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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껍데기가 산을 이루고 있다. 바닷가는 비릿한 내음이 가득하다. 갯가에는 오리들이 뒤뚱대며 걷기도 하고 철썩이는 파도 따라 넘실넘실 파도타기를 하며 먹이를 찾고 있다. 조그마한 움막집에서 ‘탁탁~’ 굴까는 소리가 들려온다.

 

움막의 나무문을 열고 들어서자 노부부가 반긴다.

 

“안녕하세요?”
“ ? ”
“굴 작황이 좋나요?”
“올해는 작년보다 나아요. 딴사람 것보다는 잘됐어.”

 

“알 굴 10kg에 4만원 이짝 저짝, 이거 저거 제하면 돈 안돼요”

 

할머니는 조새로 굴을 톡톡 깨뜨리면서 대꾸를 한다. 굴 껍데기를 연 다음 조새의 뒷부분에 있는 갈고리로 굴 알맹이를 끄집어낸다. 노부부가 퍽이나 다정해보인다. 안굴전 마을에 사는 정우기(71) 할아버지 부부다.

 

수하식 양식을 하는 굴은 일반적으로 수하연에 두 줄을 매단다. 그러나 정할아버지는 밀식재배로 인한 피해를 막기 위해 이번에는 한 줄만 매달았다고 한다. 그래서 굴의 먹이활동이 활발해 남들 것보다 더 씨알이 굵다.

 

“둘이 묵을껄 혼자 묵은께 씨알이 여물고 그래”
“수입이 짭짤하겠네요.”
“중노동일이 돼갖고 돈도 안 돼”

 

이렇게 깐 알굴은 여수수협에서 다음날 아침이면 가져간다. 그날 시세에 따라 판매대금은 개인 통장에 입금시켜 준다.

 

“시세 좋아요?”
“알굴 10kg에 4만원 이짝 저짝 그래요. 딴 물가는 다 오르는데 이거는 오르지도 않고 돈이 안돼요.”
“처음 굴 양식을 시작했을 때와 가격이 별반 차이가 없나요?”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거든 재료값은 겁나게 올라 불고, 굴 금(가격)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똑같고 못해 묵겠소 못해 묵어.”
“그럼, 수입이 어느 정도 되나요?”
“하루 굴 까는데 20년 전에는 인건비가 1만원도 못했는데 지금은 3만5천원이여, 그것도 아침과 점심 2끼니 먹여주고 새참 주고 하면 한 사람당 4만원 넘게 치지.”

 

40년째 굴과 홍합 양식

 

숙련된 사람의 하루 작업량은 알굴 2박스(20kg)다. 평균 한사람이 15kg의 굴을 깐다. 인건비와 기타 자재비를 제하고 나면 애써 일한 보람도 없다. 바다에서 굴을 채취해오는 남자들의 인건비 건지기가 쉽지 않다. 올해로 40년째 굴과 홍합 양식을 해온 정 할아버지는 이 분야에서는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정도로 이골이 났다. 그런 할아버지도 어렵다고 한다. 통에 가득 담아놓은 알굴이 움직인다. 만져보니 손이 미끈미끈하다.

 

“까놓은 굴이 살아있네요.”
“숨 쉬어.”
“왜 이렇게 미끈거려요?”
“굴을 손대면 손이 보드라와져, 손 튼 사람도 아물고 굴 물이 그렇게 좋아요.”

 

할아버지는 옛날에는 굴이 식탁에 오르기까지 13번의 손이 갔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대여섯 번으로 줄었단다. 노부부는 새벽 4시면 굴 움막에 나와 오후 6시까지 일한다.

 

“뭐, 그렇게 일해도 똑 뿌러지게 잘사는 것도 없고...”

 

외국의 굵은 배들이 오간 뒤부터  굴에 홍합이 붙기 시작

 

할아버지가 굴 양식을 처음 시작한 초기(40년 전)에는 국가 보조를 받았다. 지금은 자부담이다.

 

“정부에서 느그들 이거 해라 하고 시킨 것도 아닌디, 태풍 오면 적으나마 보상도 해주고 그래도 많이 좋아진 것 아니냐며” 웃는다.

 

지금껏 일해서 특별하게 살림이 좋아진 것은 없지만 4남매(2남2녀) 다 가르치고 출가시켰다. 이제는 할아버지 부부가 오붓하게 산다. 할아버지는 두 번에 걸친 큰 수술을 해서 몸이 불편하다며 “힘든 일을 안 해야 하는데…” 하시면서도 손놀림을 멈추지 않는다.

 

“금년에 그만 둘란가, 내년에 그만 둘란가 모르지. 처음 굴 할 때는 홍합이 안 붙었는디 지금은 홍합이 붙어갖고 알이 안차 부러. 여수 국가 산단이 생기고 나서 외국의 굵은 배들이 오간 뒤부터  홍합이 붙기 시작했어. 요즘은 굴을 만 1년을 못 키워, 홍합이 한번 지나가야돼.”

 

홍합 포자가 붙은 5월 이후에 굴을 수하시킨다. 그래서 양식 기간이 짧아 굴 알맹이가 작다.

 

정 할아버지는 여수에서 최초로 홍합 양식을 시작했다. 굴에 홍합이 붙어 자란 걸 보고 “내가 이걸 어찌 키워서 팔아볼까?” 궁리하다 나일론 줄을 이용해 홍합의 자잘한 무더기를 묶어 키웠다. 나일론 줄 1개에 홍합을 15군데 묶어 안굴전 바다에서 양식을 한 것이다.

 

홍합이 자라면서 그 무게 때문에 미끄러져내려 몇 번의 실패 끝에 나무를 이용해 그 문제점을 보완했다. 제일 먼저 시작해서 여수에 홍합 양식 기술을 보급했다.

 

“우리가 젤 첨에 했소, 그래서 보급이 된 거요.”

 

할머니는 감기 때문에 병원에 가야한다며 툴툴 털고 일어선다. 할아버지가 바다에서 살아온 이야기를 더 듣고 싶었으나 차편이 여의치 않은 이곳에서 병원 문 닫을 시간이 가까워져 할머니와 함께 서둘러 안굴전 마을을 빠져나왔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U포터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굴#돌산도#움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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