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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을 산이 에두르고 있다. 나는 산에 포위되었고 산이 나를 안고 있었다.
산을 산이 에두르고 있다. 나는 산에 포위되었고 산이 나를 안고 있었다. ⓒ 이명화

등산 식구가 한 명 더 늘어났다. 둘 플러스 하나, 셋이다. 든든하다. 좀 일찍 집을 나섰다. 가을 들녘엔 추수를 기다리는 황금빛 벼들이 고개를 숙이고 낫을 기다리고, 서늘한 가을바람에 흔들리는 길 가에 핀 코스모스가 상냥하게 웃고 있었다.

억새풀 가지산 정상 아래, 억새풀들이 바람에 나부낀다.
억새풀가지산 정상 아래, 억새풀들이 바람에 나부낀다. ⓒ 이명화

울산광역시 울주군 언양읍을 관통해 변두리 쪽으로 차를 달렸다. 석남사 터널을 지나 석남사 입구에서 좌회전해서 가다가 배내골로 가는 길과 가지산 쪽으로 가는 갈림길을 만났다.

배내골로 가는 길을 버리고 가지산 방향인 오른쪽으로 차를 돌렸다. 가지산 관광휴게소를 지나 석남터널 입구에 차를 세웠다. 그곳은 작은 시장을 형성하고 있었다. 석남터널을 지나면 밀양이 나온다. 우리는 석남터널 입구를 옆에 두고 길을 건넜다.

바로 등산로가 시작되었다. 오전 10시 30분이었다. 등산로 초입부터가 곧장 가파른 길로 이어졌다. 등산로에는 로프를 연결해 놓은 곳이 많아 급경사진 길을 오를 때 불편을 들 수 있었다. 나무계단이 이어지다가 자갈돌 길이 이어지는가 싶으면 많은 사람들의 흔적을 느낄 수 있는 단단해진 흙길을 만난다.

능선 시선이 머무는 곳마다 시리도록 아름다운 산빛이여!
능선시선이 머무는 곳마다 시리도록 아름다운 산빛이여! ⓒ 이명화

단풍 푸른 산빛은 이제 붉은 옷을 갈아입고 있었다.
단풍푸른 산빛은 이제 붉은 옷을 갈아입고 있었다. ⓒ 이명화

다시 크고 작은 뾰족하게 솟아 있는 자갈돌 길로 이어졌고 바위길이 나타나곤 했다. 지난번 신불산 공룡능선을 넘을 때의 그 험로 경험 덕분인지 짧지 않은 산행길이지만 크게 힘들게 느껴지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이 이 산을 찾은 흔적을 느낄 수 있었다. 자갈돌 깔린 오르막 능선 길을 한참 오르다가 중간 쯤에 매점(대피소)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 산행하는 사람들이 이곳 나무 의자에 앉아 쉬어가기도 한다.

자갈돌 밟는 소리와 메마른 나뭇가지와 잎새를 흔드는 바람소리가 힘든 산행길에 즐거움을 주었다. 산 높고 기온이 많이 내려가서인지 그다지 땀을 많이 흘리지 않았다. 오히려 잠시 쉬어 갈 때마다 오싹한 한기에 몸이 움츠려 들어서 여벌의 옷을 껴입어야 했다.

매점 가지산 중간 쯤, 그리고 정상 주변에는 매점이 있다. 산행하는 사람들이 가끔 쉬어 가나보다. 동동주가 보인다.
매점가지산 중간 쯤, 그리고 정상 주변에는 매점이 있다. 산행하는 사람들이 가끔 쉬어 가나보다. 동동주가 보인다. ⓒ 이명화

숨 가쁘도록 가파른 급경사 길이 정상에 가까울수록 눈앞에 나타났다. 등산을 하다 보면 우리 인생과 참으로 많이 닮았음을 알게 된다. 인생길에서 우리는 때때로 험로를 만난다. 잘 닦여진 길이 있는가 하면 가끔 돌부리에 넘어지기도 하고, 숨 가쁘도록 가파른 길을 만나기도 한다.

힘이 들어서 주저앉고 싶을 때가 있다. 아니 왔던 길을 다시 돌아가고 싶을 때가 있다. 포기하고 싶을 때를 만난다. 그렇다고 내게 주어진 삶을 포기하고 주저앉을 수는 없지 않은가. 가다 말면 아니 감만 못하리!

등산길에서 험로를 만나기도 하지만 그곳을 통과 하고 나면 또 걷기 쉬운 완만한 길을 만나기도 한다. 선물처럼 상쾌한 나를 시원하게 하고 새들의 노래와 들꽃들이 반기곤 한다. 그리고 정상에 도착하면 또 다른 큰 선물이 있다. 또 다시 험로를 만나도 이 험로를 가다 보면 끝이 있다는 것을 알기에 또 길을 걷는다. 등산은 인생과 흡사하다.

가지산 정상 가지산 정상 표시석 아래로 저 멀리 언양읍 시내가 내려다 보인다. 정상 바위에 호젓하게 앉은 남녀.
가지산 정상가지산 정상 표시석 아래로 저 멀리 언양읍 시내가 내려다 보인다. 정상 바위에 호젓하게 앉은 남녀. ⓒ 이명화

오후 1시, 정상에 도착했다. 2시간30분 걸린 셈이다. 이 산은 1240m의 산으로 밀양시 산내면과 울산광역시 울주군 상북면 및 경상북도 청도군 운문면 경계에 있는 산으로 1979년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신불산, 간월산, 영취산 등과 함께 영남의 알프스로 불리며 그 중에서도 가장 높은 산으로 알려져 있다. 가지산 주변에는 운문산, 천황산, 고헌산, 신불산, 간월산, 영취산 등이 멀리 혹은 가까이 에두르고 있다. 정상 표시석 주변에는 둘이, 혹은 여럿이서 앉아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우리는 산의 장엄함에 취해 할 말을 잃고 서 있었다.

 산 너머 산, 산 너머 또 산, 지나가던 등산객의 말대로 우리나라엔 산이 정말 많다. 길을 내고 건물을 세우느라 산이 없어지는 것을 볼 때 안타깝다.
산 너머 산, 산 너머 또 산, 지나가던 등산객의 말대로 우리나라엔 산이 정말 많다. 길을 내고 건물을 세우느라 산이 없어지는 것을 볼 때 안타깝다. ⓒ 이명화

눈을 들어 바라보는 곳마다 형언할 수 없는 아름다움에 취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앉아 있어도 좋은 산, 내려가기 싫을 만큼 고요하고 아름다워 발길이 자꾸 멎는 곳, '내려가야지!' 하고 일어섰다가도 다시 멈추어 서서 눈을 들어 산 뒤에 산, 그리고 그 산 뒤에 산, 산을 시리도록 바라보며 일어났던 자리에 다시 앉게 하는 곳이었다.

산이 산을 에워싸고, 산이 산을 어깨동무하고, 산이 산을 감싸고 도는 곳, 산이 산의 길을 열어주며, 넉넉하고 위엄 있으며 장엄하고도 섬세한 광경에 시선이 계속 머무르게 되었다.

 '오메, 단풍 들것네!'
'오메, 단풍 들것네!' ⓒ 이명화

산 능선이 서로 이웃해 산이 산을 여는 그곳에 앉거나 일어서서 산에 취해 있었다. 저 아래에는 사람들이 눈앞의 것들을 위해 다툼하며 작은 것에 원망하고 불행해 하면서, 또 작은 이익을 위해 미워하고 시기하고 질투하며, 잇속 챙기느라 혈안 되어 있다. 얼마나 우리는 근시안적으로 살아가는가. 산은 그래서 비좁은 우리의 마음의 터를 넓혀준다.

 머무르고 싶은 산, 메아리는 또 얼마나 깊고 멀리 울려퍼지는지….
머무르고 싶은 산, 메아리는 또 얼마나 깊고 멀리 울려퍼지는지…. ⓒ 이명화

가지산 정상 주변을 둘러보다가 억새풀이 바람을 막아주는 숲 안에 아담한 장소를 발견했다. 자리를 깔고 꿀맛보다 더 좋은 점심을 먹었다. 여기서 얼음물은 부담스러웠다. 날도 흐려 햇볕도 나지 않은 데다가 한기가 파고들어 두툼하게 옷을 껴입었기 때문이다. 오늘은 코펠까지 준비해 와서 라면까지 끓여 먹었다. 더 보태어 커피까지 타서 마셨다. 산 높은 곳에서 마시는 뜨거운 커피 한잔, 정말 좋았다.

억새풀 넘실대는 주변 경관을 둘러보고 다시 꼭대기로 올라갔다. 아무리 보고 또 보아도 가지산과 그 주변 산, 산이 놀랍기만 했다. 얼마간 미적거리다가 하산하기 시작했다. 심심찮게 보이던 등산객들은 우리보다 앞서 내려가고 아무도 없었다. 텅 빈 가지산 정상 주변에는 까마귀들이 날아들고 있었다.

해는 짧아져서 일찍 어둠이 찾아들었다. 출발지점에 도착하니 땅거미 지더니 길 위에서 어둠이 출렁대고 있었다.

덧붙이는 글 | *등산코스
1코스(2시간30분)석남사주차장-불당-쌀바위-정상
2코스(2시간3분)석남사주차장-석남재-갈대밭골봉-정상
3코스(2시간)운모령고래-귀바위-쌀바위-정상



#가지산#등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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