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저는 파스타, 초콜릿, 디저트 등 먹고 싶은 것을 평상시처럼 먹으면서 첫 주에 11파운드(약 5kg)를 뺐어요. 그렇게 빠진 뒤로 지난 6개월 동안은 단 1파운드도 다시 찌지 않았어요."

먹고 싶은 것을 다 먹으면서 살을 뺐다는 세실리아의 환상적인 이야기가 신문 광고 전단에 실렸다. 비만-다이어트 관련 기사가 그렇듯 이 기사 역시 독자들의 눈길을 사로잡기 위해 대조적인 시각적 이미지를 활용했다.

▶ 살을 빼기 전- 다리를 가린 꼭 끼는 긴 치마, 굵은 허리, 혼자서 팔짱을 낀 다소 냉소적인 표정.
▶ 살을 빼고 난 뒤- 초미니 스커트, 과감한 노출, 섹시함을 강조하는 스타일, 남자의 허리를 감은 채 마냥 행복한 모습.

먹고 싶은 것을 다 먹으면서 살을 뺐다는 세실리아의 다이어트 전과 후의 모습.
 먹고 싶은 것을 다 먹으면서 살을 뺐다는 세실리아의 다이어트 전과 후의 모습.
ⓒ 광고 전단

관련사진보기


뚱뚱했던 여자도 살만 빠지면 이렇게 매력적인 여자로 변한다고? 세실리아의 비만 스토리는 그녀의 입을 통해 계속된다.

"저는 어렸을 때도 좀 통통했어요. 하지만 11살이 되면서부터는 눈에 띄게 살이 찌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한 때는 체중이 163파운드(74kg)까지 나갔어요. 그 뒤로 노력을 해서 좀 빠졌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쪘어요.

이 때문에 저는 우울증에 시달렸어요. 그래서 폭식을 하기도 하고 굶기도 하고 거식증에 시달리기도 하고…. 제 나이 23살이었을 때는 너무나 뚱뚱해서 뭘 입어야 할지 모를 정도였어요.

그러자 사람들은 저를 멀리 하게 되었고 저 역시 아무도 저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믿게 되었죠. 그러니 저 자신에 대해 신경도 안 쓰게 되고…. 결국 제가 만든 울타리 안에 스스로 갇히게 되는 딱한 신세가 되고 말았죠."

비만과 관련된 이런 서글픈 경험담은 우리나라뿐 아니라 미국에서도 아주 흔한 스토리다. 그리고 이어지는 다이어트 광고 역시 마찬가지다.

그런데 비만이라는 것이 그저 살이 쪄서 입을 옷이 마땅치 않다거나 남 앞에 서기 창피한 일로만 끝나는 것일까. 천만의 말씀. 비만은 그렇게 단순한 고민만으로 끝날 일이 아닌 것 같다.

왜냐하면 이미 법원에서 판결이 난 대로 '비만은 비정상적인 체지방의 증가로 인해 대사 장애가 유발된 상태의 질병'이기 때문이다. 병이라는 말이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이런 '대사 장애'라는 몸의 병보다 더욱 심각한 건 비만으로 인한 자신감 결여, 우울증, 피해의식, 대인기피증 등의 정신적인 병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뚱뚱해서 왕따 당한다?

"엄마, 오늘 학교에서 재스민이랑 이야기를 했는데 그 애가 좀 불쌍했어."
"왜?"
"뚱뚱하거든."
"뭐 그렇다고 불쌍할 것까지야…. 너도 만날 체중계에 올라서면 뚱뚱하다고 말하면서."
"아니, 그 애는 나랑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뚱뚱해. 내 두 배, 아니 세 배쯤 될까?"

해리슨버그 고등학교 풋볼 경기 하프 타임 때. 왕따 당하고 있다고 고민하는 클라리넷 주자 재스민. 원래 있던 유니폼이 맞는 게 없어 이번에 새로 맞췄다.
 해리슨버그 고등학교 풋볼 경기 하프 타임 때. 왕따 당하고 있다고 고민하는 클라리넷 주자 재스민. 원래 있던 유니폼이 맞는 게 없어 이번에 새로 맞췄다.
ⓒ 한나영

관련사진보기


뚱뚱하다고 뭐 불쌍할 것까지야 없겠지만 딸의 말을 들어보니 여느 사람의 두, 세 배 되는 체중을 가진 사람이라면 고민이 되겠다는 생각도 들긴 한다.

딸이 걱정하고 있는 재스민은 이번에 중학교에서 올라온 9학년 신입생이다. 밴드에서 클라리넷을 부는데 밴드 애들이 멀리 운동장에서 연습을 하고 있어도 금방 눈에 띌 만큼 아주 뚱뚱한 아이다.

걷는 것도 뒤뚱거리듯 걷고 입는 옷도 엑스트라 특대 정도의 티셔츠만 입는다. 한창 멋을 부리고 싶은 나이에 그런 옷만 입어야 하는 재스민도 고민이 많긴 할 게다. 하지만 딸아이가 불쌍하다고 여겼던 것은 지난 번 밴드 캠프 때 있었던 일 때문이다.

방학 중, 아이들은 이른 아침부터 늦은 오후까지 밴드 캠프에서 강훈련을 받고 점심 시간이 되면 학교 카페테리아로 모였다. 같은 학년끼리, 또는 같은 악기나 친구끼리 삼삼오오 모여 밥을 먹는데 재스민은 친구도 없이 외따로 떨어져 밥을 먹는 일이 많았다.

그런데 어느 날, 카페테리아에 늦게 온 딸아이 일행이 자리가 없어서 후배인 재스민과 같이 앉게 되었다. 모처럼 친구가 생겨 밥을 같이 먹게 된 재스민은 그 때 다른 아이들에게 자신의 신세(?) 한탄을 했다고 한다.

'밴드 그만두고 싶다고. 자기는 왕따라고.'

"뚱뚱하다고 재스민을 왕따시켰으면 너희들이 잘못한 것이네."

그런데 딸의 말을 들어보면 그런 것만도 아니었다.

"엄마, 애들 탓만 할 수는 없어. 애들이 일부러 그 애를 지명해서 왕따시키는 건 없으니까. 내가 보기엔 재스민이 너무 뚱뚱하니까 스스로 움츠러들어 남과 어울리려고 하지 않는 게 문제야. 스스로 친구들에게 다가갈 수도 있는데 그렇게 하지 못하고 늘 남 탓만 하면 안 되지. 물론 마칭할 때 재스민이 느리게 걷기도 하고 잘 걷지 못하기도 해. 하지만 그건 별 문제가 안 돼. 내가 보기엔 재스민은 본인 스스로 자신감이 없어서 늘 그런 피해의식을 갖고 사는 것 같아."

딸에게서 그런 말을 듣고 나도 재스민에게 잘 해주려고 어쩌다 학교에서 만나게 되면 반갑게 "하이, 재스민"이라고 인사를 해보지만 늘 어두운 표정의 재스민은 별 반응이 없었다.

비만으로 인한 자신감 결여, 피해의식이 재스민을 꽁꽁 가두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이혼법정에서도 비만은 중요한 이슈

소송 왕국이라는 미국. 그런 말을 듣는 나라답게 이곳에서는 소송과 관련된 텔레비전 프로그램도 아주 많다. 대표적인 것이 린 톨러가 진행하는 이혼법정(Divorce Court)이다. 그런데 이 프로그램에서는 비만과 관련된 이혼 소송도 심심찮게 나온다.

지난 주에 본 <이혼법정>이다. 결혼한 지 1년 정도밖에 안 된 젊은 20대 초반의 부부가 법정에 나왔다. 이들은 톨러 변호사 앞에서 각자의 불만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부인은 자기 남편이 인터넷의 데이트 사이트를 통해 여자친구를 만들어놓고 사이버상에서 매일 만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아내인 자기와는 잠자리도 같이 안 한다고 불만을 털어놓는다.

반면에 남편은 자기 아내가 잔소리가 아주 심하고 의부증이 있다고 주장한다. 또한 아내가 대책 없이 살이 찌고 있다는 불만도 강하게 토로한다.

"결혼한 지 이제 겨우 1년밖에 안 지났는데 애도 없는 니콜이 벌써 10파운드(4.5킬로)나 쪘어요."

이에 대해 톨러 변호사가 "부인이 살찐 게 부부생활에 무슨 문제라도 있냐?"고 묻자 젊은 남편은 단호하게 "그건 대단히 중요한 문제"라고 대답한다.

이혼법정에 선 젊은 부부. 남편은 부인이 결혼 1년 만에 10파운드(4.5kg)나 쪘다고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이혼법정에 선 젊은 부부. 남편은 부인이 결혼 1년 만에 10파운드(4.5kg)나 쪘다고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 Divorce Court- FOX TV

관련사진보기


이혼법정 예고편- "뚱뚱하고 게으른 부인에 질렸어요."
 이혼법정 예고편- "뚱뚱하고 게으른 부인에 질렸어요."
ⓒ Divorce Court

관련사진보기


<이혼법정> 홈페이지에도 비만과 관련된 문제가 종종 나온다. 프로그램 미리보기를 통해 이번 주(9월6일)에 방영될 내용을 살펴보니 역시 비만 관련 사건이 있었다.

크리스라는 남편이 제기한 이혼법정 사건이다. 남편은 자신의 아내가 뚱뚱하고 게으르고 요리도 할 줄 모른다고 비난하고 있다. 그 역시 부인이 뚱뚱하다는 것을 문제 삼고 있다. 그런데 부인도 할 말이 많다.

"저는 남편을 위해 아무 것도 해주고 싶지 않아요. 왜냐하면 그이는 늘 제 몸무게를 비웃고 있거든요."

부인은 자신이 요리를 못 한다는 점은 인정했지만 자신의 몸무게를 언급하면서 조롱하는 남편을 위해 뭘 해주고 싶겠냐고 반문하고 있었다.

이렇듯 부부생활에 있어서 비만은 때로 중요한 문제가 되기도 한다. 신문의 고민 상담란을 보더라도 복부비만이 심각한 남편이 운동은커녕 매일 TV 앞에 앉아 스포츠 채널만 돌리고 있다고 하소연하는 아내가 적지 않으니까.

사실 비만 자체가 결혼생활을 파탄에 이르게 하지는 않을 것이다. 부부간의 사랑이 식어서 상대가 밉게 보이고 부정적으로 보여서 그렇지. 하지만 부부갈등의 실마리를 제공하기도 하고 이런 사소한 갈등이 이혼이라는 큰 문제까지 가는 경우가 적지 않은 것 같다. 이런 것을 생각하면 비만은 치료가 필요한 질병이라는 판결에 나도 동의한다.

또한 비만은 그것이 원인이 되어 일으키는 합병증이 적지 않고 비만 자체만으로도 다양한 질병을 유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세계보건기구에서도 비만은 병이고, 그것도 장기적인 투병이 필요한 질병이라고 언급한 사례를 볼 때, 또한 위의 경우처럼 정신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의 사례를 살펴볼 때 분명히 치료해야 할 질병이다.

하긴 나 역시 비만이라는 질병을 가진 환자다. 이번 여름에 한국을 방문하여 종합 검진을 받았을 때 복부 비만 판정을 받았다. 사람은 겉보기와 속보기가 다르다더니 겉은 멀쩡한 듯한데 속은 그렇지 않았다.

부끄럽지만 이 자리에서 그 내용을 공개하자면 BMI(신체질량지수, Body Mass Index)는 22.0으로 표준. 하지만 체지방률은 29.3으로 '표준'을 약간 상회하는 정도, 복부지방률은 0.85로 '표준이상'을 거뜬히(?) 넘은 것으로 판정났다.

의사는 우려할 정도가 아니라고, 아줌마에게는 이런 정도의 비만은 보통이라고 했지만 비만이라는 게 서서히 진행되어 어느 날 갑자기 눈 앞에 들이대는 흉기(?)나 마찬가지인 만큼 꾸준히 치료를 하려고 한다. 그래서 열심히 걷고, 기계 위에도 올라가 보는데 모든 질병 치료가 그렇듯 결코 쉽지 않다.

비만? 그거 확실히 병이다. 육체적으로뿐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반드시 치료해야 할 중요한 질병이다.

덧붙이는 글 | <'비만=질병' 이라고?> 응모글



태그:#비만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