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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전, 경기도 의왕의 한 공장에서 불이 나 공장에서 일하던 60대 할머니 6명이 참변을 당했습니다. 하루종일 유독 물질을 다루고 허리를 펴기도 힘든 상황에서도 손자 손녀에게 용돈을 쥐여주고 자손들 몰래 적금을 부어주려는 할머니들의 소박한 바람도 꺾여버렸습니다."

 

'일하는 노인들, 고단한 할머니'라는 제목으로 방송된 이날의 <취재파일 4321>은 이렇게 일하던 할머니들의 사고소식으로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는 변을 당한 할머니들의 남편과 아들 등 유족들의 인터뷰가 이어졌습니다.

 

"이거 우리 마누라 거네. 이거 우리 마누라 건데…."
"어느 노인네들이 무슨 생각이 있어서 저기로 뛰어 내리셨겠냐고. 뜨거우니까. 당장 뜨거우니까 그냥 뛰어내리신 거 아니겠습니까. 저희는 분통 터지는 게 그 얘기에요"


이제 와서 애타게 불러본 들 숨진 할머니들은 아무런 대답이 없었습니다. 이날의 방송내용은 평생을 노동에 희생하고도 또다시 자식들에게 짐이 되기 싫어 일터로 나가야 하는 노인들의 애환을 그려냈습니다.


특히 이날 방송에서는 공터 한 편에 마련되어 있는 가건물 안에서 자식들 몰래 천연 세탁비누를 만드는 할머니들, 40도에 육박하는 비닐하우스 안에서 모종을 화분에 옮겨 심는 할머니 할아버지, 인력소개소를 통해 일자리를 찾아나서는 노인 등 젊은 사람들이 기피하는 일자리를 노인들이 메우고 있는 우리 사회의 모습들을 통해 점차 고령화 사회로 진입하고 있는 우리 사회의 문제점을 진단했습니다.

 

일하는 노인들을 보고 무의식중에 고향을 떠올리다

 

이날의 방송을 보면서 무의식중에 왜 나의 뇌리 속에 고향이 떠올랐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아마도 환갑이 넘은 나이에 공장에서 일하다 변을 당한 할머니들이 고향에 남아서 고향을 지키며 일하고 살고 계신 부모님과 어르신들이 떠올랐기 때문일 것입니다.


지금 대한민국이 점점 고령화 사회로 접어들고 있다는 소식을 접할 때면 나는 항상 '우리 마을은, 아니 농촌은 벌써 고령화 사회가 되어 있는데' 하는 생각만 들곤 했었습니다.


농촌마을은 대부분의 젊은 사람들이 이미 고향을 떠나 도시로 진출함으로써 고령화 사회로 접어든 지 오래되었습니다. 그리하여 항상 농번기 때만 되면 일손이 부족하여 애를 태우고 있는 실정입니다. 특히나 부족한 일손도 농촌을 떠나 일을 할 수 있는 계층도 노인분들뿐입니다. 이러한 상황에 처해있다 보니 농사일은 전부 다 노인들의 차지이고, 게다가 용돈 벌이라도 할라 치면 부업으로 다른 공장에 다니거나 품삯을 받고 농사일하러 다니고 있습니다.


결국은 자식들 다 키워놓고 공부까지 다 시켜놓은 마당에 이제는 편히 쉬며 자식들의 보살핌을 받으며 살아가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자식의 눈치를 보며 자식에게 짐이 되기 싫어 자신의 용돈이라도 벌어쓰기 위해 계속해서 일을 해야 하는 처지에 놓여있습니다.

 

수욕정이 풍부지, 자욕양이 친부대(樹欲靜而 風不止, 子欲養而 親不待)

 

수욕정이 풍부지, 자욕양이 친부대(樹欲靜而 風不止, 子欲養而 親不待). "나무는 고요하고자 하나 바람이 그치지 아니하고, 자식은 부모님을 봉양하고자 하나 부모님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한씨외전(韓氏外傳)>에 나오는 유명한 말입니다.


이 말을 인용한 이유가 있습니다. 이날 방송에서는 변을 당한 윤순금씨의 아들이 바로 이 말을 뒷받침해주고 있었습니다.


지금은 비록 유서가 되어 있지만 윤순금씨가 생전에 적어놓은 종이쪽지 한 장이 발견되고 이를 읽던 아들은 가슴을 치며 후회합니다. 이 세상에 어머니라는 존재가 없어진 이상 땅을 치고 후회해 봤자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아들은 뼈저리게 후회합니다.


윤순금 할머니가 남긴 쪽지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습니다.

 

"휴가가 다가와도 반가운 것이 없다. 검진을 해놓고 이토록 마음이 조일까. 아이들한테는 말을 안 하고... 나쁜 쪽으로 가지 않고, 수술해서 10년만 내 생명 연장했으면 좋겠다. 지겨운 간암과 곁에서 같이 해야 할 사람 너무나 고통 많았다. 지금은 조금 호전되고, 경미 경석이 사랑하는 두 아이 바르고 건강하게 자라주는 게 고맙고, 감사하고 살았는데... 단 1년 내 생에 좋았다. 앞으로 좋은 일도 해야겠고 할 일이 있다. 나만 생각하고 주위 어려운데 베풀지 못했다."

 

어머니의 고통이 무엇인지 몰랐고 살아오면서 단 1년만 좋았다는 말에 가슴이 아프다는 아들. 자식 앞에서는 강해 보이지만 아무도 보지 않는 구석 한 편에서 혼자 쓰린 가슴을 움켜잡고 고통을 참아내며 한결같은 모습을 보이시는 것이 우리의 어머니상이었습니다. 뒤늦은 후회를 한다 해도 한번 가신 분은 우리 곁으로 돌아오지 않습니다.

 

고령화 사회, 과연 노인들이 갈 곳은 어디인가?

 

국제연합(UN)은 65세 이상 노인인구 비율이 전체 인구의 7% 이상을 차지하는 사회를 고령화 사회라고 규정지었습니다. UN은 또 65세 이상 노인인구 비율이 14% 이상이면 고령사회, 21% 이상이면 초고령사회로 구분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지난 2005년 통계청이 발표한 자료를 기준으로 볼 때 65세 이상의 인구가 전체 인구의 9.1%를 차지해 이미 고령화 사회에 진입했습니다.


통계청은 기대수명 연장 및 출산율 감소로 2018년경이면 노인인구의 비율이 14.3%로 본격적인 고령사회로 접어들 것으로 전망하고 있으며, 이런 식으로 계속해서 노인인구가 증가된다면 고령사회로 접어든 지 채 10년도 지나지 않아 2026년에는 20.8%로 본격적인 초고령사회에 도달할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내가 자라던 80년대만 해도 환갑잔치를 성대하게 치루었으나, 요즈음은 환갑잔치는 가족끼리만 오붓하게 식사하는 것으로 끝나고 심지어는 칠순잔치까지도 조촐하게 넘어가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렇다 보니 시골마을에서는 50∼60대가 가장 젊은 축에 끼어 마을 일을 다 돌보고 있으며, 마을의 제일 어른인 노인회장은 70∼80대의 연령층에서 직책을 맡아 일을 보기도 합니다. 특히, 도시에서는 방송에서 나온 것처럼 노인들이 살아남기 위해서 60이 넘은 나이에도 치열한 직업의 전선에 뛰어들어 위험을 무릅쓰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지금도 상황이 이러한데 본격적인 고령화 사회에 진입하게 된다면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는 것은 자명한 일입니다. 그렇다면 노인문제를 손만 놓고 관망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국가, 사회단체 등 모든 기관과 단체가 나서 총체적인 대책을 세워 위기를 극복해 나가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세상을 바라보는 균형 잡힌 창'을 모티브로 성역 없는 비판과 고발을 통해 밝고 투명한 사회를 만드는데 기여하고자 기획했다는 <취재파일 4321>. 지금처럼 사회의 밝고 어두운 면에 대한 다양한 기획을 통해 앞으로도 시청자들에게 유익한 정보 제공은 물론 시청자들이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거듭나길 기대해 봅니다.

덧붙이는 글 | 2기 티뷰기자단 응모글


태그:#취재파일4321, #고령화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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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의 지역신문인 태안신문 기자입니다. 소외된 이웃들을 위한 밝은 빛이 되고자 펜을 들었습니다. 행동하는 양심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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