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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을 정도로 세차게 비가 내리는 와중에 연병장에는 완전 군장을 한 한 무리의 장교들이 모여 있었다. 연병장 한 가운데서는 군복 우의를 입고 군모를 푹 눌러쓴 군인이 그들을 보며 서 있었다.

 

“뛰어!”

“어잇!”

“가!”

 

장교들의 목소리는 젊은 패기보다는 완숙한 중년의 목소리가 짙었다. 그들의 방탄모에는 두개 내지 세 개의 무궁화가 슬쩍 보였다. 연병장 한 가운데 서 있는 군인은 마치 말뚝처럼 꼼짝도 않고 있었고 연병장을 도는 장교들은 한 바퀴를 돌 때마다 한 가운데 있는 군인에게 경례를 붙였다.

 

“좌로 봐!”

“충성!”

 

그들은 한 시간이 넘도록 연병장을 끊임없이 돌고 또 돌았다. 결국 다리에 힘이 풀린 중령 하나가 땅바닥에 철퍼덕 엎어지자 연병장 한가운데에 꼼짝 않고 서 있던 군인이 다가와 그를 일으켜 세웠다. 넘어졌다 일어난 중령의 눈은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

 

“이제 그만 해.”

 

연병장을 돌던 군인들이 몰려와 오열했다. 우의를 입은 군인은 그런 그들을 등지고 위병소를 향해 걸어 나갔다. ‘충성!’하는 경례소리가 위병소와 장교들 양쪽에서 동시에 터져 나왔다.


20XX년.

 

세계는 미합중국의 분열로 한차례의 대 변혁기를 맞이하고 있었다.

 

세계의 경찰임을 자처하던 미국의 국제영향력은 급속도로 축소되었고 글로벌 사회를 추구하던 지구촌의 상황은 다시 국가 간의 대립이라는 지역분쟁의 심화로 흘러가게 되었다. 한국은 통일을 이루었지만 국방력에 쏟아 붓는 지출은 통일전보다 더욱 커져만 갔다.

 

이로 인해 군부의 영향력은 커져 갔지만 그것이 민주사회에 어떤 나쁜 영향을 주리라는 예측은 아무도 하고 있지 않았다. 시민사회의 성숙은 시대의 역행을 허용하지 않을 것임을 모두가 믿어 의심치 않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든 경수에게는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다만 털터리 중고차의 연료 계기판이 ‘E’에 가까워 간다는 사실만이 경수의 머리를 어지럽힐 뿐이었다. 한 달 만에 차를 끌고 온 마트에서 경수는 신중하고 적당하게 먹거리를 골랐지만 이미 카트에는 갖가지 물건들이 산더미처럼 쌓여갈 뿐이었다. 그래도 사람이 드문 평일 오전에 장을 보는 것이라 마트를 돌며 물건을 집어오는 데는 거침이 없었다.

 

“삼십만 사천 오백 이십원입니다.”

 

경수는 한숨을 쉬며 떨리는 손으로 카드를 건넸다. 계산원은 카드를 훡 그은 후 사인을 요구했다.

 

‘쌀은 사지 말걸 그랬나.’

 

한동안 빵과 라면으로만 끼니를 때우다가 고심 끝에 결국 구입한 20Kg짜리 쌀 포대를 보며 경수는 시큰둥해졌다. 쌀을 사다보니 갖가지 부식도 사야했고 심지어 찌개 정도는 끓일 수 있는 큰 냄비도 하나 사야했다. 그러다 보니 자신도 모르게 기분을 내느라 삼겹살까지 사게 되었다.

 

‘이틀 후면 실업급여도 나오는 데 뭐.’

 

쌀 포대와 박스를 자동차 트렁크에 옮겨 실으며 경수는 속으로 피식 웃음을 지었다. 경수의 이런 생활도 거의 1년이 되어 가고 있었다.

 

“에라, 어서 집에나 가자!”

 

경수는 시동을 걸며 천천히 핸들을 돌려 마트를 빠져 나갔다.

 

“그동안 수고 많았어. 이게 네 마지막 임무라고.”

 

경수는 집에 짐을 내려놓은 후 자신의 차를 중고차 센터에 가져다 팔 생각이었다. 어차피 자주 쓸 일도 없을뿐더러 차 유지비라도 아끼는 것이 백수 신분에 걸맞은 행동임을 경수는 서서히 깨닫고 있었다. 4층 주차장에서 빠져 나가는 입구에 다다를 무렵 선팅을 짙게 한 검은 세단 하나가 경수 앞에 함부로 끼어들어 내리막을 향해 가기 시작했다.

 

“에이씨, 뭐야. 서민들의 마트에 저런 차가 들어와도 되는 거야? 씨바.”

 

경수는 욕을 내뱉으며 검은 차 뒤를 쫓아 내려갔다. 검은차는 어딘지 굼뜨게 내려가더니 내리막에서 슬쩍 멈추기까지 했다. 경수가 창문으로 목을 빼서 보니 검은 차 앞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아이 저 자식 뭐야? 술이라도 빨고 운전하는 거야? 사람 짜증나게 만드네.”

 

경수는 신경질적으로 클락션을 빵빵 울려대었지만 검은 차는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덧붙이는 글 |
1.두레마을 공방전         
2. 남부여의 노래            
3. 흥화진의 별            
4. 탄금대            
5. 사랑, 진주를 찾아서       
6. 우금치의 귀신     
7. 쿠데타       


태그:#소설, #쿠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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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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