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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에도 그리던 어머니 욕조를 구해서 어머님이 그곳에서 목욕을 하셨다. 인터넷에서 7만 몇 천원 주고 샀는데 그야말로 '딱' 이었다.

욕조에 물을 가득 채우고 가슴께까지 몸이 잠기니 기분이 좋아지신 어머님이 옛날에 처음으로 목욕탕이라는 곳에 갔을 때의 이야기도 풀어 놓으시고 더 옛날, 머리 한 번 감으려고 해도 '정지 문'을 걸어 잠그고 밖에 사람들 있나 없나 망을 봐 가며 했다는 얘기도 하시면서 내내 즐거워 하셨다.

나는 목욕물이 식지 않도록 커피 포트에 물을 끓여서 조금씩 넣어 드렸다.

어머니는 고향마을 냇가 이름인 '구루' 이야기도 하셨다. 나도 어린시절 한 여름을 친구들과 물속에서 살다시피 하던 곳이 '구루'였는데 어머니도 밤에 그곳에 가서 다른 사람들처럼 멱 한번 감아 보는 것이 소원이었지만 상놈들만 가는 곳이라고 어찌나 엄하게 집안 단속이 심하던지 한 번도 못 가본 게 한이라고 하셨다.

폭 45cm에 길이 102cm. 높이 50cm. 인터넷에서 이 욕조를 구입할 때 어머님 전용 욕실 크기를 재 보고 산 거였지만 들여놓으니 맞춤 제품처럼 딱 맞았다. 목욕을 다 한 다음 욕조 꼭지만 쏙 빼니 물이 다 빠졌다. 어머니 못지않게 내가 더 편했다.

올 초 겨울에는 방에다 큰 고무 함지박을 들여 놓고 가마솥 물을 퍼다 목욕을 했다. 방바닥이 콩기름을 입힌 천연 종이장판이다 보니 비닐을 넓게 깔고 그 위에 함지박을 놓고는 떠거운 물과 찬물을 퍼나르고, 옆에 목욕물 식지 않게 팔팔 끓인 물 한 대야 놓고 목욕을 했다.

그 다음이 힘들었다. 목욕 끝난 어머님 닦아 드리랴 옷 입혀 드리랴 머리 말려 드리랴 그리고 방문이 좁다보니 대야에 물을 퍼담아서 밖으로 퍼내야 했다. 이렇게 어머님 목욕 한번 하고 나면 내 허리에서 삐걱거리는 소리가 나곤 했다.

이번에 산 욕조는 고무 함지박과 달리 어머님이 다리를 쭉 뻗을 수 있어서 더욱 좋았다.
이 욕조를 사서 목욕을 하게 되기까지를 생각하면 웃음이 나올 정도로 어이없다.

10월 접어들면서부터 날씨가 추워지니까 어머니 목욕이 어려워지기 시작했다. 그동안에는 어머니 전용 욕실에서 목욕의자에 앉아 더운 물을 몸에 끼얹어 가며 씻었는데 전기 온풍기를 틀어 놓고 하지만 기온이 떨어지자 점점 여의치 않게 된 것이다.

전용 욕조를 마련해야겠다고 생각을 하고 백방으로 노력을 했지만 끝내 살 수가 없었다. 욕조를 사기 위해 전주 시내에 나가서 중앙시장 옆에 집중되어 있는 주방 용품점을 다 돌아 보았지만 없었다. 대형 그릇 도매점에 가도 없었다. 내가 원하는 이동이 가벼운 플라스틱 욕조는 어디에도 없었다. 모두 사기나 타일로 된 고급 욕조만 있고 옛날 플라스틱 욕조는 아예 생산을 안 한다고 했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자주 고물상을 뒤지는 것이었다. 내가 어머니 살 집을 지을 때 대부분의 자재를 구해 왔던 잘 아는 고물상이 서너 곳 있어서 가 봤다. 역시 헛탕이었다. 이유는 같았다. 아파트 재공사 하면서 중고 욕조가 나오긴 해도 플라스틱 욕조를 쓰는 사람이 없으니 구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대한민국 참 배 부르군" 하고 혼자 투덜거리고는 내키지 않지만 시뻘건 고무 함지박을 아주 큰 것으로 사기로 하고 욕조 구하는 것은 포기했었다.

그런데 내가 간절히 필요한 것은 늘 생겼다. 이번에도 그랬다.  아는 분이 내 고충을 듣더니 반신욕 욕조들이 목재나 플라스틱으로 많이 나온다는 것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인터넷으로 '욕조'를 찾았을 때는 아동용과 무거운 고급 욕조만 있었는데 '반신욕 욕조'를 찾았더니 제품이 수두룩했던 것이다.

수 년 전부터 건강요법으로 냉온욕과 반신욕을 해 온 내가 왜 이 반신욕조 생각을 못했는지 참 이상한 노릇이었다. 이렇게 해서 어머니 욕조를 마련한 것이다.

이런 경우는 또 있었다. 어머님이 방에서 뒤쪽 변기 있는 곳으로 나가셔서 용변을 보기 전에 방문을 닫으려고 하면 문이 여닫히는 반경이 있다보니 몸을 옆으로 빼서 문을 닫은 다음, 다시 변기 쪽으로 옮겨가셔야 하는 불편이 있어 참 안타까웠다.

우리집에 왔던 어떤 손님이 그걸 보고는 문을 떼어 내서 돌쭉을 바꿔 달으라고 즉석에서 한 마디 했는데 그게 완전한 해결책이 되었던 적이 있다.

겨울이 되면서 바람막이 공사를 토방 끝에 죽 해야겠다고 혼자 마음 먹고 있는데 <스스로세상학교> 학부모님이 친구가 집 짓고 남은 자재라면서 벽지와 두꺼운 비닐 두 타레를 갖다줬고 부엌 벽채 틈새를 메우는 작업을 하려고 황토를 구해다가 고운 황토물을 내려앉혀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이를 모르는 어떤 분이 집에 있어 짐스럽다며 황토몰탈을 네 통이나 싣고 왔다.

세제 없이 설거지 하는 아크릴사 수세미가 다 닳아서 어머님이랑 새로 하나 털 바늘로 짜려고 하는데 바로 이때 어느 단체 행사에 갔더니 선물로 아크릴사 수세미를 선물로 나눠줘서 가져왔다.

생활비가 완전히 바닥이 나서 농사 지은 쌀과 잡곡은 물론 오미자효소를 팔기 시작했다. 딸애가 서울 홍대 앞에서 자취를 하게 되었는데 생활비를 도와야 할 처지였다. 열흘 전에 어느 공모에 35매 글이 당선되어 100만원의 상금을 받았고 내일은 또 30매 짜리 글이 최우수상을 받게 되어 50만원 상금 받으러 서울 간다.

어제는 어떤 분 두 사람이 집으로 찾아왔다. 뭔가를 같이 하기로 했는데 작업비 150만원과 최신형 노트북을 주겠다고 했다.

어머니와 더불어 참 신비한 삶을 산다고 생각한다.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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