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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 북부 지역이 심상찮다. 지난 5월 아르빌에서 대규모 차량폭탄테러가 벌어진 바 있으며 근래에는 터키 군대가 이라크 국경을 넘어 쿠르드반군 거점을 습격했다는 보도와 무력충돌 확대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간헐적으로 들린다. 대체 쿠르드족을 둘러싸고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으며, 또 국경으로부터 100~200km 떨어진 곳에 주둔하는 자이툰부대는 어떤 환경에 놓여 있는 것일까.

 

먼저 쿠르드족과 관련된 사항들을 간략히 살펴보자. 약 3천만 명으로 추정되는 쿠르드족은 1차 대전 후 오스만제국 멸망 때 건국에 실패한 이후로 이라크, 터키, 이란, 시리아 등에 흩어져 살아가고 있다. 이들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독립국가 건설 운동을 벌였고 대규모 인명피해를 겪으면서도 쉬지 않고 무력투쟁을 전개해 왔다.

 

특히 쿠르드노동자당(PKK) 조직이 정비된 1984년을 계기로 독립을 위한 쿠르드족의 무력투쟁은 새 궤도에 올라섰다. PKK는 이라크와 터키 국경의 보단바디난 지방에 독립국가를 세우기로 하고 아나톨리아의 터키군 기지를 공격하는 등 게릴라식 투쟁을 벌였고, 1992년에는 터키 정부가 이라크 영토 내로 병력 2만 명을 보내 PKK 섬멸전을 벌이기도 했다. 그 후 PKK는 이라크와 이란으로 거점을 옮겼다. 현재는 ‘쿠르드족 인민회의’로 명칭을 변경하여 정치세력화까지 모색하는 중이다.

 

이라크 내의 쿠르드족은 2003년 이라크전이 발발하자 이를 독립국가 설립의 기회로 보고 침략국인 미국에 적극 협력해 나섰다. 이라크 북부 지역이 전쟁의 참화를 거의 입지 않았던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결과적으로 쿠르드족은 일정한 자치권을 획득하는 등 여러 가지 면에서 전쟁의 수혜세력이 되었고, 자연히 이라크 내 수니파 및 시아파와는 적대적인 사이가 되었다. 미국이 수니파 저항세력을 진압하기 위해 주로 쿠르드족으로 구성된 이라크 군 병력을 이용하는 식으로 종파, 종족 갈등을 부추겼기 때문에 이러한 적개심은 더욱 커졌다.

 

지난 9월, 미국 메릴랜드대학에서 수행한 조사 결과 쿠르드족은 이라크 현실을 인식하는 데서도 아랍인과 큰 차이가 있었다. 시아파의 74%, 수니파의 91%가 점령군이 ‘1년 안에 철군해야 한다’고 답한 반면 쿠르드족 응답자는 31%가 ‘철군 시한을 정하지 않고 장기 주둔해야 한다’고 답했던 것이다. 다국적군을 ‘안정화군’으로 본다는 답변도 시아파와 수니파에서 각각 17%와 2%에 불과했는데 쿠르드족에서는 무려 56%였다. 쿠르드족이 이라크에서 ‘나라 안의 나라’가 되어 가고 있는 현실의 일단이다.

 

쿠르드족을 둘러싼 이라크 내부의 분열과 갈등은 새로운 분쟁으로 치달을 가능성도 내포하고 있다. 우선 비교적 잠잠했던 이라크 북부에서 공격과 테러가 늘고 있다. 올해 5월 아르빌에서는 최초로 대규모 차량폭탄테러가 발생해 15명이 사망, 100여명이 부상당하는 참사가 일어났으며, 6월에는 바그다드와 쿠르드 자치지역 주요 도시를 잇는 사트 다리가 폭탄공격으로 파괴되었다. 이라크 북부 최대 유전도시인 키르쿠크에서도 수니파와 쿠르드족의 갈등이 첨예해지고 있다. 이라크 신헌법에 따르면 올해 말 주민투표로 키르쿠크와 모술 등을 쿠르드자치지역에 편입시킬지 여부를 결정하게 돼 있기 때문이다.

 

석유는 또 하나의 갈등 요소다. 미국이 초안을 잡고 이라크 중앙정부가 추진하는 석유법은 전 국토에서 생산되는 원유 수입을 인구비례에 따라 18개주에 골고루 배분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나 쿠르드족은 원유 자원의 생산과 판매 권한을 자체적으로 보유하기를 원한다.

 

쿠르드자치정부가 이미 미국 석유회사인 헌트오일과 석유개발 계약을 체결해 놓았기 때문에 중앙정부와도 마찰이 벌어졌다. 한국 정부가 파병을 연장하겠다며 슬쩍슬쩍 언급하는 ‘석유 개발권’이란 것은 바로 이런 분쟁의 씨앗에 다름아니다. 덧붙이자면 한나라당 대선후보인 이명박이 파병연장 찬성을 호소하며 자이툰부대 주둔지는 ‘기름밭’이라고 했던 발언은 얕은 가치관은 물론 무모함과 무지를 드러낸 말이라 할 수 있다.

 

어쨌든 이라크 북부에 거주하는 쿠르드족은 당장 독립할 여건은 아닐지라도 사실상 독립국의 길로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다. 2006년에는 쿠르드자치정부(KRG)의 마수드 바르자니 대통령이 쿠르드 지역에서 이라크 국기 게양을 금지하고 대신 쿠르드 깃발을 달도록 명령하는 사건이 있었다.

 

이라크 정부가 “이라크 영토 내에서 이라크를 대표하는 깃발은 하나뿐”이라며 강력히 반발했으나 쿠르드족 지도자들은 오히려 분리독립의 필요성을 재차 강조했다. 최근 미군이 세운 이라크 중앙 정부가 바그다드도 완전히 장악하지 못할 정도로 허약하다는 사실이 만천하에 드러나자 쿠르드족은 독립을 향한 열망을 더욱 불태우고 있다.

 

터키가 심각하게 우려하는 것은 바로 그러한 쿠르드족의 염원이 실현되어 이라크 내 쿠르드족이 ‘사실상 독립국’의 권한을 얻는 상황이다. 1500만 명에 달하는 터키 내의 쿠르드족이 자극을 받아 독립운동에 박차를 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터키 국민의 다수가 이라크 북부지역을 침공하여 전면적인 쿠르드반군 소탕전을 펴는 것을 지지하므로 터키 정부로서는 가만히 있기도 어렵다. 지난 5월 22일 터키 수도 앙카라에서 일어난 자살폭탄테러의 주범으로도 쿠르드노동자당이 거론되는 실정이다.

 

터키는 쿠르드자치정부가 쿠르드노동자당을 지원한다고 비난하며 반군을 소탕하여 신병을 넘기기를 요구했다. 그러나 이라크 북부 지역을 관할하는 쿠르드자치정부 측에서도 강경한 입장을 고수하며 터키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2007년 들어서는 양측이 본격적인 무력충돌을 일으키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한층 커졌다.

 

지난 7월에는 이라크 내 미군 16만 명과 맞먹는 ‘14만 터키군 접경지대 배치설’이 돌고, 터키군이 쿠르드 자치구역을 집중 폭격하는 등 상황이 더욱 긴박해졌다. 10월 17일에는 터키 의회가 PKK 소탕을 위한 월경(越境) 작전을 승인했다. 그리고 불과 며칠 뒤부터 터키-이라크 국경지대에서 쿠르드족의 습격과 터키군의 반격이 이어졌다.

 

쿠르드자치정부와 터키가 대치하고 충돌을 일으키자 난처해진 것은 미국이었다. 부시 행정부의 입장에서 볼 때 이라크가 현재보다 더 불안해지는 상황은 악몽과도 같기 때문에 쿠르드족의 협조를 반드시 유지해야 한다.

 

한편으로 터키는 중동 유일의 나토 회원국으로 관계를 악화시켜서는 안 될 중요한 우방이다. 현재도 미국은 이라크전 장비와 물자 수송 등에서 터키의 도움을 상당히 많이 얻고 있다. 어쨌든 터키와 쿠르드족의 분쟁 가능성이 높아지자 미국은 부랴부랴 수습에 나섰다. 미국-이라크-터키 3자위원회를 만들어 이면에서 협상을 벌이고 터키가 이라크 국경을 넘어 전면전을 벌이지 못하도록 터키를 달래는 데 힘을 쏟았다. 이러한 노력이 어떤 효과를 가져왔는지는 명확하지 않지만 미국이 ‘진퇴양난’에 빠진 것만은 확실하다.

 

훨씬 복잡한 의혹도 제기된다. 터키는 쿠르드반군이 신형 미제 무기를 사용하고 있다며 미국이 이면에서 쿠르드 반군을 지원한다고 의심하고 있다. 실제로 미국과 이스라엘은 쿠르드족을 지렛대로 삼아 중동 지형을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재편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미국이 이란 정권을 흔들기 위해 이란 내의 대표적인 소수민족인 쿠르드족의 분리독립 열망을 부추긴다는 지적이 있다. 또 2006년 9월 영국 BBC 방송의 보도로 이스라엘 전직 특수부대원들이 이라크 북부에서 쿠르드민병대 장비와 훈련을 지원한다는 사실이 폭로되기도 했다. 아랍과 무슬림국가들의 적으로 간주되는 이스라엘이 쿠르드족을 지원한다는 사실은 그 자체만으로도 중동에 혼란과 반발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요약하면 이라크 북부의 쿠르드 자치지역은 외관상 평온할지는 모르나 내외적으로 갈등요소가 커져 가는 불안한 곳이다. 쿠르드족의 오랜 독립 염원은 쉽게 꺾이지 않을 것이며, 그것이 침략국인 미국의 이해관계와 맞아떨어지는 바람에 결국 쿠르드족은 이라크 내의 저항세력과 갈등하고 충돌하기에 이르렀다. 게다가 이스라엘까지 끼어들어 중동 문제에 쿠르드족을 이용하려 하고, 터키와 이란은 이에 격렬하게 반발한다. 어느 모로 보나 여간 복잡한 게 아니다. 한국이 개입할 문제가 아님은 물론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자이툰부대가 쿠르드 자치지역에 주둔한다는 사실이 이미 일정 정도의 개입이다. 더구나 지난 10월 25일 국감에서 확인된 대로 자이툰부대는 쿠르드 민병대 교육과 훈련을 담당하고 있다(10월 26일 <연합뉴스>, 주터키 한국대사, “자이툰부대, 쿠르드 민병대 훈련”). 군사훈련을 지원하는 것이 분쟁에 끼어드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터키와 쿠르드족 간에 전투가 확대되기라도 하면 자이툰부대가 쿠르드반군의 ‘정치적 볼모’ 신세가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10월 24일자 <서울신문>은 터키가 한국 무기산업의 최대 수출시장이라는 사실을 지적하며 보다 구체적으로 문제를 제기했다. 보도 내용에 따르면 한국은 최근에도 터키에 훈련기 KT-1과 차기전차 ‘흑표’ 5억달러어치를 수출하기로 합의했다. 이대로라면 한국은 분쟁의 한쪽 당사자인 쿠르드족 지역에는 군대를 주둔시키고 군사훈련을 지원하며, 다른 쪽 당사자인 터키에는 무기를 팔아 돈을 챙기는 입장이 되는 것이다(10월 24일 <서울신문>, [자이툰 파병 연장 논란] 정부 ‘쿠르드 딜레마’).

 

이렇게 되면 도덕적인 비난을 받는 것은 물론이고 기존의 외교 관계나 아랍 국가들과의 경제 거래에도 지장이 생길 수 있다. 지금도 터키 정부는 한국군이 쿠르드반군에게 물자를 지원한다거나 한국산 물자가 쿠르드반군에게로 흘러들어간다는 우려를 표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대규모 분쟁 가능성이 낮다면서 이러한 문제를 모두 무시하고 다시금 파병 연장을 꾀하고 있다. 심지어는 정부 관계자가 “쿠르드지역 치안 안정화에 기여하고 있는 자이툰부대가 양측의 ‘완충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라고 강변하기도 했다(10월 26일 <연합뉴스>, “터키-쿠르드 갈등, 자이툰부대 영향없어”).

 

 참으로 어이없는 말이지만 반박할 필요조차 느껴지지 않는다. 미국이 벌인 침략전쟁에 파병한 것 자체가 처음부터 당치도 않은 일이었기 때문이다. 완충역할이든 볼모 신세든 간에 도대체 왜 목숨까지 내놓고 남의 분쟁에 끼어든단 말인가? 노무현 정부와 한나라당의 야합으로 국회에서 파병연장안이 4번째로 통과되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파병철회네트워크>에도 게재될 예정입니다.


#이라크#쿠르드#자이툰#한나라당#파병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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