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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놈의 목숨을 누가 살려줬는지 알려줘야겠구나! 칼을 너의 목에 겨눈 병사가 너와 마주쳤을 때 왜 네 목숨을 끊지 않았는지 궁금하지 않더냐?”

 

김학령은 자신의 목숨을 살려준 병사의 눈을 떠올렸다. 그 눈은 고민과 갈등을 담고 있긴 했지만 귀신에 홀린 듯한 표정은 아니었다.

 

“그, 그게 댁이 한 짓이란 말이오?”

 

귀신은 옆으로 김학령을 흘겨보며 중얼거렸다.

 

“짓이라니! 목숨을 구해줬단 말이다! 생명의 은인에게 그 정도 일도 못해 주겠는가?”

“그럼 그 수많은 원혼을 달래려면 어찌 해야 하오?”

 

“간단해. 재 너머 가다보면 늙은 느티나무가 있어. 거기서 원혼제를 지내라. 단, 요 아래 작은 연못에 들러 몸을 깨끗이 씻고 가야 한다.”

“그럼 느티나무에 절만 올리면 되는 거요?”

 

“그렇게만 하면 그게 무슨 원혼제야. 정갈한 음식이라도 마련해야지.”

“지금 내 형편에 음식마련을 어떻게 한단 말이오?”

 

귀신의 눈이 벌겋게 변했고 김학령은 그에 놀라 더욱 움츠려 들었다.

 

“너 사람 죽여 봤어?”

 

김학령은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동학군을 따라 몇번 전투에 참가는 했지만 사실 그는 사람을 죽인 적은 없었다.

 

“사람의 목을 바쳐. 왜놈의 목으로! 그래야 원혼들이 조금이라도 진정할게야.”

 

김학령은 놀라 귀신을 바라보았다가 무서워서 다시 고개를 돌렸다.

 

“원혼제를 지내지 않으면 매일 밤 괴롭힐게다.”

 

김학령이 뭐라고 항변하려는 순간 문밖에서 강시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보게 아우! 불을 지펴야하는데 혹시 부싯돌 가진 거 있는가?”

 

김학령이 그 말에 흠칫하는 사이 귀신의 모습은 연기처럼 사라졌다. 김학령은 목이 터져라 외쳤다.

 

“형님! 나 좀 살려주시오!”

 

놀란 강시우가 문을 박차고 들어왔지만 그의 눈에 들어온 건 오줌까지 지린 김학령의 벌벌 떠는 모습뿐이었다.

 

“무슨 일이야?”

 

지린내에 인상을 찌푸리며 강시우는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그의 눈에 이상한 것은 보이지 않았다.

 

“귀…귀신이… 귀신이….”

 

그 말에 저도 모르게 소름이 끼친 강시우가 움찔거리며 뒤를 돌아보았지만 역시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강시우는 가볍게 한숨을 쉬며 오줌을 지린 김학령의 바지를 억지로 벗겼다.

 

“자넨 몸도 마음도 다 약해졌어. 이 집 주인장은 코빼기도 안 보이는 게 싸움이 벌어진 걸 알고 있다가 우리가 다가오는 인기척을 듣고 놀라 달아난 모양이야. 저 밑에 감자밭이 있으니 당분간은 먹을 것 걱정은 안 해도 되겠더군. 다리가 나을 때까지는 여기서 지내자고.”

 

“그건 안돼.”

 

김학령은 넋이 나간 표정으로 뇌까렸다. 

 

“여긴 귀신이 나와. 왜놈 목을 베어오지 않으면 귀신이 계속 괴롭힐 거야.”
“뭐라고?”

 

“왜놈 목을 베어 와야 해.”

“아서라. 아서. 왜놈 목을 베어오기는커녕 왜놈만 봐도 숨어야 될 처지네. 저기 구석에 있는 게 부싯돌 아닌가?”

 

강시우는 부싯돌을 들고 감자를 삶기 위해 부엌으로 갔고 바지를 벗은 채 벌벌 떨고 있는 김학령 앞에 다시 귀신이 희미하게 모습을 드러내어 중얼거렸다.

 

“반드시 그렇게 해. 난 편히 이곳에 남고 싶어.”

 

김학령은 비명이라도 지르고 싶었지만 그조차도 마음대로 할 수 없었다. 귀신이 어디서 쥐를 잡아들고서는 김학령의 입에 덥석 물렸기 때문이었다. 김학령은 손발을 허우적거리며 쥐를 뱉어 낸 후 소리 없이 미친 것처럼 몸부림을 쳤다.

덧붙이는 글 |
1.두레마을 공방전     
2. 남부여의 노래        
3. 흥화진의 별        
4. 탄금대        
5. 사랑, 진주를 찾아서   
6. 우금치의 귀신  
7. 쿠데타   


태그:#우금치, #동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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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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