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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뉴먼트 밸리 그리고 애마 로페카.
 모뉴먼트 밸리 그리고 애마 로페카.
ⓒ 문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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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부터 나바호 원주민의 전통 집인 남성용 호건(Hogan), 여성용 호건, 바람의 귀, 태양의 눈. 여성호건 내부엔 아무것도 없으나 남성용 호건엔 관광객들에게 팔 목적으로 여러 가지 물건들이 진열되어 있다.
 위로부터 나바호 원주민의 전통 집인 남성용 호건(Hogan), 여성용 호건, 바람의 귀, 태양의 눈. 여성호건 내부엔 아무것도 없으나 남성용 호건엔 관광객들에게 팔 목적으로 여러 가지 물건들이 진열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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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땅 끝까지 가 보았네
물이 있는 곳 끝까지도 보았네

나는 하늘 끝까지 가 보았네
산 끝까지도 가 보았네


하지만 나와 연결되어 있지 않은 것은
하나도 발견할 수 없었네


- <나바호 족의 노래>

로린(Lorin). 24세라고? 34세가 아니고? 어쨌든 '러베이'라는 아주 예쁜 딸을 둔 한 집안의 가장. 차만 제외한다면 전형적인 나바호 인디언의 삶을 영위하지만 그는 소위 '투 잡(Two job)'을 하고 영어도 유창하게 하는 실력파 인디언입니다.

하지만 그는 도시 생활을 포기하고 모뉴먼트 밸리 바로 근처의 큰 바위(Big Rock) 옆에서 생활합니다.

모뉴먼트 밸리가 나바호 인디언들에게는 거룩한 성지나 다름없기도 하지만, 그가 이렇게 사는 데에는 사실 그의 집이 인디언 관광투어의 핵심이 되는 모텔로 관광객들에게 공개됐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대개 그룹으로 오는 손님들은 마을에 유이하게 있는 그의 집과 그의 친척집을 방문하며 그들이 취급하는 수공예품을 사 가는 걸로 로린은 생계를 이어갑니다.

"수도·전기... 그게 꼭 필요한가요?"

지난 9월 5일, 도로에서 비포장 길로 들어와 다시 20여분을 달려 밤늦게 도착한 로린의 집. 전기도 물도 없이 생활하지만 가족들 모두 큰 불편은 없는 듯 보입니다.

"호건(hogan)에서 하룻밤 자야할 것 같아요."

알고 보니 이미 그의 집은 제가 자리를 차지해 누울만한 공간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는 랜턴에 의지해 집에서 20여m 떨어진 호건까지 안내해 줍니다.

'호건'은 원추형(圓錐形)으로 삼각형의 골조에 백향목(Cedar) 통나무를 걸치고 그 위에 다시 돌이나 통나무, 잡목을 얹고 잔디나 흙으로 덮어 만든 것이며, 중심에는 화덕을 설치하고 아궁이와 굴뚝이 있는 인디언의 전통 주거공간입니다.

8각형으로 건축되어진 내부에는 빗살과 격자무늬로 그들만의 미를 드러냈습니다. 이 특별한 공간이 이제는 생경스런 체험을 원하는 관광객이 75달러를 지불하고 하룻밤 자는 곳으로 바뀌어 버렸습니다. 그들의 전통가옥이 자본주의 앞에 순순히 혹은 어쩔 수 없이 문을 열어젖힌 것입니다.

마치 몽골의 '게르'를 연상케 하는 이 공간에서 땅바닥에 양가죽시트만 깔아놓은 채 잠을 청합니다. 풀벌레들이 우는 소리가 전기적 신호로 바꾸어 신경을 통해 대뇌에 전달되지 못하고 자꾸 가슴으로 내려옵니다.

호건의 내부 모습. 양가죽 시트로 된 지난 밤의 잠자리. 양가죽시트 위에 있는는 예이베체이라는 기념품으로 $400 이상의 고가다.  세번째 사진은는 드림 캐처라는 수공예품. 베게에 놓고 자면 좋은 꿈을 꾼다고 한다. 마지막 사진은 유카 뿌리. 머리 감을 때 머리를 문지르는 데 쓴다.
 호건의 내부 모습. 양가죽 시트로 된 지난 밤의 잠자리. 양가죽시트 위에 있는는 예이베체이라는 기념품으로 $400 이상의 고가다. 세번째 사진은는 드림 캐처라는 수공예품. 베게에 놓고 자면 좋은 꿈을 꾼다고 한다. 마지막 사진은 유카 뿌리. 머리 감을 때 머리를 문지르는 데 쓴다.
ⓒ 문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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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죽으면 땅으로 다시 돌아가 한 줌 흙이 될 터인데 쿠션 좋은 침대에서보다 눅진한 맨 땅에서의 잠이 어쩐지 더 편하게 느껴지네요. 나고 또 가야할 공간을 내 몸이 먼저 알아챈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다음 날 아침, 대야에 퍼다 놓은 물로 고양이 세수를 하고 아이스박스에 담가 놓은 수박으로 아침 식사를 했습니다.

"로린, 전기 안 써요? 근데 수도는 어디 있어요? 불편하지 않아요?"

연거푸 이어지는 의아한 질문에 러베이를 품에 안고 그저 미소만 짓는 로린이 말합니다.

"우린 그런 거 없이도 생활할 수 있어요. 지금까지 그래 왔고 앞으로도 그럴 거에요. 크게 불편한 점이 없거든요.

우리는 괜찮은데, 사람들이 자꾸 '우리가 불편하지 않냐'고 물어보더라고요. 전기와 수도 설치보다 대대로 가족이 지내온 이곳이 전 더 좋아요. 부유한 건 아니지만 지금에 만족합니다."

아차, 왜 나의 삶의 방식으로 그의 삶의 영역을 재단하려 했던 것인지…. 세상적 가치관으로 점철된 물질의 집착을 버리고 나온 길인데 여전히 씻겨내지 못한 천박한 자본주의의 찌꺼기가 내 안에 남겨진 것을 보고 아직 멀었단 생각이 듭니다.

얼쯤해진 난 로린에게 고개를 끄덕거려 보이며 웃어보였습니다. 다른 표정으론 왠지 나의 우둔한 생각을 들켜버릴 것만 같았기 때문입니다.

아기를 흔들 때 쓰는 요람 판(Cradle board)을 들고 있는 로린. 윗쪽의 두 봉우리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상징하고 밑부분은 땅을 상징한다. 그리고 U자형은 무지개를 상징한다.
 아기를 흔들 때 쓰는 요람 판(Cradle board)을 들고 있는 로린. 윗쪽의 두 봉우리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상징하고 밑부분은 땅을 상징한다. 그리고 U자형은 무지개를 상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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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사암석이 주는 끝없는 감동, 모뉴먼트 밸리

로린이 가이드로 나서고 모뉴먼트 밸리 및 나바호 인디언 유적지 투어에 나섰습니다. 우리가 가는 길의 맞은편에서는 이른 아침부터 적지 않은 관광객들이 투어버스를 타고 로린의 집을 찾습니다. 그런데 보니 난 로린의 트럭을 타고 1:1로 편하고 자유롭게 돌아다니고 그들은 정해진 룰에 따라 투어버스 패키지로 움직입니다.

게다가 가끔 험한 비포장길을 무모하게 승용차로 도전하는 사람들도 눈에 띕니다. 나바호 자치구역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로 비포장에 대해 손을 대지 않는다고 하는데 실은 접근의 용이성을 차단시켜 투어버스를 이용하게끔 유도해 관광수익을 올리려는 속셈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 점에서 차로 제법 먼 거리까지 가이드를 자청한 로린에게는 미안함과 고마움이 동시에 교차됩니다. 

바위에 새겨진 벽화. 오래전 그려진 것으로서 원주민들이 이런 모양의 동물을 길렀거나 사냥을 했을 가능성을 유추해 볼 수 있다.
 바위에 새겨진 벽화. 오래전 그려진 것으로서 원주민들이 이런 모양의 동물을 길렀거나 사냥을 했을 가능성을 유추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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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바위(Big rock)옆에 사는 로빈의 집. 하루 500~1000명이 방문하는 이 곳이 나바호 유적지의 관광투어의 핵심 루트가 된다.
 큰 바위(Big rock)옆에 사는 로빈의 집. 하루 500~1000명이 방문하는 이 곳이 나바호 유적지의 관광투어의 핵심 루트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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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뒤로 걸어 막연한 아주 오래 전의 기억을 끄집어 낼만큼 신비로운 대지의 울림을 가져다주는 붉은 평원. 선조의 숭고한 얼이 살아 숨 쉬는 나바호 원주민의 성지이면서 동시에 백인들의 서부 개척시대를 대변해 살벌한 피바다를 이룬 정복 전쟁을 용감한 프론티어 정신으로 재해석한 영화의 배경이 되는 곳.

원주민의 눈물을 말려야 했던 태양의 눈부심과 개척자의 심장을 호도시킨 바람의 숨소리가 결코 도식화될 수 없는 멈추지 않는 역사를 만들어 내고 있는 땅. 그 끝없는 황야 위에 한 떨기 생명체로 서 있는 나 그리고 모뉴먼트 밸리(Monument valley).

드디어 꿈에 그리던 모뉴먼트 밸리에 오게 되었습니다. 오래도록 침식과 융기가 가져온 붉은 사암석의 현란한 장관에 감탄하고, 석회동굴로부터 전해지는 천 년 전의 이름 아나사지(anasazi)의 역사와 전설에 대해서도 신기해하고, 첨탑처럼 뾰족 솟아있는 갖가지 기기묘묘한 형태의 모래바위를 바라보며 대자연의 신비에 또 감동하고….

세 자매 바위.
 세 자매 바위.
ⓒ 문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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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흠뻑 감동에 빠진 이 모습을 사진작가 Josef Muench에 의해 70여 년 전에 처음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얼마나 경외감에 사로잡혔던지 그 이후 무려 354번이나 다시 이곳을 찾았다고 합니다. 덕분에 후대에 전해지는 대표적인 사진을 많이 남겼다지요.

그러나 이런 경외감도 더 이상 그 때 그 처음의 감흥을 유지하고 못하고 있습니다. 분명 모뉴먼트 밸리 지역은 그들의 가슴에 자부심 그득한 전설을 만들어 주고 그들의 존재 이유를 대변해 주고 있는 듯이 보입니다. 하지만 연방정부의 보조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삶은 좀처럼 궁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그러면서 자꾸 그들의 초상권과 터가 외지인의 이질적인 문화경험욕구를 충족시키는 돈벌이 가치로 전락해 가는 모습에는 씁쓸해 지기도 합니다.

"너무 고마워요. 관광객들도 맞아야 할 텐데 나 때문에 시간도 오래 걸리고. 덕분에 정말 잘 구경했어요. 정말 멋진 투어였어요."

그의 순박한 친절에 대해 진심으로 고마움을 전했습니다. 그는 이런 내 칭찬이 어색했던지 한 마디만 던지고는 시선을 바위들 쪽으로 돌려 수줍게 웃어버립니다

"당신은 나의 VIP니까요."

VIP라. 내가 어째서 그의 VIP겠습니까? 후줄근한 자전거 여행자를 맞아준 그의 마음이 호수처럼 넓어 내가 첨벙 뛰어들어 편하게 지낼 수 있었던 것이지요. 친구라는 말을 이들은 '나의 슬픔을 등에 업고 가는 사람'이라는 기가 막힌 명문으로 정의합니다. 로린은 어쩌면 고단한 나의 짐을 자신이 들어주기 위해 어젯밤 나를 불러 기꺼이 친구가 되려했던 것이겠지요?

끔찍하게 사랑하는 사람과 가야할 곳, '애리조나 사막'

대표적인 뷰포인트에서 바라본 모뉴먼트 밸리. 끝없이 펼쳐진 붉은 황야에 세 개의 거대한 바위가 우뚝 솟아 있어, 이곳에 아무런 전설도 깃들지 않았을꺼라는 생각을 감히 가지지 못할 만큼 경이롭다.
 대표적인 뷰포인트에서 바라본 모뉴먼트 밸리. 끝없이 펼쳐진 붉은 황야에 세 개의 거대한 바위가 우뚝 솟아 있어, 이곳에 아무런 전설도 깃들지 않았을꺼라는 생각을 감히 가지지 못할 만큼 경이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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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자전거 여행가 이시다 유스케가 그 경이로움에 빠져 그 자리에서 3일간이나 머물렀다는 모뉴먼트 밸리. 그 때 그 감흥을 바람이 나에게 전해주는 것 같다.
 세계적인 자전거 여행가 이시다 유스케가 그 경이로움에 빠져 그 자리에서 3일간이나 머물렀다는 모뉴먼트 밸리. 그 때 그 감흥을 바람이 나에게 전해주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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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 지면을 배회하며 자비롭게 그림자를 던지는 하얀 구름 위로 태양의 각은 서서히 무뎌지며 온아한 대형을 연출하고 있습니다. 모뉴먼트 밸리 투어가 끝난 후 로린은 다시금 자신의 차로 그 먼 길을 되돌아가 어젯밤 나를 불렀던 그 장소로 데려다 주었습니다.

하룻밤 사이 마치 초현실세계를 경험한 것처럼 여전히 흥분이 가라앉지 않고 있었습니다. 로린 이 친구 혹시 사람의 가면을 쓴 천사가 아닌가 맹랑한 생각이 됩니다. 언젠가 그가 그리워 다시 와보면 그런 친구가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았다는 말을 들을 것 처럼요. 그렇기에 다시 오기 힘들 것 같아 그곳에 마음을 두고 왔습니다. 그게 추억입니다.

이쯤 되고 보니 처음 말했던 애리조나 사막에 얄미운 사람 떨어뜨려 놓자는 말을 손바닥 뒤집듯 바꾸어야겠습니다. 혹시 당신이 끔찍하게 사랑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비장한 표정으로 애리조나 사막에 데려다 주시기 바랍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광이 펼쳐지는 황금대지 위로 말이죠. 물론 이 아름다운 여정에 당신도 함께여야겠습니다.

모뉴먼트 밸리에 나바호 원주민이 거주하게 된 계기
경이로운 모뉴먼트 밸리.
 경이로운 모뉴먼트 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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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대 이른바 아메리카 합중국에 의한 인디언 섬멸작전이 대규모로 진행되면서 나바호 인디언들의 불행하고도 슬픈 역사가 펼쳐지게 된다. 당시 벌어진 크고 작은 전투로 나바호의 전사들이 대부분 섬멸되고 무려 1만여 명에 이르는 대규모 포로들이 뉴멕시코 주의 합중국 포로수용소로 끌려가게 된다. 그들은 장장 350마일, 560km, 즉 1천4백리를 비참하게도 맨발로 끌려갔다. 합중국 대표이던 셔먼 장군은 이들과 협상에서 3곳의 선택권을 주었다. 동부의 비옥한 초지와 포로수용소 인근의 목초지 그리고 마지막으로 제안한 곳이 바로 죽음의 사막 모뉴먼트 밸리였다. 그러나 아이러니컬하게도 나바호족들은 서슴지 않고 이곳을 택했다. 백인들의 관점에서 보면 악마의 땅이었지만 그들에게는 조상들이 점지한 선택받은 땅이었던 셈이다.

출처- 대한항공 기내지 <Morning Calm>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뉴스파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세계 자전거 비전트립 홈페이지는 http://www.vision-trip.net 입니다.



태그:#세계일주, #까탈이, #세계여행, #자전거, #문종성, #미국횡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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