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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어머니에게 새로운 현상이 생겨났다. 집안 여기저기에 물건을 감추신다. 자그마한 소품들이다. 오늘은 손목시계가 없어졌다. 내일은 무엇이 없어질까?
 
아침 일찍 일어나신 어머니의 행동을 가만히 살펴보았다. 그랬더니 어머니의 빨간 전용 소파 틈새에는 초코파이, 안경, 초콜릿, 양말, 심지어 숟가락까지 넣어져 있었다. 그리고 양말 한쪽을 주머니처럼 동전을 가득 넣어 가지고 계셨다. 어머니에게 말했다.

 

“어머니, 이것 좀 보세요. 여기 이런 것이 있네요.”
“어, 누가 거기다 그런 걸 놨어.”
 
어머니에게 찬찬히 의자에 이런 것을 숨겨 놓으면 좋지 않다고 말씀드렸다. 그리고 양말 속 동전을 저금통에 넣는 모습을 행동으로 보여드렸다.  그랬더니 어머니의 대답이 걸작이다.

 

“응, 아까 누가 왔어. 그래서 내가 감춘 거야. 맞아 맞아.”
“어머니 초코파이는 드시고, 안경은 가방에 넣으시고, 숟가락은 부엌에 놓으세요. 아셨죠.”
“내가 잘 알지. 그럼.”

 

그 순간 웃어 버렸다. 그리곤 어머니를 간지럼 태워드렸다. 어머니의 웃음소리가 아파트 박으로 크게 나가는 것 같았다. 여든 살 어머니의 모습을 보니 생각이 교차한다. 어머니 손을 잡아드렸다. 어머니가 빙그레 웃으신다. 속으로 말했다.

 

 ‘물건이 없어져도 좋아요. 어머니. 힘내세요.’

 

어머니 방에 들어가 침대 밑과 옷장들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그랬더니 작은 책장 책 사이에는 초코파이가, 침대 밑에는 사과 몇 개가 그리고 옷장 속에는 수첩과 열쇠 등 몇 가지가 보였다. 그래서 그런 것들을 치우려다 순간 마음을 바꿨다. 어머니의 흔적이니 그냥 놔두기로 했다. 치우면 또 넣어두실 것도 같았고. 어찌 생각하면 그런 것들을 숨기실 때 어디에 둘지 뇌를 사용하는 것이니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좋을 것 같았다.

 

어머니의 자그마한 가방을 살펴보았다. 그랬더니 속옷과 옷가지 몇 개가 들어 있었다. 어머니 나름 생각에 가출 준비용 옷이라 생각되었다. 며칠 전, 친정에 간다는 말을 하신 적이 있어서였다. 그런 어머니만의 신호를 잘 살피면 어머니의 행동을 짐작할 수 있다. 그날 밤과 다음날 새벽까지 거실에서 잠을 청했다. 혹여 어머니의 가출충동이 행동으로 옮겨질까봐 노파심이 생겼기 때문이다. 새벽 예배도 뒤로 하고 어머니를 지켰다. 어머니 방을 순찰도 하면서.

 

잠이 오지 않아 책도 보고, 마음 깊은 곳에 있는 좋은 것은 스스로를 격려하고, 쓰레기 같은 생각들은 버리고, 마음을 정리하기도 했다. 마음의 집에 있는 나 자신을 살피는 시간은 즐겁다. 어머니로 인해 생긴 습관이기도 하다.

 

새벽녘 어머니 방문에 달아놓은 풍경소리가 들렸다. 강아지 다롱이도 짖었다. 어머니의 움직임이 포착된 것이다. 반사적으로 어머니 방으로 들어가 보니 침대 이불은 개놓고 분홍색 보따리에는 옷이 들어 있었다. 그것은 어머니에게 ‘외출 준비 끝’을 알리는 그림이었다.

 

어머니에게 여기가 우리 집이고 어머니는 팔순 노인이며 가야 할 친정집은 없다고 말씀드렸다. 어머니가 동생들 이름을 언급하며 만나기로 했다고 하신다. 어머니를 꼭 안아드렸다. 어머니가 간지럽다며 웃으신다. 그날 새벽은 그렇게 어머니와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누었다. 대화라기보다 어머니의 상상력에 맞장구를 쳐준 것이다. 그것이 어머니의 기쁨이니까.

 

“어머니, 옛날 생각나세요? 어린시절요.”
“음. 내가 감나무 올라갔지. 근데 아버지가 야단나셨어. 떨어진다고.”
“할아버지 생각은 나세요?”
“나지. 할아버지는 수염이 길었어야. 담뱃대 물고 계시면 내가 불도 붙여줬지.”
“어머니, 그런 생각이 나세요?”
“그럼 나지. 참.”

 

그날 밤은 그렇게 어머니의 옛 추억과 다소 과장된 추리소설 같은 다른 이야기도 나누며 밤을 세웠다. 어머니가 만났다는 만들어진 사람들 이야기, 빵장수가 가져다 준 빵 이야기, 강아지가 밥 달라고 해서 나눠줬다는 이야기, 시장에서 만난 사람에게서 병아리 산 이야기, 그리고 아들을 옆에 두고 아들과 지낸 이야기를 소설처럼 하신다. 그래도 웃고 또 웃다가 교정해 드린다. 그러면 금방 언제 그랬냐는 듯이 이야기를 바꾸신다.

 

어머니와 이런 시간이 가끔 있지만 그런 시간을 그냥 즐긴다. 순리처럼. 역으로 가면 스트레스가 되고 짜증이 되고 열 오르는 삶이 될 수도 있으니까.

 

대화를 마치고 졸리시는지 하품을 하시기에 잠자리를 봐 드렸다. 어머니에게 마음으로 말했다. ‘꿈속에서 하나님 만나고 아버지 만나세요.’ 어머니는 불을 끄자마자 금방 잠이 드셨다. 새근거리는 아이처럼. 얼마 후에는 코까지 골며 주무신다. 그 소리가 마치 헨델의 음악처럼, 역경을 이기고 감사를 담은 그의 음악처럼 들렸다.

덧붙이는 글 |  나관호 기자는 크리스천커뮤니케이션연구소 소장이며 북칼럼니스트입니다. 또한 <나관호의 삶의 응원가>(www.bigfighting.co.kr)라는 타이틀로 메일링을 통해 글을 보내고 있습니다. 최근 치매 어머니와의 일상을 그린 <어머니를 위한 응원가>를 집필했습니다. 


#어머니#치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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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제이 발행인, 칼럼니스트다. 치매어머니 모신 경험으로 치매가족을 위로하고 있다. 크리스천커뮤니케이션연구소 소장이다. 기윤실 선정 '한국 200대 강사'로 '생각과 말의 힘'에 대해 가르치는 '자기계발 동기부여' 강사, 역사신학 및 대중문화 연구교수이며 심리치료 상담으로 사람들을 돕고 있는 교수목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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