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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섭과 장지영의 <경부운하 : 강은 굽이쳐 흘러야 한다(이하 <경부운하>, 오마이뉴스 발행)>는 책이 세상에 등장할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이 기구한 2007년의 상황을 반증한다고 밖에 하지 않을 수 없다.

 

가끔 환경운동 활동가들이 책을 직접 집필하는 경우가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 상황이 지나고 난 다음의 회고나 아쉬웠던 점들을 되돌아보는 경우, 혹은 보다 넓은 사유방식을 사회에 환기하는 경우이다.

 

그러나 <경부운하>라는 책은 지금, 바로 여기에서 벌어질 일에 대해서 매우 입체적으로 그리고 그 어떤 기사보다 자세하게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의 경부운하라는 대선공약에 대해서 조감하는 책이다.

 

언론인과 학자를 부끄럽게 만드는 책

 

현장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이 연구소를 중심으로 현안에 대한 책을 집필하고 있어야 한다는 자체가 정상적인 상황은 아니다. 언제부터 활동가들이 책 아니면 사회적으로 의제를 제기하기 어려워진, 그래서 같이 논의할 수 있는 공간이 막혀버린 지금과 같이 되었던가? 마냥 책이 출간되었다는 것을 행복해하고 뿌듯해하고 있을 수만은 없는 상황이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바로 한 해 전인 2006년 여름 이해영 교수를 시작으로 일련의 학자들이 한미FTA에 대한 책들을 쏟아내듯이 집필한 적이 있었는데, 그 당시를 회고해보면 정말로 책 외에는 다른 어떤 언로와 사회적 활동이 거의 봉쇄되어 있다시피 했다. 당시의 한미 FTA 집필서의 흐름 역시 정상적인 것은 아니다. 원래는 광장에서 혹은 언론에서 필요한 사안들이 충분히 논의되고, 대중적 합의나 보편적인 이해 속에서 추진되는 것이 옳고 바람직하다.

 

경부운하의 경우에도 책이 출간되는 상황이 좋은 것만은 아니다. 현장에서 주민들과 함께 논의를 하고 있어야 마땅한 환경 활동가들이 직접 집필을 하게 된 현 상황이 정상적으로 보이는가? 이 책은 학자들, 전문가들, 그리고 언론인들과 정치인들을 부끄럽게 만드는 책이다.

 

국민들은 당연히 알권리가 있는데, 특히 반도의 생태계와 지도를 전면 개편하게 만들 이런 큰 사건에 대해서는 더 자세하게 알 권리가 있다고 할 수 있다. 2007년 가을의 시작, 정말로 경부운하에 대한 입체적인 조감을 볼 수 있는 것은 이 활동가들이 집필한 책 한 권밖에 없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하기에는, 우리가 처한 상황이 너무 딱하고, 고작해야 이들이 분석하고 정리한 자료들을 재인용할 수밖에 없는 나를 비롯한 많은 학자들이 해놓은 것들이 너무 초라할 뿐이다.

 

불도저 총지휘했던 이명박

 

 

책에 언급되고 분석된 타당성에 대한 수많은 분석들과 어긋난 맥락 속에서 발생한 오해들은 독자 여러분들이 직접 책을 보면서 확인하실 수 있고, 대강의 골격은 이 책을 펴낸 곳인 <오마이뉴스>의 여러 기사들을 통해서 심도있게 볼 수 있을 것이므로 다시 반복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다만 이 책이 직접 다루고 있지 못한 내용, 즉 정치인으로서의 이명박이라는 매우 특별한 캐릭터가 가지고 있는 상징인 '불도저'의 신화에 대해서는 조금 더 자세하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아직 대통령에 당선된 것도 아니고 정부 차원의 본격적인 예비타당성 조사와 사전환경성 검토가 시작된 것도 아닌 사업에 대해서 이렇게까지 민감하게 사람들이 반응하고, 심지어 일반 기사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심도깊은 분석을 다룬 책이 출간될 필요가 있는가?

 

그러나 현실은 그렇다. 그것은 중장비로 분류되는 공업용 궤도차량의 일부인 '불도저'의 속성 때문에 그렇다. 한반도에 불도저가 지금처럼 많이 투입된 것은 1977년 2차 석유파동으로 중동에 외화벌이로 사막에 투입되었던 중장비가 용처를 잃자 급거 한국으로 돌린 이후에 벌어진 일이다.

 

사우디와 리비아와 같은 사막에서 맹활약하던 불도저가 좁은 반도로 쏟아지면서 이들이 놀지 않게 하기 위해서 우리나라는 급격히 토건국가로 전환되기 시작되었고, 현대건설에서 이명박은 이 불도저들의 총지휘자로 역시 맹활약했다. 그의 별명이 '불도저'인 것은 아주 적절하다.

 

불도저들의 전성시대

 

그 당시의 불도저는 경부고속도로의 보수와 지금의 강남의 후속건설에 투입되거나 농촌지역의 저수지공사 등에 대거 투입되면서, 우리나라에서는 불도저 시대가 만개하게 된다.

 

이 불도저들이 80년대 후반을 맞으면서 바다로 가기 시작하는데, 해양토목 전문가들과 함께 바다로 간 불도저들의 마지막 전성시대가 동양 최대의 대역사라고 노무현 정부와 유시민 전 장관이 찬미하는 새만금 사업과 같은 바다 메우기 사업들이다. 물론 70년대 후반에 중동에서 돌아온 불도저들은 일부를 빼면 이미 기계적 생명을 다했겠지만, 한 번 열린 불도저의 시대가 뒤로 돌아가지는 않는다.

 

새만금 물막이 공사를 서둘러 끝낸 불도저들은 다시 산으로 향하면서 이해찬과 함께 골프장 300개 시대를 열게 되었고, 여기까지가 불도저 시대 1기의 마감이라고 할 수 있다. 환경단체나 주민들의 반대가 심해서 불도저들이 갈 곳을 잃은 것이 아니라, 이제 더는 파헤칠 곳도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에 불도저들은 새로운 갈 곳을 찾아 헤매는 중이다.

 

서울의 청계천은 기술적으로는 복원이 아니라 한강물을 상류로 역류시켜서 다시 흘리는 사업이었다.

 

간판은 '복원'이지만, 도시미관과 같은 조경사업에 가깝다. 일부의 반대가 있었지만, 워낙 사업 규모도 작고, 또 서울과 같은 회색도시에 조경 시설이라도 시멘트보다는 낫지 않느냐는 흐름 덕분에 청계천은 서울 시민의 생태적인 것에 대한 열망을 표상하는 시대의 아이콘이 된 셈이다.

 

그러나 우리 불도저들이 이러한 작은 사업으로 만족하기는 어렵다. 공사규모가 워낙 작기 때문이다.

 

경부운하는 이 불도저들의 미래에 대한 꿈 같은 것이다. 연안지역과 산을 한바퀴 휘돌아 선 불도저들이 눈을 돌린 곳이 바로 강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각종 클러스터와 기업도시와 같은 특구, 그리고 혁신도시 등 워낙 5~6년 간은 아무 걱정없이 건설물량을 이미 확보해놓았음에도 불구하고, 새만금에 투입되었던 불도저들이 다음 일감을 찾는 것은 워낙 당연한 일. 그래서 그들이 방향을 강으로 돌리겠다는 것이 경부운하 사업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역사적 사건이다.

 

그리고 지금 이 불도저들의 앞길을 막아서고 있는 것이 박진섭, 장지영의 책 한 권이다. 그야말로 펜은 칼보다 강하다는 말이, 2007년 한국에서 책은 불도저보다 강하다는 말로 살아오는 셈이다.

 

무섭게 돌진하는 '불도저 대마왕', 그 앞에 서있는 이 한권의 책
 

 

편하게 말하면 "하드웨어의 시대가 끝났고 소프트웨어의 시대가 온다"는 10년도 넘는 구호로 많은 한국인들은 지식과 기술, 그리고 네트워크 효과 등으로 선진국을 열고 싶었다. 그러나 인간 불도저임을 자칭하는 이명박 후보는, "그런 것은 경제를 잘 모르고 하는 말이다"라고 경제의 시계를 뒤로 돌리려고 한다.

 

맥락만으로 보면, 유럽도 한국같이 강하지는 않았지만 불도저의 전성시대가 60년대 중반에서 70년대 중반까지 있었다. 파리 강변의 서쪽의 몇 개의 고층건물이 그 시절에 들어선 건물들이고, 알프스 중턱까지 파고든 스키장도 그 시절의 산물이다. 70년대 후반과 80년대 초반을 거치면서 유럽은 이런 불도저 시대를 접었다. 석유파동의 역풍을 호되게 겪었다.

 

일본도 불도저의 시대를 거쳤다. 80년대 중반 리조트법 등 불도저 시대를 거치게 밀고 가다, 90년대 초반 헤이세이 공황이라고 부르는 소위 '잃어버린 10년'으로 호된 시기를 거치면서 일본의 불도저들은 멈춰 섰다. 그 대신 종신고용제를 강화하고, 지역자치를 강화시키면서 최근 경제가 다른 좋은 흐름을 타기 시작했다.

 

시기적으로 보면 유럽과는 50년, 일본과는 20년 정도 한국의 불도저 열풍의 시기적 격차가 있는데, 경제적 법칙이 단계론이 적용된다면 한반도에는 결국 불도저가 경부운하를 따라 내륙 깊은 강과 산까지 한바퀴를 돌고, 거대한 경제위기를 겪어야 비로소 이 불도저 열풍이 서게될 것이다.

 

경제학자로서 내가 소망하는 것은, 역사의 교훈 앞에, 필요 없는 시행착오는 선진국이 되는 과정에서 한 개라도 '타산지석'을 통해 그냥 건너 뛰었으면 하는 것이다. 1차 산업화가 끝난 그 어디쯤에선가 불도저 열풍이 보통은 한 번 온다. 그리고 극적인 경제위기를 경험하고 나서야 끝났던 그 과정, 한국도 결국 겪어야만 선진국이 되는 것이 경제적 법칙의 숙명인가? 시민의식, 역사의식 혹은 '공유된 생태의식' 같은 것으로 한 개쯤 부작용을 건너뛸 수는 없는 것인가?

 

검증도, 도덕성도, 혹은 투표도 다 돌파하겠다고 무서운 기세로 달려오는 '불도저 대마왕', 그 앞에 218페이지짜리 책 한 권이 서 있다. 책은 사람들이 집어들고 읽을 때 비로소 힘을 갖고 움직이기 시작한다. 이 책 한권에 국민경제의 미래와 국토생태의 앞날, 그리고 문화한국의 새 길이 걸려 있다고 하면 지나친 비약일까?

 

그러나 정말로 강바닥까지 달려가겠다는 불도저 앞에 장애물이 그리 많이 보이지는 않는다. 사실상 책 한 권이 홀로 불도저 앞에 서있을 뿐이다.

덧붙이는 글 | 우석훈 기자는 성공회대학교 외래교수입니다. 


태그:#이명박, #경부운하, #서평, #불도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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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문제, 환경-자원 문제에 대한 전문가. 경제학 전공. 기후변화협약 UNFCCC 기술이전 전문가그룹 아시아지역 대표 이사 현대환경연구원 연구위원, 에너지관리공단 팀장 역임 한국생태경제연구회 창립회원 전 민주연구원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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