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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안과 김억만은 끊임없이 먼 길을 걸어갔다. 첫날밤 이후 청안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말을 하지 않았다. 그들은 배고프면 마을에 들러 노래를 불러 먹을 것과 잠자리를 얻었고 그마저도 어려우면 하루 종일 굶은 채 길을 가기도 했다.

 

하루, 이틀, 사흘...... 열다섯 날을 센 이후에 김억만은 날짜를 세는 것조차 무감각해지고 말았다. 잠들기 전 밤하늘의 달을 보며 겨우 떠나온 날을 짐작이나 할 수 있을 따름이었다.

 

물 한 모금 얻을 수 없는 곳을 지날 때는 김억만은 죽지 않기 위해 걸어야 했다. 그가 지니고 다니던 화승총은 이미 버린 지 오래였고 입고 있던 옷은 헤지고 더러워져 누더기나 다름없게 되었다. 청안도 별 다를 바 없었지만 이상하게도 눈에서는 더욱 빛이 나고 있었다. 김억만은 왜 이런 길을 가야하는지 의문이 들면 청안의 얼굴을 바라보고는 했다. 청안의 눈은 그런 의문에 대해 해답을 던져 주고 있었다.

 

-돌려주어야 할 것이 있어. 그렇기에 넌 꼭 가야해.

 

청안이 요구하는 건 어찌 보면 무조건 적인 사랑과 집착이었다. 대게가 다 그럴 터였지만 특히 부모의 사랑을 거의 받아 본 적이 없고 일찌감치 사냥으로 생계를 연명해온 김억만으로서 이는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돌려주어야 할 거......?”

 

어느 날인가 김억만은 부적으로 여기고 품속에 지녀온 호랑이 꼬리를 만지작거렸다.

 

“혹시 이건가?”

 

청안은 호랑이 꼬리를 보고 눈만 깜박일 뿐이었다.

 

“그래 뭐 눈에서 시퍼런 불이 떨어지는 호랑이도 불 하나에 쏘아 잡은 난데 뭐가 어려울 게 있어!”

 

말은 그러했지만 길은 갈수록 험해졌고 먹을 것을 제대로 얻을 수 있는 마을마저 점차 뜸해지고 있었다. 며칠동안 웅덩이에 고인 물만 겨우 마시고 견디며 가는 일이 반복되는데도 굶어죽지 않는 게 김억만 스스로도 신기할 지경이었다. 나중에 김억만은 굶주림으로 인해 가리는 것이 없게 되었다. 나무껍질을 벗겨서는 씹고 다니는 건 일상사였고 아무 버섯이나 눈에 보이면 독버섯인지 따지지도 않고 닥치는 대로 따서는 입에 쑤셔 넣었다. 어떨 때는 청안이 뭘 먹는지 김억만은 안중에도 없었다. 그럴 때는 다만 멀쩡히 걸어 다니는 것으로 봐서 청안이 괜찮거니 하는 정도로만 인식할 따름이었다.

 

김억만의 눈에는 언젠가부터 환각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것이 굶주림으로 인한 것인지 청안의 눈빛에 홀려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함부로 따서 먹은 버섯으로 인한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굶주림과 거친 음식으로 인한 육체적인 고통은 이미 김억만은 느끼고 있지 못하고 있었다.

 

김억만의 눈앞에는 끝없는 바다가 펼쳐져 있었다. 그 바다위에는 그 동안 김억만이 사냥해 왔던 온갖 짐승이 뛰어놀고 있었다. 토끼가 자맥질을 하며 모습을 드러내었다 사라졌고 꿩이 물속에서 튀어나와 햇살에 물보라를 반짝이며 훨훨 날아오르기도 했다. 김억만이 쏘아 잡은 호랑이는 꼬리가 없는 채로 바다 위를 뛰어 다니고 있었다. 그것들은 모두 김억만이 가까이 있는데도 김억만을 무시하며 멋대로 돌아다닐  따름이었다. 김억만은 두려운 마음이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짐승들이 자신을 안중에도 두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 괘씸하게 여겨졌다.

 

“이놈들!”

 

김억만이 소리를 지르자 짐승들은 불타는 눈으로 김억만을 쏘아보았다. 그 순간 김억만의 머릿속에서 죽음이라는 단어가 맴돌았다.

 

“여기야.”

 

갑자기 김억만의 눈앞에는 끝이 보이지 않는 호수가 펼쳐져 있었다. 숲이 우거진 주위의 풍경만 아니라면 바다라고 해도 믿을 지경이었다.

 

‘바다와 같은 호수.’

 

김억만은 자신의 머릿속에서 북쪽의 바다와 같은 호수에 대해 아련한 기억을 떠올렸다.

 

“이제 어쩌지?”

 

김억만은 청안에게 구원을 청하듯 물었다. 청안은 대답대신 손을 들어 숲 속을 가리켰다. 그곳에서 형편없는 몰골에 누더기를 걸친 자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는 바로 사구조다였다.

 

덧붙이는 글 |
1. 두레마을 공방전   
2. 남부여의 노래      
3. 흥화진의 별      
4. 탄금대      
5. 사랑, 진주를 찾아서 
6. 우금치의 귀신      
7. 쿠데타 


#나선정벌#바이칼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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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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