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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 바로 옆에 위치한 교회.
▲ 교회 성당 바로 옆에 위치한 교회.
ⓒ 문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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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 친구에게

내가 가진 믿음이 흔들리지 않았으면 해. 사랑도, 우정도, 그리고 그 분에 대한 나의 진심도. 친구야, 나도 알아. 변덕심한 만용의 끝에 늘 상처입은 여린 자아의 부서진 논리로 힘없는 외침만 늘어놓는다는 것을. 네가 그랬지. 넌 왜 불만분자처럼 맨날 칭얼대기만 하느냐고.

그런데 말야. 아이처럼 보채듯이 까닭없이 투덜댈 땐 그저 아무 조건 없이 기댈 수 있는 누군가의 따스한 품이 그리운 거야. "친구야, 내 어깨를 빌려줄게." 이 말이 지금 내게 얼마나 필요한가를. 거칠게 지쳐버린 것이 이제 그만 한국에 돌아가고 싶나 봐. 그런데 되돌아가기엔 바람에 밀려온 길이 너무 아득해. 술 한 잔 걸치지도 않았는데 쓸데없는 편질썼다. 지겨운 가봐. 어쩜 이 여행.

※ 추신 : 이 지겨움에서 탈출하기 위해서라도 보다 더 열정적으로 여행해야 할 필요성을 느껴. 지겨움을 그만 체념해야겠어.

누구에게나 발전을 위한 방황이 필요할 때가 있다. 체념은 더 이상의 기대를 포기한다는 것. 하지만 방황은 포기하지 않는 자신을 사랑하는 또 다른 방법이다. 소중한 무언가를 마음에서 놓아준다는 것이 쉽지 않듯 소중한 무언가를 마음에 꽉 붙잡고 있는 것 역시 쉽지만은 않음을 점점 깨달아 가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내 그런 흐릿한 채 고민어린 속마음까지 조근조근 털어놓을 수 있는 친구가 그리운 지금이다. 하지만 내 옆에 있어주는 이가 아무도 없을 때, 혼자라고 느껴질 때, 지금 이 순간을 외로움의 공백이 아닌 나를 돌아볼 수 있는 여백으로 만드는 것. 그것이 여행만이 줄 수 있는 특별한 토닥거림이니….

칠칠치 못한 혼돈스런 망상에 도리질을 한다. 마음을 다잡고 주머니에 꽂아 넣은 손가락을 꼼지락꼼지락 거린다. 짤랑짤랑 소리내는 동전을 가지고 무얼할까 생각하는 중이다. 세파에 찌들린 고시생처럼 구부정한 허리로 땅을 주시한 채 걷다가 이런 내 모습이 참으로 한심스러워 주위를 둘러보며 혼자 나직이 되뇐다.

'아, 배고파.'

쓸데없는 방황은 이만 접어두고 여행자 본연의 촐싹거림으로 나를 색칠하기로 한다. 일단은 먹고 봐야 한다. 5시간 넘는 기차 여행을 왔기에 늦은 점심을 먹어야 했다. 돈 없는 가난한 여행객이라 레스토랑은 엄두도 못내고 대신 바나나와 음료수로 허기를 달래기로 했다. '저녁은 숙소에서 주는 걸로 배불리 먹어야지' 생각하며 근처 가게로 발걸음을 옮기던 중이었다.

끄레엘 중심에 위치한 성당.
▲ 성당 끄레엘 중심에 위치한 성당.
ⓒ 문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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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님길에 웬 개들이 모여 있었다. 그런데 보니 심상치 않은 분위기다. 상황을 좀 더 자세히 보기 위해 시선을 고정시킨 난 소스라치게 놀랐다. 덩치 큰 하얀 개가 무슨 원한에서인지 덩치 작은 누런 개의 머리를 물고 늘어지고 있는 것이다. 누런 개는 짓이겨진 상태로 하늘을 향해 드러누워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더욱 충격적인 건 하얀 개의 입 속에 누런 개의 머리가 반이나 들어가 있다는 것이다. 오, 이런! 생각했던 것보다 상황은 훨씬 끔찍했다.

조금이나마 누런 개가 이 악몽의 굴레에서 빠져나오려 발버둥치면 하얀 개가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며 누런 개를 무참히 공격했고 이 장면을 보는 누구도 그 개들을 터치할 수 없을만큼 분위기는 격앙됐다. 대관절 그들에겐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

시내라고 부르기엔 그렇지만 상점들이 모여있는 가장 번화한 거리.
▲ 끄레엘 시내라고 부르기엔 그렇지만 상점들이 모여있는 가장 번화한 거리.
ⓒ 문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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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사람들을 불러놓고 에이즈 예방에 대한 홍보를 하고 있다.
▲ 에이즈 예방 홍보 마을 사람들을 불러놓고 에이즈 예방에 대한 홍보를 하고 있다.
ⓒ 문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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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그 때였다. 하얀 개와 비슷한 체구지만 조금 더 근육이 붙은 다른 누런 개가 성큼성큼 다가오더니 그들의 일에 관여하기 시작했다. 저런, 이젠 아주 협공해서 누런 개를 공격하려는 건지. '아니 정말 도대체 무슨 일이람?' 걱정스레 지켜봤다. 아니다. 그런데 아니었다. 각도를 달리해서 보니, 곤경에 처한 작은 누런 개를 살려주려고 큰 누런 개가 하얀 개의 입 속으로부터 머리를 빼려고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하얀 개도 성깔이 만만치 않았다. 오늘 기어코 사생결단을 내야겠다는 듯 작심하고 덩치 작은 누런 개를 공격했다. 그 장면에 감정이입이 되었는지 나 역시 몸을 부르르 떨며 안타까움이 더해갔다. 그 상황에서 잠깐의 정적이 흘렀다. 그리고 조금 뒤 생각보다 쉽지 않다고 여겼는지 덩치 큰 누런 개가 이번엔 직접 하얀 개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하얀 개도 만만치 않은 깡을 앞세워 거칠게 방어하며 좀처럼 물러서지 않는다. '누런 개, 파이팅!' 속으로 외쳤다. 이젠 주변 사람들 모두가 이 장면을 마치 소싸움 즐겨보듯 지켜보고 있었다. 단지 심각한 표정은 이 상황이 생경스러운 나 혼자뿐인 듯. 길 한복판에서 벌어진 격렬한 개싸움은 이미 작은 마을에 흥미꺼리가 된 것이다.

하얀 개와 누런 개의 국회 몸싸움을 방불케 하는 다툼이 펼쳐지고 그 사이 작은 누런 개는 혼란한 틈을 타 가까스로 빠져나왔다. 그리곤 겁에 질린 채 힘겹게 도망가는데 다리는 이미 절뚝거리며 머리는 피로 흥건하고 온 몸은 상처로 얼룩져 있었다. 그래도 살아난 게 천만다행이었다. 큰 누런 개와의 싸움에 열중하던 하얀 개가 이를 눈치채고 다시 작은 누런 개를 뒤쫓았지만 큰 누런 개가 재차 저지하며 또다시 격투는 재연되었고 결국 하얀 개가 지쳤는지 포기하면서 사건은 일단락되었다.

마음의 안도를 한 나는 무사히 상황이 종료되었음을 감사했다. 누런 개는 특유의 보스 기질을 뽐내며 느릿느릿 제자리로 돌아가고, 하얀 개는 성이 덜 풀렸는지 여전히 씩씩거리며 다른 길로 가버렸다. 그런데 이 싸움에 재미난 장면이 있었다. 바로 하얀 개의 오른팔쯤 되어 보이는 덩치 작은 검은 개가 하얀 개를 추종하는 것이다. 덩치 작은 누런 개를 공격할 때도 같이 공격했는데 덩치 큰 누런 개 앞에서 피할 때도 같이 피한다. 자신들만의 개 세계에도 도덕률이 있고, 파벌이 있나 싶다.

끄레엘은 개의 천국이다. 개를 이용해 노동을 하지 않는다. 그저 함께 어울린다. 그러다 보니 도로가 개판이다. 사람을 봐도 딱히 신경쓰는 것도 없다. 인상적인 건 그런 개들을 사람들도 신경 안 쓴다는 것이다. 우리네 시골 개들처럼 관리하지도 않는다. 가끔 관광객들이 흘리는 부스러기나 먹고 사는 것 같다.

이 지역에 터를 잡고 사는 인디오를 그린 벽화.
▲ 벽화 이 지역에 터를 잡고 사는 인디오를 그린 벽화.
ⓒ 문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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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끔찍한 싸움이었어.'

으르렁거리며 싸우는 개들의 혈투에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마저 걷던 길을 걷기 시작한다. 어슬막이 되자 꾸물꾸물한 날씨가 기분을 더욱 음울하게 만든다. 한 걸음 더 깊어진 얄푸른 하늘 아래 성당의 종소리가 메아리친다. 거룩한 파고를 만들며 흩어지는 청백의 종소리에 잠시 마음이 숙연해진다. 성당의 종소리에 마음이 울린 나는 순간 뭔가를 깨달았다.

'이건 밥쇠(절에서 밥먹을 때 여러 사람에게 알리기 위해 다섯 번 치는 종)로군.'
발걸음을 급히 돌려 숙소로 향했다.

저녁 시간은 사람들로 북적인다. 식사를 무료로 제공하기에 숙소 사람들이 다같이 얼굴을 보는 시간이다. 모두가 스스럼없이 친구가 되는 시간. 빵과 수프, 그리고 닭고기 볶은 것과 감자요리로 만든 간단한 식사를 두고 사람들은 저마다 여행의 경험과 계획들을 이야기한다. 내가 머무는 도미토리에 3명의 친구가 더 있다. 런던에서 온 영국 친구 샘(29·sam), 벤쿠버에서 온 캐나다 친구 앤드류(23·andrew), 그리고 뜻밖에도 한국인 인희씨가 있었다. 이런 잘 알려지지 않은 곳에 한국인을 만난다는 것은 흔치 않다.

인희씨는 여자 혼자의 몸으로 세계일주 중이다. 그는 학교를 졸업하기 전에 더 넓은 세계를 경험하기 위해 세계일주를 한단다. 그런데 많은 여행자들이 각각의 개성을 살려 여행을 하지만 그에게도 자신만의 특이한 점이 있었다. 바로 구매대행을 하며 경비를 벌고 있다는 것이다. 즉 물건을 구입해 그것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해외운송으로 보내주고 그 차익으로 경비를 마련하는 것이다. 아이디어가 번뜩이는 여행이다.

잠시 간단하게 이야기를 나누었던 우린 범생이 스타일의 샘과 날라리 기질이 다분한 앤드류가 기분좋게 한 잔 하고 들어온 다음 남자들끼리 본격적인 얘기를 시작했다.

"종성, 넌 자전거 세계일주라며? 미치지 않고서야 어떻게 그런 짓을."

먼저 앤드류가 포문을 열었다. 내 여행 방식을 듣고서는 어이없다는 듯 껄렁껄렁한 그의 말투에는 놀라움이 섞여 있었다.

"물론 힘들긴 하지만 그렇다고 생각만큼 그렇게 어렵지만은 않아. 자전거만이 주는 특별한 낭만이 있거든. 낯선 세계에서의 낯선 사람들을 만나는 데에는 자전거만한 수단이 없지. 그런데 앤드류 넌?"

"난 육로 세계여행이야. 캐나다를 왔다갔다하면서 여름엔 돈을 벌고 그 돈으로 다른 시즌엔 여행하고 경비가 떨어지면 다시 캐나다로 돌아가 돈을 벌어 나오는 거지. 비행기를 타지 않고 땅으로만 다니거든. 콜롬비아에서 파나마 건너올 땐 배를 탔어. 어쩔 수 없이 대륙을 건널 땐 배를 이용하는 거지. 어디라도 비행기 없이 가능한 한 멀리 가고 싶어."

"매번 왔다갔다 돈을 벌어 다시 나오기도 쉽지 않을텐데…."
"그렇긴 하지. 난 지난 5년간 토론토 대학에서 역사를 공부하고 학위를 따려고 발버둥쳐왔지. 그러다 새로운 형태의 공부를 발견했어. 돈에 대한 압박과 시간에 대한 스트레스에서 벗어나 보다 궁극적인 배움을 찾아낸 거야. 그게 여행이지. 사람들은 어떻게든 이해되는 진실이 없는 상황을 꺼리지. 하지만 여행을 단지 무언가 이해하기 위해서 하는 건 아니잖아? 여행하는 순간만큼은 나를 잊어버리고 싶거든. 세상과 삶은 공통점이 있는데 그것은 끊임없이 변화한다는 거야. 여행을 통한 경험들에서 그 변화에 대처하기 위한 아이디어를 얻는 거지."

비가 부슬부슬 내리던 밤에 본 교회.
▲ 교회 비가 부슬부슬 내리던 밤에 본 교회.
ⓒ 문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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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히 듣고 있던 샘도 대화의 보조를 맞춘다.

"난 7개월째 기차 세계여행 중이야. 회사에 휴직계를 내고 1년 예정으로 나왔는데 사진도 찍으면서 이 여행을 통해 내 꿈을 다시 한 번 재정립 하려고 해. 난 믿어. 기차를 타고 지구의 표면을 헤치며 가는 길이 다른 문화에서 사는 사람들을 더 잘 이해시켜 준다는 것을. 더욱이 기차를 타며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기가 막히는 풍경에 흠뻑 매료됐거든."

"그럼 다녀본 곳 중에 어디가 가장 좋았어?"

"음, 지금까지 남미와 러시아, 중국, 티벳, 몽골, 미국을 다녀왔고 지금은 보시다시피 멕시코에 있지. 근데 가장 좋았던 곳은 물론 티벳이야. 지금까지 세계여행을 하면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과 가장 아름다운 사람들을 볼 수 있었어. 기회가 된다면 다시 한 번 가보고 싶다."

서로의 여행의 수단을 달랐지만 우리가 추구하고 있는 건 엇비슷했다. 특별한 경험을 통한 스스로의 변화, 발전, 그리고 비전.

"그래, 혼자 그렇게 오래 다닌다니 여자친구는 없는 거야?"

우린 다들 장기여행 중인 젊은 남자들이었으므로 서로의 여자친구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BBC에서 근무하는 샘은 영국에 여자친구가 있는 상태였고, 반대로 난 혼자인 상태였다. 일단 난 조용히 맘에도 없는 솔로예찬을 했다.

"혼자가 편하지. 여자친구와 함께였다면 이 여행이 분명 더 힘들었을 거야. 그리고 자유로운 혼자일 때 더 깊은 사색을 통해 나를 발견할 수 있거든. 어쨌든 난 이 여행이 끝난 후 한국 돌아가서 사귈래."
"난 여자친구가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해."
앤드류가 알쏭달쏭한 대답을 하자 우리는 앤드류의 입에서 나올 연유가 궁금하여 귀를 쫑긋 세웠다.

"이번 여행이 여자친구와의 관계를 지속하느냐 하는 중대기로야. 실은 이 여행 전에 여자친구와 크게 다퉜거든. 우린 생각도 다르고 무엇보다 라이프스타일이 너무 틀려. 그래서 관계를 지속하기가 쉽지가 않았어. 그래서 여자친구와 얘길했지. 내가 이 여행을 끝나고 돌아와서도 서로에 대한 감정이 식지 않는다면 다시 잘해 보는 거고 아니라면 끝내자고. 서로가 서로에게 얼마나 구속되는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떨어져 지내면서 알아볼 참이야."

침대 위층이 캐나다에서 온 앤드류, 밑에 층이 영국에서 온 샘.
▲ 바람둥이와 젠틀맨 침대 위층이 캐나다에서 온 앤드류, 밑에 층이 영국에서 온 샘.
ⓒ 문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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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드류는 점잖게 차가운 표정으로 자신의 여행의 또다른 목적을 말해주었다. 잠시 침묵이 흘렀지만 난 되레 앤드류에게 장난을 쳤다.

"이 여행이 바람둥이의 비참한 말로가 될지도 모르겠군."
앤드류는 손을 내저으며 강하게 부정하면서도 기분이 나빠 보이진 않은 듯하다. 웃어버리는 것이 자신의 정체성을 어느 정도 인정한다는 뜻일까?

"그래도 캐나다면 세계에서 살기 좋은 곳으로 알고 있는데. 넌 좋겠다. 나도 한 번쯤 꼭 캐나다에 가고 싶었거든. 워킹 홀리데이를 생각했지만 여의치 않아 자전거로 동부쪽만 넘어갔다 왔지."

앤드류는 자신의 조국을 칭찬하는 말에 단번에 캐나다가 그렇게 살기 좋은 곳이 아니라고 정색한다.

"난 토론토에서 태어나긴 했지만 벤쿠버에서 쭉 자랐지. 하지만 벤쿠버 날씨는 너무 궂어. 그래서 흐릿한 날씨가 지속되니 자살하는 사람도 많아. 아마 자살률도 따지면 벤쿠버만한 곳도 드물 걸? 흐리고 비가 계속 오는 날에는 마치 현실을 벗어난 꿈같은 착각이 들 정도라구. 날씨가 얼마나 마음을 우울하게 하는데. 더욱이 물가도 비싸단 말이지. 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결코 살기 좋은 곳이 아니야."

그는 다만 록키산맥과 유콘 강만큼은 아름답기 그지없다는 말을 제외하곤 온통 부정적인 판단뿐이었다. 옆에서 앤드류의 푸념을 듣던 샘이 넌지시 한 마디 거들었다.

"그래도 런던만 하려고."
우리는 날씨에 관한 한 이보다 더 우울할 수 없는 곳에 거주하는 샘의 정곡을 찌르는 한 마디에 웃을 수밖에 없었다. 대화 도중 난 컴퓨터를 꺼내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오늘은 끄레엘에서 만난 영국 젠틀맨과 캐나다 바람둥이에 관한 얘길 써야겠어."
"바람둥이라. 딱이군."

"이 보라구, 내가 왜 바람둥이야!"
"종성이가 널 바람둥이라고 하잖아. 난 젠틀맨이거든."

샘이 살살 장난치자 앤드류도 어쩔 수 없다는 듯 피식 웃어버린다. 하지만 앤드류는 짖궂은 이 분위기에 적응했는지 어깨를 들썩이며 체념한 듯 한 마디 내뱉었다.

"난 괜찮아. 아직 스물 셋이니. 좀 더 신나게 놀아야지. 안 그래?"

우린 그만 폭소를 터트리지 않을 수 없었다. 차분하면서도 넉넉한 풍요로움이 느껴지는 샘, 에너지가 넘치는 바람둥이 기질의 앤드류, 그리고 무모한 도전을 통해 꿈의 알갱이를 찾아내려 무던히도 노력하는 철없는 나. 세 남자의 반가운 만남은 이렇게 하룻밤을 늦게까지 밝힐 만큼 계속되었다.

기차, 육로, 자전거 여행을 하는 세 남자. 헤어짐 직전에.
▲ 세 남자 기차, 육로, 자전거 여행을 하는 세 남자. 헤어짐 직전에.
ⓒ 문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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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아침, 세 남자는 모두 각자의 방법과 방향으로 흩어지는 길에 서로가 꿈을 이루고 멋진 인생이 될 수 있도록 격려하는 마지막 인사는 잊지 않았다. 다시 기차로 떠나는 샘과 차로 떠나는 앤드류, 그리고 남아 있는 나. 힘차게 손을 흔들며 떠나는 여행자의 뒷모습이 뭉클하면서도 멋져 보이는 이 순간. 우리는 이 짧은 만남을 통해 또다시 추억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었다.

"너 하나 없다 해도 세상은 결코 변하지 않아. 하지만 네가 있으므로 세상은 더 아름다운 거야. 우리의 꿈과 멋진 인생을 위한 최고의 여행을!"

덧붙이는 글 | 세계 자전거 비전트립 홈페이지는 http://www.vision-trip.net 입니다.

샘의 기차여행 블로그 www.randomphotographer.co.uk/blog



태그:#세계일주, #문종성, #자전거, #멕시코, #비전노마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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