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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식민지 소년> 김하기
ⓒ 청년사
김하기의 소설 <식민지 소년>(청년사 간)은 일러스트가 들어간 표지부터 부담을 덜 주는 소설이다. 주인공 김덕경이라는 소년이 산발을 하고, 기운 옷을 입고, 맨발로 선 표지 그림은 식민지 시대의 소년을 그대로 표현하는 것 같다. 그러면서도 소년의 눈매는 당차 보이고, 얼굴은 장난기와 매서움으로 가득 차 있다. 김하기의 글에 만화가이자 일러스트 작가인 김홍모가 그린 삽화는 이 소설이 덤덤하고 때로는 위트를 보여주며 쉽게 읽힐 수 있는 작품이라는 것을 암시한다.

<완전한 만남> 이후로 김하기의 소설은 처음이다. 원래 나는 요즘 소설을 잘 읽지 않는다. 머리만 산란해졌지 소설이 주는 감동을 잘 느끼지 못해서다. 그런 내가 이 책을 선뜻 집어든 것은 신문사의 짤막한 서평을 보게 된 것이 원인이기도 하지만, 김하기라는 만만치 않은 작가가 식민 시대를 어떻게 그려냈을까 하는 궁금증 때문이었다.

식민의 피폐함에서도 잃지 않았던 민족혼

<식민지 소년>은 주인공 김덕경이 초등학교에서 중학교 1학년 때까지 식민지 아이로서 살아가는 이야기를 일상적으로 그린 글이다.

배냇소(타인의 소. 배냇소는 타인의 암송아지를 길러주고 새끼를 낳게 되면 그 송아지를 갖게 되는 소다)와 남의 염소를 기르며 소학교(초등학교)에 입학해 다니는 덕경이는 천방지축 어린이로 공부에는 영 취미가 없지만 싸움은 잘하는 아이다. 그런 아이가 학교를 다니다 어느날 공부에 눈을 뜨게 되고 중학교까지 들어가게 되는 과정에서의 학교와 가정의 이야기를 담은 이야기가 바로 <식민지 소년>이다.

식민지 소년의 눈에 비친 선생은, 나중에 해방 후 교장까지 되었던 나태하며 일본인 흉내를 내고 싶어하고 툭하면 학생들에게 폭력을 일삼는 조선인 '쥐수염' 선생과, '요시다'라는 일본 선생처럼 칼을 차고 수업시간의 반을 전황을 이야기하며 황국신민으로의 교육과 '더러운 조선인'의 개량을 꿈꾸는 제국주의자, 그리고 조선학생들에게 민족의식을 고취하고 덕경이의 밀린 월사금을 몰래 내주며 결과적으로 중학교에 갈 수 있도록 눈을 뜨게 해준 강선생의 세 가지 타입이다. 그 중 결국 덕경이의 인생을 바꾼 것은 나중에 민족의식을 고취했다 하여 주재소에 끌려가 고문을 받고 만주로 건너갔다는 강선생이다.

이 밖에도 허약하고 무능하지만 일제에 대한 반감과 민족의식만은 잃지 않았던 아버지, 그리고 김영랑 등의 시를 덕경에게 보여주며 우리 말과 글의 소중함을 깨우치던 외삼촌 등 일제에 붙어 수탈의 앞잡이가 되었던 사람들 속에서도 민족의식을 잃지 않았던 덕경 주변 사람들은 어린 그에게 민족혼을 일깨워 준다.

어른과 똑같이 피폐했던 식민지 소년의 삶

식민지 시대에 살았던 어른들의 삶이야 말해 무엇하랴만 시골에서 아무 희망 없이 소작농의 장남으로 사는 주인공 어린이의 삶도 어른들의 그것과 그리 다르지 않다.

소학교를 나오면 기껏 밥이나 잘 먹을 수 있는 부잣집 머슴이나 혹은 농촌의 무지렁이로 살 수밖에 없었던 주인공 덕경이가 중학교에 들어가게 된 것은 행운이었으나 그 배경에는 압제자에 빌붙어 살던 기득권층 자식에 대한 반감 또한 없지 않았다.

그런 가운데서도 식민시대를 살아가는 아이의 아픔은 곳곳에서 보인다. 공부를 잘하면서도 형편 때문에 중학교에 들어갈 수 없어, 집에 있다 정신대 차출을 피해 부산으로, 신랑될 사람의 얼굴조차 보지 못하고 시집을 간 누이. 이 누이는 피폐한 삶과 처지를 비관해 결국 영도 다리 위에서 열아홉의 나이에 몸을 던져 죽었다.

그리고 영특하지만 몸이 약하고 먹는 것이 시원찮았던 동생 중 하나도 끝내 목숨을 잃게 되며, 마을에서 최후까지 버티다 마지막으로 창씨개명을 한 것이 찍히는 계기가 되어 주재소 백순사에게 끌려가 고문을 당하고 풀려난 아버지 등 식민지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아픔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이 소설의 특징은 어린 아이의 시각으로 쓴 글이고 하나의 큰 사건을 배경으로 한 것이 아닌 초등학교부터 중학교 1학년까지의 일상을 그렸다는 것이다. 따라서 깊이를 따지기보다는 고단한 식민지 시대의 삶을 덤덤하게 묘사한 글로 보는 것이 맞으며, 군데군데 눈에 띄는 위트와 그 위트 사이에서 보이는 식민지의 현실은 식민지 시대 경험이 없는 사람들에게 간접 경험이 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읽기 시작한 지 네 시간 만에 다 끝내고 필체가 어렵지 않아 중학생 이상 정도면 무난히 읽을 수 있는 소설로, 부모가 먼저 읽고 아이들에게 권하면 좋을 듯하다. 오랜만에 쉽고 좋은 소설을 만나 기쁘다.

식민지 소년

김하기 지음, 김홍모 그림, 청년사(2007)


태그:#식민지소년, #김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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