 살펴보다 인근 숲에서 나무와 마른 풀을 모았다. 타다 남은 굵은 통나무 위에 마른 풀잎과 아카시아나무 가지를 얻더니 익숙한 솜씨로 불씨를 이룬다. 작업이 있는 날 아침이면 물이 빠지기를 기다리며 불을 피웠던 자리다.

갯벌에도 길이 있다. 그 길로 널(배)을 타고 꼬막밭으로 이동한다. 한 발을 널에 올리고 다른 한 발로 갯벌을 밀치며 타야 한다. 오늘처럼 물때가 마땅치 않아 갯벌 바닥이 말라버리면 널을 타기 힘들다. 평소에는 꼬막 밭에서 뭍으로 나오는 시간은 많아야 5분이나 걸릴까.

꼬막 선착장까지 200m 남겨두고 맨 앞에 섰던 아낙이 널을 멈췄다. 이젠 물동이에 담아온 물도 떨어졌다. 오늘처럼 펄이 말랐을 때 맨 앞에 널을 타는 사람이 널 길에 물을 뿌리면서 타고 나온다. 이젠 그것도 어려운 모양이다. 선창에서 남정네 둘이 마중물을 뿌려보지만 5미터도 나가지 않는다. 안타까움만 더 했다.

반시간을 갯벌에서 씨름을 하고 있다. 맨 앞에선 아낙이 널에서 내려 수레처럼 끌기도 하고, 뒤에서 밀기도 한다. 용을 써보지만 250센티미터 길이의 널 한질만큼도 이동하지 못하고 멈춘다. 그러기를 몇 차례. 한 시간이 훌쩍 지났다. 사진은 원 없이 찍었다. 내심 미안하기도 했다. 아니나 다를까. 아낙들의 목소리가 바람을 타고 넘어왔다.

그만 박어. 물도 없는디. 힘들어 죽겄어.

널배를 밀던 아낙들이 깔깔대며 웃는다. 널을 타기 위해서는 갯벌에 물기가 있어야 한다. 오늘처럼 물도 없는 날은 배를 타기가 매우 힘들다. 즐기기라도 하듯 사진을 찍고 있었으니  아낙들이 소리를 지를 법하다. 그렇지만 그들이 뱉은 말들을 연결해 놓으니 색주가에서 들을 수 있는 걸쭉한 음담패설이 되고 말았다.

갯벌이 말라 10분이면 널을 타고 도착할 거리를 1시간 이상 걸렸다.
 갯벌이 말라 10분이면 널을 타고 도착할 거리를 1시간 이상 걸렸다.
ⓒ 김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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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은 갯벌을 만들고, 갯벌을 꼬막을 만든다

이곳 갯벌은 깊다. 어른 키 한 질까지 빠지는 곳도 있다. 널을 이용해야 갯벌을 건널 수 있다. 그래서 꼬막 맛이 좋다. 그래서 찰지다. 꼬막은 전라도 특산물이다. 특히 여자만과 득량만이 주산지다. 꼬막을 대표하는 벌교는 여자만에 속한다.

조정래의 <태백산맥> 덕에 꼬막 앞에 ‘벌교’라는 지명이 고유명사처럼 붙었다. 꼬막은 강요주, 꼬막, 괴륙, 괴합, 꼬마안다미조개, 복로, 살조개, 안다미조개, 와롱자 등 다양한 별명을 가지고 있다. 자산어보는 꼬막을 감(蚶), 새꼬막은 작감(雀蚶)이라 했다. 새꼬막에는 ‘참새가 들어가서 변한 것’이라고 설명도 덧붙였다. 신화에서나 있을 법한 이야기다.

자산어보를 쓴 손암(정약전)의 바람을 적은 것인지 모른다. 손암은 동생약전과 같이 유배되어 나주에서 헤어진 후 만나지 못하고 섬에서 눈을 감았다. 죽은 후 꼬막에서 나와 동생을 찾아가다 도암만을 지나 여자만에 안긴 것은 아닐까.

17개의 널이 선창에 올라 온 것은 5시가 훌쩍 넘은 시각이었다.
 17개의 널이 선창에 올라 온 것은 5시가 훌쩍 넘은 시각이었다.
ⓒ 김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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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를 돌아 순천과 보성 고흥으로 돌아 나오는 여자만 갯벌, 갯것들의 보고다. 특히 벌교 꼬막이 유명한 것을 벌교강에서 내려오는 강물이 살아 있기 때문이다. 강과 바다는 소통해야 한다. 강이 막히면 바다는 죽는다. 벌교가 죽지 않고 보성과 어깨를 견주는 것은 순전히 벌교천, 바로 벌교강 때문이다.

여자만 귀퉁이를 ‘벌교’가 차지하고 있다. 장암리와 대포리가 그곳이다. 특히 상암, 하암, 대룡의 자연마을로 이루어진 장암리는 명실공히 우리나라 참꼬막 주산지다. 작은 마을이 대한민국 꼬막을 대표하고 있다. 얼마나 대단한가. 보성을 꼬막의 고장으로 우뚝 서게 한 것은 벌교천과 갯벌이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보성꼬막이라 하지 않는다. 벌교꼬막이라고 한다. 벌교천은 벌교의 자존심이다. 꼬막에 벌교브랜드를 붙일 수 있는 곳은 장암리, 대포리에서 나오는 꼬막에 한해서다. 자연마을로 상암, 하암, 대룡리, 대포, 제두 마을에서 나오는 꼬막들을 일컫는 말이다. 갯바닥으로 말한다면 장암 3구 즉 대룡리 웃나루에서 대포에 이르는 갯벌이다.

덧붙이는 글 | 이어지는 기사는 '꼬막 맛이 변하면 죽을 날이 가깝다'입니다.



태그:#벌교고막, #갯살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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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 년 동안 섬과 갯벌을 기웃거리다 바다의 시간에 빠졌다. 그는 매일 바다로 가는 꿈을 꾼다. 해양문화 전문가이자 그들의 삶을 기록하는 사진작가이기도 한 그는 갯사람들의 삶을 통해 ‘오래된 미래’와 대안을 찾고 있다. 현재 전남발전연구원 해양관광팀 연구위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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