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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이름 : 황새
- 글 : 김황
- 옮긴이 : 김정화 / 그림 : 문종인
- 펴낸곳 : 우리교육(2007.4.10.)
- 책값 : 1만 원


"마츠시마씨는 죽은 황새를 동물보건소로 데리고 갔습니다. 그랬더니 죽은 황새의 몸에서 많은 양의 농약이 나왔습니다. 농약으로 작은 생물들이 죽고, 황새 먹이가 없어져 버린 것입니다. 더구나 살아 있는 황새도 농약에 중독되어 있었습니다. 황새들은 죽음으로 사람들에게 경고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53쪽)"는 말을 귀담아들을 사람은 어디에, 몇 사람이나 있을까요.

 

황새가 죽어서 없어지기 앞서, 황새한테 먹이감이 되던 작은 짐승과 개구리가 죽어서 사라졌습니다.

 

요새는 시골에서 개구리 소리 듣기도 퍽 어렵습니다. 개구리뿐 아니라 두꺼비나 도룡뇽 또한 살아갈 터전이 사라져서 모두 죽어서 없어집니다. 개구리나 도룡뇽이 살던 논에 깃들던 뜸부기도 자취를 감추게 되고, 논물이나 연못에 살던 소금쟁이와 물방개도 씨가 마릅니다.

 

제비가 찾아오지 않는 대한민국이 된 지는 오래요, 참새와 비둘기와 까치와 까마귀 아닌 새가 살아갈 수 없을 만큼 메마르고 무시무시해진 이 나라 대한민국입니다. 생물다양성이 사라진 한국이라면, 사람마다 다양성을 섬기고 가꾸는 문화와 사회 터전도 사라졌다는 소리입니다.

 

날이 갈수록 입시경쟁이 불꽃이 튀고, 대학입시만을 바라보며 ‘글쓰기’를 ‘논술 공부’로 삼게 됩니다. 영어를 배워서 우리 문화와 사회를 가꾸는 게 아니라, 돈을 버는 목적 하나 때문에 영어를 배울 뿐입니다.

 

다양성을 잃고 목적이 사라지며 눈알을 부라리며 제 뱃속만 채우려는 세상이니, 우리 밥상에 오르는 먹을거리가 어떻게 더러워지고 있는 줄 살피지 않습니다. 세상 공기와 물이 아무리 더러워졌어도 에어컨 틀고 공기정화기 들여놓고 정수기 쓰면 그만일 뿐입니다.

 

자동차 씀씀이를 줄일 생각은 없이 논밭과 산과 들과 내를 무너뜨리며 아스팔트 찻길을 하염없이 늘립니다. 경제성장률을 높이면 나라살림이 북돋운다고 하지만, 깨끗한 밥과 물과 바람을 누릴 수 없는 세상이 얼마나 살기 좋을까요. 황새가 잊혀지고, 황새를 굳이 알 까닭이 없어지는 우리 세상은 얼마나 아름답고 평화로울 수 있을까요.

 

자연은 ‘사람이 지키는 곳’이 아닙니다. 사람은 ‘자연과 함께 살아갑’니다. 이야기책 <황새>는 우리 아이들한테 지식을 건네지 않고 이야기를 겁니다. 사람말을 하지 못할 뿐인 황새가 우리한테 무슨 말을 들려주려고 하는지 차근차근 일러 줍니다.

 

경계 없이 살아가며 꾸밈이 없는 황새처럼, 우리들 사람 삶도 담이나 벽이나 경계를 왜 놓아야 하는가를 묻고(담이나 벽이나 경계를 없애야 좋음을 함께 말하고), 스스로 답을 찾도록 이끕니다.

 

몇 가지 지식이나 정보로 황새를 다루지 않고, 자연 삶터를 꼭 지켜야 한다는 외침만 담았다면, <황새>는 그저 그런 뜨내기 책 가운데 하나로 남았겠지만,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을 말하면서, ‘사람과 사람이 함께 사는 일’이 어떻게 굴러가고 있는가 또한 차분히 말하고 있기에, 애틋하게 책장을 넘길 수 있습니다.


.. 한국과 일본의 ‘황새 아버지’들이 말했습니다. 황새가 사람들에게 바라는 것은, ‘먹이가 되는 생물을 농약으로 죽이지 않았으면 좋겠다’, ‘둥지를 틀 큰 나무를 베어내지 않기 바란다’, ‘황새와 함께 살아가려면 사람들이 자기 처지만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라고 말입니다 .. <112쪽>


다만, 책에 담은 그림이 퍽 어설픕니다. 사진을 보고 그린 게 아닌가 의심이 갑니다. 잘 그린 그림이라든지 멋들어진 그림보다는, 또한 어떤 지식이나 정보를 건네려는 그림보다는,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짐승 이웃’ 가운데 하나인 황새임을 헤아리며 그렸다면 좋았을 텐데요.

 

오탈자가 스무 군데쯤 보이는 것도 책 편집에서 아쉬운 대목입니다. 좋은 책 만들려고 애쓰는 움직임만큼, 겉으로 드러나 보이는 멋들어짐보다는, 속으로 깊이 파고들며 마음으로 함께 나눌 이야기에 좀더 손이 갔다면, 한결 깔끔하고 살가운 이야기책이 되었으리라 봅니다.


.. 박시룡 교수를 만나기 8개월 전, 나는 한국의 생물을 취재하고 싶어서 국적을 ‘조선’에서 ‘한국’으로 바꾸었습니다 …… 정작 국적을 바꾸는 일은 그야말로 싱겁게 끝났습니다. 43년 동안 일본에서 살면서 일본 국적이 아니라, 조선 국적을 지키며 살았습니다. 모질고 독한 사회에서 엄청난 눈물을 흘렸지요. 그것은 동물원 사육사가 꿈인 내게 평범한 꿈마저 ‘규제’했습니다. 하지만 국적을 바꾸는데 고작 이십 분밖에 걸리지 않았어요. 이십 분이면 받을 수 있는 이 ‘자격’ 때문에, 나는 피를 나눈 부모님과도 둘도 없는 친구와도 오랫동안 ‘슬픈 싸움’을 해 왔던 것입니다 ..  <71∼72쪽>


<황새>를 쓴 분은 재일한국인 3세. 자기 살 곳을 빼앗기며 떠돌아야 하는 황새처럼, 한 사람으로 태어나 꾸려갈 삶을 괴롭힘과 들볶임으로 마음아파하다가 꿈까지 빼앗긴 글쓴이. 글쓴이는 자기가 겪은 아픔이 있었기에 <황새>를 써 내고, 이 가녀린 짐승을 찬찬히 헤아리며 보듬을 수 있었는지 모릅니다. 부리가 잘려 힘겹게 삶을 꾸린 황새 암컷 코우짱처럼, 손발이 붙들여 매인 채 옴쭉달싹 못하며 꿈을 꺾어야 한 자기 마음까지 한 줄 한 줄 고이 담았습니다.


황새

김황 지음, 김정화 옮김, 문종인 그림, 정석환.박시룡 감수, 우리교육(2007)


태그:#황새, #김황, #그림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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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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