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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정녕 꿈만은 아닐 것 같다. 한국음악이 일반 대중들의 정서를 사로잡고 세계인들의 이목을 끌 수 있다는 것이.

 

그 가능성은 지난 6일 개막한 전주세계소리축제의 몇몇 프로그램에서 확인되었다. 이제 중반을 넘어선 소리축제, 아직도 본질과 어울리지 않는 설왕설래는 많지만, 그 꿈이 결코 허황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 몇몇 기획프로그램에서 여실하게 증명되었다.

 

‘춤추는 춘향’처럼 판소리와 무용, 그리고 국악관현악단이 만나 전혀 새로운 연주형태를 시도함으로써 우리들 눈과 귀를 화끈하게 사로잡은 것도 있지만 판소리 집중기획 ‘명인명가’처럼 본래의 공연형태를 고수하면서도 우레와 같은 환호를 이끌어낸 것도 있다. 이들 모두 판소리 자체가 지니는 고도의 예술성이 전제되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이다.

 

이는 음악평론가 진회숙이 경계해마지 않은 ‘우리 것은 소중한 것이여’ 식의 맹목적인 내 것 사랑하기도 아니요, ‘우리 소리 우습게 보지마라’ 식의 피해의식에서 나온 평가도 아니다. 사라져가는 ‘옛것에 대한 인류학적 관심’에서 비롯된 당위적 판단은 더더욱 아니다. 고도로 세련된 연출과 연주 역량이 우리 전통음악 고유의 예술적 가치를 관객 누구나 느낄 수 있도록 해준 것일 뿐이다. 그것이 지닌 ‘드높은 예술성’이 ‘시대를 초극해 전통음악이 살아남을 수’ 있음을 입증한 것이다.

 

문제는 우리들의 감수성조차 이러한 예술적 가치를 향유할 준비가 덜 되어 있다는 것. 일제에 의해 자행된 우리문화에 대한 체계적 폄하작업을 이제 와서 다시 들먹이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다. 미군정 이후 서구문물의 무분별한 유입을 탓하는 것 또한 지금도 만연해있는 우리들의 무신경과 열등의식에 대한 변명에 불과하다.

 

여전히 ‘음악’은 서양음악이며 우리 음악은 ‘국악’이라 불린다. 제도교육에서 소외를 당하고 있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이에 관한 대중적 안내서 또한 미비하기 이를 데 없다. 기껏 있다는 것이 어려운 전문용어 범벅이요, 무조건 우리 음악이 최고라는 설익은 주장이 열등의식 내지는 피해의식과 묘하게 뒤섞여 있을 뿐이다.

 

‘진회숙의 국악 오딧세이’ <나비야 청산가자>에 주목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육자배기', '여민락', '청성곡' 등 우리의 대표적인 전통음악 15곡을 ‘물흐르듯 풀어낸’ 이 책은 우선, 낯설기만 한 ‘산조’, ‘가락’, ‘계면조’ 등의 의미를 생생하게 느낄 수 있게 해준다. 미사여구에 흐르지 않고 담담하게 우리음악의 예술적 가치를 손에 잡힐 듯 그려주고 있으며 감상자의 입장에서 그 느낌을 진솔하게 소개하고 있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이 책의 매력이다.

 

또 하나 반갑고 믿음직스러운 것은 기왕의 <클래식 오딧세이>에서 선보인 바 있는 저자의 웅숭깊은 인문학적 내공이 이 책에도 고스란히 서려 있다는 점이다. 이는 ‘전통음악이 그 자체의 아름다움으로, 그 자체의 예술적 가치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야 한다’는 저자 나름의 확고한 철학을 바탕으로 한 것이어 가능했겠지만, 그간 음악평론가로서 혹은 음악전문방송작가로서 쌓아온 탄탄한 경력도 크게 기여했으리라.

 

21세기 한국음악의 ‘새로운 르네상스’를 예견하고 있는 저자의 말이 허하게 들리지 않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 음악이 지니고 있는 풍성한 고유의 아름다움에 주목함으로써 그 화려한 개화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우리 음악의 매력에 빠져들고 싶은 일반 애호가는 물론 대중화를 표방하며 어설픈 ‘절충과 타협’을 자행하고 있는 한국음악 전공자들에게도 꼭 권하고 싶은 책이다.


나비야 청산가자 - 진회숙의 국악 오딧세이

진회숙 지음, 청아출판사(2003)


#책읽기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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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전주를 가장 한국적인 도시, 우리의 자랑스러운 전통문화가 살아숨쉬는 곳으로 만들어 가기 위해 애쓰고 있는 사람입니다. 오마이유스를 통해 우리 전통문화의 아름다움과 살기좋은 전주의 모습을 홍보하고 싶습니다. 아울러 제가 친구들에게 이메일을 통해 보내주는 음악편지도 연재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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