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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대 대통령선거의 공식 선거일정이 시작된 27일 오후 서울 종로 보신각을 찾은 문국현 창조한국당 대선후보가 거리유세를 벌인 뒤 시민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17대 대통령선거의 공식 선거일정이 시작된 27일 오후 서울 종로 보신각을 찾은 문국현 창조한국당 대선후보가 거리유세를 벌인 뒤 시민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 남소연

 

"그래도 문국현은 믿었는데···. 정말 믿을 사람 하나도 없구만."

 

문국현 창조한국당 대선 후보 두 딸 재산에 관한 정보보고를 본 뒤 한 선배가 전화를 걸어와 말했다. 선배는 문 후보에게 비판적인 사람이다. 언젠가 선배는 문 후보 '마크맨'인 내게 말했다. 능력 여부를 떠나 정치입문 4개월 된 사람이 대통령이 되면 우리나라 정당정치는 후퇴할 수밖에 없다고.

 

하지만 선배도 문 후보의 도덕성과 깨끗함은 크게 신뢰한 듯했다. 전화기 너머에서 선배는 혼잣말로 "문 후보는 그런 일 없을 거라 봤는데"라고 읊조렸다. 낮은 음성의 목소리에서 실망감이 느껴졌다.

 

대선 선거운동이 시작된 첫날, 문 후보에게는 최악의 일이 터졌다. 두 딸의 억대 재산 문제가 드러난 것이다. 2006년 12월 기준으로 문 후보의 두 딸은 총 5억8000만원의 주식과 통장예금을 소유하고 있었다. 이런 사실은 대선후보 재산신고를 통해 드러났다.

 

문 후보 쪽의 장유식 대변인은 "문 후보의 수입을 관리하는 부인이 펀드매니저의 조언에 따라 포트폴리오(재산 분할관리) 차원에서 자신과 두 딸 명의로 각각 3분의 1씩 분산 관리했던 것으로, 일반적인 재산관리 형태일 뿐"이라며 "증여세 탈루나 금융실명제 위반, 금융소득종합과세 회피 등에는 해당되지 않는다"고 해명했다.

 

"선택할 수 있는 가난과, 피할 수 없는 가난은 다르다"

 

문 후보의 두 딸은 기업 CEO 아버지를 둔 '신데렐라'가 아닌, 비정규직 노동자여서 많은 눈길을 끌었다. 문 후보도 평소 "내 딸도 월급 120만원 받는 비정규직 노동자"라며 본인의 비정규직 정책의 진정성을 주장했다.

 

물론 문 후보 쪽의 주장이 전혀 타당성이 없는 건 아니다. 말마따나 재테크 일환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주장을 긍정하기에는 뒷맛이 개운치 않다. 그동안 문 후보가 '비정규직 두 딸'을 자신의 선거운동에 알게 모르게 활용했기 때문이다.

 

 17대 대통령선거의 공식 선거일정이 시작된 27일 오후 서울 종로 보신각을 찾은 문국현 창조한국당 대선후보가 거리유세를 벌이고 있다.
17대 대통령선거의 공식 선거일정이 시작된 27일 오후 서울 종로 보신각을 찾은 문국현 창조한국당 대선후보가 거리유세를 벌이고 있다. ⓒ 남소연

물론 그의 두 딸은 비정규직 경력을 갖고 있다. 그러나 억대의 재산을 갖고 있는 비정규직을, 우리 사회 850만 명에 이르는 비정규직 노동자와 등치시킬 수 없다. 신념과 정치적 이유로 가난을 선택한 사람과, 피할 수 없는 가난을 짊어지고 살아가는 사람이 생각하는 '가난'의 의미가 다르듯 말이다.

 

문 후보는 이번 사건에 따른 비판이 억울할 수 있다. 이번 사건이 다른 후보에게 벌어졌다면 '뉴스'도 안됐을 수도 있다. 그러나 평소 도덕성과 깨끗한 이미지로 대중에게 어필했던 문 후보에게 이번 일은 결코 작은 일이 아니다. 게다가 증여세 탈루 의혹도 충분이 제기할 수 있는 사안이다.

 

꼬투리를 잡은 정치권은 거세게 공격했다. 단일화 대상으로 적극적인 구애를 펼쳤던 대통합민주신당은 "문 후보 부부가 재산을 두 딸의 이름으로 위장 분산시켜 놓은 것"이라며 "타인의 이름으로 주식과 예금을 예치시켜 놓은 것은 금융실명제법 위반"이라고 주장했다.

 

한나라당도 "137억원대의 재산을 보유하고 있는 문 후보가 그동안 자신의 딸들이 한 달에 120만원도 못 받은 비정규직이라고 홍보한 것은 위선이었다"며 "문 후보는 결국 대통령이 되기 위해 자신의 딸들까지 거짓으로 이용하고 다닌 셈"이라고 비판했다.

 

문 캠프 '또' 두 딸 거론...아직 상황 파악 못하나

 

그러나 문 후보 쪽은 이번 사건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듯했다. 문 후보 쪽의 한 핵심인사는 "문 후보의 깨끗한 이미지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이지, 큰일은 아니다"고 말했다.

 

그래서였을까? 정범구 선대본부장은 27일 저녁 서울 종로 유세에서도 '또' 문 후보의 두 딸 이야기를 거론했다. 정 선대본부장은 "문 후보의 두 딸은 비정규직인데, 아버지가 그들의 삶에 개입하지 않았다"며 "문 후보는 자기 자식, 자기 식구만을 위해서 살지 않았다"고 외쳤다.

 

게다가 문 후보 캠프는 이번 사건 해명 보도자료를 내면서 석연치 않은 일를 저질렀다. 문제가 된 두 딸의 재산을 "대선 출마선언 직전 문 후보에게 이전했다"고 쓰면서 그 시점을 2007년 9월로 적었다. 문 후보가 대선 출마를 선언한 건 2007년 8월이다. 문 후보 캠프는 뒤늦게 "대선 출마선언 직후"라고 수정했다.

 

문 후보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부정과 부패는 약자와 여성과 일자리의 적"이라고 비판한다. 이번 사건은 문 후보의 주장대로 부정과 부패는 아닐 수 있다. 그러나 정도를 외치는 문 후보 본인에게는 '반칙'일 수 있다. 

 

그리고 이 반칙에 가장 크게 상처받는 사람이 있다면, CEO 아버지도, 억대의 주식과 통장 잔액도 없는 850만 비정규직 노동자들일 것이다. 문 후보의 진심어린 사과는 그래서 필요하다.


#문국현#정범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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