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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아프리카-유럽 지도
 아시아-아프리카-유럽 지도
ⓒ <지리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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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지구상에는 6대주가 있다고 한다. 실제로는 2개의 대륙(아시아·아프리카·유럽과 아메리카), 많다고 해야 오세아니아를 포함해서 3개의 대륙이 있다고 할 수 있지만, ‘19세기 이후’의 사람들은 ‘어쨌든’ 그렇게 믿고 있다.

그런데 미국의 이름인 아메리카를 딴 대륙이 2개나 있고 영·미 계열 국가인 호주도 대륙 하나를 차지하고 있는 것도 이상하지만, 무엇보다도 이상한 것은 ‘유럽이 왜 대륙인가’ 하는 점이다.

세계지도에서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러시아를 제외한 유럽 전역은 거대한 대륙의 왼쪽 끝부분에 붙어 있는 작은 지역에 불과하다. 그 지역에 대해 굳이 독자적 의미를 부여하자면, 3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반도라고 하는 편이 더 적절할 것이다. 지리적으로 볼 때, 유럽을 아시아와 분리시킬 적합한 당위성을 찾아내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우랄산맥을 기준으로 아시아와 유럽을 나누지 않았느냐고 할지 모른다. 그러나 우랄산맥을 기준으로 동서를 구분하는 것은 실질적인 의의가 없다는 것이 대체적인 중론이다. 멀쩡한 러시아를 2개의 대륙으로 갈라놓을 이유가 없다.

만약 거대한 산맥을 기준으로 대륙이 나뉘는 것이라면, 히말라야 산맥 이남의 인도도 하나의 대륙이 되어야 하고, 다싱안링·텐산 등 굵직굵직한 산맥들을 서북쪽에 두고 있는 중국도 하나의 대륙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도 인도·중국은 그냥 나라라고 하면서, 유럽은 대륙이라고 한다.

뭔가 이상하다. ‘19세기 이후’의 이 같은 지리적 편제에는 쉽게 수긍하기 힘든 뭔가가 있다. 그 ‘뭔가’에 대해 정면으로 통박하고 있는 일군의 지식인들 가운데에서 가장 두드러진 인물이 안드레 군더 프랑크(Andre Gunder Frank, 1929년~)라는 역사학자다.

1999년 세계역사학회 으뜸저작상에 빛나는 독일 태생의 세계적 학자 프랑크는 미국·브라질·멕시코·캐나다·칠레·독일·영국·네덜란드에서 교수생활을 역임했고 70대 후반에 이른 현재는 미국 노스이스턴대학 세계사센터에서 원로교수로 지내고 있다.

한국어로도 번역된 바 있는 <리오리엔트>란 책에서 프랑크는 유럽이 하나의 대륙으로 취급되고 있는 것은 “지리학적 사실성에 반”한다면서, 사실 유럽은 결코 독자적 대륙이 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유럽인들은 “자신들의 대륙을 한사코 대륙으로 격상시키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또 “사실 유럽이라는 것은 거대한 유라시아 대륙에서 멀리 떨어진 변경의 한 반도에 불과하다”면서 “유라시아라는 말 자체가 유럽 중심적”이라고 꼬집었다. 아시아가 더 큰데 왜 유라시아라 하는가 하는 지적이다.

이어서 그는 “그(유럽, 인용자 주)에 비해 인구가 훨씬 많은 인도는 겨우 ‘아대륙’(亞大陸)이고 중국은 그저 ‘나라’(國)라고 한다”면서 이러한 대륙 획정은 사실성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그는 현재의 아시아·아프리카·유럽을 모두 합쳐서 ‘아프로-유라시아’ 혹은 ‘아프라시아’라고 하는 편이 더 사실적이라고 지적했다.

이러한 프랑크의 진술을 통해, 오늘날의 대륙획정 뒤에 숨어 있는 그 ‘뭔가’라는 것은 바로 유럽인들의 자기 중심적 논리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잘못된 대륙획정을 통해 유럽인들은 자신들의 위상을 아시아·아프리카보다도 상대적으로 더 높이는 효과를 얻고 있는 것이다.
그럼, 대체 언제부터 유럽인들이 이처럼 자신들을 격상시키기 시작한 것일까? 언제부터 유럽인들은 이렇게 교만해졌을까?

계속되는 부분에서 프랑크는, 19세기 이전만 해도 유럽인들은 동아시아를 존경의 눈으로 바라보았다고 말했다. 왜냐하면, 그때까지만 해도 세계경제의 중심은 동아시아나 이슬람권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아시아를 능가하기 시작한 19세기 중반(아편전쟁 이후)부터 유럽인들은 자신들을 중심으로 세계사를 새로 쓰기 시작하면서(정확히 말하면, 세계사를 왜곡하기 시작하면서), ‘유럽인들은 본래 아시아인들보다 우월한 인종’이라는 논리를 만들어냈다. 유럽 이외의 세계를 지배하기 위해 유럽을 격상시키려 한 것이다. 

그러한 움직임의 일환으로 나온 것이 바로 지리적 지식의 왜곡이다. 지도상으로 알 수 있듯이, 러시아를 제외한 유럽은 중국보다도 작은 땅이다. 그런데 그 유럽을 세계의 중심으로 자리매김하려다 보니, 그 작은 땅을 대륙으로 ‘왜곡’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프랑크는 이 같은 유럽인들의 지리적 왜곡을 통렬히 비판하면서, 19세기 이전의 세계는 본래 이런 모습이 아니었다고 말하고 있다.

이러한 프랑크의 주장을 듣다 보면, 왜 유럽인들이 우랄산맥을 유럽의 경계로 설정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러시아를 제외한 유럽은 별로 크지 않다. 너무 작은 땅을 하나의 대륙으로 설정하는 데에 대한 비판을 사전에 봉쇄하기 위하여 별 관계도 없는 우랄산맥을 끌어들여 유럽의 영역을 넓힌 것이라고 보는 게 타당할 것이다.

유럽이 대륙이냐 반도냐 하는 것은 어찌 보면 그리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서두에서 말한 바와 같이, 유럽이 하나의 대륙이 되고, 미국 이름을 딴 대륙이 2개나 되고, 영·미 계열 국가인 호주가 하나의 대륙을 차지하고 있는 오늘날의 세계지도는 은연중에 서양 중심의 세계관을 지구인들에게 심어주고 있다.

그렇게 주입된 서양 중심적 사고는 군사적 충돌이나 경제적 협상에서 서양국가의 우위권 선점에 유리한 환경을 만들어주고 있다. 그러므로 그 같은 지리적 지식의 왜곡은 비(非)서양을 상대로 한 일종의 심리전술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프랑크 등이 강조한 바와 같이, 현재 지구인들이 품고 있는 이러한 서양 중심의 세계관은 실은 19세기 중반 이후에 새로 개발된, 200년도 채 안 된 ‘신종사상’에 불과하다. 그리고 그것은 그나마 객관적 사실에 근거한 게 아니라, 아시아·아프리카를 지배하기 위한 악의적 목적에서 조작된 것들이다.

우리의 관념 속에서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으면서도 사실은 우리의 의식을 지배하고 있는 이 같은 서양 중심적 세계관을 뿌리뽑지 않으면, 아시아·아프리카는 서양 중심의 유엔과 WTO(세계무역기구)가 지배하고 있는 21세기 세계에서 살아남기 힘들 것이다. 정치적 반미 못지않게 사상적 ‘반유럽’도 중요할 것이다.  


태그:#유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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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패권쟁탈의 한국사,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노비들,왕의여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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