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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코 있어서는 안 될 이 모든 일이 시간에 파묻히지 않도록, 그래서 결코 잊지 말아야 할 이 모든 일이 우리 후손의 기억 속에서 사라지지 않도록. 이 땅, 이 사악한 존재의 손아귀에 놓인 이곳에서 일어난 수많은 재앙을 보아온 나는, 이제 죽은 자들에 둘러싸여 죽음을 기다리며 그동안 내가 목도한 모든 일을 여기 적는다.

 

기록은 글쓴이와 함께 소멸되지 않아야 하고 노동은 노동을 한 사람과 함께 무위로 돌아가지 않아야 하니, 내 오늘 이 작업을 계속하기 위해 양피지를 남기니, 만일 단 한 사람이라도 살아남아 아담의 후예 중 그 누구라도 페스트로부터 도망쳐 내가 시작한 일을 계속 이어 갈 수만 있다면…." - 1349년 존 클라인 수사.


2054년, 시간 여행이 가능해진 세상. 역사 연구가들은 실제의 역사를 직접 보고 관찰하기 위해 과거로 떠납니다. 중세에 매료된 키브린이라는 이름의 영국 여대생은 완벽한 준비(중세 영어 습득, 당시의 문화 체득, 중세 모든 병에 대한 예방접종)을 마치고 1320년으로 떠나지만, 인플루엔자로 인해 정신이 혼미해진 기술자의 계산착오로 흑사병이 창궐하기 시작하는 시대인 1348년으로 떨어집니다.  


시간여행이란 굉장히 매력적인 모험입니다. 상상대로라면, 과거로 날아가 어릴 적 자신의 모습과 마주 할 수도 있고, 먼 미래로 날아가 화려한 미래 문명도 맛볼 수 있습니다. 어려움에 부닥치더라도 가뿐히 건너 뛸 수 있고, 실수로 다친다면 그 이전의 과거로 돌아가 피해 갈 수 있습니다. 일반적인 개념의 시간여행자란, 그야말로 만능에 가까운 존재와 다름없어요. 그들은 시간 속에서 불멸하고 그 어느 곳에도 존재 할 수 있는 무소불위의 능력자나 마찬가지죠.

 

지극히 현실적이고 사실적인 SF소설


하지만 코니 윌리스는 자신의 소설 <둠즈데이북> 속에서 시간 여행 시 수반되는 굉장히 엄격한 규칙들을 정해 놓고 있습니다. 여행은 과거로만 가능하고, 이미 일어났던 역사적 사건은 절대 바꿀 수 없으며, 시간여행자가 원하는 시공간에 정확히 도착 할 수도 없습니다. 심지어는 시간여행자에게 역사적 인과 관계를 뒤집을 가능성이 만에 하나라도 있을 경우(과거 역사의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물건을 소지하는 등), 여행을 가능케 하는 기계인 ‘네트’가 열리지조차 않는습니다.

 

그러므로 <둠즈데이북> 속에서의 과거는 현재 혹은 미래와 동일 선상에 놓여 있는 '평행우주'와도 같은 형태로 존재하고, 모든 시간 여행자는 과거 속에서도 철저히 관찰자로서만 존재합니다. 내일 당장 그 어떤 비극적인 일이 일어날지라도 손 끝 하나 까딱 할 수 없는 방관자일 뿐이지요.

 

이러한 점은 이 소설이 시간여행을 다룬 에스에프(SF)물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소설과 달리 지극히 현실적이고 사실적인 이야기로 느껴지게 하는데 한 몫 합니다. 이른바 극사실주의 에스에프(SF)라고나 할까요.

 

재미 있는 점은, 시간 여행이 가능할 정도로 고도로 발달한 미래문명임에도 불구하고, 시간 여행 기술을 제외하고는 그리 미래적인 과학기술이 등장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가벼운 인플루엔자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픽픽 쓰러져 죽어나가고, 2명의 주인공 중 하나인 던워디 교수는 이야기 내내 통화가 가능한 유선전화를 찾아 헤맵니다.

 

미래 기술이라고 해봐야 레이저 양초나 화상 통신 전화기(하지만 유선이에요!), 그리고 자동으로 옷이 여며지는 자켓 정도랄까요. 미래 문명이라고 하기에는 그저 귀여울 정도의 수준입니다. 다른 건 다 차치하더라도, 휴대폰이 없는 2054년을 상상 할 수 있겠어요? 아마도 소설 속 전 인류의 과학자들은 다른 일은 모두 제쳐두고 시간 여행 연구에만 몰두 했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읽는 이의 지적 허영심을 쉴 새 없이 자극하는 소설


그에 비해 페스트가 유행하는 중세 영국의 모습은 굉장히 사실적이에요. 중세 영어가 원문 그대로 쓰여지는가 하면, 까다로운 중세 교회의 예배 장면도 상세히 묘사되어 있고, 중세인들의 생활상(옷차림과 사고방식, 식습관 등등) 또한 자세하고 사실적으로 그려지고 있습니다. 코니 윌리스는 아무래도 과거를 그리려는 욕구가 미래에 대한 그것 보다 강한 작가인 듯하네요.


소설의 구성을 말하자면, 틈새 하나 없이 철저하게 잘 맞추어진 모자이크와도 같습니다. 모든 등장인물은 저마다 확실한 역할과 개성을 갖고 있어서, 언뜻 보면 사소해 보이는 인물의 개성이 이야기를 끌어나가는 데 큰 힘으로 작용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자면, 그저 철없는 바람둥이로 보이던 윌리엄이라는 대학생이 시간이 갈수록 넓고 지배적인 인맥을 지닌 수완가로 탈바꿈하는가 하면, 하루 종일 사탕만 빨아대고 있는 어린 아이가 주인공에게 결정적인 도움을 주는 인물로 급성장하기도 합니다.

 

그 뿐인가요. 조그마한 사건 하나 하나 잊혀지는 법 없이 이후의 중요한 일들과 연결되는데, 이는 끊임없이 나타나는 희미한 복선과 암시로 인해 더욱 더 견고하게 맞물려 유기적으로 작용됩니다.

 

어디론가 말을 타고 떠나서 돌아오지 않던 중세의 기사가 소설의 클라이맥스 부분에서 주인공에게 탈거리를 제공해준다든지, 흘려들을 수도 있었던 인물들의 사소한 대화가 알고 보니 결정적인 반전의 중요한 힌트였다든지 하는 것이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한 문장, 혹은 보잘 것 없어 보이던 에피소드들이 모두 버릴 것 하나 없는 중요한 실마리 였으며, 행여나 그 것을 미처 알아차리지 못하더라도 이야기 이해에는 전혀 상관이 없는, 거의 편집증에 가까운 듯한 완벽한 구조적 계산들이 곳곳에 배치되어 있어 읽는 이의 지적 허영심을 쉴 새 없이 자극합니다.

 

한 차원 높은 지적유희 보여주는 '코니 윌리스'


유머 또한 이 소설이 가지고 있는 재미의 또 다른 큰 축이에요. 코니 윌리스의 유머는 극단적으로 개성적인 인물들이 연출해내는 특정 상황과 상황이 반복되며 충돌되는 경계, 그 지점에서 발생되는 대화와 상황에서 우러나오는데, 이는 그저 시시껄렁한 말장난 보다 한 차원 높은 수준의 지적 유희입니다.

 

쉴 새 없이 대학 내의 잡다한 비품을 챙기는 핀츠의 집착과 던워디의 무심함 사이에서 생기는 갈등과, 엄청난 잔소리꾼인 개드슨 부인과 나머지 인물들에게서 생기는 유쾌한 충돌들은 끊임없이 즐거운 웃음을 선사합니다.

 

여기에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캐릭터 묘사가 한층 더해져, 자칫하면 순간적인 실소에 그칠 수 있는 요소들에 더욱 무게를 더해줘요. 실컷 웃고나서 허무해지는 웃음이 아니라, 어렵게 생각한 뒤에야 피식 미소 짓고 머리 속이 꽉 차는 듯한 느낌이랄까요.


<둠즈데이북>은 훌륭한 에스에프(SF)물이라는 점 외에도 다른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미래를 다룬 챕터에선 온갖 상황들이 어우러지며 갖가지 재미(웃음, 비애, 스릴)을 선사하는 숨 가쁜 드라마, 그리고 중세를 다룬 챕터에선 철저한 고증을 바탕으로 한 사실적인 비극 역사 소설으로서의 가치 또한 매우 큰, 그야말로 여러 방향으로 즐길 수 있는 멋진 소설입니다.

 

비록 너무나도 미래적이지 않은 미래 세계 묘사가 조금 마음에 걸리지만, 이 책이 1992년에 쓰여졌다는 점과 그 외의 작품성들을 고려한다면 살짝 눈감아줄 수 있지 않을까요? 이 책 이후 2001년도에 출판된 <개는 말할 것도 없고> 또한 굉장히 훌륭하고 재미 있는 책이에요. 늦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확 한 번 더 읽어버릴까 하는 충동도 듭니다.


둠즈데이북 1

코니 윌리스 지음, 최용준 옮김, 아작(2018)


태그:#둠즈데이북, #소설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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