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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 겨울안개가 이렇게 지독하담?”
“오늘은 겨울이 아니라 봄날 같은 걸”

기온은 포근했지만 아침부터 갤 것이라는 일보예보가 이곳에서는 완전히 빗나가고 있었다. 금수산입구에 들어섰을 때는 아침 10시를 지나고 있었는데 짙은 안개가 시야를 희끄무레하게 차단하고 있었다.

 

충북 단양과 제천시의 경계지역에 있는 금수산을 찾은 12월 11일, 아침 일찍 서울을 출발 할 때부터 짙은 안개와 함께 보슬비가 오락가락하고 있었다. 그래도 낮부터 갤 것이라는 일기예보를 믿고 우리들은 거뜬한 마음으로 산을 찾아 나섰다.

 

서울을 벗어난 우리는 중부와 영동 그리고 중부내륙고속도로를 달려 충주 나들목을 빠져나왔다.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충주호를 굽이굽이 감싸고 돌아가는 도로는 드라이브 코스로도 아주 멋진 곳이었다. 역시 짙은 안개가 감싸고 흐르는 호수 건너편의 산들이 희미하게 모습을 드러낸다. 안개가 조금씩 걷히고 있는 것 같았다.

 

주변의 경치를 만끽하며 천천히 달려 금수산 입구 상천산수유 마을 주차장에 도착한 시간이 오전 10시경이었다. 차를 세워놓고 겨울철인데도 청청한 기상으로 멋진 모습을 자랑하는 소나무들과, 빨간 열매에 이슬 방울들이 촘촘히 매달린 산수유 나무들이 즐비한 마을 안길을 지났다.

 

마을을 벗어나 골짜기로 들어가는 초입에는 입구에 돌탑과 커다란 돌을 세워놓은 작은 절 하나가 눈길을 붙잡는다. 아주 특이한 조경 때문이었지만 막상 절집은 평범한 일반 주택을 개량한 모습이어서 볼품이 없었다. 그 절집을 지나 용담폭포 삼거리에 도착했을 때는 더욱 짙어진 안개가 어두워진 밤을 방불케 했다.

 

봄날 같은 기온에 안개 짙은 금수산

 

“어느 쪽으로 올라가지?”

왼편으로 오르면 전망이 기막히다는 망덕봉을 거쳐 정상으로 오른 길이었고 오른편 길은 평범한 등산로였다. 날씨가 좋았다면 당연히 왼편 길을 택했을 것이다.

 

“안개 때문에 전망도 볼 수 없는데 공연히 위험한 코스로 오를 필요 없잖아?”

모두들 오른편 길을 원한다. 그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10m 앞도 겨우 희미하게 보이는 안개 속을 뚫고 굳이 위험한 길을 오를 필요가 없을 것 같았다.

 


 


길은 평탄하고 좋았다. 온통 짙은 안개에 휩싸인 숲길에서는 가끔씩 후두둑 후두둑 빗방울이 떨어진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빗방울이 아니었다. 나뭇가지마다 물기를 잔뜩 머금은 짙은 안개가 물방울로 맺혀 떨어지는 것이었다.

 

“잠깐 쉬어가는 게 어때? 옷 좀  벗어야겠어.”
“그러자고, 이거 원, 더워서 걸을 수가 없구먼, 지금이 겨울이야? 봄이야?”

모두 이마에 굵은 땀방울이 맺혀 있다. 12월의 중순은 한겨울이다. 겨울철인데다가 제법 높은 산이어서 옷차림을 든든히 하고 온 것이다. 그런데 날씨가 봄날처럼 너무 포근했다. 더구나 봄 안개처럼 농도가 짙은 안개까지 끼어 있으니 더울 수밖에 없었다. 잠깐 쉬며 두꺼운 옷을 하나씩 벗어 배낭에 집어넣었다

 

“우리 말고 다른 등산객들도 있는 모양인데?”

그때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와 함께 한 떼의 사람들이 밑에서 올라온다. 그들은 관광버스를 타고 온 서울의 어느 산악회원들이었다. 짙은 안개가 뒤덮인 고약한 날씨 속에 우리들만의 외로운 등산이 될 줄 알았던 일행들이 몹시 반가운 표정들이다.

 

그들과 뒤섞여 산을 계속 올랐다. 산 아래쪽 골짜기는 눈이 모두 녹아 보이지 않았지만 길바닥은 조금 얼어있었다. 그런데 중간쯤 올라가자 흙길이 완전히 녹아 있다. 사방을 분별할 수 없는 짙은 안개 때문에 방향을 알 수는 없었지만 양지쪽인 것 같았다.

 

“오늘은 겨울이 아니라 완전히 봄 등산을 온 것 같은 느낌이네.”

다른 산악회원들도 능선 길에서 옷을 한 개씩 벗어 낸다. 그들도 무더운 것이다. 그렇게 한 시간 여를 올라가자 능선에 당도했다. 갑자기 바람이 서늘하다. 모두들 시원하다며 좋아한다. 그 능선의 한쪽 자락에는 얇은 눈이 덮여 있었다.

 

그런데 그런 능선길을 다시 30분 쯤 더 올라갔을 때부터 길은 완전히 달라졌다. 왼편으로 산자락을 안고 가는 길은 완전히 빙판이었던 것이다. 내 앞에서 걸어가던 산악회원이 빙글 미끄러지며 엉덩방아를 찧었다. 다행이 다치지는 않은 것 같았다.

 


 


“안되겠는 걸, 아이젠 신어야지.”

그를 뒤따라 걷다가 역시 삐끗 미끄러지면서 넘어질 뻔 했던 일행이 아이젠을 꺼낸다. 다른 일행들도 하나 둘 배낭에서 아이젠을 꺼내 착용한다. 나도 좀 귀찮긴 했지만 아이젠을 착용했다. 아이젠을 착용하자 발을 내딛기가 한결 수월하다. 빙판길에 미끄러지지 않으니 안정감이 생기고 우선 마음이 든든해진 것이다.

 

산꼭대기는 겨울 빙판길

 

“안 되겠네요, 아이젠을 신어야지, 공연히 그냥 걷다가 한 번 더 넘어져 다치기라도 하면 큰일이니 미리 신어야지.”

우리들 앞을 걸어가다가 미끄러진 산악회원도 아이젠을 꺼내 착용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선 다른 회원들에게도 아이젠을 착용하라고 전달을 하는 것이었다.

 

길은 정상이 가까워질수록 더욱 미끄러웠다. 길가에 쌓인 눈도 많아졌다. 산의 고도가 높아질수록 온도가 낮아 길에 빙판이 심하고 눈도 녹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도 길가의 나무들은 아직 얼지 않고 물방울을 떨어뜨리고 있었다. 시간은 어느새 정오가 조금 지나있었지만 안개는 여전했다.

 

약간 가파르고 미끄러운 길을 오르자 정상이 나타났다. 그러나 정상은 아주 비좁은 바위였다. 정상의 오를 수 없는 비탈진 바위에는 소나무 한 그루가 서있는 것이 신기하고 매우 귀한 모습이다.

 

그 옆의 바위 위에 해발 1016m 라는 작은 정상 표지석이 초라하게 세워져 있었고, 그래서인지 정상의 바위 옆에는 가까이 오를 수 있는 계단과 함께 철제와 판자로 십여 명의 사람들이 올라가 쉴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 놓았다.

 

“아! 아쉽다, 이 정상에서 바라보는 조망이 정말 끝내준다고 했는데..”

그랬다. 날씨가 좋았다면 북쪽으로는 금수산 줄기에 이어진 신선봉과 동산이 능강계곡과 함께 시야에 들어오고, 망덕봉 너머로는 청풍호반이 펼쳐져 장관이라고 한다, 남쪽으로는 월악산과 대미산, 백두대간이 지나는 황정산이 아련하게 다가온다는데 말이다.

 


 


“그 시루떡 아주 맛이 좋을 것 같아 보입니다.”

우리들이 멋진 조망을 아쉬워하며 간식을 꺼내 먹고 있을 때 또 다른 산악회 멤버 중의 두 사람이 웃으며 하는 말이었다. 우리들이 먹고 있는 팥고물 시루떡이 먹음직스러웠던 모양이다. 떡을 가져온 일행이 기꺼이 떡 몇 쪽을 집어주자 고맙다며 맛있게 먹는다.

 

하산길이 위험하다

 

“저희들은 저쪽 넘어 상학마을로 내려가겠습니다. 어르신들은 어느 쪽으로 내려가시겠습니까?”

그들이 반대편으로 내려가는 철계단 앞에 서서 우리들에게 묻는다. 그들이 타고 온 관광버스가 그 쪽으로 먼저 가서 대기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우리들은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상천마을 주차장에 우리들의 승용차가 세워져 있기 때문이다.

 

“내려가실 때 조심하십시오. 조금 전에 다른 산악회에서 온 한 사람도 저 아래 빙판에서 넘어져 다쳤습니다. 방금 그 일행들이 양쪽에서 부축하고 내려갔습니다.”

넘어져 다친 사람은 아이젠을 가져오지 않아 그냥 내려가려다가 넘어졌다는 것이었다.

 

그들을 보내고 우리들도 다시 올랐던 길을 되짚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모두들 조심조심 빙판길을 걸었다. 산행에서 가장 조심해야할 때가 하산길이다. 사고는 대개 오를 때가 아니고 내려갈 때 발생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얼었다가 약간 녹은 미끄러운 빙판길은 더욱 위험한 길이었다.

 

아이젠을 착용했지만 몇 번인가 넘어질 뻔 했던 위험한 고비를 넘겼다. 작은 바위들이 즐비한 너덜바윗길에서였다. 이런 곳에서는 아이젠을 착용하고 걸어도 발을 헛딛거나 바위에 걸리고, 미끄러질 염려가 많은 곳이었다.

 

“어이쿠! 힘들어, 올라갈 때 우리가 이 길로 간 게 맞아?”

내려오는 것이 너무 힘들어서 올라갈 때와 전혀 다른 길처럼 느껴지는 모양이었다. 평소 같으면 내려가는 길이어서 한결 힘이 들지 않았을 터인데 미끄럽고 위험한 길을 잔뜩 긴장하여 걸어서인지 모두들 땀을 흘리고 있었다.

 


 


그렇게 미끄러운 빙판 길을 내려오자 이번에는 올라갈 때 시원하다고 느꼈던 능선길이 나타났다. 그런데 이 능선길이 이번에는 완전히 질퍽거리고 진흙이 신발에 달라붙는 진창길이 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어이쿠! 이거 신발이 너무 무거워 걷기가 힘들구먼.”

정말 신발이 무거웠다. 진흙이 신발에 잔뜩 달라붙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진창길이 경사가 심한 곳에서는 쭉쭉 미끄러지기까지 하는 것이 아닌가. 그야말로 난감한 길이었다.

 

겨울 산길에서 방심은 금물

 

“어! 어! 어!"

 

철퍼덕!

그때였다. 우리 일행들을 뒤따라 내려와 기세 좋게 지나쳐 내려가던 다른 산악회 멤버 한 사람이 진흙바닥에 미끄러지면서 넘어진 것이다. 그는 손바닥은 물론 엉덩이와 바지가 온통 흙범벅이 되어 버렸다.

 

일행들은 그의 흙 범벅이 된 모습을 보며 웃음보가 터지려 했지만 차마 웃을 수가 없었다. 그는 쑥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더욱 재빨리 도망치듯 내려갔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돌멩이 같은 것이 없어서 다치지 않은 것이었다.

 

“뭐야? 이건 산이 완전히 두 얼굴을 가지고 있잖아? 위쪽은 빙판, 중간지대는 진흙판.”
“정말 그러네, 아래쪽 골짜기는 안개 낀 봄날, 꼭대기는 눈 덮인 겨울철.”

모두들 정말 그렇다고 맞장구를 친다. 일행들은 더욱 조심하여 능선지대를 벗어났다. 골짜기로 내려서자 길도 평탄하여 모두들 안심하며 느긋하게 걷는다.

 

“어! 어! 어!"

 

우당탕!

그렇게 방심한 것이 화근이었다. 개울물이 졸졸 흐르는 것을 발견하고 그쪽으로 내려가던 두 명의 일행이 앞뒤에서 거의 동시에 미끄러져 넘어진 것이다.

 

“괜찮아? 어디 다친 곳은 없고?”

엉거주춤 일어서는 그들을 보며 내가 물었다. 그러나 다행히 진흙탕이나 돌밭이 아니어서 다치거나 흙투성이가 되지는 않았다. 그래도 엉덩이 부분 옷에는 약간의 흙이 묻어 있었다.


신발과 아이젠을 씻기 위해 개울물에 손을 담갔지만 차가운 느낌이 아니다. 일행의 말처럼 산 아래 골짜기는 봄처럼 포근한 기온이었던 것이다. 넘어진 일행들은 옷에 묻은 흙까지 물로 씻어내고 다시 주차장으로 향했다.

 

상천산수유마을 주차장에 도착해보니 마을 할머니들이 작은 시장을 벌여 놓았다. 관광버스가 두 대나 주차해 있었기 때문이다. 짙은 안개가 뒤덮인 악조건 속에서도 이날 금수산을 찾은 사람들은 우리 일행을 포함하여 백여 명이나 되었던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유포터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이승철#금수산#상천마을#미끄럼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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