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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일 오전 서울 삼청동 인수위원회 대회의실에서 열린 3차 업무보고회의에서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5일 오전 서울 삼청동 인수위원회 대회의실에서 열린 3차 업무보고회의에서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 인터넷사진공동취재단

역시 권력과 언론의 관계는 쉽지 않다. 사면초가에 몰린 인수위원회 이동관 대변인의 푸념은 정권의 '프레스 프렌들리(언론친화적 태도)'가 말이 쉽지 얼마나 도달하기 힘든 목표인가를 잘 보여준다.

 

그는 지난 3일, 인수위의 월권과 과속 행보가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 진영에서부터 지지율 하락의 주요 요인으로 꼽혀 비판의 대상이 되자 그 탓을 언론 쪽에 돌렸다. 정치적인 상상력을 동원한 기사, 사설 브리핑, 인수위 이름을 걸친 유령기사 유형을 열거하며 "그 피해가 정말 컸다"고 언론에 대한 불만을 토로했다. 영어 잘하면 군대 안 간다는 기사까지 예시하며, 확정되지 않은 사안을 마치 확정된 것처럼 보도해 인수위의 신뢰성 등에 큰 타격을 입혔다는 주장이었다.

 

이동관 대변인이나 인수위원회는 그러나 언론 탓을 하기에 앞서 자신들의 행보부터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이대변인의 푸념처럼 언론의 보도에 문제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 원인 제공자는 바로 인수위원회 자신이다. 인수위의 법적 설치 근거를 뛰어넘는 월권적인 정책 입안 지시, 설익은 정책의 남발 등 인수위에 대한 부정적 여론은 바로 인수위가 자초한 대목이 크기 때문이다. 잘못되면 언론 탓부터 하고 보는 것이야말로 '프레스 프렌들리'와는 거리가 멀다.

 

인수위, 원인제공 해놓고 언론 탓

 

이 대변인이 가장 피해가 컸던 사례로 든 영어 잘하면 군대 안 간다는 기사나, 영어 몰입 교육 같은 것만 하더라도 그 단초를 제공했던 것은 바로 인수위다. 익명의 인수위 관계자의 말을 인용한 보도이기는 했지만, 영어 몰입 교육은 이주호 인수위 사회교육문화 분과 간사를 비롯해 인수위 핵심 관계자들이 수차에 걸쳐 강조했던 내용들이었다. 그 파장이 예상치 못했던 방향으로 확산되자 뒤늦게 언론 탓을 하며 수습에 나섰지만 이미 논란은 걷잡을 수 없이 번진 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론에 대한 인수위나 이명박 당선인을 비롯해 새 정부의 태도에는 상당한 변화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동관 대변인은 언론에 대한 불만을 토로한 뒤에 "그래도 인내심을 갖고 언론중재위원회에 제소하거나 법적 호소는 안 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언론 친화적인 태도를 앞으로도 유지해나가겠다는 입장의 표현이겠지만, 언론의 보도태도에 공세적인 입장을 취했던 노무현 정부를 의식한 것으로도 보인다. 문제는 그 인내가 얼마나 갈 수 있을지 하는 점이다.

 

사실 인수위원회로서도 곤혹스러웠던 것은 인수위에 '결정적 타격'을 주었다고 자평한 언론의 보도들이 주로 새 정부에 '친화적인 언론'들에 의해서 이뤄졌다는 점일 것이다. 영어 잘하면 군대 안가도 된다는 보도는 <중앙일보>가 특종(?)한 것이다.

 

같은 날 <조선일보>는 영어로 수업할 수 없는 교사들에 대한 '삼진아웃제'를 보도하기도 했다. 두 신문 모두 한나라당 집권에 큰 힘이 됐던 신문사들이라는 점에서 이들 신문들의 보도 내용을 전면적으로 '비난'하는 것도 쉽지 않았을 터였다.

 

따지고 보면 이들 신문들의 보도 또한 인수위의 영어 몰입 교육에 대한 적극적 지지 흐름 속에서 나온 것들이다. 이들 두 신문은 이들 기사를 1면 머리기사로 보도하면서 이 같은 영어 몰입 교육 정책이 몰고 올 부정적 여론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았었다.

 

<중앙> <조선>, 한나라당 집권에 큰 힘이 됐는데...

 

사설 등을 통해서는 되레 영어 몰입 교육의 필요성을 역설하기까지 했다. 적어도 영어 몰입 교육에 대한 지지를 바탕에 깔고 나온 기사들이지, 이를 부정적인 시각에서 보도한 기사들이 결코 아니었다. 아이러니컬 한 일이다.

 

비단 이 뿐만이 아니다. 되돌아보면 인수위의 월권적 행태나 과속 행보를 부채질 한 것도 바로 '인수위 프렌들리'한 언론들이었다. 인수위가 노무현 정부의 관료들의 '영혼 세탁'에 나섰을 때 이들 신문들이 어떤 태도를 취했던가를 살펴볼 일이다. 잘하고 있다며 적극 '응원'하고 그 속도를 더 내라고 부추기지 않았던가.

 

인수위나 새 정부 담당자들이 유의할 점이 바로 이 점이다. 당장에는 정권 친화적인 언론의 '응원'이 '힘'이 될 것 같지만, 결국은 그것이 '독'이 될 수 있음을 자각하는 것이야말로 집권세력이 잊지 말아야 할 교훈인 셈이다. 뒤늦은 깨달음은 종종 언론에 대한 과잉 대응(반작용)으로 나타나곤 했던 것 또한 역대 정권의 사례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는 일들이다.

 

언론친화적인 태도를 유지하겠다는 것 자체가 문제될 것은 없다. 그러나 그것이 정권에 우호적인 언론에 대한 편향적인 태도나 의존적인 태도를 의미한다면 그 결과는 지금 인수위가 직면하고 있는 것 보다 더 큰 위기를 낳는 것일 수 있다. 인수위 관계자들이 공공연하게 비판적인 언론의 취재를 거부하거나 따돌리면서 "평소에 잘 할 것이지"하는 식의 태도를 보이는 것이야말로 더더욱 말 할 나위가 없다. 이명박 당선인이 비판적인 언론의 보도를 '반대를 위한 반대'로 일축하는 태도 또한 마찬가지다.

 

권력과 언론의 관계는 참으로 쉽지 않다. 이명박 정부도 언론친화적인 정권이 되겠다고 자신하기보다는 언론을 존중하면서도 할 말은 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는 것이 그나마 정답에 가까울 수 있다. 너무 당연하지만, 집권세력들은 너무나 쉽게 잊곤 한다. 뒤늦은 언론 탓은 백해무익하다. 노무현 정부가 정부와 언론과의 관계를 재정립하기 위해 해 온 작업들도 백안시할 것만이 아니라 전향적으로 검토할 필요도 있을 것이다.


#인수위#권언관계#프레스 프렌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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