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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의 마지막 남은 달동네인 중계본동 주민들은 대부분 세입자로 폐지를 모으거나 일일 근로를 하는 이들, 그리고 독거노인들이었다.
서울의 마지막 남은 달동네인 중계본동 주민들은 대부분 세입자로 폐지를 모으거나 일일 근로를 하는 이들, 그리고 독거노인들이었다. ⓒ 오마이뉴스 이경태

"연탄이 너무 많이 들어가. 이 벽으로 찬 바람이 다 들어와서 계속 때야 해. 하루에 4장이나 땐 적도 있어."

조재호(78)씨는 "집이 너무 오래되어 그렇다"며 벽을 한 손으로 눌렀다. 벽은 조씨의 손이 가는 대로 너무나 쉽게  흔들렸다. 조씨의 부인인 김하봉(74)씨가 "이런 곳에서 벽이 그냥 시멘트나 바른 거지, 안에 뭐 스티로폼 같은 것을 넣었겠냐"며 "안에 시멘트 바른 것도 다 부스러져 방바닥에 흘러나올 지경"이라고 덧붙였다.

조씨 부부는 큰아들과 같이 살고 있지만, 아들이 실명에 가까운 약시인지라 가족의 생계를 책임질 수가 없다. 전에는 조씨가 폐지를 모아 한 달에 5만원 정도 벌 수 있었지만 조씨가 폐질환으로 병원에 입원한 뒤 이마저 끊기고 말았다.

한달에 5만원 벌이마저 끊기고... 연탄 100장이면 겨울 한달 날 수 있는데

마지막 남은 서울의 달동네, 중계본동 주민들의 겨울나기가 시작됐다. 소득도 일정치 않고 돌봐줄 이도 없는 중계본동의 서민들에게 연탄은 없어서는 안될 고마운 존재다. 비록 지난 4월 연탄 1장당 배달료를 포함해 최고 500원까지 가격이 올랐지만 그래도 한 달에 100장 정도만 있으면 충분히 따뜻하게 겨울을 날 수 있다.

그러나 최근 정부는 연탄가격을 2010년까지 매년 30% 인상해 장당 1000원을 유지하겠다고 밝혔다. 정부가 밝힌 대로 가격 인상이 추진된다면 2~3년 안에 지금보다 월 5만원 이상 더 내야 겨울을 무사히 날 수 있다.

7일 만난 이들에게 정부의 인상안을 물어볼 때마다 주민들의 얼굴에는 수심이 가득했다. 조씨는 "지금이야 연탄은행 같은 데서 우리 같은 사람들 도와주지만 연탄 가격이 그렇게나 오르면 거기도 도와주기가 힘들어지지 않을까 싶다"며 걱정했다.

 연탄수요량 증가추이 도표 - 산업자원부 '석탄산업 장기계획' 2006.02
연탄수요량 증가추이 도표 - 산업자원부 '석탄산업 장기계획' 2006.02 ⓒ 오마이뉴스 이경태

산업자원부 석탄사업팀 관계자는 지난 10월 23일 <오마이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시장기능 회복을 위해서 국내 무연탄 및 연탄가격을 점진적으로 현실화시켜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정부보조금으로 연탄 가격을 오랫동안 동결시킨 결과 생산량은 줄었는데 수요량은 급증하는 비정상적인 사태가 발생했다"며 "생산량과 수요량이 안 맞다보니 정부 비축탄을 방출해서 메꾸고 있는데 비축탄도 오는 2009년이면 바닥이 나 시장기능을 정상화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또 "그동안 영세서민을 위해 가격을 동결해왔지만 실제 최근 소비분석을 살펴볼 때 화훼 농가 등 산업용 수요가 늘어났기 때문에 더 이상의 재정부담을 가져가기 힘들다"고 덧붙였다.

현실에서 너무나 먼 '연탄쿠폰'

산업자원부의 자료를 살펴보면, 실제로 120만톤을 유지하던 연탄 수요는 2004년 들어 138만톤으로 훌쩍 뛰었다. 특히 연탄의 경우 생산원가와 최고판매가격의 차액을 보전하는 재정지원율은 52%가 넘는다.

그러나 생산-수요간 불균형과 재정부담만으로 영세서민들의 난방을 책임지고 있는 연탄 가격을 올리는 것은 무책임할 수 있다. 그래서 산업자원부도 이에 대해 별도의 대책을 준비했다.

"물론 정부도 연탄가격 상승으로 영세서민가구들의 생계부담이 커지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그에 대한 연탄보조금지원 대책으로 기초생활수급자 총 3만9165가구에 월 3만3000원을 쿠폰으로 금년 9월부터 지급하기로 했다."

그러나 현실은 정부 측의 설명과 달랐다.

한 달에 정부로부터 60여만원을 지원 받는 기초생활수급자 김종복(70)씨는 지난 달 받은 연탄쿠폰 100장을 동사무소에 반납했다. 김씨는 "동사무소에 물어보니 계속 지원되는 것 같지도 않은데 쿠폰 때문에 3년 동안 받은 연탄은행의 도움이 끊기는 것이 두려웠다"고 말했다.

"복지관에서 수급자들끼리 점심을 먹는데 만약에 쿠폰이 끊기면 어떡하냐는 이야기가 나왔다. 게다가 이 꼭대기까지 배달되는 연탄값이 배달료까지 포함하면 한 장당 450원씩 받는다. 그런데 330원 가격으로 배달시켜달라면 누가 오려고 하겠나."

 허기복 목사(연탄은행 전국협의회 회장)는 "연탄 수급 불균형을 해결하기 위해 가격인상을 하겠다는 정부의 발상은 에너지 빈곤층을 전혀 배려하지 않은 잘못된 것"이라 질타했다.
허기복 목사(연탄은행 전국협의회 회장)는 "연탄 수급 불균형을 해결하기 위해 가격인상을 하겠다는 정부의 발상은 에너지 빈곤층을 전혀 배려하지 않은 잘못된 것"이라 질타했다. ⓒ 이경태

연탄은행 전국협의회 회장인 허기복 목사도 "정부가 내놓은 연탄 가격 인상안은 서민의 삶을 모르는 무책임한 행정"이라며 "정부가 책상에서 나오는 정책을 서민들에게 일방적으로 맞추려고 한다"고 비판했다.

허 목사는 산업자원부의 주장을 조목조목 짚어가며 반박했다.

"연탄소비량은 04년 138만톤, 05년 201만톤, 06년 230만톤으로 증가했다. 그러나 증감추이를 살펴보면 04년, 05년은 연탄소비가 무려 45%나 증가했지만 06년은 전년대비할 때 14% 밖에 증가하지 않았다. 결국 연탄 수요는 정점을 찍고 내려가는 추세다."

이어 허 목사는 "연탄소비가구도 04년 18만 가구에서 05년 25만 가구로 전년대비 37.4% 증가했지만 06년 연탄소비가구수는 27만 가구로 전년대비해 8%밖에 증가하지 않았다"며 "정부가 연탄비축탄이 곧 바닥날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거짓"이라고 주장했다.

허 목사는 "정부의 연탄보조금지원대책도 주먹구구식"이라고 비판했다.

"실제로 연탄을 때고 있는 서민가구 수는 작년 기준으로 차상위계층까지 포함하면 무려 27만 가구에 이른다. 그런데 지자체의 부실한 조사로 이번 연탄보조금지원에서 제외된 가구 12만 가구 중 수급자 가구수도 2만 가구에 이른다. 같은 상황의 누구는 쿠폰을 받고 누구는 쿠폰을 받지 못하는 형평성의 문제까지 발생한 것이다."

그는 연탄쿠폰제가 시행돼도 현실과 맞지 않는다고 했다. 연탄업자도 연탄주문을 300장 이상하지 않는 이상 배달을 기피하는 데다 고지대에 살고 있는 가구는 배달료를 약 2만원 정도 추가로 부담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라 살리겠다는 정치인들, 연탄 때는 서민 생각 않나"

 중계본동 골목길에 정부의 연탄가격인상을 반대하는 현수막이 걸려있었다
중계본동 골목길에 정부의 연탄가격인상을 반대하는 현수막이 걸려있었다 ⓒ 오마이뉴스 이경태


그러나 정부 측은 이번 가격인상 조치를 철회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허 목사는 이번 인상조치에 항의하며 관계자와 대담을 나눴지만 접점을 찾을 수 없었다고 토로했다.

산업자원부에 연탄은행 전국협의회가 참여하는 연탄가격 인상관련 공청회도 여러 번 제안했지만 답변은 불가였다. 지난 10월 국회 산업자원위원회 소속 국회의원들에게 연탄가격인상조치가 불합리하다는 내용의 문서를 보냈지만 전화연락을 한 국회의원실은 한 군데도 없었다.

"참여정부가 들어와서 2번이나 연탄값이 인상됐다. 월 3만원이던 연탄값이 월 5만원으로 올랐고 이제 월 10만원으로 늘어날 지경이다. 그런데 연탄을 때는 이들은 폐지를 모으거나 일일 근로를 하는 이들, 자녀가 없는 독거노인들이 많다. 이런 에너지 빈곤층에게 월 10만원의 난방비는 너무 부담스럽다."

허 목사는 "사실 연탄 소비가 증가한 근본적인 원인은 장기적인 경기침체와 사회 양극화로 서민들이 조금이라도 가계비를 줄이려고 연탄을 선택한 것"이라며 "정부는 연탄 수급 불균형 문제를 사회 양극화 해소로 풀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가 가격 인상을 결정하기 전에 이번 연탄보조금지원가구에서 제외된 12만 가구에 대한 대책부터 제시해야 했다. 나라를 살리겠다고 호언장담하는 대선주자나 산자위 소속 국회의원 누구 하나 이들을 위한 정책 하나 제시 못하고 있다. 서민들은 도대체 누구를 믿고 살아야 하나."


#연탄#겨울#에너지빈곤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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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5월 입사. 사회부·현안이슈팀·기획취재팀·기동팀·정치부를 거쳤습니다. 지금은 서울시의 소식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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