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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일 오전 낙산사, 2005년 4월 5일 화마에 손실된 낙산사 원통보전이 2년여 만에 복원되어 1300여 년 전 의상대사가 낙산사를 창건한 이래 최대로 생각된다는 엄청난 인파가 모인가운데 낙성식이 봉행되었다.
16일 오전 낙산사, 2005년 4월 5일 화마에 손실된 낙산사 원통보전이 2년여 만에 복원되어 1300여 년 전 의상대사가 낙산사를 창건한 이래 최대로 생각된다는 엄청난 인파가 모인가운데 낙성식이 봉행되었다. ⓒ 임윤수

16일 오전, 1300여 년 전 의상대사가 낙산사를 창건한 이래 최대로 생각된다는 엄청난 인파가 모인 가운데 지난 2005년 4월 5일 식목일에 소실되었다 많은 사람들의 성원과 불자들의 기도로 955일만에 복원된 원통보전 낙성식과 범종타종식이 여법하게 낙산사에서 봉행되었다. 야단법석이 펼쳐지는 낙산사의 하늘은 더없이 파랗고 땅은 질척거렸다.

동해쪽은 낙산사 가는 마음 닦아주려는 듯 비 내려

동해는 역시 동해다. 태백준령을 넘어서는 대관령 터널로 들어가기 전까지는 쨍쨍한 햇살이었건만 터널을 지나 동해로 접어드니 비가 내린다. 심산유곡에 있는 산사로 들어가려면 번뇌 가득한 마음을 닦아 주는 세심천이나 세심교가 있듯 낙산사를 찾아가는 이 모두의 마음, 근심걱정은 물론 오욕칠정까지 씻겨주려는 듯 세심의 비가 내린다.

속세의 마음으로 보면 몸을 어설프게 하고 마음을 웅크리게 하는 늦가을 비, 커다란 행사를 준비하고 치러 나가는데 방해가 되는 장애의 비지만 정안수를 올리는 애절한 마음으로 보면 마음을 가다듬게 하던 지성의 비며, 버들잎 하나 띄워주는 물바가지 같은 자연의 밀교다.

비가 나리니 옷깃을 여미는 것은 물론 발걸음조차 조심하게 되고, 발걸음조차 조심하며 걷게 되니 오봉산 자락으로 들어서는 몸과 마음은 정갈하고도 자숙할 뿐이다.

 이날 행사에는 범종 타종식도 함께 있었다.
이날 행사에는 범종 타종식도 함께 있었다. ⓒ 임윤수

비가 나리는 낙산사는 정중동이다. 우중이라 한적하고 조용할 것 같지만 행사를 준비하는 사람들의 손길은 부지런하게 움직여도 모자라고 부족하다. 종무소에선 식을 진행하기 위한 예행연습이 한창이다. 사방팔방에서 천리 길 마다않고 달려올 많은 사람들이 불편하지 않고 좀 더 기쁜 마음을 가질 수 있게 하기 위해 연습하고 또 연습해 가며 내일을 준비해 간다. 목례는 물론 눈인사를 드리기에도 송구할 정도로 바쁘기만 하다.

종무소를 나와 식단이 마련될 원통보전 앞마당으로 올라가니 한마디로 엉망진창이다. 다져지지 않은 땅이라 덮개를 깔아놨음에도 목 짧은 신발이라면 물이 스며들 만큼 땅은 질척거리고, 이미 마련되었던 천막과 시설물들은 강풍에 넘어져 뒤엉켜 있다.

머리 위에서 오방색으로 펄럭이어야 할 오색 천, 원통보전 앞에서 행사장으로 늘인 오색천도 빗물에 젖고 바람에 늘어져 무릎만큼이나 처져 있다. 많은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열심이 정리하고 정비하고 있지만 일기예보대로 내일까지 비가 계속된다면 제대로 행사를 치를 수가 있을까가 염려 될 만큼 혼란스런 모습이다.

그렇게 비가 내려도 낙산사는 북적북적

그런 와중에도 낙산사 경내는 온통 사람들이다. 일찌감치 도착한 불자들이 비닐우의를 입고 여기저기를 들러보며 참배하고 관람을 하니 내리는 가을비가 썰렁하지만은 않다. 조금이라도 일찍 복원된 원통보전을 보고 싶은 마음, 엄청난 화마 속에서도 스님들의 등에 업혀 온전히 보존되었다 다시금 원통보전에 모셔졌을 관세음보살님께 참배를 드리고 싶은 마음이 남쪽 끝에서 올라오셨다는 부산 할머니, 서쪽 끝 인천보살님의 발걸음을 재촉하게 하였을 거다.

 행사가 있기 하루 전인 15일, 낙산사가 있는 동해안 일대는 기와지붕에 빗물고랑이 생길 정도로 비가 내렸다.
행사가 있기 하루 전인 15일, 낙산사가 있는 동해안 일대는 기와지붕에 빗물고랑이 생길 정도로 비가 내렸다. ⓒ 임윤수

 큰 행사를 목전에 둔 낙산사는 갑작스런 강풍과 비 때문에 준비된 식장은 엉망이 되어있었다.
큰 행사를 목전에 둔 낙산사는 갑작스런 강풍과 비 때문에 준비된 식장은 엉망이 되어있었다. ⓒ 임윤수

그런 마음이 어디 그렇게 많았는지 원통보전은 몸 하나 들어가기에도 비좁을 만큼 많은 사람들로 빼곡하니 가을비에서 묻어나던 한기는 어느덧 저만큼이다. 사람들은 법당에만 있는 게 아니다. 가을비를 즐기는 건지, 가을비와 함께 하였던 추억을 더듬는 건지 관세음보살상이 있는 언덕으로 가는 오솔길에도 인적이 끊이질 않는다.

동해바다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해수관음보살상 앞에서는 그렇게 비가 나리는데도 비닐우의를 입은 채 108배를 올리는 사람이 있다. 절절한 어떤 소원이 있어 저토록 애절하게 108배를 올리고 있는지 모르지만 우중에서 올리는 108배는 속인의 마음까지 애잔하게 전달되니 관세음보살님도 외면하지 않고 그의 기도를 가피력으로 보여줄 거라 생각된다.

해수관음보살상 앞은 물론 보타전, 홍렴암에도 참배하는 발걸음과 기도하는 108배는 끊이지 않는다. 의상대와 홍련암으로 가는 길, 다래원 앞에 마련된 임시 공양간에서 봉사를 하고 있는 보살들 역시 비닐우의를 입고 배식을 하고, 설거지를 하고 있지만 봄 햇살 같은 따스함과 가을 하늘 같은 청명한 표정들이다.

 그렇게 비가 내리는 와중에도 일찍 도착한 사람들로 낙산사는 북적거렸다.
그렇게 비가 내리는 와중에도 일찍 도착한 사람들로 낙산사는 북적거렸다. ⓒ 임윤수

손과 발 그리고 몸뚱이로 느끼는 날씨야 구질구질하지만 좋은날, 낙성식에 참가하기 위해 찾아오는 좋은 사람들을 위하여 좋은 일을 하는 봉사의 손길 자비의 마음들이기에 그들은 그토록 따스하고 밝은 표정을 지을 수 있었을 거라 확신한다.

질척거리고 구질구질할 것 같은 분위기에서 많은 사람들이 일하고 있지만 무엇에 대한 확신인지 다들 밝기만한 표정이지만 한 치 앞을 내다보지 못하고 눈앞의 현상에만 몰두하는 필자의 마음엔 내일이 걱정된다.

바람 불고 비가나리는 가운데 낙산사에도 어둠이 찾아든다. 하루도 거르지 않는 자연의 순리며 톱니바퀴 같은 어둠이지만 커다란 행사를 앞두고 우중에 찾아드는 어둠이라 그런지 문풍지 바람처럼 마음으로 을씨년스러움이 분다.

길목 길목이 어둠을 밝히는 연등

우매한 걱정을 덜어주려는 듯 어스름 속으로 연등불이 밝혀진다. 일주문에서 홍예문, 홍예문에서 원통보전, 원통보전에서 해수관음보살상이 있는 언덕까지 가는 오솔길, 해수관음보살상이 있는 언덕에서 보타전과 보타락 앞을 지나 의상대로 가는 길, 의상대에서 홍련암으로 가는 길은 물론 다래원에서 후문으로 나가는 길까지 한 꼭지 빠트리지 않고 오색연등을 밝혔다.


낮에 보았던 연등도 아름답지만 어둠 속에 오롯하게 드러난 오색연등은 찬란하고도 영롱하다. 아무래도 주변에 있는 나무나 이런저런 사물들과 함께 섞이니 연등에서 낮에 느끼는 연등의 맛이 텁텁함이었다면 모든 잡 빛이 가려진 밤, 깜깜한 바탕에  드러나는 연등의 오롯함과 불빛은 깔끔하고도 상큼한 맛이다.

맑은 날 밤하늘에서 볼 수 있는 경이로움이 반짝이는 별빛이라면 그 별빛만큼이나 경이롭게 맑은 빛을 내는 게 비오는 날 낙산사를 밝히고 있는 연등 빛이다.

연등이 밝혀진 보타전에서는 밤샘기도가 시작된다. 법당에 들어오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앞마당에 연등을 장엄하고 비를 피할 수 있는 임시 공간을 마련했지만 사람의 수에 비해 턱없이 비좁다. 법당에도 들어가지 못하고 임시 공간에도 자리를 잡지 못한 사람들이 보타전 뜰, 추녀 밑에 자리를 잡았다. 밀려드는 한기를 막으며 두툼한 목도리를 둘렀지만 두 손은 합장이고 마음은 기도 삼매다.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사람들도 비닐우의를 입었다.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사람들도 비닐우의를 입었다. ⓒ 임윤수

 좋은 사람들을 위하여 좋은 일을 하는 봉사의 손길, 자비의 마음들이기에 비닐우의를 입었지만 그들은 그토록 따스하고 밝은 표정을 지을 수 있었을 거라 확신한다.
좋은 사람들을 위하여 좋은 일을 하는 봉사의 손길, 자비의 마음들이기에 비닐우의를 입었지만 그들은 그토록 따스하고 밝은 표정을 지을 수 있었을 거라 확신한다. ⓒ 임윤수

천수경과 반야심경을 독송하고는 이구동성으로 관세음보살을 정근(반복해서 ‘관세음보살’을 부르는 것)한다. 애원하듯 끊이지 않는 관세음보살 정근소리에 기도하는 마음, 염원하는 기도가 천근만근으로 실려 있다.
 
어둠 속에서 들리는 정념스님의 신심과 원력

저녁 예불이 끝나니 정념스님이 법단에 선다. 법단에 선 스님은 무엇보다도 오늘이 있을 수 있도록 기도해주고 정성을 보태준 모든 사람들에게 감사해 하는 마음을 진심으로 전한다.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해 질 수 있는 진솔한 감사함을 전하고 나서는 사람들에게 믿음을 준다.

날씨 때문에 걱정하는 사람들에게는 날씨를 걱정하지 말라고 하고, 추위나 잠자리 때문에 고민하는 사람들에겐 그깟 일로 고민하지 말라고 한다. 스님께서도 만발의 준비를 해 놨지만 관세음보살님을 진심으로 염(念)하면 원하는 모든 것이 이루어지니 관세음 보살님만을 진심으로 염하라고 하시며 만해스님의 일화를 들려주며 확신을 준다.

 해수관음상으로 가는 연등 길을 따라가면 극락이 있을 것 같다.
해수관음상으로 가는 연등 길을 따라가면 극락이 있을 것 같다. ⓒ 임윤수

아무리 절이고 스님이라고 하지만 한두 사람이 아닌 불특정한 뭇사람들에게 몇 시간 후면 당장 확인될 수 있는 일, 첨단에 첨단을 장비를 갖춘 전문가들이 예보한 내일, 비가 올 거라는 내일의 날씨까지 뒤엎을 만큼 확언을 줄 수 있다는 것이야 말로 스님의 신심이며 원력이리라.

스님께서 그렇게 말씀을 하셔도 의심을 떨치지 못한 어리석음은 내일 날씨가 근심꺼리니 이래저래 고해(苦海)에서 방황하는 어리석은 중생일 뿐이다. 밤은 깊어가고 컴컴함은 더해 갔지만 길목 길목을 밝히고 있는 낙산사의 연등은 깊어지는 밤만큼, 더해지는 어둠만큼 점점 더 밝아진다. 절망하면 절망 할수록 점점 더 암울해지는 속세의 번뇌까지도 관세음보살님을 염하면 구원의 손길을 받아 광명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듯 어둠 속 연등은 자애한 마음 빛으로 주변을 밝히고 있다.

내일이 걱정일지언정 초롱초롱한 연등불빛을 따라 찾아가는 하룻밤의 잠은 노곤한 몸을 쉬게 하는 안락함이며 포근함이다. 정념스님이 그렇게 확신하며 말한 내일 날씨가 어떻게 될 것인가를 궁금해 하며 잠자리에 든다.

덧붙이는 글 | 16일, 낙성식 행사 당일 기사 이어집니다.



#낙산사#낙성식#범종#원통보전#홍련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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