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자가 부르는 '가난'. 일해(一海) 가난을 아름다운 거라 포장하지 말아주셔요. 그렇다고 가난을 추한 거라, 부끄러운 거라 비하하지도 말아주셔요. 부가 부이듯 가난도 가난일 따름이어요. 어떤 이에게는 가난이 온통 고통뿐이고, 어떤 이에게는 가난이 온통 증오뿐이고, 어떤 이에게는 가난이 온통 불평뿐이기도 하고요. 어떤 이에게는 가난이 감동일 때도 있고, 어떤 이에게는 가난이 행복일 때도 있고, 어떤 이에게는 가난이 홀가분할 때도 있지요. 그건 다 각자의 몫, 어느 누구도 대신 살아줄 수도, 느껴줄 수도 없는 그들만의 영혼일 터. 가난을 하인삼아 군림하지도 말아야 될 일이지만, 가난을 제물삼아 제사도 드릴 일은 아닌 게지요. 가난은 엄연한 현실, 가난은 엄중한 삶의 양식, 가난은 모든 인류 역사의 거울. 가난이 없으면 부도 없고, 부가 없으면 가난도 없는 법. 가난이 있으니 부도 있고, 부가 있으니 가난도 있어야 하는 법. 그래요. 가난은 가난일 뿐, 영원히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동반자일 테니까. 한번도 부유해 보지 못한 가난한 서생으로서 살아보니 불편하기도 하지만, 그럭저럭 살아볼 만 합디다. 마음 하나만은 정말 편합디다. 가난해도 부를 탐내지 않고 부유해도 가난을 비웃지 않는다면, 그것으로 족할 것이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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