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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오전에 낫을 두 자루 숫돌에 갈아 자전거 뒤에 묶었다. "어머니 논에 갔다 올게요" 하고 마루에서 넙죽 절을 드렸다. 어머니가 묻는다.


"논두렁 깎으로 가나?"
"예. 논두렁도 깎고요, 팥 심은 데 풀도 좀 뽑구요."


자전거를 몰고 나오려는데 어머니가 하시는 말씀이 있었다. 말 내용도 그랬고 더욱이 말투가 인상적이어서 논에 일을 하면서 곰곰이 생각하게 되었다.


"물론 가 봐야 자시 알겠지만 언제 쌔나 올꺼 같노?"라고 하셨던 것이다.


'물론 가 봐야 자시 알겠지만…'이라는 말은 아무나 할 수 있는 말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농사꾼이 들에 나가면 논두렁 깎으러 갔지만 물꼬도 살펴야지, 호박순도 뒤적이며 혹 애 호박이라도 달리는 게 있는지 봐야 하고, 논두렁에 두더지나 드렁치기가 구멍이라도 뚫어 놨으면 그것도 때워야 하고 혹, 옆 논에 일이라고 하고 있으면 거들어 주기도 해야 하는지라 들에 나가면 마음먹고 간 일만 하게 되지 않는다는 것을 어머니가 잘 알고 계시다는 말인 것이다.


정신을 약간 놓으신 어머님이 이렇게 맑은 정신을 가지신 것을 새삼 확인하게 하는 말이었다. 젊고 건강한 사람도 따지고 보면 정신을 놓치고 사는 시간이 많다. 삿된 생각, 엉뚱한 망상, 미워하는 마음, 질투, 욕심, 경쟁 등등은 맑은 본정신이라 할 수 없다.


그 다음 말씀도 예사로운 말이 아니었다. '언제 쌔나 올꺼 같노?'라는 말이다.


나는 항상 집을 드나들 때나 뭔가를 할 때 꼭 어머니께 알려 드린다. 큰절을 드리면서 알리는 경우는 집을 나가고 들어올 때다. 늙고 병드신 부모에게 꼭 사전에 '알려 드린다'는 것은 노인들의 '존엄'을 위한 필수적인 사항이다.


몇 달 전에 읽은 불교 경전 <부모은중경>이라는 책에서 '집을 드나들면서 온다간다 말도 없이…'라는 구절을 보고 깨닫게 된 것이다.


노인들은 잘 안 보이고 잘 안 들리고 잘 판단이 안 되기 때문에 당신이 미처 이해하지 못하는 일들이, 당신이 알지 못하는 새에 결정되고 진행되는 것을 보면서 주변 식구들로부터, 나아가서 상황으로부터 참담한 소외감을 느끼게 된다고 한다.


심한 경우는 노인 스스로 자신을 '쓸모없는 인간'으로 규정하게 한다. '노인심리학'이라는 어느 대학의 교재에서 읽었다.


그래서 항상 어디 간다. 뭐 하려고 한다. 어디 갔다 왔다. 뭐 뭐 했다고 꼭 알려 드리는 것이다. 물론 100프로 어머니는 "그래라. 알았다. 고생했다. 잘했다" 그러신다.


그런데 '언제 쌔나 올꺼 같노?'라고 어머니가 내게 물으신 것이다. 나는 이 대목에서 내가 빠뜨리고 살아온 것을 보게 되었다. 나는 어디 간다고만 말했지 거기 가서 "언제쯤 올 것이다"라고는 말씀은 드리지 못했던 것이다.


노인들은 혼자 있는 것을 두려워한다. 몸도 마음도 뜻대로 되지 않는 자신을 알기에 혼자 있게 되면 버림받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갖게 된다. 쓸쓸함과 외로움 정도가 아니라 공포에 잠기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알츠하이머병'에 대한 책자들을 통해 알게 되었다.


그래서 '언제 온다'는 것을 말씀드리는 것은 노인에 대한 최소한의 위안과 '약속'이 되는 것이다. 어머니는 "언제 올꺼냐?"고 하지 않고 더구나 "너는 맨 날 간다는 말만 하고 어제 온다는 말은 않더라"고 하지 않고 "언제 쌔나 올꺼 같노?"라고 하신 것이다. 같은 말을 하더라도 이렇게 품격 있게 말을 해야 한다고 내게 가르쳐 주시는 것 같았다.


나는 낮 12시에 와서 밥 챙겨 드리겠다고 한 대로 정확하게 낮 12시에 돌아왔다. 어머니가 기억하건 못하건 어머니와 하는 약속은 늘 정확하게 지킨다. 어떤 경우에도 편의적으로 둘러대거나 하지 않고 모든 걸 사실대로 말씀드린다. <부모은중경>에 이런 대목을 보고서다.


"제 마누라나 첩과 한 약속을 꼬박꼬박 잘 지키면서 부모와 한 약속은 돌아서면 잊어버리네…"라는 부처님 말씀이 있었다.


태그:#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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