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인터넷으로 빼앗긴 정권, 인터넷으로 되찾겠습니다. 지금이 바로 그 시간입니다.”

 

이명박 후보의 홈페이지에 게재된 홍보 동영상에 나왔던 문구였습니다. 얼핏 보면 맞는 말 같습니다. 하지만 의아한 부분도 있습니다.

 

“빼앗겼다”는 부분입니다. 국민의 투표에 따른 결과로 노무현 후보가 당선되고 이회창 후보가 낙선된 것인데, “빼앗겼”다는 주장을 한다는 것이 영 보기 거슬립니다.

 

물론 자신의 지지자들을 향한 어필일 것입니다만, 공당의 대선후보 홈페이지에는 다른 정당 지지자이나 무당파 유권자들도 언제든 찾아갈 수 있는 공적인 공간입니다. 이런 마인드는 가급적 지양하길 바랍니다.

 

어쨌든 중요한 것은 저 발언의 진의입니다. “빼앗겼다”는 말에는, 2002년 대선에서의 노무현 후보 승리 원동력 중 하나가 ‘인터넷’이었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는 것이고, 그만큼 인터넷 진지 구축을 심각하게 고민해보겠다는 뜻일 것입니다.

 

자, 그렇다면 여기서 이명박 후보, 그리고 한나라당이 인터넷에서 ‘어필’할 수 있을지, 같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갖는 것도 필요할 것입니다. 인터넷 정치웹진에서 여러 누리꾼들과 같이 굴러 본 경험도 있는 저이니, 어느 정도는 도움이 될 것입니다.

 

이명박 후보는, ‘매력적’인가

 

확실히, 2002년 대선 당시의 정치웹진은 ‘노무현’이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움직였습니다. 그때부터 일관적으로 ‘친노’를 표방하는 <서프라이즈>는 아직도 정치웹진 사이트 중에서 부동의 1위를 지키고 있습니다.

 

열린우리당 창당이나 대북송금 특검 등, 당파성에 따라 갖은 분열의 과정이 있었고, ‘청와대 향응 제공’과 같은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습니다만, 노무현 대통령의 지지율이 낮은 상황에서도 ‘부동의 1위’를 지키고 있는 원인을 짚어볼 필요는 있을 것입니다.

 

참고로 장사 잘 되는 정치웹진 사이트에서는 저마다 ‘매력적’인 중심 인물이 있었습니다. <서프라이즈>는 노무현 대통령이 직접 글을 읽는다는 소문과 함께 친서까지 보내는 등, 각별한 애정을 표하면서 활동하던 중심 논객들까지 유명해지는 효과가 있었죠.

 

<서프라이즈>에서 <동프라이즈>를 거쳐 <남프라이즈>로 뭉친 강경 민주당 지지자들은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한 광적인 애정을 표하면서 선명성을 자랑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민주노동당을 비판적으로 지지하는 모임’임을 내걸었던 <진보누리>도 유명 논객 진중권이 직접 글을 쓴다는 이유로 호황을 누리기도 했습니다.

 

노무현, 김대중, 진중권. 물론 ‘안티’도 많은 분들이지만, 저마다 확고한 개성과 매력을 갖고 있는 인물들입니다. 지지자들과 함께 ‘원정나온’ 반대자들까지 뒤섞어 거친 말들이 오가면서까지 격렬한 논쟁을 벌입니다. ‘장사’는 자연히 잘 되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범여권’ 계열 정치웹진 사이트들이 이런 호황을 누리고 치열한 당파성 대결을 벌일 때, 한나라당 계열 정치웹진은 부진하기 이를데 없었습니다. 이명박 후보도 이걸 알고 나서야 위기감을 느끼고 ‘인터넷’을 주목했을 것입니다.

 

한나라당 계열 정치웹진은, 누리꾼 사이에서 부정적인 평이 오가던 신혜식의 <독립신문>이나, 조갑제 전 월간조선 사장의 <기자 조갑제의 세계> 등만이 버티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들도 나름 ‘팬’과 ‘안티’를 동시에 끌어안고 있던 분들입니다만, 젊은 누리꾼들 사이에서의 거부감이나 부정적인 인상이 더 강합니다.

 

그렇다면, 대선을 앞두고 한나라당 계열 정치웹진이 ‘진군가’를 불러줄 전초기지 역할을 성공적으로 수행해야 한다면, ‘이명박’이라는 공식 대선후보의 ‘매력’에 기대를 걸어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과연 통할 수 있을지 그게 미지수라는 것입니다.

 

이명박 후보의 압도적인 지지율, 사실 그리 튼튼하지 못합니다. 이명박 후보의 ‘대세론’은 과거 이회창 전 총재가 누렸던 ‘대세론’과 성격이 다릅니다. 이회창 총재는 오랫동안 한나라당을 장악하면서 당권과 대권을 자연스럽게 거머쥔 ‘거물’이었던 반면에, 이명박 후보에게 몰린 시선은 누구 말마따나 ‘묻지마 지지’에 가깝습니다.

 

단지, 이명박의 청계천에 잠시 눈을 돌렸다는 뜻이고, 노무현 정권에 대한 평이 좋지 않으면서 그에 대한 반감으로 깊이 고민하지 않고 모인 지지율이라는 뜻입니다. 상당수는 이명박 후보를 지지하거나 밀어줘야 한다는 이유를 논리적으로 거론하지 못할 사람들이 많다는 뜻입니다.

 

기껏해야 “이명박이 당선돼야 경기가 살아난다”는 막연한 믿음 하나인데, 하다못해 이회창 전 총재만 해도 ‘대쪽’이라는 확고한 본인의 매력과 이미지가 있었던 것입니다.

게다가, 이명박 후보는 개인적인 약점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습니다. 지금 ‘대결 상대’가 제대로 정해지지 않아서 그렇지, 서로 물고 뜯고 죽이는 본격적인 선거판이 시작되면, 그 약점 집요하게 파헤칠텐데, 정치의 살벌한 현장에 제대로 선 경험이 없는 이명박 후보가 과연 얼마나 버틸지 잘 모르겠습니다.

 

이래서야 그를 지지하는 ‘정치웹진’도 “노무현 대통령에게는 <서프라이즈>가 있다”는 이야기에서 알 수 있는 확고한 지지자들의 전초기지 역할을 수행하기 어려운 것입니다.

 

물론, 랭키닷컴 정치웹진 방문자 순위 10위 안에 들어가는 한나라당·뉴라이트 계열 정치웹진에 <엔파람닷컴>이나 <뉴라이트 폴리젠>이 있습니다만, 이들의 지지 역시 크게 굳센 편은 아닌 듯합니다. 그리고, 이들이 제 역할을 소화하지 못할 가능성에는 2002년과는 차원이 다른 환경의 탄생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정치웹진은 저물고, 이제는 ‘포털’과 ‘인터넷언론’의 시대

 

포털 사이트·블로그가 친숙해지면서 정치웹진은 사실상 정치토론의 주도권을 서서히 내놓게 됩니다. 포털 사이트 토론 게시판, 혹은 댓글 게시판과 같은 전방위적인 공간에서 직접적으로 ‘맞토론’을 하게 됐고, 블로그스피어에서 치열한 의견 개진을 벌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실질적으로 인터넷언론 시장을 주도하는 이들도 사실상 ‘반한나라당’ 성향이 강한 이들이 주로 모이는 곳입니다. 물론 뉴라이트들이 그에 맞대응하겠다면서 <데일리안>이나 <프리존뉴스> 등이 만들어졌습니다.

 

하지만 <데일리안>은 사실상 포털에서 통할 수 있는 ‘장사’가 뭔지 제대로 알고 스포츠·연예 부문에 치중하면서 정작 주요 목적이었던 ‘당파성 표방’은 그다지 통하지 않는 현실이고, <프리존뉴스>는 기사를 포털에 제공하지 못한다는 치명적인 한계가 있습니다.

 

<랭키닷컴>의 인터넷언론 방문자 집계 순위를 보면, <마이데일리>나 <고뉴스>와 같이 포털에 엔터테인먼트 관련 기사들을 집중 제공하는 언론이 부각됐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입니다. 이런 시대입니다. 이런 시대에, 고작 <데일리안>이나 <프리존뉴스> 정도로 ‘인터넷으로 정권 창출’이 가능할지 모르겠습니다.

 

물론 그동안 꾸준히 한나라당을 옹호해온 기존의 보수적인 종이신문들이 인터넷에서도 전방위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지만, 아무래도 오프라인만은 못합니다. 젊은 유권자 중심으로 안티가 넓게 분포해있는 면도 크죠. 궁금하시면 포털 사이트에 공급된 보수언론이 생산한 기사들 보세요. 해당 언론에 대한 누리꾼들의 비판과 욕설이 가득할 것입니다.

 

인터넷으로 정권 창출? 총체적인 인터넷 문화 이해 부족

 

이명박 후보에게는 안타까운 이야기지만, 포털사이트의 댓글 게시판에서 이명박 후보 지지한다는 이들의 댓글을 확인해보면 본인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상당수의 이명박 후보 지지 표명 누리꾼들은 ‘논리’가 없고, 뚜렷한 선전의 재능도 없습니다.

 

게다가, 앞서 이야기했듯이 그네들은 과거의 ‘노빠’들과 같이 충성도가 깊은 지지자들도 아닙니다. ‘묻지마 지지’를 표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논리’도 없고, ‘선전 재능’도 없는 것입니다.

 

이명박 후보에게 위기가 닥치면 등을 돌릴 사람이 있으면 있지, 같이 싸워줄 사람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게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얼마든지 부각될 수 있는 ‘박근혜’라는 또다른 대안도 있거든요.

 

게다가, “주요 포털의, 이명박 후보에 대해 편파적으로 우호적인 기사 배치 의혹” 등도 오히려 ‘안티 이명박’ 성향 누리꾼들의 결집을 굳게 해주는 효과가 있습니다. 이명박 후보가 주장한 “인터넷으로 정권 되찾아오겠다”는 말이, 얼마나 현실에서 벗어났는지 잘 보여주는 현상들입니다.

 

‘오래된 마인드’에서 비롯된 일들 투성이입니다. 인터넷의 속성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인터넷에서는 ‘부당한 권력 행사’, 혹은 ‘부당한 낌새’에 대해서 누리꾼들이 얼마나 민감하게 반응하는지, 그것부터 알아야 합니다.

 

언론의 유리한 보도를 보고 좋아할 때가 아닙니다. 역효과 납니다. 눈치껏 행동했으면 좋겠어요, 제발.

 

인터넷 탓하지 말고 반성부터 해야

 

반성부터 해야죠. 대한민국 헌정사상 선거 앞두고 이렇게 비리 의혹이 많은 후보는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터넷에 정권을 빼앗겼다”는 팔자 좋은 이야기만 하고 있으니, 황당하기만 합니다.

 

대통령되고 싶으면 자중하세요. 그리고 반성하세요. ‘마사지 발언’나 ‘마파도 발언’같은 어이없는 이야기나 할거면 그냥 말을 하지 마세요. 정 할 일이 없거든 ‘대운하 공약’에 대한 과학적 근거에 대해 더 고민해보세요.

 

어쨌든 50%에 육박하는 압도적인 지지율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위치가 불안한 후보가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신기합니다. 인터넷에 책임전가하지 말고 본인에 대한 의혹이 얼마나 많은 문제를 야기하고 있는지, 그런 고민부터 했으면 합니다. 인터넷? 거기 그렇게 만만한 공간 아닙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미디어다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이명박 발언#이명박#이명박 인터넷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