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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사람들이 나이를 계급으로 알아요.”
“뭔 소리냐?”
“아빠는 아시면서.”

 
딸아이 "나이가 무슨 계급이냐" 라고 반문하는 딸아이의 말 속에서 영락없는 나를 본다.
딸아이"나이가 무슨 계급이냐" 라고 반문하는 딸아이의 말 속에서 영락없는 나를 본다. ⓒ 송상호

 

더아모 15인승을 타고 ‘더아모의집’ 아이들과 어디를 한참 가고 있다가 딸아이가 나에게 들려준 말이다. 나더러 들으라는 소린지 아니면 다른 뜻이 있는지 몰라 한참 헤매다가 다행히(?) 나 들으라는 소리는 아니라는 판단에 안도의 한숨을 쉰 것은 잠시 뒤였다.

 

그렇게 말하는 딸아이와 ‘더아모의집’에 오는 소녀 한 명이 새해 벽두부터 벌인 퍼포먼스가 그 말의 진정성(?)을 잘 말해준다.

 

 2007년 마지막 날 밤 12시가 넘어가려고 텔레비전에서 카운트다운에 들어가자 함께 초를 세던 딸아이가 2008년 1월 1일 00시 1초가 되자 환호성을 지른다. 그러더니 또래 마을 친구 소녀에게 전화를 한다.

 

“야, 연지야. 우리 이제 열다섯 살이야. 우리 내일 새해 처음 떠오르는 해 보자. 알았지?”

 

무슨 겨울에 첫 눈 맞이하는 강아지마냥 신나해 하는 딸(실제로 이 아이들의 띠가 개띠이다)을 보며 ‘얼마나 나이가 한에 사무쳤으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새벽 1시가 넘어 2시가 되어 잠을 자더니 새벽 5시도 안 되어 소녀들끼리 전화를 하고 난리다. 그 후 그 소녀 집으로 출동한다. 단지 새해 처음 떠오르는 해를 보기위해서 말이다. 그 소녀의 집에 있는 옥상에서 해를 볼 수 있을 거라는 실낱같은 희망 때문인 게다. 잠결에 그런 소리를 듣다 우리 부부는 잠이 들어버렸다.

 

“아, 아빠. 떠오르는 해를 못 봤어요.”
“그 난리를 치더니 왜?”
“해가 이제나 저제나 떠오를까 하고 친구 집에서 나왔다 들어갔다가 하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잠이 들어 버렸어요. 그래서 그만.”

 

허허허 그것 참. 웃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꼭두새벽부터 해 본다고 그 난리를 치며 남의 잠을 설치게 하더니 해를 못 봤단다.

 

“그래도 너희들 이제 열다섯 살이네.”
“그러면 뭘 해요. 아직 중 2도 안 된 걸요.”

 

친구 소녀의 말이다. 어지간히 나이 때문에 치고 사나보다 싶다. 아니면 나이가 적다고, 학년이 낮다고 무시당하고 사나 보다 싶다.

 

사실 이제 겨우 ‘초딩(초등학생을 낮춰 부르는 말)’에서 벗어나 ‘초딩’의 딱지를 뗐건만, 이 소녀들의 갈 길은 아직 먼 것인가 보다. ‘초딩’에서 ‘중딩’으로 넘어올 때도 그 경이로움과 감격이 대단했던 딸아이를 잘 알고 있는 나로선 할 수만 있으면 나이를 떼어 주고 싶을 정도다.

 

이런 딸아이와 소녀의 행각이 유별나다 싶겠지만, 우리 사회의 한 단면을 여과 없이 보여주는 장면이라 하겠다.

 

학교든 직장이든 가정이든 우리 사회에 자리 잡은 진리와 같은 것이 ‘장유유서’ 아닌가. 교회도 사찰도 성당도 마찬가지다. 우리 문화에서 다른 것은 다 바뀌었는데도 그것만은 모든 사람들의 문화에 자리 잡고 있는 듯하다.

 

 차량끼리 부딪쳐서 사고가 나면 그 과실 여부를 가지고 말하기보다는 ‘내가 너만한 조카가 있다. 내가 너만한 동생이 있다’ 시리즈가 튀어 나오면 더 이상 이야기가 진행되기 힘들다는 것은 한번쯤 겪어본 일일 게다.

 

그리고 어딜 가나 무엇을 하나 나이로 서열을 정하고 누님, 오빠, 형님, 언니 등의 호칭을 무언 중에 강요(?)하는 것은 일상이 되어 버렸다. 학교에서도, 직장에서도, 군대에서도 선후배 관계는 하늘과 땅 차이다.

 

이거 우리 사회에서 좀 완화시킬 수 없을까. 굳이 서양 영화처럼 나이 많은 할아버지와 손자 같은 소년이 친구처럼 지내면서 그 우정을 다루는 장면이 아니라고 할지라도 이제 좀 바뀔 때도 되었지 않은가.

 

 솔직히 부전여전인가 보다. 나도 어릴 적부터 40대가 된 지금까지도 딸아이와 같은 고민과 반항을 해온 것이다. 그래서 아직도 나에겐 나이에 대한 콤플렉스가 있다. 얼굴이 ‘동안'이고 덩치가 왜소하다보니 아직도 총각이라는 소리를 많이 듣는 편이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는 일단 나이가 어리다고 판단히면 한 수 깔고 들어가는 습관이 있음을 알기에 늘 그런 문화가 싫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새해부터 우리 사회가 이런 문화도 좀 고쳐보자는 의미로 딸아이가 나에게 들려 준 말을 마지막으로 해본다. 그런 바람이 무리한 바람이 아니기를 바라면서.

 

“나이가 계급도 아니고 ,자기가 노력해서 올라 간 것도 아닌데, 그냥 가만히 있으면 누구나 먹는 건데, 그걸 가지고 사람들이 그래요.”

 

덧붙이는 글 | ‘더아모(더불어 사는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가는 모임)의 집은 경기 안성 금광면 장죽리 시골 마을에 자리 잡고 있다. 홈페이지는 http://cafe.daum.net/duamo 이며, 본인은 이곳의 목사이다.


#송상호#더아모의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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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서 목사질 하다가 재미없어 교회를 접고, 이젠 세상과 우주를 상대로 목회하는 목사로 산다. 안성 더아모의집 목사인 나는 삶과 책을 통해 목회를 한다. 그동안 지은 책으로는 [문명패러독스],[모든 종교는 구라다], [학교시대는 끝났다],[우리아이절대교회보내지마라],[예수의 콤플렉스],[욕도 못하는 세상 무슨 재민겨],[자녀독립만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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