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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문장 대궐을 숙위하는 갑사 군사들. 사진은 특정 사실과 관계없는 재연 사진입니다.
수문장대궐을 숙위하는 갑사 군사들. 사진은 특정 사실과 관계없는 재연 사진입니다. ⓒ 이정근

양녕은 경덕궁을 나섰다. 말 그대로 단기(單騎)다. 시종하나 없고 호위하는 군사 하나 없다. 세자가 정문을 지나건만 대문을 시위하는 갑사들의 고개가 뻣뻣하다. 소 닭 보듯 세자에 대한 예가 없다. 궁을 나선 양녕은 십자로에서 오른쪽으로 꺾어 동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장패문을 통과하면 지름길이지만 숭인문을 지나고 싶었다.

한양에서 올 때는 수십 명을 거느리고 왔지만 돌아갈 때는 혼자다. 외롭지 않았다. 지나는 백성들이 세자의 행색이 초라하다고 수군대도 개의하지 않았다. 채찍을 가하지 않고 말이 가는대로 두었다. 달리는 것이 아니라 뚜벅뚜벅 걷는다. 그대로 내버려 두었다. 얼마가지 않아 사천(蛇川) 상류 개울에 걸친 선지교가 나왔다. 오늘날 선죽교다.

시렁돌을 만지는 순간, 온 몸이 전율했다

흙길에서는 몰랐는데 다리에 깔린 판석과 부딪치는 말발굽소리가 날카롭다. 돌과 쇠가 부딪치는 소리. 경쾌하면서도 예리하다. 강(强)과 강이 충돌할 때 나는 특유의 소리다. 말에서 내렸다. 시렁돌이 오늘따라 무덤의 망주석처럼 보였다. 시렁돌을 어루만졌다. 정몽주의 숨결이 들리는 듯했다.

'고려의 충신을 척살하고 새나라를 세운 아버지는 지금 행복할까?'

망령된 생각이지만 자신에게 물었다. 아닐 것만 같았다. 권근의 청에 의하여 정몽주를 영의정에 추증하고 괴로워하던 부왕의 모습이 아련한 기억 속에 떠올랐다. 그렇다면 왜 죽고 죽여야 하나? 회의가 들었다. 고개를 들어 다리 저편을 바라보았다. 선지교 옆 양지바른 곳에 이름 모를 비석이 하나 있었다. '죽어서도 아들을 지키겠노라'는 정몽주 모친의 소망에 따라 선지교 옆 양지바른 곳에 세워진 비석이었다.

노모의 눈물일까? 비석이 촉촉이 물기에 젖어 있었다. 비석을 어루만졌다. '까마귀 노는 골에 백로야 가지마라'며 아들의 손을 붙잡던 노모의 손길이 느껴지는 것만 같았다. '성낸 까마귀 너의 흰빛을 시샘하나니 맑은 물에 고이 씻은 몸 더럽힐까 하노라.' 아들을 사랑하는 노모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만 같았다. 순간, 뜨거움이 가슴깊이 전해져 왔다. 전율이었다.

선죽교. 북한 화가 전시회가 열렸던 밀알미술관에서 홍철용의 작품을 촬영했다.
선죽교.북한 화가 전시회가 열렸던 밀알미술관에서 홍철용의 작품을 촬영했다. ⓒ 이정근

타인의 가슴에 뜨거움 전하는 것이 진정한 사랑

"이 뜨거움을 정몽주는 알고 있을까?"
모를 것만 같았다.

"내가 느끼는 이 뜨거움을 포은이 모른다면 이 뜨거움의 정체는 무엇일까? 자식을 사랑하는 모친의 깊은 마음을 정몽주가 모르듯이 나 또한 아버지의 깊은 사랑을 모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아버지의 뜨거운 자식 사랑을 나 혼자만 차갑게 느끼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아니라고 도리질 하고 싶었다.

숭인문에 올라섰다. 숭인문은 개성의 동대문이다. 발아래 시가지가 한눈에 들어온다. 개성은 양녕이 태어나고 자란 고향이다. 다시는 못 볼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고개를 들었다. 시야에는 웅장한 산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었다. 신령스러운 산 송악이다. 송악산 역시 세자의 신분으로 다시는 못 볼 것만 같은 생각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잘있거라 송악산아."

말에 올라 자꾸만 뒤돌아 봤다. 송악산이 눈에 밟힌다. 길을 재촉했다. 호위하는 군사 하나 없다. 홀홀단신이다. 중로에 객관에 들어도 반겨주는 이 없을 것이다. 해가 저물기 전에 한양에 들어가야 한다. 진봉산을 뒤로하고 얼마가지 않아 매추포다. 이제 반식경만 가면 임진강이다. 이윽고 임진 나루에 도착했다.

나루터가 왁자지껄 소란스럽다. 벽란 나루에 당화선(唐貨船)이라도 들어왔나 보다. 짐 보따리를 등에 진 부보상들이 먼저 나룻배에 오르려고 아귀다툼이었다. 명나라에서 들어온 귀한 물건을 한양에 먼저 가져간 사람이 값을 더 받을 수 있으니 부보상들의 눈에 핏발이 설 수밖에 없다.

부왕의 명령, "세자를 세자답게 예우해 주지 말라"

양녕은 말에서 내렸다. 견마잡이도 없다. 스스로 말을 끌고 뱃전으로 향했다. 먼발치에 철릭을 번쩍거리는 도승관이 지켜보고 있다. 환도를 찬 군사들이 서성거리지만 가까이 다가와 머리를 조아리는 사람 하나 없었다.

"세자를 이렇게 대우해도 되는 것이냐?"

호통을 치고 싶었지만 마음을 접었다. 차라리 아는 채 하지 않은 것이 편했다. 다가와 굽신거리지 않은 것이 오히려 좋았다. 백성들의 불편은 차치하고서라도 혼자 내버려 두는 것이 좋았다.

양녕이 개성을 떠나던 그 순간 태종은 병조에 엄명을 내렸다.

"도승관은 세자에게 편의를 제공하지 말라. 유도(留都)한 병조진무소(兵曹鎭撫所)는 세자가 세자전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하라."

도승관(渡丞官)에게 왕명이 즉각 하달 된 것이다. 한양에 있는 병조진무소는 세자전을 숙위하는 숙위사(宿衛司)에 명하여 세자의 입궁을 제지하라는 명이다. 세자를 한양으로 추방하면서 세자전에 들이지 말고 별도의 지시가 있을 때까지 사가에 머물도록 하라는 것이었다.

양녕이 나룻배에 올랐다. 모두들 하나같이 힐끔거리며 쳐다봤다. 장사꾼 같지도 않고 사대부집 자제 같지도 않은 행색이 시선을 끌었다. 비록 세자의 관모와 요대는 하지 않았지만 범상치 않은 풍모가 풍겼다. 허나, 단기(單騎)다. 고을 사또의 아들이라도 혼자 갈 리가 없다. 양녕을 바라보는 모든 사람들의 모습이 아리송하다는 표정이다.

계급사회에서의 직책과 등급의 가시적인 모양새는 주변에서 조성한다. 높은 사람이 행차하면 시위하는 사람이 앞뒤에서 분위기를 띄우고 장본인은 거들먹거리며 지나간다. 요즈음은 비서진과 경호원이 그 임무를 대신한다. 머리를 조아리는 사람이 많을수록 높은 사람으로 인식한다. 그것이 계급이다.

높은 사람이 혼자 저잣거리에 서있으면 아무도 그를 알아보지 못한다. 오늘날 대통령과 위원장도 마찬가지다. 신변보호에도 목적이 있지만 경호원들이 앞뒤에서 설쳐대며 분위기를 잡아가고 계급의 틀을 마련해 준다. 이러한 고정관념에 사로잡힌 백성들에게 혼자 나룻배에 오른 젊은이가 세자라는 것은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다.


#세자#양녕#태종#나룻배#숙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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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事實)과 사실(史實)의 행간에서 진실(眞實)을 캐는 광원. 그동안 <이방원전> <수양대군> <신들의 정원 조선왕릉> <소현세자> <조선 건국지> <뜻밖의 조선역사> <간신의 민낯> <진령군> <하루> 대하역사소설<압록강>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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