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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아들의 병실 침대 사이에서 웃음폭탄을 터뜨리는 엄미자 씨는 목사인 내가 온 것이 반가워 마음이 많이 들떠있다. 오래간만에 자신의 속 이야기를 시원하게 한 덕분이겠다.
두 아들의 병실 침대 사이에서 웃음폭탄을 터뜨리는 엄미자 씨는 목사인 내가 온 것이 반가워 마음이 많이 들떠있다. 오래간만에 자신의 속 이야기를 시원하게 한 덕분이겠다. ⓒ 송상호

긴 병에 효자 없고 장사 없다고 했다. 하지만 엄마는 확실히 달랐다. 장애아들을 10년씩이나 간호를 하며 돌보고 있지만, 엄마의 에너지는 아직도 넘쳐서 더 못주어 안타깝다. 그것도 한 명도 아닌 두 명의 아들 형제인데도 말이다. 
 

연말이라고 사람들은 마음이 들뜨겠지만, 엄미자(안성 일죽면 장암리)씨는 그럴 여유가 별로 없다. 근육병을 앓고 있는 아들 형제 모두 지금 안성성모병원에 입원해 있기 때문이다. 두 형제의 병간호는 고스란히 엄마의 몫이다. 사실 병원에 있으나 집에 있으나 엄마가 병간호하는 것은 달라질 게 없지만, 병원에서의 생활은 잠자리와 생활이 불편할 뿐이다. 그래서 집에 가고 싶은 것은 엄마나 장애 형제나 똑같은 바람이다.

 

  그렇다고 집에 가면 할 일이 없는 게 아니다. 엄미자씨는 조카 3형제를 홀몸으로 거두고 있기 때문이다. 집에서는 조카(청소년들)들이 큰 엄마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고, 병원에서는 두 아들이 엄마의 손길을 받고 있는 셈이다.

 

병원에서는 두 아들 간호하고, 집에서는 조카 3형제 돌봐 

 

엄미자씨는 얼마 전에 천안 단대병원에서 퇴원할 무렵 형인 '윤채'가 우스운 소리를 했다며 말한다.

 

“목사님, 우스운 이야기 해드릴까요.”
“뭔데요?”
“우리 큰 아이가 단대병원에서 퇴원하려고 링거를 뽑자마자 하는 말이 ‘엄마, 쓴물 단물 다 빼먹었네’라고 하더라고요. 그 말을 듣고 주변에 있던 환자와 가족들도 배꼽을 잡고 웃었답니다.”

 

이 말을 들은 우리는 병실에서 또 한참을 배꼽을 잡고 웃었다. 그 옆에서 당사자인 큰 아들 윤채가 쑥스러운지 팔로 얼굴을 가리고 미소를 짓고 있다. 엄미자씨는 누구보다도 신이 났는지 고개를 뒤로 젖히고 한참을 웃는다.

 

“윤채야, 이렇게 사는 거 후회스럽지 않아?”
“아뇨. 후회스럽지 않아요. 제 삶인 걸요.”
“오호. 그래. 지금 행복해?”
“사실 요즘 밤에 걸어 다니는 아름다운 꿈을 자주 꾸어요. 조금 더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윤채 윤채는 이제 20세 청년이다. 윤채에게 있어서 손거울은 세상을 보는 창인 만큼 필수품이다. 손에 힘이 없어 손거울을 떨어뜨려 깨먹는 바람에 지금 이 거울이 6번 째 거울이란다.
윤채윤채는 이제 20세 청년이다. 윤채에게 있어서 손거울은 세상을 보는 창인 만큼 필수품이다. 손에 힘이 없어 손거울을 떨어뜨려 깨먹는 바람에 지금 이 거울이 6번 째 거울이란다. ⓒ 송상호

윤채는 나이 10세 때부터 다리가 아프기 시작해서 지금은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는 조금도 움직이지 못하는 20세 청년이 되었다. 그렇게 몸이 불편하지만 가족이 함께 살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행복을 말할 수 있는 여유가 있다.

 

“목사님, 우리 막내는 집에 가면 컴퓨터도 하고 만화도 보고 싶어 안달이에요.”
“아하! 그래요. 어쩌면 둘이 다르네요.”
“맞아요. 맏아들은 맏아들답고 막내는 막내짓을 한다니까요. 호호호호”

 

자신의 이야기를 하니 귀와 눈이 온통 엄마의 입에 쏠린 둘째 아들 완채(18세)는 형과 달리 대놓고 웃는다. 몸만 말을 잘 들었다면 누구보다도 활달하고 까불거리는 성격이라는 게 단박에 표가 난다. 완채는 근육병 초기(초등 1학년~ 6학년)에는 여전히 막내답게 까불거렸지만, 몸이 점차 사그라들고 마비 증세가 심해지자 그나마 아주 차분해졌단다. 

 

거울 통해 세상과 만나는 두 아들 

 

안성성모병원 병실에서 이어지는 엄마와의 대화를 두 형제는 거울을 통해 온 신경을 몰아 경청을 한다. 혹여 자신의 이야기를 하지 않나 하는 기대감 때문이다. 몸을 제 힘으로 움직이지 못하기에 형제는 손거울이 필수품이 되었다. 손거울을 통해야 반대편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몸을 스스로 움직여 반대편을 보기가 힘들다. 그러기에 병원에 누워 있어도 손거울을 통해 누가 오는지를 늘 보고 있는 것이다. 그야말로 두 형제는 조그마한 그들만의 거울로 세상을 본다.

 

 사실 그 거울조차도 팔에 힘이 없어 바닥에 떨어뜨려 몇 번을 깨먹은 탓에 이번 손거울이 6번째란다. 이제는 그 손거울이 바닥에 떨어지지 않도록 손거울을 침대에다 아예 묶어 놓았다. 살아가는 지혜는 여기에서도 발휘가 된 셈이다. 그 후로 거울이 바닥에 떨어지는 일은 없었다니 말이다.

 

 “어머니, 소원이 뭐예요?”라는 물음에 당연히 아들들이 걸어 다니는 거라고 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다. 아들들이 걸어 다녔으면 하는 소원이 있긴 했지만 아이들의 병이 불치병이라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엄마기 때문이다.

 
완채 완채는 한 눈에 봐도 개구쟁이 같다. 막내답게 활달하다. 빨리 퇴원하면 집에가서 컴퓨터를 하는 게 소원이다.
완채완채는 한 눈에 봐도 개구쟁이 같다. 막내답게 활달하다. 빨리 퇴원하면 집에가서 컴퓨터를 하는 게 소원이다. ⓒ 송상호

 “사실 제 소원은 지금은 당장 아이들 몸이 호전되어 집에 가는 것이죠. 호호호호. 하지만 아이들에게 남은 날이 별로 남지 않았으니 제가 자유의 몸이 되면 식당을 경영해서 돈을 많이 벌어 주위 사람들에게 나누고 살고 싶습니다. 지금 저와 제 아들들이 살고 있는 것은 주변의 도움 덕이라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으니까요.”

 

오래간만에 속에 있는 이야기를 속 시원하게 털어 놓으며 엄마는 기분이 살짝 들떠 있다. 아들들도 연신 거울로 쳐다보는 일이 많아지고 있다. 그들과  나와의 흐뭇한 대화로 인해 병실에는 이미 행복 바이러스가 퍼진 지 오래다.

덧붙이는 글 | * 엄미자 씨는 4년 전 남편을 여의고 혼자서 조카 3명과 장애 형제 2명을 거두고 있다. 지금은 큰 아들(근육병) 윤채가 천안단대병원에서 퇴원한 후 작은아들(근육병)과 함께 3명이 안성성모병원 705호실에서 합숙(?)을 하고 있다. 12월 20일 경에 상태가 호전이 되면 집으로 갈 예정이다. 혹시 병원비라도 도움을 주실 분은 엄미자 씨에게 연락을 하기 바란다. 
연락처 : 010-6307-7842, 후원계좌 : 237020-56-023288(농협, 예금주 : 엄미자)

* 장애 형제 가정을 섬기고 있는 ‘더아모(더불어 사는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가는 모임)의 집은 경기 안성 금광면 장죽리 시골 마을에 자리 잡고 있다. 홈페이지는http://cafe.daum.net/duamo 이며, 본인은 이곳의 목사이다. 


#더아모의집 #송상호목사#장애 형제 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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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서 목사질 하다가 재미없어 교회를 접고, 이젠 세상과 우주를 상대로 목회하는 목사로 산다. 안성 더아모의집 목사인 나는 삶과 책을 통해 목회를 한다. 그동안 지은 책으로는 [문명패러독스],[모든 종교는 구라다], [학교시대는 끝났다],[우리아이절대교회보내지마라],[예수의 콤플렉스],[욕도 못하는 세상 무슨 재민겨],[자녀독립만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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