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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시장에서 차를 사려는 소비자들은 모든 압력을 다 가해 최대한 값을 낮추려하고, 영업사원들은 최소한의 마진을 지키기 위해 눈물겨운 노력을 한다. 제 값을 다주고 차를 사면 바보 소리 듣기 딱 좋은 시장인 것은 분명하다.

자동차조사기관인 마케팅인사이트의 7차 기획조사에 따르면 차를 살 때 자동차 회사로부터 가격과 관련해 혜택을 받았다는 응답 비율이 71.7%에 달했다. 영업사원 차원에서 제공하는 혜택을 받았다는 응답자도 55.4%로 조사됐다. 이는 마케팅인사이트가 10여만명을 대상으로 지난 7월에 이메일 설문조사를 분석한 결과중 일부다. 이 회사는 올해로 7년째 자동차 기획조사를 이어오고 있다.

이에 따르면 자동차 메이커는 물론 영업사원까지도 차를 팔기 위해 가격할인을 주저하지 않는 셈이다.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수입차를 제외하고 가장 화끈하게 가격을 조정해주는 메이커는 쌍용자동차였다. 쌍용은 회사차원에서 117만원, 영업사원 차원에서 56만원 정도의 혜택을 고객에게 제공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수입차는 수입사가 172만원, 영업사원이 88만원 정도의 혜택을 평균적으로 제공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가격할인, 쌍용은 화끈 르노삼성은 인색

가격할인에 인색한 메이커는 르노삼성자동차와 현대자동차다. 르노삼성차는 메이커 차원에서 48만원, 영업사원 차원에서 29만원 정도의 혜택을 평균적으로 제공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가격 혜택에서 본다면 이 회사가 가장 박하게 소비자들을 대하는 셈이다. 현대자동차가 그 뒤를 잇고 있는데 메이커가 70만원, 영업사원이 33만원 정도를 양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르노삼성은 삼성자동차 시절부터 '원 프라이스'(단일가격) 정책을 일관되게 유지해오고 있어 정해진 가격이 비교적 잘 지켜진다는 평가다.

쌍용의 할인폭이 크고 르노삼성의 할인폭이 비교적 작은 이유는 각사의 판매 체제 차이에 있다. 쌍용은 판매망 대부분을 자영업자인 딜러가 운영한다. 자영업자인 딜러는 차를 한 대라도 더 파는 게 중요하지 가격을 지키는 것은 그 다음이다. 소비자가 상대적으로 유리한 입장이다.

반면 르노삼성은 거의 대부분의 전시장과 영업사원들을 회사가 직접 관장하는 직영체제다. 많이 파는 것도 중요하지만 가격을 지키는 것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회사 모르게 가격을 할인해주다가 발각되면 잘릴 수도 있는 게 이 회사다. 때문에 소비자가 강하게 가격 할인을 요구하다가는 마음 상하기 쉽다. 메이커가 시장을 지배하는 경우다.

현대와 기아는 직영과 딜러 비중이 서로 비슷하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자영업자인 딜러를 찾아가 가격을 흥정하면 조금 더 값을 깎을 수 있다.

남는 게 없다는 영업사원, 그래도 더 깎아달라는 소비자

소비자들에게 할인을 제공하는 주체는 자동차 회사와 영업사원. 회사는 정해진 정책과 수시로 바뀌는 판매조건에 따라 가격 할인 폭을 정한다. 할인되는 가격을 회사가 흡수하는 것.

하지만 소비자들은 여기에 만족하지 않는다. 조금 더 값을 내려주길 원한다. 안내려주면 다른 곳이나 다른 차를 사려 한다. 차를 사려는 의지가 분명하다고 판단되면 영업사원은 가격을 조금 더 내려 제안한다. 영업사원이 자신의 결정으로 추가 할인을 제공하는 것이다.

자신에게 주어지는 판매 수당의 일부를 포기하면서 그만큼 가격을 덜 받는 것이다. 문제는 여기에 있다. 실적에 쫓기는, 즉 차를 많이 팔지 못하는 영업사원일수록 판매를 성사시키려고 수당 전부를 포기하는 일도 생기는 것이다. 차를 많이 파는 영업사원이라면 굳이 이런 조건에 차를 팔지 않겠다며 판매를 포기해도, 한 대라도 실적이 있어야 하는 영업사원은 쫓기는 심정으로 무리한 할인을 제안하게 되는 것이다. 

"가격 할인해주고, 선팅해주고, 이런 저런 용품 선물하고 나면 남는 게 없다"는 영업사원들의 하소연이 전혀 틀린 말은 아니다. 

원 프라이스, 문제 없나

딜러나 영업사원의 가격할인을 제한하는 '원 프라이스'에 대한 적법성 여부도 짚어볼 필요가 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 7월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MBK)가 국내 딜러들에게 현금할인이나 상품권 등의 증정을 금지하고 소비자판매가격을 지키도록 강요한 혐의를 적발해 시정명령을 내린바 있다.

판매가격을 딜러에게 강요한 것은 위법이라는 것. 이 같은 공정위의 잣대로 국내 업계를 보면 '원 프라이스' 정책을 내세우는 업체들은 공정위의 제재대상이 될 수도 있다.

'경쟁을 제한하는 단일가격'에서 소비자는 단 한 푼도 깎아주지 않는 게 무시당하는 것 같아서 기분이 나쁘다. 메이커가 정한 가격을 그대로 따라야 하는 것은 소비자 입장에선 말이 안된다. 다른 모든 사람도 나와 같은 가격에 차를 샀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질 수 없다. 

'정해진 가격이 의미 없는 자유로운 무한 경쟁'에서 소비자의 이익은 가장 클 수 있다. 하지만 그 이익은 때로 영업사원이 정당하게 가져가야할 이익까지도 빼앗는 것일 수 있다.


태그:#자동차, #원 프라이스, #차 판매가격, #오종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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