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 '이명박 후보 본선의 험로'라는 제목의 21일자 <동아일보> 사설.
ⓒ 동아일보 PDF

아무래도 <동아일보>가 휘파람이 절로 나오는 게 아닌가 싶다. 올해 대선 때는 '킹메이커' 역할을 톡톡히 할 수 있을지 모른다는 '예감'이 <동아일보>를 벌써부터 들뜨게 하는 것 같다. 어제와 오늘(22일) <동아일보>의 지면이 그렇다.

<동아일보>는 어제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 앞에 놓인 '본선의 험로'를 지적하는 사설에서 '본선 필승'을 위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그 중 백미는 단연 '한나라당 초식동물-범여권 맹수론'이다. <동아일보>는 사설에서 "한나라당이 초식동물이라면 좌파세력은 맹수라고 봐야 한다"며 이 후보와 한나라당에게 '새로운 모습'을 주문했다. 연약한 '초식 동물'이 '맹수'에게 일격에 당할 수 있다는 우려이자, 걱정이었을 것이다.

그래서였을까? 맹수에게 목젖을 물어뜯길지도 모를 '연약한' 초식동물에 대한 연민, 혹은 보호본능이 발휘됐던 것일까? <동아일보>는 오늘 '이명박 후보' 보위에 나섰다. 기사와 사설로 여권의 이명박 후보 검증 공세를 차단하고 나섰다.

기사는 제목부터가 "범여 주자들 '이검증' 열 올릴 자격 있나"(이진구 기자)로 돼 있다. 한나라당 후보로 이명박 후보가 확정되자 범여권 후보들이 일제히 "검증은 이제부터"라며 이후보에 대해 날을 세우고 있지만 정작 여권 후보들에 대한 검증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으며 여러 요인으로 이뤄지기도 힘들다고 지적했다.

기사는 민주신당 한 예비주자 캠프 관계자의 말을 빌려 "당내 경선에서 검증해야 할 대상은 소속 당 후보들인데 검증 칼날은 오히려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로 향하고 있다"며 "상대당 후보에 대한 검증은 경선이 끝나고 본선에서 하는 것이 상식"이라고 보도했다.

당내 경선에서 소속 당 후보들에 대한 검증이 이뤄져야 한다는 말은 맞는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상대당 후보에 대한 검증은 본선에서 해야 한다고 하는 것은 꼭 맞는 말은 아닐 것이다. 이제는 범여권 후보 가운데 하나인 손학규 전 경기도지사에 대해 한나라당이 기회 있을 때마다 그의 한나라당 탈당 행적 등을 문제 삼는 것을 보더라도 경쟁 상대당 유력주자들에 대한 검증에는 시한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동아일보>의 이 기사는 한 발 더 나아가 범여권 경선 주자들의 '검증 무임승차론'과 '형평성' 문제까지 꺼내들고 나섰다.

검증 무임승차론은 이렇다. 범여권이 시간에 쫓겨 경선 주자들에 대한 검증은 하지 않은 채 한나라당 후보만 물고 늘어지려는 것은 '검증 무임승차'로 국민의 외면을 받을 것이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는 것이다. 또 지지율 한자릿수인 범여권 대선 주자 10명이 한나라당 이 후보 검증에만 매달리는 것은 형평성에도 어긋난다는 지적도 있다는 것.

<동아일보>는 이런 문제의식을 사설('신당, 실정 덮고 이명박 욕만 하면 재집권하나')에서 보다 분명하고 또렷하게 드러냈다. 민주신당이 한나라당 대선 후보로 확정된 이명박 후보에 대한 검증 문제를 집중 거론한 데 대해 '너나 잘하라'고 몰아세웠다. 상대후보의 흠을 잡기보다는 앞으로의 비전을 보여주는 일에 더 열심이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순도 98%'의 '도로 열린우리당'이 검증을 말할 자격이나 있는지 의문이라고도 했다. '뒤집어씌우기 검증'은 2002년 대선 한 번으로 족하다는 말도 했다.

한마디로 민주신당이나 그 주자들은 대선 후보가 확정되기 전까지는 이명박 후보에 대해서는 입도 뻥긋하지 말라는 이야기처럼 들린다.

착각도 이런 착각이 없다. 민주신당 경선 주자들에 대한 검증이 필요하다는 주장은 백번 옳다. 하지만, 그들 여권 주자들에 대한 검증이 미흡하다는 이유로 이명박 후보에 대한 검증 자체를 하지 말라는 주장을 명색이 '언론'이 펴도 되는 것인지 의문이다.

▲ 20일 오후 서울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열린 한나라당 제17대 대통령 후보 선출을 위한 전당대회에서 대통령 후보로 선출된 이명박 후보가 별도로 마련된 기자회견장에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무엇보다 검증의 주체에 대해 <동아일보>는 큰 착각에 빠져 있다. 검증은 당내 경선 후보들끼리, 혹은 경쟁 당 후보들끼리만 하는 것은 아니다. 대선 후보 검증의 주요 주체는 바로 '언론'이다. 한나라당 후보 경선이 '지독한 경선'이 된 것은 바로 '언론', 특히 <동아일보>를 비롯해 보수언론이 후보 검증을 제대로 하지 않은 탓이 크다.

<동아일보>는 사설에서 한 때 '하나님의 목자' '민족의 양치기'라는 평판을 듣던 오충일 목사가 왜 간판만 바꿔 단 신장개업에 뛰어들게 됐는지, 즉 민주신당의 당 대표가 됐는지 이런 점을 민주신당이 검증해야 한다고 했다.

착오도 또 이런 착오가 없다. 이런 일이야말로 민주신당이 아니라 바로 <동아일보>가 해야 할 일이 아닌가. 바로 <동아일보>처럼 문제의식을 갖고 있는 언론이 해야 할 일이다. 또 잘할 수 있는 일이다. 당장 오충일 신당 대표와 비판적 인터뷰라도 한 번 해보면 될 것이다. 그러나 지금껏 <동아일보> 지면에는 이를 다룬 기사를 본 적이 없다. 오충일 대표가 민주신당과 자신에게 비판적인 <동아일보>의 취재에 응하지 않아서일까?

<동아일보>는 지난 14일 다른 언론사의 한나라당 후보 경선 관련 여론조사 결과를 인용 보도하면서 표와 기사에서 이명박 후보와 박근혜 후보와의 당원 지지율 격차를 잘못 오기해 바로잡은 적이 있다. '6.4% 포인트' 차이를 '16.4% 포인트'라고 잘못 적은 것이었다. <동아일보>는 즉각 다음날 이를 바로잡고 사과했다.

언론의 생리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라면 이를 '의도적인 오기'라고 볼 사람은 없다. 하지만 박근혜 후보 쪽에서는 그렇게 보지 않았다. 박 후보 캠프의 이혜훈 대변인은 "실수가 아니라 의도적인 것"이라고 했다. 이정현 대변인은 "지금까지 동아일보가 해 온 보도만으로도 억장이 무너져왔는데 도저히 묵과할 수 없다"면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낼 뜻을 밝히기도 했었다.

불현듯 올해 대선 과정에서 가장 검증이 필요한 것은 바로 <동아일보>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든다. 무엇보다 '한나라당 초식동물론'이 그렇다.

한나라당이 초식동물이다?

과연 그런가… 정말 그럴까…. 그런데 초식동물이 뭐지? 아파트 숲을 어슬렁거리는 목 긴 기린, 아니면 운하를 둥둥 떠다니는 물 먹는 고래?

그렇다면 초식동물에게 툭하면 씹히고 있는 노무현 대통령은? 소나 염소가 좋아하는 자귀나무, 아니면 가시 돋힌 산초나무?

#백병규#미디어워치#동아일보#이명박#초식동물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1,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