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둔덕재를 통해 전남 여수시내로 들어오는 입구에는 산 위로 봉긋하게 솟은 봉오리가 보인다. 항상 볼 때마다 너무나 풍만하게 다가온다. 호랑산이다. 간단한 채비만 하고 산으로 향했다. 겨울에 산을 걷노라면 눈으로 보는 것보다는 마음으로 다가오는 게 많다.

여도초등학교에서 갓길로 올라서면 군생활이 생각나게 하는 군부대 각개 전투장이 나온다. 외나무다리, 철조망, 독립가옥 들을 지나면서 추억인지 악몽인지 모를 미묘한 감정이 일어난다. 그때는 무척 힘들었는데, 지금 생각하니 그냥 지나간 시절 정도의 아련한 기억 저편에서 아른거린다.

여수시내쪽 풍경 아름다운 전원도시 같이 보인다
▲ 여수시내쪽 풍경 아름다운 전원도시 같이 보인다
ⓒ 전용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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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오르지 않아 바위능선에 선다. 아파트가 들어섰지만 꼬불꼬불한 농로사이로 뒤틀린 논들이 엉켜있는 풍경들이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바위사이로 무너진 산성의 흔적을 만난다. 호랑산성이다. 여수에는 왜구의 침입이 많아서인지 성이 많다. 하지만 온전하게 남아있는 성은 없는 것 같다. 호랑산성도 마찬가지다. 석축의 일부만이 그 흔적을 알 수 없을 정도로 남아있을 뿐….

아래서 올려다보던 호랑산(虎狼山/470m) 산정은 커다란 바위를 얻어 놓았다. 그 모양이 멀리서 보면 여자의 젖가슴 같이 보인다고 하여 유두봉이라고도 불린다. 바위를 조금만 더듬고 올라서면 호랑산 정상에 설 수 있다. 높지는 않은 산이지만 이 바위 위에 서면 시원함을 느낀다. 주변의 거칠 것 없이 다가오는 바람에 내 마음을 맡겨본다.

호랑산 정상에 올라서서
▲ 호랑산 정상에 올라서서
ⓒ 전용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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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선으로 이어지는 산길을 따라가면 사근치로 내려선다. 흥국사와 자내리로 내려갈 수 있다. 다시 영취산으로 올라가는 길을 잡는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여수에서 제일 높은 산이 영취산이었는데 지금은 넘버쓰리도 못된다. 산 이름 찾아주기 하는 바람에 두 산 이름을 다시 바뀌었다. 진례산에 산 이름을 내어주고는 매일매일 바라보면서 정상탈환의 의지를 불태우고 있는 듯하다.

영취산(靈鷲山/418m) 정상에는 돌무더기 위에 정상임을 알리는 초라한 표지석이 있다. 와신상담하는 것 같다.

영취산 정상 대충 써 놓은 표지석
▲ 영취산 정상 대충 써 놓은 표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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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산으로서의 지위는 잃었어도 여전히 영취산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영취산은 이른 봄이면 온 산을 불태울 진달래가 피어난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을 불러모으는 축제를 연다. 영취산 진달래 축제. 어쩌면 이름이 바뀔지 알고 축제이름을 지었는지도 모르겠다. 붉은 빛으로 온 산을 뒤덮을 봄이 그리워진다.

영취산 시루봉에서 본 진례산 봉명치로 이어지는 능선과 하얀 임도가 잘 어울린다.
▲ 영취산 시루봉에서 본 진례산 봉명치로 이어지는 능선과 하얀 임도가 잘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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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우재 도솔암 표지석
▲ 봉우재 도솔암 표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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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루봉(436m)을 지나 앙상한 덤불 같은 진달래 군락을 따라 내려가면 봉우재가 나온다. 도솔암 올라가는 표지석이 반긴다.

‘이뭣고’

도솔암 올라가는 길은 침목으로 만든 계단길이다. 따스한 겨울 햇살을 받으며 한 걸음 뗄 때마다 ‘이뭣고’를 되새겨본다. 혼란한 마음이 흩어지면서 다시 모이는 것이 느껴진다. 그렇게 바쁘게 살지 말라고 이야기한다.

도솔암 극락전 창살물이 아름답다.
▲ 도솔암 극락전 창살물이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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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솔암 얕으막한 담장과 어울린 풍경
▲ 도솔암 얕으막한 담장과 어울린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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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정 바로 밑에 작은 터를 잡은 도솔암(兜率庵)에 들러본다. 도솔암은 흥국사 산내암자로 유일하게 남아있는 곳이며, 최근에 절 집을 다시 중수하여 비로전, 관음전, 나한전 요사채 등을 만들었다고 한다. 암자는 인적이 없다. 스피커를 타고 흘러나오는 명상음악 소리만이 이곳이 비어있지 않음을 알려주고 있다. 좁은 마당과 하늘을 나누는 울타리가 답답하게 보인다. 하지만 담이 없으면 마음을 가둘 수 없을 것 같다.

GS칼텍스정유 여수공장
▲ GS칼텍스정유 여수공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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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솔암에서 조금만 올라서면 진례산(進禮山/510m) 정상에 선다. 흉물스런 군사시설물과 안테나가 정리되지 않은 채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아래로는 여수석유화학단지가 감싸고 있다.

여수산단은 GS칼텍스의 전신인 호남정유가 지난 1969년 첫 기름을 생산한 이후, 연관 석유화학 업체들이 입주하면서 우리나라 석유화학산업단지의 한 축이 되었다고 한다. 최근에는 2012년 이산화탄소 배출규제 시행에 대비하여 업체마다 공장증설에 열을 올리고 있다고들 한다.

상암마을 풍경 아름답게만 보인다.
▲ 상암마을 풍경 아름답게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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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뒤로 물러서면 오랜 시간을 살아오면서 만들어낸 선들의 아름다움이 펼쳐진다. 바다로 나가기보다는 산과 들을 개간하여 구불구불한 논을 만들었던 억척스런 사람들의 역동성이 물방울 펼쳐지듯 퍼져나가고 있다. 시골마을로는 상당히 큰 상암마을도 자리하고 있다. 참 평화로운 마을이었을 건데, 석유화학단지가 들어서고부터는 공단주변 마을정도로 전락해 버렸다.

여수 석유화학공단 열심히 가동중이다.
▲ 여수 석유화학공단 열심히 가동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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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장굴뚝으로 하얀 연기가 품어져 나오고 있다. 연기 속에는 수많은 공해물질이 있건만 하얀색이라는 게 왠지 깨끗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만들어 낸다.

둔덕재에서부터 오랜 시간 걸었는지 다리는 뻐근해온다. 골명치에서 원상암마을로 내려섰다. 멀리서 버스가 오는 것이 보인다. 버스를 타기 위해 열심히 달린다. 진달래 피는 봄날에 이 길을 다시 걸어 볼련다.

덧붙이는 글 | 둔덕재-호랑산-사근치-영취산-시루봉-봉우재-진례산-봉명치-원상암마을
산행거리 10.7km/소요시간 4:38



#진례산#호랑산#영취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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