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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교생 100명 미만 학교를 통폐합하는 정부 정책으로 폐교가 계속 증가하고 있다. 이로 인해 폐교 활용이 사회적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활용 방법을 놓고 갈등을 빚는 지역도 적지 않고, 교육부의 폐교 매각 정책에 대한 비판 여론도 높다. 이에 <오마이뉴스>는 '폐교가 살아야 마을도 살아난다'는 기획 연재를 통해 전국 폐교 활용 사례를 짚어보고자 한다. [편집자말]
도농교류 성공을 상징하는 '꼭지점'에서 멈췄다. 조그만 야산 고개를 넘던 도중이었다. 출발지는 부활에 성공한 폐교다. 목적지는 다시 살아나고 있는 산골마을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전북 장수군 천천면 연평리에 있는 연평초등학교(아래 '학교')와 신전마을을 합쳐 이렇게 부른다. 하늘내 들꽃마을(대표 권자만).

마을 주민은 크게 둘로 나뉜다. 먼저 저 아래 산골 마을에는 50여명(25호)이 옹기종기 모여 산다. 아무래도 할아버지, 할머니가 많다. 주업은 농업이다. 그런가하면 학교에는 '귀촌'한 주민들이 살고 있다. 물론 농사를 짓는 사람도 있지만, 주업은 친환경상품 인터넷쇼핑몰 사업. 서로 잘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는 셈이다.

 하늘내 들꽃마을 안내도
하늘내 들꽃마을 안내도 ⓒ slowzone.co.kr

도농이 힘을 합쳐 탄생한 새로운 마을

하지만 서로 잘 하는 일만 하며 각자 살았다면, '하늘내 들꽃마을'이란 새로운 이름은 결코 탄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주민들이 함께 잘 하는 일은 따로 있다. 바로 농촌체험 사업이다. 한 해 1만5천명이나 되는 도시인들이 하늘내 들꽃마을을 찾는다.

더불어 소득도 늘어났다. 인터넷 쇼핑몰을 통해 마을 농산물이 전국에 팔려 나가고, 체험사업으로 '부수입'도 생겨났다. 이런 성과를 바탕으로 농림부로부터는 전국에서 최우수 농촌체험마을로, 산림청으로부터는 산촌 생태마을 조성 사업 마을로 선정되는 경사도 있었다. 각각 적지 않은 금액의 사업비가 책정됐음은 물론이다.

허나 어디 '돈'이 전부인가. 살기 좋은 마을의 절대 조건이 '돈'이 될 수는 없다. 무엇보다 사는 재미가 있어야 하고, 그러다 보면 웃음이 따르게 마련이다.

마을 어르신들은 "오랜만에 사는 재미를 느낀다"고 한다. 많은 도시인들이 마을을 찾아서만이 아니다. 무엇보다 마을에 사는 젊은이들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학교에 살다가 아예 마을로 귀농한 젊은 부부가 있는가 하면, 오랫동안 타지에 있던 삼형제가 마을로 돌아오기도 했다. 덕분에 한동안 뜸했던 대보름 잔치가 살아났고, 흥이 나면 할머니 합창단은 동요를 부르기도 한다.

대체 폐교가 어떻게 살아났기에, 이처럼 마을에 생기가 돌고 있을까. 이를 알기 위해서는 대기업을 다니면서도 '항상 시골 삶을 꿈꾸던' 마을 주민의 이야기를 먼저 들어볼 필요가 있다. 조그만 야산 고개를 넘기 전에, 하늘내 들꽃마을 박일문 총무(44세)를 먼저 소개하는 이유다.

 하늘내 들꽃마을(학교)에 있는 황토방들
하늘내 들꽃마을(학교)에 있는 황토방들 ⓒ slowzone.co.kr

옛 연평 초등학교를 선택한 4가지 이유

"항상 외딴 시골에서 살고 싶었어요. 하지만 먹고 살 수 있는 뚜렷한 방법이 있어야 말이지. 몇 십 년 농사 짓는 사람들도 힘들어서 다 못 사는데, 도시인이 농사로 성공하기 쉽겠어요? 그래서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사업을 하자..."

박 총무가 '귀농'보다 '귀촌'이란 말을 쓰는 것도 그래서다. 그리고 그는 귀촌을 위해 두 가지 키워드에 주목했다. '유기농'과 '인터넷'. 친환경상품 인터넷쇼핑몰 내츄럴존(naturalzone)이 만들어졌고, 자연스레 고객들을 선점해 나갔다. 웰빙이란 단어가 지금처럼 흔하지 않던 2001년이었다.

"일단 만 명이 목표였어요. 주요 고객들이 맞벌이 부부거나 교육에 관심 많은 주부인 만큼, 그 정도 인원이면 적어도 한 백 명은 마을에 올 것이다. 그럼 뜻맞는 직원들과 시골에서 살면서 농사도 짓고 마을 사람들과 제휴해서 그렇게 살 수 있지 않겠느냐. 회사를 위해서도 그게 좋다. 생산 과정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지 않고 농산물을 팔아서는 고객들 신뢰가 떨어질 수 있으니까."

 하늘내 들꽃마을에 입주하고 있는 도농교류센터 입구
하늘내 들꽃마을에 입주하고 있는 도농교류센터 입구 ⓒ 이정환

2년 만에 박 총무는 귀촌을 위한 1차 목표 달성에 성공했다. 회원 숫자는 만 명을 넘어섰고, 월 매출액도 1억원에 이르렀다. 마침내 때가 왔다고 판단한 박 총무는 발품을 팔기 시작했다. 최적의 조건을 갖춘 폐교를 찾기 위해, 그가 방문한 전라도 지역 폐교는 70여 곳을 넘는다고 한다. 박 총무가 옛 연평 초등학교를 귀촌의 최적지로 삼은 이유는 네 가지였다.

"우선 사람들이 많이 다니지 않는 산골이어야 했어요. 물놀이도 해야 하니까 강이 보이면 좋겠다. 교통이 너무 편해도 불편해도 안 되겠다. 또 폐교와 동네가 너무 가까이 있어도 안 된다. 도시인들이 오면 캠프파이어도 하고, 노래도 부르고 싶을 것 아닙니까. 그럼 소음 때문에 마을과 마찰이 생기기 마련이니까요.

끝으로 동네는 너무 커도 안 좋고, 너무 작아도 안 된다. 사람 숫자가 많으면 어떤 곳이든 파벌이 생기기 쉬워요. 단합이 어렵죠. 또 가구수가 너무 많으면 우리 회사가 농산물 생산량 전부를 책임지기도 어렵잖아요."

폐교로 마을과 소통하기 시작하다

폐교를 인수한 박 총무는 새단장을 시작했다. 교무실은 쇼핑몰 사무실로 개조했고, 체험객들을 위한 숙소, 황토방도 만들었다. 운동장에 잔디를 깔았고, 학교 곳곳에 들꽃을 심었다. 마을 사람들과의 소통도 중요한 문제였다. 생전 처음 보는 외지 사람, 게다가 마을 사람들 추억이 배어 있을 폐교를 인수한 도시인. 하지만 박 총무는 이 마을에 살고자 온 사람이었다.

"제 자산은 시골 출신, 촌놈이란 것 밖에 없어요. 시골 할아버지, 할머니들 정서를 잘 알죠. 그냥 친근하게 아들처럼 어르신들을 대했어요. 인사 잘 하고, 할머니 젊었을 적 얘기해 달라고 조르기도 하고, 술 먹고 재워 달라고 하기도 하고(웃음). 도시에서 늙은 할머니한테 밥 달라고 해봐요. 미친 놈이란 소리밖에 더 듣겠어요?

하지만 시골 할머니들 정서로는 그게 좋은 거야. 아무거나 맛있게 잘 먹는 게. 그러다보면 농사 일도 도와드리게 되죠. 일이 몰릴 때는 얼마나 많이 몰려요. 우리 직원들이 가서 한 시간이면 딸 고추를, 할머니 혼자 하면 이틀 걸립니다. 마을 어르신이 상을 당하면 상여도 메 드리고, 그냥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더라고요."

자연스럽게 어르신들에게 이런 저런 제안도 할 수 있었다. "인터넷쇼핑몰을 통해 마을 농산물을 협력해서 팔자, 그러기 위해서는 농약을 치지 않으면 좋을 것 같다, 고구마가 굉장히 맛있던데 재배면적을 더 넓히면 어떻겠느냐, 체험객들을 모집할 테니까 그들한테 고구마를 캐게 하고 팔기도 해보자."

 학교 입구에 있는 마을 안내도. 마을에서 통하는 '호칭'으로 주민 집을 안내하고 있다.
학교 입구에 있는 마을 안내도. 마을에서 통하는 '호칭'으로 주민 집을 안내하고 있다. ⓒ 이정환

우리 마을 경운기 체험은 다르다

마을과 '폐교'가 통하기 시작했다. '학교' 주민들은 도시인들을 마을에 오도록 만드는 치밀함을 갖고 있었고, 할아버지와 할머니들에게는 도시인들과 즐겁게 정을 나눌 수 있는 따뜻함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특별한 결합은 하늘내 들꽃마을의 체험 프로그램에서 그대로 나타난다. 박 총무는 "털털거리는 경운기를 타고 그냥 왔다갔다하는 단발성 체험에는 한계가 있다"면서 다음과 같이 강조했다.

"경운기를 시골 승용차로 알고 있는 도시 아이들이 많아요. 하지만 아니잖아요. 경운기는 농기계 아닙니까. 자, 할아버지와 경운기를 타고 밭으로 이동합니다. 아이들한테 설명해주고 옥수수를 따게 해요. 그럼 먹어야 할 것 아닙니까. 옥수수를 싣고 마을 입구로 이동해서 아이들을 내리게 합니다.

 하늘내 들꽃마을(학교) 사무실 출입구에 걸려 있는 곶감. 직원들이 오다가다 따 먹는 간식이다
하늘내 들꽃마을(학교) 사무실 출입구에 걸려 있는 곶감. 직원들이 오다가다 따 먹는 간식이다 ⓒ 이정환

그리고 마을지도를 나눠줘요. 어느 할머니 댁에 가면 옥수수를 쪄 주실 거다. 찾아가라. 그럼 지도를 보고 찾아가요. 논두렁 밭두렁을 걸어가요. 동네 골목에서 어르신과 마주치면, 할머니 댁 어디냐고 물어봐요. 다 체험입니다. 그래서 할머니 집에 가요. 우리 손주들이 왔는데, 옥수수만 주시겠어요? 옛날 얘기도 해주시고, 봉숭아 물도 들여줘요.

할머니 집에서 나오면, 경운기가 기다리고 있어요. 할아버지가 '짠'하고 나타나서 냇가에 물고기 잡으러 가자고 해요. 경운기에는 투망 등 물고기 잡는 도구가 실려 있어요. 물놀이하면서 고기도 잡아요. '이건 쏘가리고, 이건 피라미'라는 할아버지 설명도 들어요. 생태하천 체험 아니겠어요?

그동안 부모님들은 쉬거나 다른 프로그램을 체험할 수 있는 거죠. 그리고 숙소(학교)로 돌아와서 자기가 딴 옥수수를 부모님께 드리는 증정식을 해요. '아버지 어머니 덕분에 재미있는 체험하고 왔습니다, 감사합니다'는 의미로. 우리 마을에서 하는 체험들, 다른 곳에서도 대부분 하는 것들입니다. 문제는 따로따로라는 것, 특색 있는 프로그램화가 중요하다는 거죠."

미꾸라지 효과. 친환경 농사로 체험 소득도 노린다

- 참 치밀한 것 같습니다.
"한 마지기(약 660㎡·200평) 1년 농사로 얼마나 버는 것 같아요? 20만원 정도예요. 그런데 여기 농약을 치지 않는다고 해봅시다. 그럼 미꾸라지가 살아요. 미꾸라지 잡기 체험할 수 있어요. 체험 한 번 하는데 5천원 씩만 받아도 20만원보다 더 벌 수 있을 것 아닙니까. 모든 논이 이렇게 돼야 한다는 건 아닙니다만, 이런 생각, 어르신들이 하기 어렵습니다. 그럼 누가 해야 하느냐. 한 살이라도 더 젊은 사람들의 몫입니다. 젊은 사람들이 있어야 마을에 힘이 생깁니다."

농사만으로도 바쁜 어르신들이다. 게다가 혼자 살던 분이 돌아가시기라도 하면, 가구 하나가 없어지고 집은 텅 비게 된다. 박 총무가 젊은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마을에 정착하거나 돌아올 수 있도록 노력하는 이유다. 역시 치밀한 과정을 밟는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그냥 귀촌하면 실패 확률이 높아요. 그래서 저희 사무실에서 일하면서 일종의 적응, 검증 단계를 거칩니다. 예를 들어 남편은 체험마을 사무장으로, 아내는 쇼핑몰 관리 책임자로 채용합니다. 그리고 3년 있다가 본인들이 원하면 아내는 계속 여기서 일하고, 사무장은 마을로 들어가 농사를 짓게 됩니다. 하지만 안정적인 소득이 있어야 하잖아요. 그래서 체험사업 하나를 맡겨 수입을 가지도록 합니다. 그럼 일자리가 하나 생겨 좋고, 마을 입장에서는 체험거리가 하나 더 늘어나니까 좋고."

이와 같은 '순환'은 이미 한 번 이뤄진 상태다. 음대를 졸업한 구 사무장 하영택 씨는 이제 학교가 아닌 마을에서 일하고 있고, 후임으로 윤동성 씨가 사무실에서 사무장으로 일하고 있다. 공교롭게도 윤 씨는 미대를 졸업했다. "그림 그려 탑 쌓기 체험에 딱 아니냐. 볼거리가 자꾸자꾸 늘어나는 셈"이라며 웃는 박 총무에게 '앞으로 목표가 무엇이냐'는 질문을 던져봤다.

 하늘내 들꽃마을(학교) 전경. 멀리 보이는 원두막에는 각각 '별명'이 붙어있다
하늘내 들꽃마을(학교) 전경. 멀리 보이는 원두막에는 각각 '별명'이 붙어있다 ⓒ 이정환

"상업화는 재미없다. 어르신들 더 즐거울 수 있도록"

"당장 어린이가 마을에 있으면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져요. 생명의 고리가 생기는 것 아닙니까. 마을이 없어지지 않겠구나 하는 희망. 그래서 마을에 생기가 흐르게 되는 거죠. 지금 아이들이 있는 집이 3가구예요. 앞으로 더 늘어날 수 있도록 해야죠. 그렇게 되려면 소득도 늘어야겠죠. 연간 가구당 부대수입을 1천만원까지 올라가도록 만들고 싶습니다. 하지만 상업화는 재미없잖아요? 인정이 살아있는, 자연환경까지 좋은 공동체에서 살고 싶습니다.

체험마을 하고 예전과 가장 달라진 것, 할머니들의 밝아진 표정입니다. 할아버지, 할머니들 사시는 동안, 지금보다 더 즐겁게 사실 수 있도록 하는 게 마을 목표입니다. 행복해지는 것도 연습해야 하니까, 스스로 즐거워지려 노력하는 마을 말입니다. 내가 살 마을이 좋으면 안 좋겠어요?"

- 끝으로 하나만 더 묻겠습니다. 마을에선 총무고, 회사에선 대표인데, 어떤 호칭이 마음에 듭니까?
"마을 주민들이 자기 땅을 기부하고, 돌을 쌓고 해서 만들어진 것이 시골 학교입니다. 또 여기서 태어났고 이 학교를 나온 사람들이 마을 주민들이죠. 내가 아무리 여길 샀다고 해도, '내 땅이야'하면 돌 맞아요. 폐교 자체가 사회적 공간이기 때문에 사유물이 될 수 없다는 거죠. 그래서 만들어진 것이 하늘내 들꽃마을입니다. 들꽃지기로 불러주시면 좋겠어요."

 하늘내 들꽃마을 박일문 총무. 사진 촬영 요청에 그는 "마을 어르신들과 함께 한 일인데도 혼자만 부각되는 것 같아 싫다"는 이유를 들어 난색을 표시했다.
하늘내 들꽃마을 박일문 총무. 사진 촬영 요청에 그는 "마을 어르신들과 함께 한 일인데도 혼자만 부각되는 것 같아 싫다"는 이유를 들어 난색을 표시했다. ⓒ 이정환

전북 장수군 천천면 연평리에 있는 폐교가 살아났다. 내가 살 마을 사람들에게 마음을 열고, 내가 살 마을을 위해 치밀하게 노력한 결과다. 이제 마을 사람들의 얼굴이 궁금해졌다. 야산 고개를 넘어 목적지로 향할 차례다.



#폐교#하늘내들꽃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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