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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표지 <끼리끼리 재미있는 우리말사전, 재고 세고!> 박남일 글, 문동호 그림, 길벗어린이
책 표지<끼리끼리 재미있는 우리말사전, 재고 세고!> 박남일 글, 문동호 그림, 길벗어린이 ⓒ 길벗어린이

요즘 온 나라는 영어 열병에 빠져 버렸다. 영어를 배우려고 조기유학을 하는가 하면, 고액과외를 하고, 원어민 선생이 마약을 하는 줄도 모르고 그에게서 영어를 배운다. 지방자치단체는 큰돈을 들여서 영어마을을 짓고, 영어를 자유자재로 쓸 수 있는 도시도 만든단다. 영어를 잘해야 먹고산다는 강박관념이 빚은 일이지만 어쩌면 문화사대주의와 관련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 말글을 잘 모르고서야 영어만 잘한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대한민국 국민으로 살아가는 바에야 영어를 다시 우리 말글로 번역·통역하거나 그 역으로 해야 할 터인데 국어 공부가 바탕이 되지 않는다면 그건 영어를 잘하는 것이 아닐 것이다. 그런 점에서 아이 때부터 우리 말글 공부를 제대로 할 수 있다면 참으로 좋을 일이다.

 

최근 아이들에게 토박이말의 아름다움을 깨닫게 해 말글 공부를 제대로 할 수 있도록 이끄는 책이 나와 화제다. <좋은 문장을 쓰기 위한 우리말 풀이사전>을 펴냈던 박남일이 쓰고, 문동호가 그림을 그린 <끼리끼리 재미있는 우리말사전, 재고 세고!>(길벗어린이, 대표 이호균)가 그것이다.

 

"말린 고기나 김 같은 것도 세는 말이 다 달라.
날마다 먹는 고소한 김은
백 장씩 도톰하게 묶어서 '한 톳, 두 톳……'
구워먹으면 고소한 굴비는
열 마리씩 두 줄로 엮어 '한 두름, 두 두름……'
시원한 국 끓이기에 좋은 북어는 스무 마리씩 꿰어
'한 쾌, 두 쾌……' 세지."

 

굴비 한 두름  책 내용 중 먹거리를 세는 단위를 그림으로 재미있게 설명했다. 문동호 그림
굴비 한 두름 책 내용 중 먹거리를 세는 단위를 그림으로 재미있게 설명했다. 문동호 그림 ⓒ 길벗어린이

 

하룻강아지 책 내용 중 짐승의 나이를 세는 말에 대해 재미있게 설명했다. 문동호 그림
하룻강아지책 내용 중 짐승의 나이를 세는 말에 대해 재미있게 설명했다. 문동호 그림 ⓒ 길벗어린이

 

책은 이렇게 수와 양에 대해 쉽게 서술하고, 재미난 만화를 덧붙여 아이들이 토박이말을 배우는데 어려움이 없도록 한다. 책에선 톳, 두름, 쾌 말고도 뼘, 아름, 푼, 자밤, 홉, 짐, 사리, 손, 타래, 한소끔 따위의 잊혀가는 옛 토박이말 도량형들을 일깨워준다.

 

정부는 요즘 도량형을 통일한다고 우리가 흔히 쓰던 평이나 치, 돈 같은 전통적인 단위 대신 미터나 그램법을 쓰도록 했다. 물론 상품을 팔고 사거나 학문과 관계있는 것들이야 통일된 도량형을 쓰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하지만, 일상생활에서 일일이 정확한 수치를 재는 것은 어려울지도 모른다. 예를 들면 아이들이 놀이를 하면서 한 뼘 두 뼘이 아닌 10센티미터, 20센티미터를 쓸 수는 없다. 몇 그램보다는 한 움큼이 더 좋을 수도 있다. 따라서 예부터 우리 겨레가 재고 세면서 썼던 단위들을 새롭게 살려보는 것도 좋을 일이다. 훨씬 운치가 있을 것 아닌가? 또 아이들에게도 토박이말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게 해 우리 말글에 대한 애정을 가지도록 할 수가 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의 가치는 전혀 작지 않다.

 

한 자밤 역시 책 내용 중 양을 재는 단위를 그림으로 설명했다. 문동호 그림
한 자밤역시 책 내용 중 양을 재는 단위를 그림으로 설명했다. 문동호 그림 ⓒ 길벗어린이

 

영어를 유창하게 쓰고, 어려운 한자말을 자랑하는 것이 절대 그 사람의 유식함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아름다운 토박이말을 적절히 쓰는 것이 훨씬 말과 글을 더 돋보이게 하고, 품격을 높이는 일일 것이다.

 

사람은 한 살, 두 살 먹는다. 하지만, 강아지나 소, 말 같은 짐승들은 하릅, 두릅, 세습 나이를 먹는다. 그래서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도 원래는 "하릅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였다나? 짐승의 나이를 사람 나이와 같이 셀 수 없다는 말씀! 올가을엔 우리 사랑하는 아이들에게 이 책을 사주어 우리 말글을 사랑하는 아이가 되도록 도와주면 어떨까?

 

 대담 중인 지은이 박남일
대담 중인 지은이 박남일 ⓒ 김영조

- <재고 세고!>는 어린이를 위한 우리말 사전인데 이 책을 왜 내게 되었나?
"요즘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영어를 잘 가르치려고 많은 투자를 한다. 하지만, 진정 우리 아이들을 사랑한다면 모국어를 사랑하도록 돕지 않으면 안 된다. 언어인지능력이 급격히 발달하는 초등학교 1, 2학년 아이들이 우리말의 고운 느낌과 인식 체계를 익히게 하자는 뜻에서 책을 내게 되었다."

 

- 지은이는 "국어실력이 밥 먹여 준다"라고 강조한다. 왜 그렇게 주장하는가?
"영어를 아무리 잘해도 모국어 구사 능력이 떨어지면 당장 교양 없는 사람으로 평가되어 좋은 집단에 발붙이기가 어렵다는 생각이다. 외국어를 갈고 닦는 것도 중요하지만, 수준 높은 모국어 능력이 밑절미가 되었을 때 외국어 능력도 더욱 빛이 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밥 먹고살려면 국어 능력이 우선이고, 필수라고 생각한다."

 

- 지은이는 예전 어른들을 위한 책 <좋은 문장을 쓰기 위한 우리말 풀이사전>을 낸 적이 있다. <재고 세고!>는 이 책의 어린이 판이라 볼 수 있는데, 이런 책의 펴냄에 몰두하는 까닭이 무엇인가?
"우리사회는 '쏠림 현상'이 매우 심하다. 무언가 유망하다면 그쪽으로 모조리 쏠리는 거다. 외국어 학습에 지나치게 큰 비용과 시간을 쏟는 것도 그런 현상일 게다. 내가 우리말 연구에 매달리는 것은, 바로 그런 세태에서 빚어진 '반면교사'일 것이다. 수많은 이들이 외국어 보급에 힘쓰는 시대에, 모국어를 더 세련된 언어로 갈고 닦는 사람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 토박이말이 참 아름답다. 하지만, 토박이말들을 갈래 쳐서 끼리끼리 모으기가 쉽지 않을 텐데 어떻게 했나?
"어떤 사람을 만났을 때, 그냥 지나치지 않고 대화를 나누다 보면 그의 주변 관계에 있는 사람까지 알게 된다. 그처럼 낱말 하나라도 관심을 두고 들여다보면 그 말을 존재하게 하는, 또는 그 말과 가까운 관계에 있는 다른 말도 만날 수 있다. 물론 거기에는 어느 정도 집요함이 따르긴 한다."

 

- 이렇게 아름다운 토박이말을 가르쳐주어도 쓰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그런 뜻에서 이런 아름다운 말들이 살아서 숨 쉬도록 하는 방법이 있을까?
"모국어는 우리가 매순간 들이마시는 공기와 같다. 그 공기나 오염됐느냐 깨끗하냐 하는 것은 나에게 매우 중요하다. 맑은 공기를 직접 맛보게 하면 마음이 깨끗해지는 것을 느낀다. 이처럼 모국어도 오염 여부에 따라 나의 말글살이는 크게 달라지는데 오염되지 않은 토박이말을 많이 맛보게 하면 토박이말의 소중함도 느낄 수 있고, 늘 쓸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 앞으로 또 다른 집필 계획은?
"'수와 양'을 다룬 <재고 세고>의 연작으로 '자연' 편과 '사람' 편을 쓰고 있다. 또 초등학교 상급생을 위한 <글쓰기에 도움 되는 예쁜 우리말 사전>이 곧 나올 예정이다. 앞으로 토박이말을 재미있게 소개하는 책들을 꾸준히 낼 예정이다. 특히 이들을 위한 책에 더욱 정성을 쏟을 생각이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다음, 대자보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재고 세고! : 수와 양

박남일 지음, 문동호 그림, 길벗어린이(2007)


#박남일#길벗어린이#우리말#문동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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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으로 우리문화를 쉽고 재미있게 알리는 글쓰기와 강연을 한다. 전 참교육학부모회 서울동북부지회장, 한겨레신문독자주주모임 서울공동대표, 서울동대문중랑시민회의 공동대표를 지냈다. 전통한복을 올바로 계승한 소량, 고품격의 생활한복을 생산판매하는 '솔아솔아푸르른솔아'의 대표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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