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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작스럽지만 새로운 연재를 단발로 시도할 예정입니다. 제목은 '남고환상, 여고환상'이구요, 이를 잘 나타내주는 짧은 글이나 삽화 등을 실으려고 합니다."
"와~저희 학교로 와 주세요."
"안 돼요, 저희 학교는 절대 오지 마세요."

한 학생기자의 말에 진지했던 회의 분위기가 일순 바뀐다.

 

 매주 토요일, 익산교육시민연대 사무실에서 벼리의 편집회의가 열린다.
매주 토요일, 익산교육시민연대 사무실에서 벼리의 편집회의가 열린다. ⓒ 엄선주


익산교육시민연대 사무실, 익산 학생신문 <벼리>의 학생기자들이 편집회의에 한창이다.
A팀의 한 기자가 "저희 팀 3면 주세요"하니 김소희(이일여고2) 편집국장이 B팀의 면이 모자란다고 걱정이다. "저희도 이번엔 2면 반은 될 거 같은데..." 3팀도 가세했다.

"잠깐만요, 이렇게 서로 면을 많이 달라고 하는데 이건 나쁜 현상이 아니에요. 양질의 기사가 기대되지 않습니까?"
B팀 최지수(원여고2) 기자, 비판기사를 위주로 다루는 팀 팀장답게 바로 현장 분석에 들어간다.

다양하고 톡톡 튀는 콘텐츠 '눈길'

 

 학생신문의 장점을 잘 드러내는 게릴라인터뷰 기사.
학생신문의 장점을 잘 드러내는 게릴라인터뷰 기사. ⓒ 엄선주

익산 유일의 학생 신문 <벼리>는 2001년 3월 15일 창간호를 시작으로 9월 50호째 발행을 앞두고 있다.

 

99년 준비호부터 시작해 현재 9기의 학생기자가 활동 중이다. 김영춘, 정우식, 김원진 담당 교사가 이끌고 있으며 30여명의 학생 기자들이 정보와 비판, 흥미, 사진미술의 4팀에 배치돼 12면의 지면을 풍성하게 채우고 있다.

그간 열악한 재정난으로 몇 번의 폐간 위기를 맞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7년을 이어 온 저력은 <벼리>가 담고 있는 다양하고 깊이 있는 콘텐츠 비롯된다.

 

주변의 소소한 이야기들부터 우리나라 정치, 역사, 문화까지 다양한 프리즘으로 투영하고 있다. 청소년문화를 스스로 진단하고 비판하는가 하면, 일상생활에서 겪었던 황당하거나 고맙거나 눈물 났던 순간들을 즉흥적으로 담아내는 게릴라인터뷰도 진행한다. 또 알려지지 않은 야사를 캐내 역사에 보다 친근하게 다가가기도 한다.
 

청소년 소통·문화의 공간 <벼리>, 기성세대가 도와야

 

담당 선생님들의 도움과 이끎 역시 <벼리>의 큰 지주목이다. 김영춘(이리남중), 김원진(이일여중), 정우식(이일여고) 담당 교사가 출판 비용, 연수 비용 등의 마련을 위해 동분서주하며, 매주 기획회의에 참관해 멘토 역할을 하고 있다.

"소통의 부재, 모든 문화와의 단절 속에서 저급한 매체문화만을 받아들이고 있는 우리 아이들에게 어른들이 해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이 바로 '벼리'입니다."

 

사회와 더불어 소통하면서도 그들만이 향유하고 공감할 수 있는 매개체가 <벼리>이기에 기성세대들의 후원이 절실하다는 김영춘 선생님의 말이다. 

익산학생신문 <벼리>는 익산시와 도교육청에서 지원을 받아왔으나 그 지원이 들쭉날쭉 했고 그나마도 현재는 거의 없어 발행부수가 5천부에서 1천부로 줄었고, 전면 칼라도 흑백으로 바꿨다.

 

남다른 시각과 분석, 오히려 공부에 큰 도움

 

학교 다니랴, 취재 하랴, 기사작성하고 편집하랴, 또래들보다 훨씬 바쁜 생활에 성적이 아무래도 떨어지진 않을까? 하지만 "학교 성적은 중상위권, 모의고사 성적은 상위권, 그만큼 더 열심히 하게 된다"는 명쾌한 대답이 돌아온다.

"여중, 여고를 나오다 보니 만나는 친구도 정해져 있고 기숙사에서 지내니 학교생활이 삭막해요. 주말에 벼리 일을 하게 되니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평소에는 할 수 없었던 진지한 대화들, 예컨대 정치나 사회에 관한 견해를 나누는 것이 무엇보다 즐겁습니다."


한 친구의 말에 "벼리를 통해 생각하는 힘, 언어구사력이 키워져요", "자신감도 키워지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경험해 인맥이 두터워져요"라는 자부심들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온다.

 

최근 이슈에 대해서도 남다른 시각이 돋보인다. 공인들의 잇따른 학벌위조 사태에 대해 "자신의 능력을 믿지 못하고 겉모습만을 미화하려는 부분이 안타깝다", "학벌위조도 돈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니냐, 부익부 빈익빈 현상과 무관하지 않다"는 등 심리학적 분석에서부터 사회구조의 모순을 지적하는 등 다각적 시선으로 바라보는 그들이다.

 

 익산학생신문 벼리의 학생기자들.
익산학생신문 벼리의 학생기자들. ⓒ 엄선주

 

기자이기 이전에 학생이기에 학생문화에 대해 불만도 많고 관심도 많다.


"익산에 청소년 문화 시설이나 콘텐츠가 턱없이 부족합니다. 청소년수련관에서 그나마 많은 장을 벌여주는데 익산시에서 더 많이 지원해주시길 바랍니다."

"청소년 문화 환경의 개선은커녕 동아리 활동이라도 자유롭게 했으면 좋겠어요. 어떤 학교는 3학년이 되면 동아리 활동을 아예 못하게 하거든요. 성적도 중요하지만 공부만으로 얻을 수 없는 것이 더 많잖아요."

돌아보면 학창시절 공부한 시간이 그 외 시간보다 몇 배는 많음에도, 추억에 남는 건 후자다. 특히 학창시절 무언가에 열정을 쏟는 경험은 평생의 자산이다. 가치관이 막 확립되는 시기에 우리의 삶에 대해 진지하게 바라보고 생각하고 대안을 제시해 보는 경험을 통해, 그들은 벼리의 사전적 의미인 '그물코를 오므리고 펼 때 잡아당기는 줄, 핵심'으로 거듭날 것이다. 그들의 미래가, 우리의 미래가 밝은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익산투데이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익산#학생신문#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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