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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5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발기인 대회의 모습
1995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발기인 대회의 모습 ⓒ 새사연

'한국노동사회연구소'는 또 하나의 노동조합이라고 불러도 무방할 것 같다. 설립목적 자체가 노동조합의 활동을 지원하는 것이었을 뿐 아니라 20여 년의 역사 속에서 현장의 노동조합과 호흡을 같이하려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명규 기획실장은 “노동조합이 존재하는 한 우리 연구소의 존재 이유는 분명하다”고 말한다.

지난 21일 충정로에 위치한 한국노동사회연구소를 방문하였다. 총 17명의 연구원이 매달 <노동사회> 잡지 발간과 함께 1년에 20여 개의 연구 프로젝트를 수행해내면서 바쁘게 돌아가고 있었다. 또한, 이제까지 1만여 명의 노조원과 800여 명의 노조 간부들이 '한국노동사회연구소'의 교육을 거쳐 갔다고 한다. 연구소의 내용을 노조원들 속에서 검증하며, 현장과 밀접한 관계를 꾸준히 유지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다가오는 이명박 정권하에서 가장 긴장되는 것은 노동운동 진영이 아닐까? '한국노동사회연구소'에서는 이명박 정권하에서 노동운동의 고립화와 왜소화가 심해질 것으로 우려한다. 예전처럼 단순히 노동운동을 때려잡아서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귀족노조’, ‘경제성장논리’ 등을 앞세운 교묘한 방식으로 노동운동을 국민과 사회로부터 고립시킬 것이라는 예상이다.

그래서 올해 '한국노동사회연구소'의 주요 연구 과제 역시 이를 막을 수 있는 이론적 작업과 대국민선전에 집중되어 있다. 구체적으로는 노동조합이 우리 사회에 미치는 긍정적 영향을 알리고, 신자유주의에 맞설 수 있는 연대 전략을 모색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심각한 훼손이 우려되는 공공부문의 공적인 성격을 지키기 위한 연구도 핵심 사업 중 하나다.

인터뷰는 노광표 부소장, 이명규 기획실장과 함께 진행했다.

노동조합의 발전을 돕는 연구소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노광표 부소장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노광표 부소장 ⓒ 새사연
- 한국노동사회연구소가 어떤 곳인지 간단한 설명을 부탁합니다.
"우리 연구소는 노동조합 운동의 발전과 민주적 노사관계 정립에 기여하는 것을 목적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간단히 말하면 노동조합이 제 역할을 다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연구소입니다."

- 언제, 어떻게 설립되었나요?
"우리 연구소는 1986년 '한국노동교육협회'로 출발했습니다. 당시에는 아직 노동조합 운동이 활성화되지 못했고 한국노총에서 노동조합 민주화를 추진하던 분들이 해고를 당하셨습니다. 그분들이 노동조합 외부에서 자주적, 민주적 노동조합 건설과 교육 활동을 진행하기 위해 '한국노동교육협회'를 설립했습니다. 지금 민주노동당 천영세 의원, 전 노사정위원회 김금수 위원장이 당시에 함께하셨던 분들이십니다.

그 후 1987년을 거치면서 노동조합이 굉장히 많이 건설되고, 그 체계를 잡아가기 시작했습니다. 이와 함께 노동조합의 지속적 발전을 위해 ‘정책’과 ‘교육’의 측면에서 안정적인 연구를 담당할 수 있는 곳이 필요하다는 고민이 대두되었습니다. 이에 공감한 노동조합 지도자들과 연구자들이 머리를 맞대고 준비한 끝에 1995년 4월 '한국노동교육협회'가 '한국노동사회연구소'로 재탄생했습니다."

산업별 노조 건설과 노동자 정치세력화가 중심 연구과제

- 주로 어떤 내용의 연구를 진행하시나요? 
"'노동조합 운동이 사회를 어떻게 변화발전시킬 것인가?' 이것이 1995년 연구소로 전환한 뒤 지금까지 저희 연구의 큰 방향입니다. 노동자의 눈으로 사회를 보고, 노동자가 대접받는 사회로 바꿔나가는 일을 하고자 합니다. 우리 연구원의 이름에 ‘노동’과 함께 ‘사회’가 들어가는 이유 또한 그런 의미입니다.

산업별 노조 건설과 노동자의 정치세력화, 이 두 가지가 노동자가 사회를 바꾸는 길에 꼭 필요한 일입니다. 우리 연구소는 이 두 가지를 꾸준히 연구하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 외에도 1년에 20~30개의 프로젝트를 통해 노동시장의 불평등, 임금체계, 고용 등의 다양한 문제를 연구합니다. 하지만 각 프로젝트의 밑바탕에 깔리는 내용은 역시 산업별 노조 건설과 노동자 정치세력화입니다. 연구결과는 주로 노동조합의 보고서 형태로 발표되고 3분의 1 정도는 단행본으로 출간됩니다."

- 산업별 노조와 노동자 정치세력화가 어떤 면에서 그렇게 중요하다고 보시나요?
"최근 들어 산별 노조가 건설되고 있긴 하지만, 한국의 일반적인 노조 형태는 기업별 노조입니다. 이는 전 세계적으로 보았을 때는 매우 희귀한 형태입니다. 기업단위로 노조가 설립되었을 때의 문제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격차가 점점 심하게 벌어진다는 것이죠. 중소기업이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대기업이나 정규직 노조에 의해 외면당하는 일이 발생하지 않습니까? 그렇게 되면 노조가 전체 노동자의 이익을 대변하는 기능을 할 수 없게 되는 것이죠. 노조가 사회적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산별노조로의 전환이 필수적입니다.

노동자의 정치세력화 문제는 작업장 안에서 발생하는 많은 문제들이 결국 사회가 변화해야 해결될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합니다. 작업장 민주주의나, 삶의 질 개선은 개별 작업장의 투쟁으로는 근본적인 해결을 가져올 수 없습니다. 그래서 노동자 계급이 중심이 된 정당, 노조가 정치적인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정당이 필요합니다."

- 연구 외에는 어떤 활동을 하시나요?
"우리 연구소는 연구실과 기획실로 나누어져 있고 기획실 안에는 교육국, 편집국, 국제정보센터 등이 있습니다. 교육국은 노동조합에 필요한 교육 내용과 방법을 개발하고 전파하는 일을 합니다. 편집국은 <노동사회>라는 월간잡지 발행과 노동자 교육용 교재 개발합니다. 대표적 단행본으로 <한국노동운동사 100년의 기록>(이원보), <노동시장 유연화와 비정규직 고용>(김유선), <노동운동의 미래의제: 기업의 사회적 책임>(노광표, 이명규) 등이 있습니다. 국제정보센터는 국제 노동단체 및 연구소들과의 연대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2005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설립 10주년 기념식장에 모인 전체 연구원들
2005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설립 10주년 기념식장에 모인 전체 연구원들 ⓒ 새사연

현장의 노동자들과 함께 숨쉬는 교육사업 꾸준히 진행

- 많은 활동을 하시는데, 그 중에 특별히 자랑할 만한 것이 있을까요? 
"교육사업 부분을 자랑하고 싶습니다. 우리 연구소는 직접 현장을 방문하여 필요한 강의를 하기도 하고, 노동조합 간부를 대상으로 2박3일 간의 교육을 진행하기도 합니다. 노동조합 간부를 대상으로 하는 교육에서는 노동정세, 조직진단, 노동법과 함께 모의교섭, 발표력 등의 교육을 통해 현장실무능력까지 갖출 수 있도록 돕고 있습니다.

따분한 강의식 교육에서 벗어나 참여적인 교육 형태의 독자적이고 완결적인 프로그램을 마련하여, 노동조합 간부들에게 인기가 좋습니다. 현재까지 대략 1만 명의 조합원과 800여 명의 노조 간부를 교육해왔습니다.

현장에서 조합원들을 만나면서 연구소 또한 현장감과 긴장감을 가질 수 있고, 연구 내용을 곧바로 현장에 연결시킬 수 있어서 매우 큰 장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노동운동 진영의 연구소들과 차별되는 지점이기도 하고, 노동조합이 존재하는 한 우리 연구소는 존재해야 한다는 목적의식을 잘 실현하고 있는 부분이죠."

- 연구소의 회원 체계는 어떻게 되어있나요?
"현재 연구소의 회원은 총 708명입니다. 이중에 월 1만원 이상 회비를 내는 자료회원이 약 500명, 월 3만원 이상 회비를 내는 정회원이 나머지를 차지합니다. 연구소 회원이 되면 월간 <노동사회>와 연구소의 각종 자료를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정회원의 경우 총회에 참석하여 연구소 의사결정에도 참여하시게 됩니다."

- 연구소의 재정은 어떻게 마련하고 계시나요?
"민간 연구소다 보니 자체적인 재정 마련에 항상 어려움을 겪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도 초기부터 10년 넘게 연구소를 후원해주신 회원들의 도움이 있었기에 지금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주로 노동조합의 간부나 노동 문제에 관심이 있는 학계 교수와 변호사들이 회원으로서 도와주고 계시며, 노동조합은 ‘조직’ 회원으로 가입하기도 합니다.

그 외에는 노동조합이나 정부 등으로부터 의뢰받은 연구 프로젝트 사업을 통해 충당합니다. 그러다 보니 하고 싶은 연구보다는 해야 하는 연구를 중심으로 진행될 때도 많습니다. 재정적 안정과 자립이 절실한 문제인데, 아직 딱히 방안을 찾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죠."

- 기업에서는 후원을 받지 않으십니까? 
"네, 기업의 후원은 안 받는 것이 원칙입니다. 기업의 돈을 받게 되면 노동자의 입장에서 제대로 된 연구를 못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까지 우리 연구소를 후원하겠다는 기업이 있지도 않았고요."(웃음)

- 다가오는 이명박 정권 하에서 어떤 변화가 있으리라고 보십니까? 
"이명박 정권의 등장은 단순한 권력구조 개편이 아니라 한국사회의 총체적인 변화를 예고한다고 봅니다. 인수위 단계에서부터 교육, 금융, 공공부분 등 거의 모든 분야에 대해 손을 대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노동운동을 중심으로 한 진보운동은 기로에 서게 될 것입니다. 고립되거나 도약하거나 둘 중에 하나인 셈이죠. 따라서 진보진영은 새로운 의제와 실행 프로그램에 대한 고민을 절실하게 해야 합니다.

특히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계속 주장하고 있는데, 이는 궁극적으로는 노동하기 나쁜 나라가 될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인수위에 노동문제를 아는 사람이 딱 1명 밖에 참여하지 않은 것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노동조합 운동의 경우 더 많은 공격을 받게 될 것입니다. 문제는 예전처럼 단순히 노동조합을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대중과 분리시키는 방향으로 진행될 것이라는 점입니다. 소수의 대기업 노조는 귀족노조로 매도하고, 비정규직과 저임금 노동자들에게는 경제성장이라는 환상을 통해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게 할 것입니다. 간단히 말해 노동조합의 고립화와 왜소화가 심화되겠죠.

따라서 진보진영에서는 새로운 정권 하에서 노동자의 권리가 배제되지 않고, 올바른 경제성장이 이루어지도록 이명박 정부를 감시하고 지적하는 역할을 꾸준히 해야 한다고 봅니다. 국민들의 경제성장에 대한 열망을 담아 당선된 새 대통령이 과연 얼마나 ‘국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는 경제성장’을 이루어내는지 지켜봐야겠죠."

'노동조합 고립화'와 '공공부문 민영화'에 대처해나갈 것

- 그렇다면 이에 대한 대책으로 준비하고 계신 올해의 구체적인 계획이 있나요? 
"노동조합을 지원하는 입장에서 가장 우려되는 바는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노동조합의 고립화’입니다. 따라서 이 부분을 해소할 수 있는 연구를 진행할 생각입니다.

먼저 노동조합이 국민들과 호흡하고, 국민들로부터 인정받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노동조합이 우리 사회에서 발휘하는 순기능을 많이 알리는 이론적 작업과 대국민선전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노동조합의 사회적 역할’ 이라는 제목으로 연구가 진행될 예정입니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연대입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의 갈등을 해결하는 노동계급 내부의 연대 뿐 아니라 노동조합과 시민사회의 연대 가능성을 찾아가려고 합니다. “흩어지면 죽고 뭉치면 산다”는 평범한 진리가 신자유주의 앞에서 약해지는 원인을 찾아보고 연대성을 회복하기 위해 노동조합은 어떤 전략을 모색해야 하는지 연구할 예정입니다.

그 외에 이명박 정권 하에서 그 어느 때보다 세차게 진행될 것으로 예상되는 공공부문 민영화를 저지하기 위한 이론적 뒷받침을 마련하는 것도 올해 우리 연구소의 핵심 연구 중 하나입니다."

- 현재 한국 사회의 노동조합이 혁신해야 할 부분이 있다면 무엇이 있을까요?
"한국 사회에서 노동조합은 어려운 조건을 뚫고 일정한 입지와 힘을 구축했습니다. 그런데 사실 지난 몇 년 동안은 제자리에 안주하거나 방어적인 모습이 많았습니다. 직접적 이해나 자기 작업장의 문제에만 매달리는 모습들이 있었죠. 하지만 우리 국민들은 노동조합이 갖고 있는 힘만큼 해주기를 바라는 사회적 기대가 있습니다. 국민들의 이런 기대에 부응하며 우리 사회의 비전과 전망을 제시하는 노동조합이 되어야 하리라 생각합니다. 

두 번째로는 현재 우리 사회의 노동조합 가입률은 10% 정도입니다. 노동조합의 울타리 밖에 있는 사람들이 절대적이며, 이들은 제도권의 이데올로기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습니다. 10%의 노조원이 아무리 잘 뭉친다고 해도, 90%의 비노조원과 일반 시민들의 의식이 변화하지 않으면 힘이 듭니다. 이제 노동조합은 울타리 밖에 있는 사람들과 어떤 이야기를 나눌 것인지, 어떤 공감대를 형성할 것인지를 고민해야 합니다. 이 분야에 대해 노동조합의 광범위한 구상과 과감한 투자가 필요합니다."

- 앞으로 한국 사회에서 어떤 연구소로 자리매김하기를 원하시나요? 
"과거에 함께 존재했던 노동 분야 연구소들이 이제는 많이 없어졌습니다. 우리 연구소 역시 위기 의식을 느끼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내부적으로는 설립 10주년을 맞은 2005년부터 ‘도전과 도약’의 시기로 규정한 바 있습니다. ‘위기는 곧 기회다’는 말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노동 분야의 대표적인 종합 연구소로서, 현장의 열정과 이론의 냉정을 결합시키는 공간이 되고자 합니다. 최종적으로는 노동자의 시각에서 우리 사회의 진보적 변화를 촉진하는 힘있는 발언집단이 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아직은 전문성을 갖춘 실력과 사회적 인정이 더 필요하겠지만, 50% 정도는 이루었다고 생각합니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소장 김유선)
서울시 서대문구 충정로 2가 69-18 석당빌딩 2층
홈페이지 www.klsi.org  전화 02-393-1457  팩스 02-393-4449  ▶회원 가입 안내 보기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의 대안정책 사이트 이스트플랫폼(www.epl.or.kr)에도 실렸습니다. 이수연 기자는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의 연구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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