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펑크난 자전거와 부실한 견인 차량으로 인해 제대로 달리지도 못한 채 다시 산 루이스로 돌아온 밤. 검문소 앞에서 갑자기 차량이 우회전 했다.

 

무슨 영문인지 몰랐다. 견인차량이나 견인된 차량 일행이 모두 밖으로 나왔다. 군인도 아니고 경찰도 아닌 것 같은 사람들이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아무튼 그들의 지시대로 그들은 모두 밖에 나왔고 졸린 나는 그대로 웅크린 채 차에 남아 상황을 지켜봤다.

 

그 때 검문하던 사람들 사이에서 힐끗 나를 쳐다보며 나에 대한 얘기가 오고가고 한 사람이 나에게 다가오더니 말을 걸어왔다.

 

"너, 누구니?"

"나? 자전거 여행자. 아침에 여기 검문소 지나가던 사람이야. 기억 안 나?"

 

그러자 몇몇 사람들이 우리 안 원숭이 바라보듯 창을 사이에 두고 손전등을 비춘 채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아침에 본 거 같기도 하고…. 여권 좀 보여줘."

"여권? 있긴 있는데 그거 빼내기 귀찮은데."

 

한밤중에 만난 느닷없는 검문

 

나는 몹시 피곤하고 또 여권은 가방 깊숙이 있어 빼내기 여간 성가신 게 아니었으므로 오만 피곤한 인상을 다 쓴 채 부담감을 표시했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는 듯 망부석처럼 기다리고 있는 그의 표정에 질려 기어이 차에서 내리고 말았다.

 

"이상 없으면 어떡할 건데?"

다분히 감정적인 어조로 쏘아댔지만 심각하게 듣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건 어쩔 수 없는 네 사정이야'라는 표정의 그들을 보니 부아가 치밀어 오르고 있었다.

 

그 때 한 남자가 내 핸들바 가방을 손대려고 할 때 난 그에게 큰 소리로 외쳤다. "손대지 마!" 날카로운 목소리가 어수선한 틈을 메워 사람들의 시선을 집중시켰다. 물론 둘이 있다거나 상황이 더 악화된 곳에서는 할 수 없을지도 모를 말이다.

 

하지만 경찰같이 보이는 사람들과 두 차의 일행 등 스무 명은 넘게 있었으므로 뭐라도 믿을 구석이 있어 큰 소리를 외칠 수 있었다. 경찰이라도 최소한의 사전 양해 없이 남의 물건에 손을 대는 것에 기분 좋을 리가 없었다. 나쁜 의도는 없어 보였지만 그는 내 말에 뜨끔했는지 이내 손을 치웠다.

 

트렁크로 가 가방 깊숙이 보관해 둔 여권을 어렵사리 빼냈다. 여권을 조사하던 그에게 이런저런 나에 대한 얘기를 했고, 펑크가 나 이 차에 합류하게 되었다고 있는 그대로 사실을 얘기해줬다.

 

그들은 R15총을 소지한 나보다 젊어보이는 PGR대원들이었다. PGR(Police Generation Republic)은 미국 FBI와 같은 역할을 수행한다고 한다. 이런 공개된 장소에서 검문하는 그들의 분위기에 뻥튀기 냄새가 물씬나지만 그대로 믿어주기로 했다. 내 신변이 이상없음을 확인하자 그때서야 나와 경찰들 간의 분위기는 부드러워질 수 있었다.

 

"무슨 문제요?"

"이 사람들에게 문제가 조금 있습니다."

그들은 다른 말은 하지 않고 차량의 사람들을 잡고 있었다. 영문을 몰랐지만 조지 역시 표정이 그리 유쾌해 보이지는 않을 걸로 봐서 뭔가 건수가 걸린 게 틀림없었다. 하지만 적극적으로 포박하거나 거칠게 대우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살인이나 마약 같은 특수 범죄는 아닌 듯 보였다. 단순한 음주 운전 문제 때문일까? 그렇다면 검문소 오기 전 앞서 진행된 검문에서 걸렸어야 할텐데.

 

"나 아무래도 감옥갈 것 같아, 너 혼자 가"

 

내가 확실히 이들과 한 통속이 아니란게 밝혀지자 슬슬 분위기가 나만 배려받고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는 조사하는 분위기로 바뀌었다. 어수선하고 축 처진 분위기 파악을 못하고 얼른 사진기를 꺼내든 나는 철없이 말했다.

 

"저기 사진 좀 찍어도 될까?"

"노!"

그들은 한결같이 단호하게 거절했다.

 

"아이, 왜 이래? 이것도 인연인데. 그럼 총만 찍을게."

"안 돼."

다시 한 번 고개를 가로저었다.

"진짜 안 돼?"

"글쎄, 안 된다니까."

 

삼세 번 거절하자 더 이상 물어보지 못하고 입맛을 다신 채 사진기를 다시 집어넣었다. 어느 새 이곳의 분위기와는 상관없이 난 그들과 이런저런 농담 따먹기를 하고 있었다. 밤 12시가 넘은 시각 이제 날은 아까보다 더욱 추워졌다. 잠바를 걸친 채 치아를 떨던 난 셔츠에 조끼만 입고 있는 대원에게 춥지 않냐고 물었다.

 

"별로. 늘 이렇게 생활하는데, 뭘."

별 싱거운 녀석 같으니. 분명히 추울텐데 폼 잡기는.

"종성. 나 아무래도 감옥 들어갈 것 같아. 자전거를 내려 너 혼자 가야 할 것 같은데."

 

잠자코 상황을 주시하던 조지가 사태가 장기화될 것 같아 말을 건넸다. 옆에서 듣고 있던 대원도 그게 좋겠다며 나 혼자 가라고 거든다. 하지만 검문소에서 이 찬바람에 또 자전거를 타고 가라니 난 갈 수 없다며 망설였다. 대원이 말했다.

 

"그럼 트럭 한 대 잡아줄테니 거기에 싣고 가."

"알았어."

 

 

조지는 대관절 어떤 잘못을 저지른 걸까?

 

그렇게 트럭을 잡고 다시 산 루이스 시내로 가기로 했다. 그래도 이 순간 내게 잘해 주었던 조지와 헤어지는 게 아쉬웠다.

 

"고맙고 아쉬운데 사진이라고 찍죠?"

조지는 지금 상황이 그리 유쾌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나를 배려해 응해 주었다. 그의 태도로 봐서 사실 그리 큰 범죄인 건 아닌 듯했다. 다만 시간이 좀 필요한 조사인지는 모르겠다. 조지와 사진을 찍은 후 대원이 잡아준 트럭에 올라탔다. 이제 대원들은 내게 작별 인사를 고했다.

 

"잘 가. 조심하고."

"뭘, 내일 아침이면 또 여기서 보게 될텐데."

"하하, 그건 모르지. 내일 아침 근무 때 내가 여기 있을지 어쩔는지."

"어쨌든 고마워, 트럭 잡아줘서. 갈게. 조지, 나 갈게요. 고마워요."

 

복잡한 분위기 속에서 혼자만 빠져 나가는 것 같아 미안했지만 내일 다시 이 사막을 지나기 위해 몸을 추슬러야 하는 나도 마냥 남아 있을 수는 없었다. 조지는 대관절 어떤 잘못을 저지른 걸까? 거기에 견인된 차량의 사람들은 또 왜 묶여 있는 걸까? 나쁜 사람들처럼 보이지 않아 더욱 마음이 무거워졌다. 부디 심각한 상황은 아니기를. 그래도 나쁜 사람들 같지는 않아 보였는데.

 

아침에 출발한 도로를 역으로 들어오니 익숙한 풍경이 마음을 또 한 번 무겁게 했다. 그리고 나는 밤을 넘어 새벽으로 치달을 무렵 참 괜찮은 청년 하나를 만나게 된다.

덧붙이는 글 | 강도 사건으로 사진이 없어 미국 사진으로 대신합니다. 세계 자전거 비전트립 홈페이지는 http://www.vision-trip.net 입니다.


태그:#세계일주, #자전거, #문종성, #멕시코, #비전노마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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