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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의 정궁이다. 세종시대의 인정전은 조일전쟁 때 소실되었다. 선조 임금이 도성을 버리고 떠나자 분노한 백성들에 의해 왜군이 입성하기 전 불탔다. 광해군 2년에 중건하였으나 인조반정으로 소실되었다. 현존 건물은 순조4년(1804)에 복원한 것이다.
▲ 인정전. 창덕궁의 정궁이다. 세종시대의 인정전은 조일전쟁 때 소실되었다. 선조 임금이 도성을 버리고 떠나자 분노한 백성들에 의해 왜군이 입성하기 전 불탔다. 광해군 2년에 중건하였으나 인조반정으로 소실되었다. 현존 건물은 순조4년(1804)에 복원한 것이다.
ⓒ 이정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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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이 낮고 비좁아 개축 공사 중이던 창덕궁 인정전이 준공되었다. 장의동 본궁에서 이어한 세종에게 태종이 환관을 보냈다.

“너의 형 양녕을 불러왔으니 조용히 와서 만나보도록 하라.”

야심한 밤. 세종이 신하들의 이목을 피하여 상왕전을 찾았다. 거기에 양녕이 있었다. 경기도 광주에서 유배생활하고 있는 형이었다. 형제는 오랜만에 만났다. 마산역 길거리에서 우연하게 조우한 이후 처음이다. 형제의 정으로 뜨겁게 해후했다. 이튿날 대사헌 허지가 삼성과 합사하여 세종 앞에 섰다.

“신 등이 듣자옵건대, 양녕대군 이제가 상왕전에 와 있다고 하오니 양녕이 종사(宗社)에 득죄하였음은 천하가 다 아는 바이온데 상왕께서 전내(殿內)로 불러들이셨음은 신 등이 놀라 와 견딜 수 없사옵니다.”

“부자 형제의 지극한 정으로 어찌 서로 보고 싶지 않겠느냐. 지난달에 상왕께서 불러 보시고자 하셨으나 대간의 청으로 인하여 이루지 못하시고 이제야 부르신 것이니 경들은 번거롭게 청하지 말라.”

“상왕께서 양녕을 부르신 것은 장차 경계하고 가르쳐 보전하려 하시는 것이오나 오래 머물러 있게 되면 비단 대간만이 아니옵고 백성들이 반드시 소동하는 것이오니 속히 돌려보내도록 하시옵소서.”

형제의 정으로 뜨겁게 해후한 세종과 양녕

“내 어제 잠깐 만나보았고 오늘 다시 만나보면 반드시 돌아갈 것이다.”
“전날 서로 보신 것도 불가한 일이온데 하물며 다시 보실 수가 있겠습니까?”
"상왕께옵서 미리 헤아리시고 계시니 이후부터 다시는 이 사실을 아뢰지 말라."

허지가 세종에게 주청했다는 사실을 보고를 받은 태종은 심기가 언짢았다.

“양녕의 죄는 종사에 관계되지 않고 오로지 김한로의 짓이다. 양녕이 작은 집에 있으니 화재가 두려우므로 내가 이를 불쌍하게 여긴다. 양녕의 집에 간사한 무리들이 몰래 접근할까 염려되니 강화에 집 백여 칸을 지어 거처하게 하도록 하라.”

집을 크게 짓고 숙위 군사를 세워 잡인의 접근을 차단하라는 것이다. 놀기 좋아하고 풍류 좋아하는 양녕에게 잡패들의 접근을 원천적으로 차단하여 문제의 소제를 없애겠다는 복안이다. 신하들의 등쌀에 양녕대군이 대궐에서 사흘을 묵고 유배지 광주로 돌아갔다.

창덕궁 동쪽에 짓고 있던 궁궐이 완공되었다. 신궁을 수강궁이라 명명한 태종은 신궁에 들어앉아 깊은 장고에 들어갔다. 눈앞에는 명나라로 떠나던 심온의 모습이 어른거렸다.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그림이었다.

결심의 순간이 다가왔다. 심온의 아우 동지총제(同知摠制) 심정과 강상인이 모종의 연결고리가 있다는 첩보가 참인지 거짓인지 알 수 없지만 결행의 순간이 다가온 것이다. 칼을 빼기로 결단한 태종이 편전에 나아가 병조판서 조말생, 병조참의 원숙, 지병조사 장윤화를 불렀다. 병권을 쥐고 있는 태종의 핵심 측근들이다. 이들과 함께 주상전의 소식통 지신사 하연도 불렀다.

“강상인이 생원에서 참판에 이른 것은 특별히 대우한 것이었다. 헌데 딴마음을 품고 군무를 아뢰지 않았다. 또한 선지를 받들어 공문을 보내도록 하였더니 4, 5일 동안이나 늦추어 두고 실행하지 않았으니 나와 주상에게 차별 없이 충성하였다면 어찌 이런 일을 할 수 있겠는가? 다시 국문(鞫問)하여 왕법으로 다스려야 하지 않겠는가? 반드시 압슬형을 써서 신문을 하여야만 그제야 그 진상을 알 수 있을 것이다.” - <세종실록>

무릎이 으스러지는 압슬형에 장사 없다

우리는 여기에서 압슬형에 주목해야 한다. 압슬형(壓膝刑), 이거 보통 고문이 아니다. 아버지를 역적으로 지목하고 아들을 역적의 하수인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이 압슬형이다. 다시 말하면 원하는 자백을 받아 죄를 만들어낼 수 있는 형문이다.

사금파리를 깔아놓은 자리에 죄인의 무릎을 꿇게 한 뒤, 그 위에 무거운 돌을 얹어서 자백을 강요하는 압슬형은 인간이기를 포기하게 만드는 잔인한 고문이다. 다른 형벌의 경우 혼절하거나 숨이 멈추면 죄인은 고통에서 해방될 수 있지만, 압슬형은 생명과는 관계없이 고통을 가중시키는 고문이다.

“그때의 행수(行首)인 당해 관원도 마땅히 신문해야 하나 박습이 강상인의 말을 믿고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나는 죄가 차등이 있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행수란 병조판서 박습을 지칭한 것이다. 자신의 과거 동방 박습은 봐주라는 것이다.

“박습이 비록 강상인의 말만 듣고 따랐다고 하지만 판서로서 어찌 알지 못하고 이 일을 하였겠습니까.”

원숙이 병조판서 박습의 처신은 옳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박습의 사람 된 품이 어찌 강상인의 지휘를 따를 사람이겠습니까. 신은 그들의 죄가 경하고 중한 것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조말생도 원숙의 의견에 동의했다. 태종은 병환으로 입궐하지 못한 좌의정 박은에게 장윤화를 보내어 의견을 구했다.

“강상인이 범한 죄가 이보다 큰 것이 없습니다. 온 나라 사람이 논청(論請)하였으나 윤허를 얻지 못하였는데 지금 다시 신문하게 하니 신은 실로 다행으로 생각합니다.”

태종은 의금부진무(義禁府鎭撫) 안희덕을 단천으로 보내어 강상인을 잡아오게 하고, 홍연안을 고부로, 도사(都事) 노진을 사천으로, 진중성을 무장으로 보내어 박습 등 그 밖의 연루자들을 모조리 압송하라 명했다.

각처에 흩어져 있던 죄인들이 한양으로 끌려왔다. 태종은 대사헌 허지, 사간 정초, 형조정랑김지형, 병조참판 이명덕에게 명하여 의금부와 같이 강상인과 박습을 국문하라 명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자백을 받아내라

국청이 개설되고 국문이 시작되었다.

“‘군국(軍國)의 중대한 일은 내가 친히 청단(聽斷)하겠다’라고 상왕 전하께서 전위교서를 선포하셨는데 너희들이 군무(軍務)를 아뢰지 않았으니 반드시 다른 계획이 있었을 것이다.  빠짐없이 이실직고하라.”

“어찌 감히 다른 계획이 있겠습니까. 다만 새로 판서에 임명되어 사무를 알지 못할 뿐이었습니다. 강상인은 원래 주상전하의 잠저시절 옛날 신하이며 오랫동안 병조에 있었으므로 강상인의 말을 따랐을 뿐입니다. 이각(李慤)이 저와 강상인에게 ‘군사는 마땅히 상왕전에 아뢰어야 될 것이다’라고 하였으나 강상인은 빙긋이 웃으면서 대답하지 아니하였습니다.”

박습이 완강히 부인했다. ‘압슬형을 가하라’는 태종의 특명이 있었으나 아직 박습에게 압슬형을 가하지 않았다. 상왕의 동방이며 전 병조판서에 대한 예우가 작용했다. 국문이 진척되지 않자 박습에게 압슬형을 가할 것을 요청했다.

“박습의 죄가 없을 수 없지마는 강상인과는 죄과(罪科)가 다르니 차마 고문할 수는 없다.”
태종이 윤허하지 않았다.

“박습이 판서가 되었는데 어찌 강상인의 말만 따랐겠습니까? 반드시 이의를 하지 않는 것에만 그치지 않았을 것이오니 마땅히 국문을 더해야 할 것이옵니다.”

대사헌 허지가 강력한 국문을 주장했다.

“강상인이 이각(李慤)을 대하여 빙긋이 웃는 것은 반드시 다른 뜻이 있을 것이니 상세히 신문할 것이나 세 번이나 형벌로써 신문하면 형장이 90대에 이를 것인데 또 압슬형(壓膝刑)을 더하면 불편한 것 같다. 만약 복죄(伏罪)하지 않는다면 어찌 세 번까지 기다린 뒤에 압슬형을 쓸 것이 있느냐?”

곧바로 압슬형에 들어가라는 명령이다. 국문에도 순서가 있다. 곤장 30대를 쳐 자백하지 않으면 또 곤장을 쳐 90대가 상한선이고 자백하지 않으면 주리를 틀었다. 90대 이상 치면 죄인이 죽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복죄하지 않으면 압슬형으로 올라간다. 이러한 순서를 무시하고 생략하라는 것이다.


태그:#압슬형, #강상인, #박습, #심정, #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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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事實)과 사실(史實)의 행간에서 진실(眞實)을 캐는 광원. 그동안 <이방원전> <수양대군> <신들의 정원 조선왕릉> <소현세자> <조선 건국지> <뜻밖의 조선역사> <간신의 민낯> <진령군> <하루> 대하역사소설<압록강>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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