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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성그룹의 비자금 의혹 등을 수사할 조준웅 특별검사수사팀이 1월 10일 오전 서울 한남동 사무실에서 현판식을 갖고 본격적인 수사에 착수했다.
삼성그룹의 비자금 의혹 등을 수사할 조준웅 특별검사수사팀이 1월 10일 오전 서울 한남동 사무실에서 현판식을 갖고 본격적인 수사에 착수했다. ⓒ 남소연

무자년 설 연휴 잘 보내셨습니까? 

저는 지금 한남동 삼성 특검 사무실에 나와있습니다. 조준웅 특별검사수사팀은 지난 7일을 제외한 나머지 연휴를 반납하고 지금도 수사에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오늘(8일)도 과천과 수서의 삼성증권 전산센터에 대한 계좌추적 영장을 집행하기 위해 6명의 수사관들이 출발했습니다.

그러나 애초 설 연휴 기간에 특검에 출석하기로 했던 임원들이 나타나지 않아 전체적으로 한산한 분위기입니다. 여러분은 이번 설날에 고향에서 친척들이 둘러앉아 세상 이야기 많이 나누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제 경우에 세상 이야기 중 최고 화제는 단연코 '삼성'이었습니다. 친지분들께서는 이런 말씀을 많이 하시더군요.

"삼성이 족히 국민 십만 명 이상을 먹여 살리는데 계속 이래서 되겠어?"
"삼성이 무얼 그렇게 잘못했니? 다른 기업들도 다 마찬가지 아니겠어?"
"그래도 삼성이 우리나라 대표 기업인데…."

칼칼했습니다. 못내 불편했습니다. 슬쩍 "그건 아니다"고 디밀어보지만 '대한민국 대표기업 삼성'을 옹호하는 대세에 사정없이 휩쓸려가고 말았습니다. 삼성이 수십 년간 쌓아올린 '이미지'가 빛나던 순간이었습니다.

이같은 '명절 여론'을 살펴보니 짧게는 30여 일간, 길게는 넉 달 이상 계속된 삼성 관련 뉴스에도 사람들은 삼성에게 '분노'보다는 '걱정'이 좀 더 앞서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그 걱정의 밑바닥에는 '초일류기업 삼성', '대한민국 대표기업 삼성'이라는 굳은 '믿음'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삼성이 정말 대한민국 대표기업, 초일류기업이라 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삼성, 정말 '기업' 맞나?

 서울 중구 태평로의 삼성 본관.
서울 중구 태평로의 삼성 본관. ⓒ 오마이뉴스 권우성
두산대백과사전에 나온 기업의 뜻을 살펴보면 "이윤의 획득을 목적으로 운용하는 자본의 조직단위"라는 정의 아래 다음과 같은 특징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기업은 '소유와 노동의 분리'와 '영리목적'이라는 특징을 가진다. 이로 인해 기업은 중세의 수공업자 · 현대의 소규모 생업과 정부 등의 비영리경제조직과 구별된다. (중략) 기업은 소유와 노동의 분리에 의하여 기업가의 가계와는 별도로 독립된 자본계산단위를 이루고, 자본의 가치증식을 위하여 영리를 추구한다. 그리고 현재의 기업은 이윤의 극대화가 아닌, 그 생존에 필요한 만족이윤(滿足利潤)을 유지하면서 장기간에 걸친 이익의 증대와 사회적 책임의 수행을 행동원칙으로 삼는다."

삼성그룹은 국내 임직원만 해도 16만 명에 이를 정도로 큰 기업입니다. 해외지사에 근무하는 사람들까지 포함하면 25만 명이 넘습니다. 그러나 지극히 단순하게 이 설명에 따른다면 삼성을 '기업'이라 하긴 힘들어 보입니다.

사실 이번 삼성 특검이야말로 삼성이 기업의 정의에 반하는 일을 해온 것에 대한 결과물입니다.

단적인 예가 삼성그룹 구조조정본부(현 경영기획실)이 성공적인 경영권 승계 작업을 위해 기획했던 e삼성 주식매각 사건입니다. 이재용 삼성전자 전무의 경영 실패를 덮기 위해 계열사를 동원해 주식들을 매입했던 이 사건을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는 이렇게 비꼬았습니다.

"닷컴 기업가가 사업이 곤경에 처했을 때 무엇을 해야 하는가? 쉽다. 그것은 아버지의 회사에 팔아버리는 것이다. 이것이 한국 삼성그룹의 왕위계승자인 이재용씨의 답이다."(2001. 3. 28)

경영권 세습을 위해 대국민 약속도 저버리는 삼성

 이재용 삼성전자 전무.
이재용 삼성전자 전무. ⓒ 오마이뉴스 권우성
지난 1월 31일 단군 이래 최대 규모의 소송으로 주목 받았던 삼성차 채권환수 소송의 이면에도 '왕위 계승'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삼성자동차가 지난 99년 법정관리를 신청할 때 이건희 회장은 그 해 6월 이에 대한 책임을 지고 자신이 보유하고 있던 삼성생명 주식 400만주를 출연하기로 약속했습니다. 당시 삼성생명 비상장 주식가격은 1주당 70만원. 총 2조8천억이었습니다. 그러나 9년 째 삼성생명의 상장이 지연되면서 연체이자와 위약금까지 포함해 소송액이 5조2천억까지 늘어난 것입니다.

삼성은 왜 삼성생명을 상장하지 못했을까요. 현재 삼성그룹의 총수 일가는 에버랜드와 삼성생명을 축으로 하는 순환출자를 통해 그룹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삼성생명이 상장되면 현 금산분리법 상 "금융계열사와 비금융계열사가 상호 지분을 5% 이상 보유할 수 없다"는 규정 때문에 삼성생명이 보유하고 있는 삼성전자의 지분 중 일부를 처분해야 합니다.

지분을 처분하게 되면 더 이상 삼성생명은 삼성전자의 최대주주가 아니게 됩니다. 결국 이재용-에버랜드-삼성생명-삼성전자-삼성카드-에버랜드로 이어지는 순환출자구조가 깨지면서 총수일가의 지배력이 위협을 받게 됩니다.

결국 삼성은 회장 본인이 대국민 약속까지 하며 했던 합의를 "채권단의 부당한 강요로 이뤄진 것"이라며 말을 뒤집었습니다.

이처럼 삼성은 경영권 세습을 위해 기업이 아니길 택했습니다. 그 선택은 '생존에 필요한 만족이윤'도 '장기간에 걸친 이익의 증대'를 꾀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또 삼성은 이를 덮어버리기 위해 국민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상식들을 유린했습니다. 수조 원 대의 비자금을 이용해 법조인들과 정치인들을 매수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습니다. 지금의 'X파일'과 '떡값검사'가 그 대표적 예입니다. 청와대 전 법무비서관인 이용철 변호사는 지난해 11월 양심고백 당시 이렇게 토로했습니다.

"나는 두렵다. 세상에 깔린 게 다 삼성 편이다." 

세계경제포럼에서도 기업의 '사회적 책임' 강조하고 나서

  2005년 3월 15일과 18일 작성된 삼성SDI의 일일동향 보고 내용. 한 동료가 다른 동료의 동향을 관찰한 뒤에 중간간부(과장)에게 올린 것으로 보인다.
2005년 3월 15일과 18일 작성된 삼성SDI의 일일동향 보고 내용. 한 동료가 다른 동료의 동향을 관찰한 뒤에 중간간부(과장)에게 올린 것으로 보인다. ⓒ 오마이뉴스 구영식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특검팀이 압수수색을 하는 상황에서도 버젓이 문건을 훼손하는 등 증거인멸 행위를 하는가 하면, 삼성그룹의 임원들은 특검의 소환 통보에도 업무상·건강상 이유로 불응하면서 시간을 끌고 있습니다. 단 한 군데에서도 '사회적 책임'에 기반한 행동은 발견되지 않습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공허한 도덕군자의 소리가 아닙니다.

지난 1월 24일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 회장은 스위스 다보스 세계경제포럼 기조연설에서 "자본주의의 방향이 부유한 사람들뿐만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서도 기여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며 "하루 1달러 미만의 생계비로 살아가는 전 세계 10억 빈민을 도울 수 있는 '창조적 자본주의'의 길을 함께 모색하자"고 촉구했습니다.

빌 게이츠가 주창한 '창조적 자본주의'는 단순히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서 더 나아가 자본주의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빈민들을 대상으로 적극적인 기업 활동을 뜻하는 것입니다. 더욱 의미심장한 것은 이 연설이 다보스 포럼의 기조연설이라는 점입니다.

세계의 전·현직 대통령들과 총리, 경제장관, 중앙은행 총재, 초국적기업의 총수, 지식인 등 1700여명의 주요 인사들이 참여하는 세계경제포럼은 그동안 신자유주의와 세계화의 정당성을 설파해왔습니다. 이 포럼에 참석하기 위해서는 연간 매출액이 7억 달러 이상인 기업이어야 하고 매년 1만3천 달러의 회비와 2만 달러의 참가비를 내야만 할 정도입니다.

그런 세계경제포럼이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넘어 더 적극적인 공익에의 복무를 주창하고 있습니다.

아직도 노동자들의 핸드폰을 도청하고 미행하며 관리하는 '무노조 경영' 삼성. '검은 돈'을 이용해 공정한 시장질서와 만인의 상식을 흐트러뜨리는 '관리의 삼성'. 총수일가의 봉건적 사욕에 복무하는 재벌 삼성. 이런 삼성이 '대한민국 대표기업'이란 것은 사실 부끄러운 일입니다.

이건희 회장과 그 가신들이 죄의 대가를 치르는 것이 삼성을 더욱 건강하게 하는 일입니다. 그 일례로 지난 2001년 제일기획, 에스원, 삼성SDI 등 8개 계열사들이 이재용 전무를 구하기 위해 e삼성의 주식들을 매입했을 때 지배주주의 손실을 계열사들이 떠안는 삼성의 낙후한 지배구조에 대해 냉혹했던 시장의 반응을 들 수 있습니다.

당시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는 e삼성 주식 매수 발표를 전후한 7일 동안 지수 변동분을 제외하고도 ▲e삼성 주식 75.00%를 인수한 제일기획은 760억 원의 시가 하락분이 발생했고 ▲e삼성 주식 11.25%를 인수한 삼성SDI는 4440억 원의 시가 하락분이 발생해 주주에게 막대한 재산상의 손해를 끼친 사실을 지적한 바 있습니다.

진정 삼성을 '대한민국 대표기업'으로 바로 세우기 위해서는 특검의 수사를 통해 총수일가와 그 가신이 죄의 대가를 치르게 하는 길 밖에 없을 겁니다.


#삼성 특검#이건희#이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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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5월 입사. 사회부·현안이슈팀·기획취재팀·기동팀·정치부를 거쳤습니다. 지금은 서울시의 소식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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