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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남환씨 집에 도착한 세금청구서
문남환씨 집에 도착한 세금청구서 ⓒ 정대희

"오늘은 다른 때 보다 마음이 무겁네요. 세금용지만 꽂고 오는 집을 가면 괜시리 죄송한 생각도 들고…."

 

태안 우체국 소속 황천규 집배원. 그는 오늘도 오전부터 분주한 손을 놀린다. 연말연시를 맞아 연하장을 비롯한 각종 우편물들이 쉴 새 없이 밀려와 매일같이 집배실을 가득 메우고 있기 때문이다.

 

정신없이 손을 놀리던 황씨는 갑자기 어두운 낯빛을 보인다. 그의 시선을 따라가 보니 전기세를 비롯한 각종 공과금용지가 수북이 쌓여 있다.

 

"요즘은 이거 배달하는 게 제일 힘드네…"하며 말 꼬리를 흐리던 그는 무거운 발길을 재촉하며 헬멧을 쓰고 오토바이에 시동을 건다. 허베이 스피리트호 유류 유출 오염사고 35일째를 맞은 요즘 피해지역주민들의 한숨은 깊어만 가고 있다.


이른 아침부터 바다에 나가 해안가로 밀려온 기름을 닦고 저녁 무렵이면 어김없이 녹초가 된 몸을 이끌고 집으로 향한다.

 

"한 달이 넘도록 이 일을 하다 보니 이골이 날 법도 한데 아직도 (방제)작업이 끝날라 치면 이렇게 몸이 쑤시네."

 

태안군 소원면 소근리에서 굴양식업을 하던 문남환(61)씨는 오늘도 지친 몸을 이끌고 무거운 발길을 옮겨 집으로 돌아간다. 작년 이맘때만 해도 문씨는 소근리 앞바다에서 굴 채취작업으로 눈 코 뜰 새 없이 바쁜 하루일과를 보냈다.


피해지역주민들의 한숨은 깊어만 가는데...


 태안군 소근리에서 굴양식업을 하던 문남환씨가 기름범벅된 굴의 냄새를 맡고 있다.
태안군 소근리에서 굴양식업을 하던 문남환씨가 기름범벅된 굴의 냄새를 맡고 있다. ⓒ 정대희

하지만 올해는 굴 채취를 하나도 못했다. 오히려 피해보상을 받으려면 증거보전을 위해 기름범벅 된 굴을 그대로 방치해야 한다고 한다.


"양식장 쪽은 쳐다보기도 싫어, 가끔 스쳐가듯 눈이 가면 한숨만 나오고…"하며 말꼬리를 흐리신다. 


오늘도 문씨는 어김없이 하루 종일 기름과 한바탕 전쟁을 하고 피곤한 몸을 이끌고 무거운 발길을 옮겨 집으로 향한다. 힘겨운 발길을 돌리는 문씨의 등 뒤로 저녁노을이 붉게 물들인 모습이 오늘따라 유난히 슬퍼 보이기까지 한다.


집에 돌아온 문씨를 처음 반기는(?) 것은 다름 아닌 각종 세금청구서다. 힘겹게 우편함에 꽂힌 청구서를 꺼내며 한 말씀 하신다.


"어휴~ 매일같이 이렇게 돈 쓸 일만 생기니…. 어제도 보일러 기름값으로 50만원이나 썼는데 말여"하며 한탄하던 문씨.


"맨날 기자들이 와서 취재는 해 가는데… 뭐 달라지는 게 있어야지. 나도 두 번이나 방송 타서 이런 저런 애기했는데 그때 뿐이여. 도대체가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정부가 생계지원금으로 300억원을 긴급배정ㆍ지급하였다는 보도가 한 달 가까이 되가지고 있지만 아직도 배분 문제로 충남도에서 표류 중에 있다. 또, 매일같이 방제작업을 하고 있지만 인건비로 산정해준다던 방제활동비도 언제 받을 수 있을지 오리무중이다.


문씨는 걱정스런 표정으로 청구서를 들고 "이건 또 어떻게 해야 하는지…"하며 힘겨운 발길을 집 안으로 옮긴다.


#태안 기름유출#태안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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