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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8일 민족문학작가회의가 ‘민족’을 떼어내고 새로운 이름을 붙이는 것을 주요 안건으로 삼고 총회를 연다. 이에 맞춰 오마이뉴스에 다음처럼 시를 보낸다. -기자 주-  
     

  민족문학에, 지금 누가 조종(弔鐘) 울리는가 
   

   지금은 바람이 불고 눈이 내리는데, 젊은 시인이여
    컵라면을 들이킨 노란 뱃속에 쏴한 독소주를 부어넣고
    국적불명의 가든호텔 독방에서 국적불명의 시를 토해내는,
    솔직히 말해서 국제주의자도 아니고 패배주의의 옹호자라고
    밖에 말할 수 없는, 키만 껑충하게 커버린 젊다는 시인이여
   
    남과 북이 갈라진 이 땅 가갸거겨 모국어의 한반도에서
    민족혼을 더욱 아름답게 채굴하여 되살려야 할 한반도에서
    어머니의 치맛자락을 더욱 붙들고 울어야 할 한반도에서
    아버지의 팔뚝에 더욱 힘을 불어 넣어야 할 한반도에서
    할아버지와 할머니 노래소리도 신명 더해 들어야 하거늘
    
    지금 밥좀 쬐끔 먹고 산다고 ‘민족’을 뒤로 젖혀버리고
    헤지펀드처럼 민족문학작가회의의 안팎을 휘저어버리는
    참으로 수상하고 수상한 바람이 부는 것을 좀 봐라
    참으로 철없고 철없게 바람몰이로 가는 것을 보아라

   

    지금 누가, 민족문학에 조종(弔鐘) 울리려는가
    지금 누가, 민족문학의 배꼽을 없애버리려는가
    지금 누가, 민족문학의 혀를 꼬불려버리려는가
    지금 누가, 민족문학의 미학에 먹칠을 하려는가
    지금 누가, 민족문학을 무덤 속으로 넣으려 하는가
   
    그대가 뚜드려 박는 철근의 검은 뿌리만큼 그대의 슬픔도
    이 땅에 쿵쿵 박히면서, 우리들 두 귀를 막무가내 찢는데
    그래, 우리의 불알이며 자궁인 오매불망의 ‘민족’을 버리고
    모국어를 버리고, 세계주의라는 잡탕미학 속으로 밀어넣는가
   
     미국 한번 가서 미국 이야기 어쩌구 저쩌구 소설로 꾸며 쓰고
     베트남 두어 번 가서 베트남 이야기로 시와 소설로 비틀어 쓰고
     러시아 한번 다녀와서 우리 사는 나라 딴나라처럼 뒤바꿔버리고
     레닌의 코민테른을, 막스 웨버의 자본주의를 번역으로 읽으면서
    
     헤지펀드가 조금씩 던져주는 달러 몇 푼으로 배를 채운 다음
     “사는 것이 이것이다! 삶의 양식, 문학의 양식이 이것이다!”라고
     그야말로 세계주의적으로 외치는, 그리하여 한국문학을 비하시키는
     내가 볼 때 그들은 늙기도 전에 너무 늙었다 젊은 늙은이들이다
     그러면서 자신을 ‘젊은 작가’라고 말하는 허리 구부러진 시인이여
    지금은 바람이 불고 눈이 내리는데, 그래도 젊다는 시인이여
   

    컵라면을 들이킨 노란 뱃속에 쏴한 쏴한 독소주를 부어넣고
    국적불명의 가든호텔 독방에서 국적불명의 시를 토해내는,
    솔직히 말해서 국제주의자도 아니고 패배주의의 옹호자라고
    밖에 말할 수 없는, 키만 껑충하게 커버린 젊다는 시인이여
   
    어찌하여 지금 한국문학을, 한반도문학을 뒤집으려고 하는가 
    까레이스끼들도 쫓겨나는 중앙아시아 광야로 떠나가라는 것인가
    맨해튼, 무너진 세계무역센터의 먼지 속으로 달려들어가라는 것인가
    톨스토이도 경고한 매춘의 문학 속으로 들어가 잡놈이 되라는 것인가
    에밀 졸라의 주막집에 처박혀 파리의 밤거리만을 노래하라는 것인가
    시베리아 툰드라 지대부터 쓰러지기 시작한 자작나무 대열처럼 그렇게
    쓰러지거나, 빙벽이 산산이 부서져 녹아 내려간 북태평양처럼
    포유동물 고래떼도 없이 물거품으로만 떠돌아다니라는 말인가
   
    할아버지들이 즐겨부르는 노래소리와 할머니들이 손자 업고 부르는
    물레야 물레야 자장가 소리도 죄다 버리고 어디로 눈 돌리라는가
    보아라, 우리들 산하에 지천으로 피고 지는 꽃들이 보이지 않는가
    들어라, 우리들 산하에 물소리로 흐르는 넋들의 에너지를 들어라
    넋들의 넋들의 희로애락 애오욕의 그 절대적 옹기그릇을 보아라
    옹기그릇 흙그릇 속에 담겨진 언어의 향기도 드높고 드높거늘
 
     민족문학을 소수자의 문학으로 내팽개치며, 세계문학으로,
    우리것도 아닌 국적불명의 세계문학으로, 국제주의의 문학으로, 
    가벼움만의 문학으로, 대지의 문학이 아닌 오피스걸문학만으로,
    시대착오적 무슨 거대담론이냐며 닙뽕 엔카식의 섹스문학으로,
    한국문학을 창녀문학으로, 좌우지간 팔리고 팔리는 문학으로,
    병든 젊은이들을 더욱 병들게 하는 ‘팔리고 팔리는 문학’으로,
    쓰레기통 채팅언어의 문학으로 몰고가자는 젊다는 시인이여
    너무 일찍 늙어버린 그래도 스스로 젊다고 말하는 시인이여
   
    지금 누가, 민족문학에 조종(弔鐘) 울리려는가
    지금 누가, 민족문학의 배꼽을 없애버리려는가
    지금 누가, 민족문학의 혀를 꼬불려버리려는가
    지금 누가, 민족문학의 미학에 먹칠을 하려는가
    지금 누가, 민족문학을 무덤 속으로 넣으려 하는가

   

    이스라엘 시인들은 히브리어의 하늘과 땅으로 바이블을 만들었다
    인도의 시인들은 인도의 흙과 바람소리와 눈물로 불경을 만들었다
    마호메트의 제자들은 이슬람의 칼과 사막의 영혼으로 코란을 만들었다
    호머는 지중해의 바다와 희랍어로 일리어드와 오디세이를 만들었다
    세익스피어는 바이킹의 피와 잉글랜드언어로 로미오와 줄리엣을 만들었다
    괴테는 30년전쟁에서 쓰러진 1천만명 사람들의 죽음의 피를 씻어내기 위해

    파우스트를 만들었다 그 파우스트를 통해 이른바 독일정신을 창조했다
    휘트먼은 아메리카 노동자들의 땀과 망치소리로 풀잎, 풀잎을 노래했다
    랭스턴 휴즈는 아프리카인들의 BlackSoul로 할렘르네상스를 만들었다
    우리나라 만해 한용운은 백두산에서 태어난 ‘님’으로 님을 노래했다
    아아 아시아·아프리카·유럽·남북아메리카의 시인 작가들은
    그들 원주민의, 민족의, 공동체의, 민족언어, 민족혼의 지킴이로서 
    거듭나면서 비로서 詩人(모든 작가를 총칭)으로 태어난 것이다
   
   그러면 그렇다 아니 그렇지 않아도 그렇다는 것이다
    ‘민족’이야말로 문학의 최대의 양식(樣式)이며 ‘몸’이다
    민족문학이야말로 앞으로 계속 그대가 디룽디룽 거려야 할
    그대의 불알이다 그리고 그대가 다시 태어날 언어의 자궁이다
    아 그리고 그대가 끝없이 붙들고 울어야 할 정든 산 언덕 너머
    어머니의 치맛자락이다 그 펄럭임이며 그 눈부심이다! 눈부심이다!!


태그:#민족문학작가회의, #한국작가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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