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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프가니스탄에서 납치된 한국인 봉사단원들. 이 중 김경자·김지나씨는 석방됐으며, 배형규·심성민씨는 피살됐다.
ⓒ 오마이뉴스

28일 아프간에 억류돼 있는 19명의 석방 합의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분당 샘물교회와 외교통상부에 있던 기자들은 41일간의 피랍 사태 취재를 마무리하게 됐습니다.

지난 41일 동안 언론에 쏟아진 비판은 대단했습니다. "선교를 봉사로 호도한다" "기독교를 옹호하고 있다" "진실을 속이고 있다" 등 네티즌들의 혹독한 비판은 여간 고통스러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 날의 네티즌 반응도 그리 다르지 않았습니다. <오마이뉴스>에 실린 피랍자 전원 석방 소식에 댓글 100여개가 순식간에 달렸습니다. 포털사이트의 관련 기사에 달린 댓글의 수도 엄청났습니다. 석방 소식이 전해진 분당 샘물교회를 스케치한 기사에도 댓글 500여개가 달렸고, '미디어다음'의 토론방은 다시 아프간 피랍자 이야기로 뜨거워졌습니다.

생명보다 무거운 것은 없습니다

네티즌 중에는 19명의 무사귀환을 반기는 이도 있었고 정부가 그동안 피랍자 석방을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며 수고했다고 말한 이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대다수의 네티즌들은 테러집단과 직접 협상한 정부의 외교태도를 꾸짖기도 했고 기독교의 공격적인 선교 방식을 지적하기도 했습니다. 진실을 알려야 할 언론이 나서서 피랍자들에게 면죄부를 주거나 오히려 영웅화하는 것 아니냐고 비판했습니다.

저는 네티즌들이 '기독교의 공격적인 선교방식'을 비판하는 데 공감했습니다. 일부 기독교인의 공격적인 선교로 불쾌한 경험을 한 적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지하철에서 명동거리에서 "예수천국 불신지옥!"을 외치는 이를 만나면 소름이 끼쳤습니다. 목이 잘린 불상이나 단군상의 사진을 볼 때면 그들의 섬뜩한 맹신에 몸서리쳤습니다.

이번 사태가 기독교계로서도 스스로 깊이 성찰할 수 있는 기회가 됐다고 생각합니다. 타인의 믿음에 대한 배려 없이 자신들의 믿음만을 강요하는 태도가 많은 국민에게 기독교에 대한 염증을 느끼게 했다는 것을 깨달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국가적 망신을 시킨 이들을 전원 구속시켜라"라는 주장에서 다른 의미의 섬뜩함을 느낍니다.

사람의 생명입니다. 누군가의 남편·아내이고 누군가의 자식, 누군가의 부모이며 누군가의 형제자매입니다. 국가 앞에 생명의 무게가 한없이 가볍게 취급된다는 생각에 소름이 돋습니다.

▲ 고혈압으로 휠체어를 탄 채 기자회견에 참석한 한지영씨의 어머니 김택경씨가 "아프간으로 가는 비자 특급으로 내줄 수 없나요, 이렇게 하나둘씩 죽어 가는데 바라보면서 있을 수는 없잖아요"라며 울부짓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이번 아프간 피랍 사태를 취재하면서 저는 이런 차가운 감정들과 자주 마주쳤습니다. 어떤 이는 <오마이뉴스>에 전화를 걸어 "세계 어떤 국가도 직접 테러집단과 협상을 벌이지 않는다"며 "피랍자들의 희생을 감수하더라도 특전사를 투입시켜 사태를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테러집단과의 협상 절대 불가'를 외치는 미국도 국민의 생명 앞에서 꼿꼿한 태도를 꺾었습니다.

지미 카터 전 대통령 집권 당시인 1979년 50명의 자국민이 이란 주재 미 대사관에 억류되자 다각도로 협상을 벌였고 피랍 444일 만에 '내정 불간섭, 해외 자산 동결 해제'를 약속하고 자국민을 돌려받았습니다. 로널드 레이건 정부도 자국민 6명이 레바논 시아파 무장세력 헤즈볼라에 억류됐을 때 이란에 무기를 판매하는 조건으로 인질을 구출했습니다.

조지 부시 행정부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라크 바그다드 한복판에서 납치된 미국인 프리랜서 기자 질 캐럴을 납치한 '복수여단'이란 이름의 저항세력은 "미군이 구금하고 있는 모든 이라크 여성 수감자의 석방"을 협상조건으로 내걸었습니다. 이에 미국은 여성 수감자 5명을 포함해 모두 419명의 이라크인 수감자를 납치사건 발생 19일 만에 풀어줬습니다.

그 무엇도 생명보다 무거운 것은 없습니다. 냉혹한 현실정치에서도, 치열하게 이득을 셈하고 있는 국제관계에서도 '생명'만큼은 기본입니다. 돌아올 19명을 질책하는 것보다 그들의 무사귀환을 축하해주는 것이 우선입니다.

벌써부터 피랍자들에게 가해지는 매질

지난 기자회견장에 검은 소복을 입고 온 고 배형규 목사의 부인 김희연씨(36)는 "한번만 남편을 더 만났으면 좋겠다"며 손수건으로 입을 틀어막았습니다.

"아프간으로 가는 비자, 특급으로 내줄 수 없나요. 이렇게 하나둘씩 죽어 가는데 바라보면서 있을 수는 없잖아요. 세계 방방곡곡에 가서 도와달라고 호소하고 싶어요. 아프간 대통령도 만나고 미국 부시 대통령도 만나고…."

7월 31일 휠체어에 앉은 김택경(52·피랍자 한지영씨 어머니)씨는 기자들 앞에서 이렇게 말한 뒤 고개를 제대로 가누지 못했습니다. 고개를 외로 젖힌 채 뱉는 거친 숨소리와 신음만이 사지(死地)에 딸을 둔 어미의 속을 짐작케 했습니다.

이제야 가족들은 웃음 지었지만 피랍자들이 한국 땅을 밟기 전까지 적어도 5일은 남았습니다. 그러나 "살아 돌아오기만 한다면 어떤 매든 달게 맞겠다"며 절박하게 도움을 호소했던 이들에게 벌써부터 매질이 가해지고 있습니다.

어제(28일) 저녁, 석방 합의 소식이 전해진 후 관련 기사 댓글에는 '▶세금아 지켜주지 못해 미안해◀'라는 리플이 붙고 있습니다. 근조 표시가 달린 이 리플은 피랍자들이 사지에서 살아돌아오는 것을 반기는 것이 아니라, 이들의 석방을 위해 세금으로 몸값이 지불됐을 것이라고 추정하고 우려하는 내용입니다.

또 다시 춥습니다.

▲ 포털사이트 네이버의 관련 기사 댓글. '세금아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해'라는 댓글들이 눈에 띈다.
ⓒ 네이버 화면 갈무리

태그:#아프간, #인질 석방, #기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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