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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모컨
리모컨

80년대를 상징하는 것을 꼽으라면 단연코 컬러TV다. 가전제품이기 이전에 중요한 재산으로 대접받았던 TV와 전화기는 80년대 들어서 큰 변화를 겪게 되었다. 근엄한 색상의 다이얼 전화기가 그동안 점유했던 재산의 위치에서 본래의 자리로 추락하게 된 것은 회선의 전자화와 함께, 새로이 등장한 버튼식 전화기에 의한 것이었다. 그러나 구세대와 신세대 전화기를 구획하는 것은 거는 방식의 차이였을 뿐, 기능 자체는 동일했다. 대량생산된 저가품의 물량공세는 빠르게 구세대의 전화기를 몰아냈다.

 

전화기와 비슷한 시기에 TV의 세대교체가 이루어졌다. TV의 세대교체는 전화기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칙칙한 흑백의 단순한 색채 밖에 전달하지 못하던 TV가 온갖 색깔을 토해내기 시작한 직후부터 가정의 안방은 거의 코페르니쿠스 적으로 변혁했다. 장마철 하늘처럼 단순한 색채의 방송이 구미호처럼 화사한 옷을 갈아입자 전혀 다른 차원의 감동이 해일처럼 밀려들었다. 주부들은 바로 잡은 생선회처럼 싱싱한 드라마에 빠져들었고 쇼프로그램은 날이 다르게 화려하고 질펀해졌다. 뉴스가 전해주는 소식도 흑백시대와는 전혀 다른 것 같았다.

 

프로야구가 최고의 인기를 구가할 수 있던 것도 컬러 시대와 무관하지 않다. 특히 해태 타이거스의 붉은 유니폼과 그들의 플레이의 열광하던 호남 관중의 모습은 지금도 생생하게 저장되어 있다. 새로운 시대를 창조한 컬러TV는 전용 안테나로 자신의 존재를 알렸다. 무서운 속도로 진격하는 컬러시대는 초라한 흑백TV의 안테나를 전멸시켜버렸다. 이따금씩 외롭게 서 있는 흑백TV의 안테나는 그 집의 빈곤을 가장 잘 표현하는 조형물로 기능했다.

 

컬러시대의 개막은 주부들에게 강력한 파워를 선사했다. 흑백시대 때부터 채널을 소유했던 주부들은 컬러시대에도 소유권을 주장했다. 방송사들이 드라마의 비율을 경쟁적으로 대폭 늘리게 됨에 따라 뉴스와 드라마로 양분되었던 채널의 소유권이 급격히 주부들에게 이전되었다. 일단 주부들이 소유권을 장악하게 되자 그에 따른 구도와 질서가 방송프로그램처럼 편성되었다. 채널의 선택권은 그 집안의 서열을 형성했으며 그것을 관찰하면 먹이사슬의 피라미드를 쉽게 파악할 수 있었다.   

 

컬러시대의 도입과 함께 또 하나의 혁명적 도구가 등장했다. '리모컨'으로 불리는 그것의 등장은 시대가 요구하는 필연성에 의한 것이었다. 리모컨은 나오자마자 주부들의 열화와 같은 대환영을 받았다. 리모컨이 나오기 이전의 TV는 미완성의 도구에 지나지 않았다. 로터리 형태의 채널을 돌려 자신이 원하는 방송으로 이동할 때마다 적지 않은 수고가 투입되어야 했다. 음량을 맞추거나 색상을 바꿀 때도 정해진 동선(動線)에 따라 이동해야 했다. 그런 용도로 이동하는 거리를 합치면 족히 500미터는 될 것 같다. 특히 겨울 아랫목에 누웠거나 피곤하여 녹초가 된 몸으로 채널을 돌리거나 소리를 맞추기 위해 일어나는 것은 정말 못할 짓이었다.

 

어머니들이 가장 곤란했던 점 가운데 하나는 반란에 무방비 상태라는 것이었다. 동작이 재빠른 딸들이 먼저 채널을 점령해 버리거나 아들이 자기가 좋아하는 방송으로 돌린 다음 바위처럼 꿈쩍도 하지 않으면 속수무책이었다. 하지만 권력의 상징인 채널을 빼앗긴 어머니는 장남에게 제사를 넘겨준 아버지처럼 무력하지 않았다. 약간의 반란은 묵인해주는 것이 지배자의 관용이 아니었던가.

 

그런 와중에 등장한 리모컨은 모든 것을 완벽하게 충족시켜주는 황금분할의 도구였다. 리모컨은 TV를 보기 위해 지불해야할 동선과 모든 수고를 없애주었다. 그것은 손오공의 손에 들어간 여의봉처럼 TV를 궁극적으로 완성시켜 준 핵심부품과 동일했다. 게다가 TV의 소유권이 어디에 있는지 분명하게 인식시켜주는 부가기능도 가지고 있었다. 리모컨은 자식들의 TV 시청 시간을 확실하게 통제하는 수단인 동시에 감히 도전하는 아버지들의 이마에 피멍을 새겨주는 무기로 기능했다. 어머니의 손에 접착제를 바른 것처럼 견고하게 붙어 있는 리모컨은 형상화한 권력이었다.

 

수십 개나 되는 리모컨 버튼 가운데 실제로 사용하는 것은 몇 되지 않는다. 과거처럼 TV를 켜고 끄거나 채널을 옮기고 소리를 조절하는 것 외에는 사용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리모컨에 묶여진 TV는 더욱 소용이 되지 못한다. 집필 도중 간간이 리모컨을 이용하면 시간대를 가리지 않고 훌떡 벗은 여자애들이 야릇한 춤을 추거나 유치한 놀이게임으로 도배가 되어 있다. 불륜을 다루는 프로그램에서는 입에 담기 어려운 쌍소리와 함께 야생에 가까운 폭력이 튀어나오기 일쑤이며 심야프로그램은 절로 한숨이 나는 것이 대부분이다. 가족들과 함께 볼만한 것이라고는 내셔널지오그래피(nationalgeographic)가 유일할 것 같은데, 그것은 아이들이 좋아하지 않으니 혼자 볼 수밖에 없다.

 

전사자의 소총처럼 쓸모없이 나뒹구는 리모컨을 볼 때마다 즐거웠던 과거의 TV 주변이 떠오른다. 세계챔피언에 도전하는 우리 선수가 강펀치를 휘두를 때마다 다함께 소리치고 드라마의 주인공 아가씨가 누구와 결혼할지 열렬히 토론하던 광경이 지금도 아릿하다. 가끔씩 잘 쪄낸 옥수수와 고구마가 놓이고 와르르 떠들었던 그때가 너무나 그립다. 채널을 과거로 돌릴 수 있는 리모컨은 없는 것일까,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인터넷한겨레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추억 #리모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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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권 출판을 목표로 하는 재야사학자 겸 작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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