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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이름 : 까매서 안 더워?
- 글 : 박채란 / 그림 : 이상권
- 펴낸곳 : 파란자전거(2007.8.1.)
- 책값 : 8500원



<1> 우리 삶을 바꾸지 않고서야


.. 국경 없는 마을. 내가 사는 동네 이름이다. 우리 동네가 이렇게 불린다는 걸 안 건 몇 달 전 일이었다. 아마 다양한 국적을 가진 외국인들이 한 동네에 모여 살아서 생긴 이름일 거다. 하지만 나는 그 이름을 듣고 입을 삐죽였다. 마을에 국경이 없으면 뭐 해? 마음에 담을 쌓고 사는데 .. <11쪽>


우리 나라에 이주노동자가 없다면, 우리가 쓰는 수많은 물건을 더는 값싸게 만들 수 없습니다. 사람마음이 좀더 값싼 물건으로 쏠린다지만, 우리가 써야 하는 물건은 '값만 싼' 물건이 아니라 '자기한테 쓸모있는' 물건이어야 하지 않을까요. 값이 싸다고 아무 물건이나 쉬 사들일 수 없는 노릇이고, 값이 비싸다고 하여 꼭 써야 할 물건을 안 살 수 없는 노릇입니다. 생각해 보면, 우리가 쓸 물건은 우리 손으로 장만해서 쓸 때가 가장 좋습니다. 우리 밥상에 차릴 먹을거리 또한 우리 손으로 우리 땅에 심고 가꾸고 거두어서 손질해서 올려야 가장 좋고요. 지금 우리들은 밥이고 옷이고 집이고 손수 마련하기보다는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일거리'를 찾은 다음, 돈으로 모두 풀어내는 삶을 꾸리고 있습니다. 그러니, 하루라도 물건을 안 사면, 장을 안 보면 옴짝달싹 못하겠지요. 마음으로는 이주노동자들을 생각하거나 걱정할 수 있겠지만, 몸은 벌써부터 이주노동자가 헐값에 오랜 시간 일하지 않으면 우리 삶을 꾸릴 수 없게 매여 있는 셈입니다.


.. "내가 덥다는데 니가 무슨 참견이야? 넌 까매서 안 더운지 몰라도 난 더워! 그러니까 조용히 해!" 순식간에 동규의 얼굴이 굳었다. 정준이 얼굴도 굳었다. 자기가 실수를 했다는 사실을 안 것이다. 하지만 주워담기에는 너무 늦어 버렸다. 분위기가 싸해지고 한 시간 같은 일 분여가 지나갔다. 동규가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 그래 난 좀 까매서 더위를 안 타나 보다. 그거 좋은 의견인데. 만물노트에 적어 놔야겠네. 까만 사람은 더위를 안 탄다. 좋았어!" 동규는 특유의 재치로 다시 상황을 수습했다 .. <106∼107쪽>


'국경 없는 마을'이 허울뿐인 '국경 없는' 마을이 아니라, 마음과 생각과 눈길과 삶 어느 곳에서도 국경이 없는 마을이 되자면, 이주노동자를 마주하는 우리들이 달라져야 합니다. 이주노동자가 이 땅에 들어오기 앞서, 우리들은 우리 이웃을 깔보고 괴롭히고 못살게 굴고 등처먹었습니다. 돈이 없다고, 이름이 없다고, 힘이 없다고.

 

못 생긴 아이들은 손가락질을 받고, 공부 못하는 아이들은 늘 꾸지람입니다. 아파트 올려세우는 재개발을 한다면서 가난한 사람들 삶터를 죄 쓸어내고 밀어내고 쫓아냅니다. 아파트 올려세운 뒤에는, 자기들 집값 올라가는 소리에 입이 찢어지고, 이웃사람들 주머니가 홀쭉해지는 소리에는 귀를 막습니다. 이런 세상에서는 영어 미친바람은 불지언정, 버마와 네팔과 스리랑카와 파키스탄과 몽골과 티벳과 카자흐스탄에서 온 사람들이 자기 문화와 삶을 고이 지키면서 한국땅에서 일하는 모습을 보아 주는 따순 바람은 불지 못합니다.


.. 몽골의 아름다운 푸른 초원을. 그리고 그 초원 위에 자리잡은 몽골의 전통가옥 게르를. 초원 위를 뛰노는 말을. 아름다운 옷을 입은 사람들을. 그림을 그리는 동안 성완이의 가슴이 조금씩 열렸다. 그림이 다 완성되자 몽골의 너른 초원이 성완이의 가슴속으로 들어왔다. 사실 몽골에 있을 때 성완이가 살던 곳은 울란바토르였다. 그곳은 도시다. 성완이가 그린 푸른 초원은 성완이 자신도 두어 번밖에 가 보지 못한 할아버지 댁 풍경을 그린 것이었다 .. <67쪽>


이주노동자 아이들이 한국 아이들과 가까워지는 길은, 이주노동자 아이들이 한국 아이들 입맛과 생각에 맞추는 길입니다. 한국 아이들 스스로 이주노동자 아이들을 '나와 똑같은 사람'으로 여기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주노동자 어른들이 한국 어른들과 가까워지는 길은, 이주노동자 어른들이 한국말을 배우고 한국 문화와 사회에 젖어들어 고개를 숙이는 길입니다. 한국 어른들 스스로 이주노동자인 어른들을 '내가 일했을 때와 똑같은 일삯을 받아야 하는 사람(동료)'으로 여기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은 '코시안'이라는 말을 지어냅니다. '코리안 + 아시안'으로(88쪽). 미국말로 적으니 무언가 그럴 듯하지만, '튀기'라는 말과 무엇이 다를까요. 더구나, 한국사람들은 모두 '아시아사람'이기도 한데, '코리안 + 아시안'이라는 말을 어떻게 쓸 수 있을까요.

 

우리 겨레는 '단일겨레'라고 하지만, 제 나라 말과 글을 업신여기고 미국 말과 글을 높이 우러르는 우리들이 어떻게 단일겨레라 말할 수 있을까요. 말과 글뿐 아니라 먹고 마시고 입고 쓰고 누리는 모든 삶과 문화는 미국이나 유럽 것입니다. 한쪽에서는 '세계화'를 말하지만, 다른 한쪽에서는 '더 많이 가지거나 움켜쥔 이들이 살기 좋은 한국'을 바랄 뿐입니다.


 <2> 흔한 이야기로 머물고 마는구나


<까매서 안 더워?>(파란자전거)는 짤막한 이야기 셋을 묶습니다. 경기도 안산, '국경 없는 마을'에서 흔히 일어날 법한, 또는 일어났던 이야기 셋입니다. '국경 없는 마을'이 미국이나 프랑스, 독일이나 네덜란드쯤 되는 나라에서 온 사람들로 이루어진 곳이라면, <까매서 안 더워?> 같은 책은 나오지 않았으리라 봅니다.

 

우리 삶만큼이나 비뚤어져 있는 생각을 건드리는 <까매서 안 더워?>입니다. 사람으로 태어나 누구나 누려야 할 사람권리를 짓밟히면서 어릴 적부터 아픔과 생채기만 가득 쌓이는 아이들 삶을 보여주는 <까매서 안 더워?>입니다. 우리 나라는 이주노동자를 옥죄는 나쁜 제도와 법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도 <까매서 안 더워?>는 또다른 모습으로 또다른 곳에서 수없이 일어나고 눈에 뜨이리라 봅니다.

 

생각해 보면 그렇습니다. 똑같은 노동자이지만, 누구는 정규직으로 삼고 누구는 비정규직으로 삼으며 갈라놓습니다. 똑같은 노동자이지만, 누구는 낮은대접을 누구는 높은대접을 받습니다. 이제 교과서에 '빈부차별과 계급차별이 없다'는 말은 안 실리겠지요? 돈있는 사람, 학식있는 사람, 힘있는 사람이 떵떵거리거나 우쭐거리는 우리 세상이니까요.

 

그런데, 날마다 수없이 쏟아지는 어린이책에서 이런 문제를 제대로 다루지 않습니다. 어쩌면, 아이들한테는 너무 어려운(?) 문제일 수 있고, 아이들한테 굳이 아프거나 어두운 우리 사회 모습을 보여주어야 하느냐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이들 삶을 들여다보면, 아픔과 생채기와 어둠과 그늘이 참 짙습니다. 많이 누리는 집안에서는 많이 누리는 집안대로, 누릴 것이 없는 집안에서는 누릴 것 없는 집안대로 아이들은 골병을 앓아요.

 

학교에서 싱그러운 배움을 하나하나 받아안으며 무럭무럭 자랄 수 있는 아이들인가요? 장애아이는 제도권학교조차 '취학면제' 딱지를 받으며 발도 디딜 수 없는 가운데, 참 사람됨을 익히도록 이끌기보다는 갖가지 지식조가리를 아이가 더 많이 머리속에 담는 데에 마음쓰는 우리 형편입니다. 공부 잘하는 아이는 잘하는 아이대로, 못하는 아이는 못하는 아이대로 괴로운 교육 얼거리입니다. 이런 한국 사회에 이주노동자 딸아들이라는 이름으로 끼어들게 된 아이들 삶은 어떠할까요. 왜 우리 어린이문학가들은 이런 이야기를 문학으로 담아내어 펼치지 못할까요.

 

<까매서 안 더워?>는 지금 아이들이 속깊이 헤아리며 자기 삶과 생각을 추스를 수 있도록 이끌어 갈 글감을 잘 짚어낸 대목에서 반갑습니다. 그렇지만, 이 작품에 나오는 세 아이 이름을 '한국 아이 이름'으로 바꾸고, 그냥 한국 아이들 틈바구니에서 따돌림이나 괴로움이 있는 모습으로 그려낼 때하고 무엇이 다를까요.

 

이주노동자 아이들이 자기들이 부딪히는 문제를 풀어갈 길은 자기 스스로 이를 앙다물고 너스레를 떨며 굽신거리는 길밖에 없을까요. 한 걸음 물러나는 사람이 이긴다는 옛말이 있습니다만, 한쪽 뺨을 맞은 예수님은 다른 뺨을 내민다고 하지만, 이주노동자 아이들은 하느님과 같은 참을성과 견뎌냄을 키우면서, 이 땅 한국 아이들은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으면, 이 땅 한국에서 부모와 교사로 있는 사람들은 멀뚱멀뚱 있기만 하면, 모든 일이 저절로 술술 풀리게 될까요. 동화책 한 권에서 이 모든 문제를 풀 수는 없습니다만, <까매서 안 더워?>에 실린 작품 셋을 마무르는 고빗사위가 같은 얼개로 되어 있는 대목은 아쉽습니다.

 

책앞에 '이주노동자와 우리 사회' 문제 이야기를 추천글과 글쓴이 말로 짤막하게 다루는데, 책뒤에 '이주노동자란 어떤 사람들인가?', '코시안이라는 이름이 붙은 사람들은 누구인가?', '우리 곁에 있는 이주노동자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는가?' 같은 이야기를 한두 쪽에 걸쳐서 실어 주면 어땠을까요.

 

책 바깥 이야기를 해 보자면, 이 책에는 차례가 안 붙었습니다. 그냥 죽 읽으면 되기는 하지만, '한 권짜리 통 이야기'가 아니라 '짧은 작품 셋을 따로 써서 엮은 이야기'라면, 차례를 달아야 합니다. 다음으로, 본문 편집을 할 때, '좌우 정렬'이 아닌 '왼쪽 정렬'만 해서, 본문 오른쪽은 들쑥날쑥입니다. 오른쪽이 들쑥날쑥 되면 책을 읽기에 안 좋습니다. 이 책은 아이들이 읽을 책임을 헤아려야지요.

 

다음으로 빈자리가 너무 많습니다. 글씨를 조금 더 키우고 줄간격을 넓힌다든지, 한 쪽에 글자를 조금 더 넣는다든지, 그림을 키워서 한쪽 면이나 두 쪽을 통틀어서 넣든지, 쪽수를 줄이고 책 판을 줄여서 조촐하고 자그마한 판으로 엮든지 했다면 한결 나았을 텐데요. 금세 읽어낼 만큼 길이가 짧은 작품 셋을 모은 책을 억지로 120쪽까지 늘렸다는 생각을 지울 길 없습니다. 그래서 책값 8500원이 무척 비싸게 느껴집니다.

 

<까매서 안 더워?>에 담아서 들려주는 줄거리가 우리 땅에서 따돌려지고 뒤로 밀려나는 '아픈 사람들 자그마한 이야기'라 한다면, '책꼴과 책엮음에서도 한 걸음 물러나며 얌전하게 고개숙이는 작고 수수한 짜임새'가 될 수 있도록 마음을 써 주었으면 더 좋았을 텐데요.

 

마지막으로, 단순 오탈자가 아홉 군데 보입니다(46쪽, 52쪽, 62쪽, 64쪽, 65쪽, 70쪽, 72쪽, 74쪽, 99쪽). 국어연구원 맞춤법이나 교과서 맞춤법으로 더 꼼꼼히 살피자면, 바로잡거나 추슬러야 할 대목이 더 많이 나오리라 봅니다. 한편, 글쓴이 박채란 님이 더욱 마음써야 할 글쓰기 문제가 있어요. '저녁 식사 시간', '기분이 별로야?', '허기가 밀려왔다', '12일로 정해졌어요', '말을 합쳐', '패러디해서', '과묵하게', '친구들을 향해', '멤버', '티나의 잘못된 존대법', '흰 피부의 아이들' 같은 대목은 깨끗하고 손쉬운 우리 말로 다듬어 주면 좋겠습니다. '몽골말'이라고 했다가 '몽골어'로도 나오며 뒤죽박죽인 말씀씀이는 하나로 가다듬어야겠지요.

 

좋은 글감을 흔한 이야기에 머물게 한 대목이 아쉽지만, 다음 작품을 기다려 봅니다. 별 다섯 만점에서 셋을 주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 == 이주노동자 이야기를 다룬, 추천할 만한 몇 가지 책 ==

정동헌 사진 / <이주노동자 또 하나의 아리랑>(눈빛,2006)
이란주 씀 / <말해요, 찬드라>(삶이보이는창,2003)
외국인노동자대책협의회 엮음 / <외국인 이주노동자 인권백서>(다산글방,2001)
김지연 사진 / <노동자에게 국경은 없다>(눈빛,2001)


까매서 안 더워? - 마음의 국경을 허무는 따뜻한 이야기

박채란 지음, 이상권 그림, 파란자전거(2007)


태그:#이주노동자, #박채란, #까매서 안 더워?, #책읽기가 즐겁다, #외국인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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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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