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송창식의 동네에 '담배가게 아가씨'가 있다면 '우리 동네'에는 '붕어빵가게 총각'이 있다. 전북 전주 경기전 앞에서 붕어빵을 팔고 있는 유윤출(서서학동·29)씨. 윤출씨의 붕어빵가게에는 항상 손님이 넘친다. 낮이든 저녁이든 끊이질 않는다. 가게 바로 앞 중앙초등학교와 학원 초등학생들부터 인근 성심여중고의 학생들, 한옥마을을 거닐다 들른 연세 지긋한 어르신들까지 그의 가게는 항상 분주하다.

 

 붕어빵을 굽고 있는 윤출씨
붕어빵을 굽고 있는 윤출씨 ⓒ 선샤인뉴스


친절한 붕어빵, 손님들을 녹이다

 

윤출씨는 가게를 찾는 손님들과 잘 알고 지내는 모양이다. 학교를 마치고 지나가던 아이들에게 스스럼없이 한 마디씩 던진다.

 

“니 짝은 어딨어?” “청소시간이네. 또 땡땡이 쳤구나?” “어제 단체주문한 건 잘 먹었어?”

 

아이들은 웃으며 대답한다.

 

 “제 짝 저 버리고 도망갔어요.” “오늘 청소 안 해요.” “아, 어제 잘 먹었어요.”

 

붕어빵 가게 주인과 손님의 관계가 아니라 옆집 오빠와 동생이 이야기하는 것 같다. 그가 붕어빵을 굽고 있는 사이, 한 아이가 근처 분식집에서 닭꼬치를 사가지고 와 건넨다. 얼핏 보면 남매, 혹은 친척 사이 같아 보이지만 사실은 전혀 모르는 사이다. 장사 하면서 친해진 아이란다.

 

 “애들이 매일 와서 놀고 그래요. 학원 쉬는 시간에도 오고, 심심하면 오고해요. 같이 노니까 사람들이 가족이냐고 자꾸 물어보고 그러네요.”

 

그의 가게를 찾는 이유는 손님들마다 다르다. 연세 지긋한 어르신들은 윤출씨 칭찬에 입이 마른다.  “저 총각은 참 성실해. 부지런하고 착해.” 낮 12시에 문을 열고 밤늦게야 문을 닫는 그의 모습이 “요즘 사람 같지 않다”고 말한다. 학교가 끝나기 무섭게 매일 그의 가게를 찾는 아이들이 말한다. “붕어빵에 팥도 많고 아저씨도 친절해요. 아저씨가 너무 착해요.”

 

윤출씨는 20대 후반의 총각이지만 꼬마 손님들 앞에선 영락없는 '아저씨'다. “초등학교 학생들이 많이 오니까 '아저씨'소리 듣는 건 어쩔 수 없죠. 지금 고등학교 1학년이랑 저랑 띠동갑이에요. 그래서 애들한테 제 나이를 안 알려줘요.” 총각에게 들려오는 '아저씨' 소리가 조금 야속하게 들릴 법 한데도 윤출씨는 그저 웃는다.

 

항상 웃는 그에게도 서운한 손님은 있다. “따뜻한 거 주세요”라고 말하는 손님들이다.

 

“따뜻한 거 원하시는 건 알지만 그 말이 싫을 때가 있어요. 팥을 많이 넣어서 잘 식지도 않을 뿐더러 계속 굽고 있기 때문에 항상 따뜻하거든요. 그런데 굽자마자 나온 거 보시면서도 따뜻한 거 달라고 하시는 분들 보면 서운할 때가 있죠.”

 

축제 스태프에서 붕어빵 창업까지

 

윤출씨가 붕어빵을 굽기 시작한 건 올해 9월 12일부터다. 붕어빵 장사를 하기 위해 7년 동안 해 온 축제 관련 일도 그만뒀다. 그와 축제의 인연은 군 복무를 마치고 전역한 2000년 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전역 바로 당일, 그는 친구에게 제안을 받았다.

 

 “너 축제기획 일 해보지 않을래?”

 

윤출씨는 대학에서 보건위생학과 1학년 1학기를 다니다가 적성에 맞지 않아 중퇴했다. 전역 후에는 일을 하려고 했었단다. 그러던 와중에 친구의 제안을 받아들였고, 그렇게 축제와 관련된 일들을 시작했다.

 

 “7년 동안 15건에서 20건 정도의 축제를 치렀을 거예요. 행사진행, 무대감독, 행사기획 등 안 해본 일이 거의 없어요. 이번에도 이 일(붕어빵 장사)을 시작하기 전에 행사 같이 하자고 연락도 왔었구요.”

 

지난 7년간 풍남제, 소리축제 등 전주에서 치러지는 거의 모든 축제에 참여했다.

 

 “축제일은 정말 재밌었어요.”

 

7년이란 세월이 어떻게 흘렀는지 모를 만큼, 재밌게 일했다. 하지만 7년이 지나자 생각이 달라졌다. 더 이상 일이 만족스럽지 않았다.

 

 “축제 일이 재밌긴 한데 돈은 별로 안돼요. 그것보다 중요한건 즐겁지 않은 것이 싫었어요. 제가 다닌 곳만 그랬는지 몰라도 잘해도 혼나고 못해도 혼나요. 칭찬이 없어요. 안 즐거웠어요. 저는 즐기면서 하는 일이 좋거든요.”

 

 그래서 축제일을 그만뒀다. 그리고는 새로운 일을 고민했다.

 

  윤출씨는 항상 미소로 손님들을 맞는다
윤출씨는 항상 미소로 손님들을 맞는다 ⓒ 선샤인뉴스

“일은 항상 즐겁게 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그는 즐기면서 할 수 있는 일, 하고 싶은 일을 생각했다. 그러다 장사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어릴 절 꿈이 장사를 하는 거였어요. 어렸을 때 어머니도 이 근처(경기전)에서 장사를 하셨구요. 나중에 시작할 장사 밑천을 마련하면서 일을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될 것 같아서요.”

 

장사를 시작하기로 마음먹고 나니 어디서 무엇을 할지 고민이었다. 먼저 장소를 생각했다.

 

“기왕이면 아는 곳에서 하자고 생각해서 여기서 하기로 한 거예요. 어릴 절부터 익숙하기도 했고 제가 요 앞 전동성당에 다니기도 하구요. 자리도 좋잖아요.”

 

장소를 정하게 되자 이제 무엇을 팔지 생각했다. 자본금이 넉넉지 않은 상황이라 가게를 내기도 어려웠다. 결국 초기 자본금이 적게 들어가는 노점을 택했다. 품목은 붕어빵과 어묵.

 

 “여기가 학교 앞이잖아요. 아이들이 자주 먹을 수 있는 것이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다른 것들도 생각해봤는데 호떡은 어른들 음식이란 생각이 들더라구요. 그러다 어릴 때 제가 즐겨먹었던 붕어빵이랑 어묵이 생각났어요. 제가 어렸을 때 어묵을 엄청 좋아했거든요. 그 자리에서 30개~40개씩 먹었어요. 아무리 배가 불러도 20개는 기본으로 먹었다니까요. 그 정도로 좋아했어요.”

 

그가 어묵과 붕어빵을 택한 데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닭꼬치나 떡볶이, 뭐 다른 것들을 팔려고도 생각해봤는데요. 그건 이 근처에서 저보다 먼저 장사하시는 분들이 다 팔고 계신 거라서요. 제가 후발 주자이고, 노점이기까지 한데 지킬 건 지켜야죠.”

 

주변에서 장사하시는 분들이 팔고 계신 것은 피했다. 다른 분들의 장사에 피해를 주고 싶지 않아서였지만 결국 이게 블루오션(blue ocean)이 됐다. 29세의 젊은 총각이 여학교 앞에서 붕어빵 장사를 하려니 어려운 점도 있을 듯 했다. 여학생들이 많아 부끄럽지 않았냐고 물었다.

 

“20대 초반에는 여고생들이랑 나이차이가 별로 안 나서 그런지 말 한 마디 걸기가 어려웠어요. 그런데 축제 일 하면서 성격이 많이 변했어요. 일 하면서 사람도 많이 만나고 말을 먼저 걸어야 할 일도 생기고 하면서 좀 괜찮아지더라구요. 지금은 여학생들이랑 나이차이가 많이 나서 그런지 말 거는 게 그리 어렵지 않아요.” 

 

스물아홉, 꿈을 만들어가다

 

윤출씨는 장사를 시작한 지 2달 반만에 빠르게 자리를 잡았다. 요즘에는 그를 찾아와 붕어빵 장사를 하는 방법을 묻는 사람도 많다고. 하지만 그도 처음에는 어려움이 많았다.

 

“처음 2~3주는 어깨랑 손목이 너무 아팠어요. 그래도 2달 넘어가니깐 버틸 만하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윤출씨는 장사를 시작하기 전에 붕어빵을 구워본 경험이 없었다. 몇 년 전 친구 어머님이 하시던 붕어빵 가게에 가서 일을 도와드리며 몇 번 구워본 것이 전부였다. 일을 시작하면서 계속 굽다 보니 실력이 저절로 늘었다. 손님들도 다들 맛있다고 말한다. 붕어빵을 맛있게 굽는 비결을 물었다.

 

“특별한 재주는 없어요. 그래도 비결이라고 한다면 팥을 많이 넣고 불조절을 잘해야 되는 것 같아요. 불조절을 잘해야 타지 않으니까요.”   

 

윤출씨의 붕어빵은 가격도 저렴하다. 대부분의 붕어빵이 250원에서 300원씩 받고 있지만 그의 붕어빵은 단돈 200원이다. 3~4년 전에 팔리던 가격이다. 손님들이 대부분 학생이다보니 일부러 가격을 낮게 잡았단다.

 

“학생들이 많으니까요. 비싸게 받고 1000원에 한 개 더 주는 것보다 어차피 서비스 준다고 생각하고 싸게 팔고 있어요.”

 

주머니 사정이 가벼운 학생들에게 낮은 가격은 큰 매력이었다. 그의 가게를 찾는 손님들은 학생들이 대부분. 1000원어치보다는 200원, 400원어치, 1~2개씩 사가는 손님들이 많았다. 그의 ‘저가정책'은 판매량 증가로 이어졌다.

 

 단체주문은 두 시간 전에 미리 해야한다
단체주문은 두 시간 전에 미리 해야한다 ⓒ 선샤인뉴스

“다른 곳들은 밀가루 반죽을 하루에 보통 10kg~15kg정도 판다는 데 여기는 25kg 정도 팔아요.”

 

단체주문까지 들어올 정도다. 그의 가게 한 쪽에는 ‘단체주문은 2시간 전에 미리 말씀해 주세요'라고 씌어있다.

 

“어제는 성심여고에서 70개 단체주문이 들어왔었어요. 선생님들이 학생들 고생한다고 주문하셨더라구요.”

 

가게 앞 학교 선생님들도 윤출씨의 붕어빵 맛을 인정하는 모양이다.  손님이 많으니 쉬는 것도 쉽지 않다.

 

“낮에도 꾸준히 팔리는데다가 오후 3시가 넘으면 거의 쉬질 못해요. 어머니가 오후 5시 반쯤 나오셔서 일을 도와주세요.”

 

하루 종일 서 있어야 할 만큼 바쁘지만 퇴근시간은 일정치 않다. 고등학교 2~3학년들을 기다리기 때문이다.

 

“저녁 10시쯤 되면 고등학교 2~3학년 애들이 끝나요. 애들이 집에 가면서 (붕어빵을) 다 먹고 가야 그때 문을 닫아요.”

 

집에 가면 11시가 훌쩍 넘는다.

 

“피곤해서 제대로 쉬질 못해요. 뉴스도 제대로 못 봐요. 그래도 일요일에는 쉬어요. 그때 못한 일들을 하죠.”

 

몸이 피곤해 하루 종일 잠만 자고 싶을 일요일인데도 윤출씨는 성당에 나간다. 가게 근처에 있는 전동성당에서 교리교사로 활동 중이다. 매주 일요일이면 30여명의 중·고등학생을 가르치고 있다. 지금은 제법 잘 되는 붕어빵 가게 사장이지만 그에게도 힘든 때가 있었다.

 

“축제일을 그만두고 붕어빵 장사를 하기 까지 놀고 있을 때가 제일 힘들었죠. 친구들한테 얻어먹는 것도 한두 번이죠. 자금이 떨어지니까 친구들 전화도 피하게 되고 이때가 제일 힘들었어요.”

 

그래서 그는 용돈과 재료비를 제외한 모든 수입을 은행에 저축하고 있다. 어려운 시절을 겪었기에 돈의 소중함도 안다.  이야기를 하다 보니 '단골 3인방'이 찾아왔다. 성심여중에 다니는 이아영(15), 강기남(15), 강연수(15)양이다. 세 친구는 매일 같이 윤출씨의 가게를 찾는다.

 

“거의 매일 와요.” “맛있고 가격도 싸잖아요.” “아저씨가 착하시고 친절하세요.”

 

단골 3인방답게 윤출씨에 대한 칭찬을 늘어놓으며 붕어빵 한 개 씩을 산다. 금세 붕어빵을 먹어치우고는 “어묵국물은 필수에요”라며 한 마디를 덧붙인다. 윤출씨는 아이들에게 “잘 가”라고 인사한다. 그리곤 웃는다.

 

 학교가 끝날 무렵이면 윤출씨의 손은 바빠진다
학교가 끝날 무렵이면 윤출씨의 손은 바빠진다 ⓒ 선샤인뉴스

“저는 먹는 것 가지고 장난쳐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음식을 하려면 제대로 해야죠. 내가 맛있어야 남도 맛있죠.”

 

음식에 대한 그의 신조다. 붕어빵과 오뎅에도 적용되는 건 마찬가지다. 먹는 음식은 깨끗해야 한다고 생각하기에 남은 어묵국물은 다음날 쓰지 않는다. 장사가 끝나면 바로 버린다. 길거리 장사지만 항상 청결을 유지하려 애쓴다.   

 

윤출씨는 앞으로 몇 년간 계속 붕어빵 장사를 할 계획이다. 돈을 모아 식당을 차리기 위해서다. 음식 솜씨가 좋으신 어머니와 만두가게를 내고 싶단다. 1학년 1학기를 다니다 그만둔 공부도 다시 시작하려고 한다. 내년에 방송통신대 교육과에 진학할 계획도 가지고 있다.

 

“제가 아이들을 좋아해서 청소년 교육을 공부하려고 해요. 그래도 장사는 할거지만요.”

 

미래의 계획을 말하며 쑥스러운 듯 웃는다. 따뜻한 붕어빵에 사람들은 추위를 잊지만 영하까지 떨어지는 실외에서 일하는 윤출씨의 몸은 시간이 흐를수록 움츠러든다. 그래도 그의 마음은 여전히 따뜻하다. 붕어빵 1개, 2개를 사더라도 그를 찾는 손님들, 동생 같은 여중고생들을 반갑게 맞는다. 어묵국물 한 컵에 따뜻한 한마디를 담아 건넨다. 손님들은 미소로 화답한다.

 

그와 그의 붕어빵을 좋아하는 손님들은 오늘도 윤출씨의 가게를 찾고, 성실한 그는 오늘도 같은 자리에서 붕어빵을 굽는다. 어머니와 함께 차릴 만두가게의 꿈을 함께 담아서.

 

 윤출씨의 붕어빵은 언제나 따끈하고 바삭바삭하다.
윤출씨의 붕어빵은 언제나 따끈하고 바삭바삭하다. ⓒ 선샤인뉴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선샤인뉴스(sun4in.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붕어빵#선샤인뉴스#성심여고#한옥마을#전주시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