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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더아모의집 철학도 '기회있을 때 될수 있는대로 좋은 추억을 만들어가'이어서 B군과 일맥 상통한다. 사진은 부산 해운대 송정 해수욕장에 더아모 캠프를 하며 찍은 사진이다. (사진에는 B군이 없으니 지나친 상상은 하지 말기를^^)
ⓒ 송상호
내가 잘 아는 B군은 중학생이다. 반 석차가 뒤에서 2등이다. 그나마도 뒤에서 1등 하던 아이가 전학 가는 바람에 1위로 부상(?)했다. 그리고 전교에서는 자기 뒤에 몇 명 안 된다. 그래서 주위에선 B군에 대한 시선이 곱지 않다.

"요즘 생활 재밌니?"

내가 물었다.

"예. 좋아요. 그럭저럭."

B군의 답이다.

"요즘 친구들과는 잘 지내니?"
"잘 지내죠."

"공부는 어때?"
"예. 제가 원하는 고등학교에 한 번 가려고 이제 공부 좀 해보려고 해요. 목사님 제가 도움을 요청하면 좀 가르쳐 주세요."

"그래, 좋지. 내가 힘닿는 대로 도와주지 뭐."
"고맙습니다."

녀석, 참 인사성도 밝다. '고맙습니다'라고 말하는 어투가 너무 사랑스럽다. 왜 있지 않은가. 아주 사랑스러운 목소리 그거 말이다. 들어 본 사람은 알 것이다.

"목사님, 저 이래 뵈도 두 가지는 꼭 하고 살 거예요."
"뭔데?"

뜬금없는 녀석의 '소신 밝히기'에 나의 촉각이 곤두선다. 생전 그런 이야기 잘 안 하던 녀석이기 때문이다. 드디어 입을 연다.

"저 있잖아요. 앞으로 세상 살면서 이것만은 놓치지 않을 거예요."
"그게 뭐냐니까?"

"첫째, 어른이 되어서도 후회하지 않을 추억을 쌓으며 살고 싶어요. 지나가면 하지 못할 그런 추억을 쌓는 데에 전념해서 커서 후회하지 않으려고요."
"그래. 그럼 많이 놀아야겠네."

"뭐 꼭 그런 것만은 아니고요. 경험하는 것에 투자하며 살려고요."
"그렇구나. 그럼 두 번째는 뭐냐?"

"미용사와 그림 그리는 것을 꼭 하고 살 거예요."
"그렇구나."

"아시다시피 제가 좋아하는 거잖아요. 고등학교만 졸업하고 미용사 자격증 따서 미용실 하고, 그림 공부도 할 거예요."

B군은 진짜 그림 잘 그린다. 친구들 그림 숙제는 도맡아 해주는 편이다. 서로 해달라고 난리다. 그밖에도 B군은 다재다능하다. 성적만 빼놓고 말이다. 성격도 착하고 성실하다.

사실 이런 좋은 이야기를 주고받았다는 것을 실명이 아닌 'B군'이라고 익명을 써야 하는 세상에 대해 살짝 화가 나기도 한다. 나만 같아도 상관없고, 내 딸아이만 같아도 상관없겠건만 나의 좋은 의도가 오히려 그 아이에게 상처 갈까 봐, 또는 놀림감이 될까 봐 그냥 익명으로 글을 쓰고 있는 게다.

하지만 B군의 야무진 철학은 내 마음을 살짝 감동시키기에 충분했다. 중1 녀석이 뭘 알겠느냐는 여지를 전혀 주지 않는 당찬 철학이다.

커 가면서는 좋은 경험을 많이 하겠다는 생각이고, 커서는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욕심부리지 않고 미련 없이 하면서 살아가겠다는 이야기가 아니었던가. 커 가는 과정도 알차게 보내겠다는 의지이고, 커서도 당차고 행복하게 살아 보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 하겠다.

그렇다. 이 정도의 생각과 철학이라면 성적이 무슨 대수일까. 현실을 모르는 철없는 소리라고 누가 대꾸한다고 할지라도 그 아이만의 당당한 철학이라고, 그게 천 번 만 번 바르고 행복한 길이라고 반론해줄 증거는 나에게 얼마든지 있다. 나의 삶을 두고도, 나의 지인들의 삶을 두고도 얼마든지 실제로 보여줄 수 있다.

이쯤하고 이제 중학교 반 석차가 뒤에서 1등 하던 녀석이 분발하면 1등을 뺏기게 되어 큰일(?)이다. 그러면 누군가 그 자리를 또 차지하겠지. 어차피 세상은 생존경쟁(?), 약육강식(?) 아니었던가. 하하하 하하하.

덧붙이는 글 | ‘더아모(더불어 사는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가는 모임)의 집은 경기 안성 금광면 장죽리에 자리 잡고 있다. 홈페이지는 http://cafe.daum.net/duamo 이다.


#더아모의집#송상호목사#꼴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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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서 목사질 하다가 재미없어 교회를 접고, 이젠 세상과 우주를 상대로 목회하는 목사로 산다. 안성 더아모의집 목사인 나는 삶과 책을 통해 목회를 한다. 그동안 지은 책으로는 [문명패러독스],[모든 종교는 구라다], [학교시대는 끝났다],[우리아이절대교회보내지마라],[예수의 콤플렉스],[욕도 못하는 세상 무슨 재민겨],[자녀독립만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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