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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늦은 폭염으로 학생들 개학까지 연기되었다는 소식을 접한 지가 엊그제인데 어느 새 가을이 성큼 다가왔습니다. 한낮의 햇살은 아직 따갑지만 아침저녁으로는 선선한 바람이 불고 새벽에는 이불을 목까지 끌어올리고 자야 하는, 이른 가을입니다.

 

코스모스라도 볼까 해서 무작정 교외로 차를 돌립니다. 익산은 차로 20-30분 거리만 나가면 한적한 자연을 접할 수 있어 참 좋습니다. 복잡한 일상에서 잠시나마 숨을 고르고 싶을 땐 언제든 부담 없이 갈 수 있으니까요.

 

금빛으로 물들기 시작한, 초록 강아지풀이 가을 햇살을 받아 섬세하고 선명하게 빛을 뿜어냅니다.

 

고추인지 피망인지 모를, 요상한 모양의 열매가 시선을 끕니다. "화초고추여"라고 알려주는 마을 아주머니의 허락을 맡고 하나 따서 먹어보니 달짝지근 맛납니다. 끝까지 먹으니 알싸하고 매콤한 것이 고추가 분명하긴 하네요.

 

국도변을 따라 가지런히 피어있는 주황 코스모스가 가을의 한적한 도로와 잘 어울리는 것이 어쩐지 쓸쓸해 보입니다.

 

가을 길 따라 가을 햇살 따라 이름 모를 길들을 가다보니 어느 새 노을이 집니다.

 

싱싱한 아침의 태양과 타오르는 한낮의 태양을 거쳐 하루를 정리하며 마지막 정열을 불태우는 붉은 태양입니다. 해질 무렵의 태양은 유일하게 '노을'이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습니다. 노을은 가장 화려한 모습으로 사람들을 차분하게 만드는 묘한 재주가 있습니다.

 

전신주에 걸린 노을이, 달리는 길로 스치는 노을이, 산기슭을 뉘엿뉘엿 넘어가는 노을이, 시시각각 각기 다른 빛깔로 가을하늘을 물들이며, 한참 지나온 올 한해를 뒤돌아보게 합니다. 러고 보니 노을과 가을은 참 많이 닮아 있습니다.

 

거미줄처럼 엮인 전깃줄 틈에 노을이 걸려 있습니다. 잠시 신호대기 중입니다.


가속페달을 밟고 더 빨리 나아갈지, 방향을 틀어 좌회전을 해야 할지, 유턴으로 잘못 들어온 길을 되돌아 나갈지, 아니면 잠시 낯선 곳에서 머물다 갈지, 같은 신호를 받고 서있어도 그들의 행로는 천차만별입니다.


이 가을, 잠시 일상에서 벗어나 신호대기해 보는 건 어떨지요?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익산투데이, 익산직장인밴드카페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가을#노을#신호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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