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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회에 이어)

 

“장독대 쌓는다면서 돌을 와 치워! 돌을 차곡차곡 놔야 그 위에 독을 놓지 돌 다 들어내고 맨 땅에 독 녹끼가?”

 

이 말에 나도 평정을 잃고 말았다. 그렇잖아도 돌이 제대로 놓이지 않아 손가락을 찧고 하던 중이었다.

 

“어머니는 제발 방에 들어가시든지 풀을 뽑으려면 그냥 풀이나 가만히 뽑으세요 좀!”
나도 소리를 질렀다.
“돌을 들어내야 맞는 돌을 차근차근 놓을 거 아녀요?”

 

어머니는 내 말을 못 들은 것 같았다. 한 참 말이 없었다. 후회와 함께 다행이다 싶었다. 그러나 아니었다.

 

장독대 만들기 어머니는 풀을 매기보다 내가 장독대 쌓은 일에 참견하는 데 더 신경을 쓰셨다.
장독대 만들기어머니는 풀을 매기보다 내가 장독대 쌓은 일에 참견하는 데 더 신경을 쓰셨다. ⓒ 전희식

“돌을 들어내더라도 와 아랫집 담벼랑에다 놔아! 돌 주워 오려면 지게지고 냇가 가야 하는데 와 남의 담벼랑만 쌓아 주느냐고?”
“그럼 잠깐 여기 놔두지 않으면 어따 둬요? 머리에 이고 있을까요?”

나도 지지 않고 대거리를 했다.

 

기세는 수그러들었지만 어머니는 계속 잔소리를 했다. 어머니는 어머니대로 답답하고 내가 하는 모든 일들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게 분명했다. 나는 나대로 달리 어떻게 해 볼 방법도 없었고 마음의 여유도 다 잃었다.

 

화가 나서 얼굴마저 팅팅 불어 있는데 일이 꼬이느라고 아랫동네 사는 후배가 뭐 좋은 일이 있는지 히죽거리며 집에 들어섰다. 후배랑 전혀 새로운 이야기를 전혀 다른 기분으로 하려다 보니 모든 게 뒤죽박죽이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었다. 도망을 나와서 뒷산으로 올라갔다. 따라 올라온 후배에게서 담배 한 대를 뺏어 입에 물었다.

 

어머니가 바뀌기를 바랄 수는 없고 내가 바뀌어야 하는데 뭘 어떻게 바꾸어야 할까. 후배는 어머니 편을 들었다. 평생을 시골에서 농사만 지으신 어머니가 보기에 내가 하고 사는 꼴은 눈 뜨고 못 봐 줄 거라고 했다.

 

마당에는 잡초가 그득한 데도 책이나 보고 있고, 비가 오면 논에부터 나가 봐야 하는데 컴퓨터나 하니 속이 터지지 않겠냐는 것이었다. 맞는 말이었다. 마감이 되면 만사 제쳐놓고 원고를 써 보내야 하고 신문이나 뉴스도 인터넷으로 보고 책이나 어머니 유기농 새참거리도 컴퓨터로 산다는 것은 상상 속에서도 어머니가 알 수 없는 것들이다.

 

어머니는 지금 여기가 어딘지, 어떻게 해서 막내아들과 달랑 둘이서 이곳에서 살게 되었는지 모르시는 건 아닐까? 매일 매일 눈을 뜰 때마다 낯선 외딴 집이 생소 하지는 않을까? 아들이 무슨 방법으로 밥벌이를 하는지 모르시는 게 아닐까? 나는 뒤늦게 새로운 발견을 하고 있었다.

 

<할머니의 열한 번째 생일파티(낮은산. 라헐 판 코에이 지음. 김영진 옮김)>가 떠올랐다. 모든 기억들이 열 살 시점에 멈추어 선 ‘노라’의 증조할머니 ‘트라우디’가.

 

뜨거운 몸이 시도 때도 없이 마음을 뒤흔드는 젊은 시절이 어머니에게도 분명 있었을 것이다. 생각이나 마음보다도 몸이 먼저 입을 열고 아우성치는 ‘몸의 욕망’에 이끌리던 시절. 하고 싶은 것은 많은데 방법도 모르고 돈도 없고 시간도 없던 시절. 그러나 이제는 기억에서 다 지워지고 얼룩으로만 남아 현실을 교란하고 있다.

 

나는 어머니랑 같이 지내는 방에서 컴퓨터를 옆방으로 옮겼다. 낮에 책을 봐야 할 때는 옆방이나 다른 곳으로 가서 봤다. 밤을 새워 원고를 썼더라도 어머니 보이는 데서는 낮잠을 자지 않았다. 사례별로 세 가지로 요약되는 나만의 대응 법을 만들어냈다. (39회에 계속)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한국농어민신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어머니#전희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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